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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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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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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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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DUMMY

5. 푸른 수염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하다




김정현은 대학 시절 여자 선배였다. 대학 때도 호리호리한 체격에 운동을 곧잘 잘했고, 학기 중에 이미 전공과는 상관없이 경찰학교 시험을 준비했다. 세준은 경찰청 안의 대기실에서 김정현을 기다렸다. 머릿속으로는 어제의 화두 같은 한마디가 계속 떠다녔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부인이 죽은 이유는 뭘까?


다른 부인들은 모두 푸른 수염과의 약속을 어기고 비밀의 방에 들어갔다가 죽은 전부인들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첫 번째 부인은 아니었다. 과연, 푸른 수염은 왜 죽은 걸까.


“정말 어려운 문제군.”


대기실에서 몇 분을 기다렸을까, 정현이 복도를 두리번거리다가 휴게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세준으로서는 선배의 선배를 거쳐 겨우 연락된 정현이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후배에게 다가왔다.


“뭐야, 한세준. 졸업하고도 몇 년 동안 연락도 없더니.”


정현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짧은 머리스타일와 여자치고는 큰 키, 그리고 군살 없이 탄탄한 허벅지를 가진 미인이다.


“그렇게 됐어요, 누나. 죄송합니다.”


구김 없는 눈인사였다. 정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후배의 머리를 콩, 하고 때렸다.


“뭐가 그렇게 됐어요, 야. 그래서……, 잘 지내?”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아요. 근데 누나야말로 선배들에게 들었는데 특수반에 들어왔다면서요?”


“아, 특별팀이야. 원래 하는 하고는 상관없는데, 특수반은 아니고. 특별팀. 음…… 요새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그 사건 알지? 이쪽저쪽 모두 조금씩 차출해서 서로 공조하자는 취지지.”


“……신데렐라 스토커를 말씀하시는 거죠?”


“어, 그거.”


정현의 표정은 약간 어두웠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근데 정말 웬일이야. 물어볼 게 있다니. 동창들이 갑자기 전화해서 네가 나 찾는다고 해서 놀랐다, 인마.”


“제가요? 왜 놀라요? 후배가 선배 찾는데?”


“놀랍지.”


정현은 너스레를 떨었다.


“스포츠카 몰고 다니던 부잣집의 양아치가 나같이 선머슴 같던 선배를 기억한다는 게 놀라웠다고. 하긴 너, 언제나 클럽이나 다니는 철부지였지만……, 좀 독특한 분위기가 있긴 했지.”


누구에게나 한 줌 이상 있다는 흑역사가 경찰청 한가운데에서 폭로될 위기였다. 세준은 손사래를 쳤다.


“아,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마세요, 안 그래도 요새 철부지로 살아서 벌 받는가 보다, 하고 있습니다.”


“뭐? 무슨 일 있어? 청탁은 곤란해.”


대기실의 자판기에는 새로 나온 음료수들이 많았다. 정현은 반짝거리는 여러 개의 음료수 중에서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인 깡통 음료 두 개를 뽑아왔다.


달칵-. 깡통의 입술을 여는 소리가 달콤하게 울렸다. 세준은 다소 느긋하게 한 모금을 들이키고, 권계영의 지시를 떠올렸다.


“누나, 내가 좀 이상한 말 하는 거 아는데, 그래도 계영 선배가······, 아니, 회사 선배인데 꼭 이런 이상한 일들을 시켜서요.”


크고 둥그런 눈이 향했다. 세준은 대학 신입생 때의 기분으로 그 눈동자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누나······, 오랜만에 보자마자 이런 이야기 꺼내면 이상하긴 하지만, 혹시 신데렐라 스토커 사건요······, 그 피해자 중에 하나인데, 차희현 씨라고 아세요?”


초록색 깡통을 쥔 손가락이 멈칫했다. 이미 부탁을 하기도 전에 거절당할 분위기였다.


세준은 아버지 때문에라도 경찰들과 대면할 일이 많았다. 이들의 생리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특히나 김정현처럼 태어날 때부터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의식을 발휘하는 경우라면 경계의 허들이 높기 마련이다.


정현은 음료를 침착하게 내려놓으며 눈을 빛냈다. 목소리는 다소 딱딱했다.


“차희현 씨? 당연히 알지. 근데 그건 왜……?”


하는 수없이, 세준은 계영이 일러준 방식으로 시작했다.


“음, 그럼 혹시······, 그 여자분의 얼굴에 칼자국이 많았나요?”


크고 둥그런 눈이 단숨에 가늘어졌다. 단순히 나쁜 놈들 쫓기에는 아쉬울 정도의 미모가 살벌한 눈으로 따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건 유가족하고 경찰만 아는 사실인데.”


어쩐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세준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몸을 숙였다.


“역시, 맞았군요. 그럼 선배, 그 모습이 꼭…… 얼굴에 갈라진 땅처럼······, 피가 밴 채로 발견됐다는데……, 그것도 사실입니까?”


정현을 만나러 오기 전에 ‘신데렐라 스토커’에 대해 권계영이 알려준 사실은 세 가지였다. 첫째, 이 엽기 연쇄살인범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모두 얼굴에 자상이 많다, 둘째, 그 자상이 피가 밴 채로 발견이 되어, 유족들은 모두 얼굴이 갈라진 땅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셋째, 그들이 그 상태로 발견된 이유는 모두 피해자들이 통화중에 살해됐기 때문에 현장을 찾기 쉬운 까닭이었다…….


정현이 급하게 숨을 들이쉬는 바람에, 그에게는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났다.


“갈라진 땅……!”


그는 무의미하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더니 쏘아보기만 했다. 알려줄 수는 없지만 사실이라는 의미였다.


“근데 그런 질문을 왜 하지? 아니, 차희현 씨와 무슨 관계라도 있는 건가? 사건에 대한 정보라도 들은 게 있는 거야?”


“아뇨, 아뇨.”


그때서야 계영의 계략이 이해가 갔다. 계영은 자신이 아는 것을 조금만 공개해서 경찰의 애를 태우고 그들을 ‘희즈 웨딩샵’ 사건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실제로 계영이 경찰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의 그런 태도는 마치 자신의 패를 감추고 포커 테이블에 앉아 모든 사람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과도 비슷했다. 누구에게도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의 심장.


세준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좋은 머리야. 어떤 비밀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얄팍하면서도 좋은 머리야. 승부사의 기질을 가졌다면 언젠가는 이쪽에서도 승부를 걸어주지.


“사실 저도 잘 몰라요. 단지 이런 말을 해야 선배들이 우리가 부탁하는 걸 들어줄 거라 여긴 겁니다.”


“……우리?”


미심쩍은 목소리였다. 세준은 성심성의껏 ‘시크릿 세이버’와 자신의 일, 그리고 ‘희즈 웨딩샵’에 대해 전했다. 서세영이 가진 의혹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추정도 같이 밝혔다. 정현은 그 부근에서 살짝 입술을 달싹였지만 크게 캐묻지 않았다. 아마도 ‘시크릿 세이버’가 일종의 정보원 역할을 한다고 여긴 눈치였다.


“그 회사 이야기 우리도 종종 들었지. 거물급이나 갑부들이 많이 사후 보험을 의뢰해서 일이 많다고 들었어. 확실히 우리가 모르는 비밀도 많이 알고 있겠지.”


“일이 많죠. 구리는 일도 많고, 좋은 일도 많고.”


“흠, 그런 가운데에서 ‘희즈 웨딩샵’의 서세영이라는 남자가 파렴치한이라. 아니, 파렴치한보다 더한 범죄자인데 그 녀석? 근데 증거는 있어? 물증이 없으면 현장을 잡을 수 없다고.”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우리가 움직일 테니까, 선배가 도와줄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정현이 엄지로 입술을 쓸었다. 그는 확실히 후배의 말을 흥미로워했다.


“도와줄 수 있지. 시간을 좀 내서. 네 정보에 따르면 어차피 서세영도 나쁜 놈인 거니까. 대신-”


그는 엄지 아래에서 입술을 올리며 제안했다.


“너에게 신데렐라 스토커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그 선배라는 여자, 만날 수 있는 거지?”


“그럼요.”


세준은 확고하게 호응했다. 안 만나고 싶어도 만나시게 될 걸요.


“아, 그리고 선배?”


대기실을 나오기 직전, 세준은 마침 떠올린 다른 사실도 당부했다.


“그 차희현 씨가 운영하는 샵 손님 중에 하나인데, 혹시 최근 1년 안에 실종된 여자 손님이 있는지도 한 번 조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놀리든 환영처럼 스쳐간 그 장면들, 차희현이 협박을 당할 때 죽어가던 여자, 그리고 서세영의 말들이 잊히질 않았다.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후배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실종된 여자 손님이라. 반경을 좁혀 보자는 의미이군, 그렇지?”


세준은 신입생 시절부터 선배들이 환호하던 보조개를 만들었다. 김정현이 으구, 하며 머리를 다시 콩, 하고 때렸다. 텅 빈 머리에서 명랑한 소리가 울렸다.








회사 근처 카페의 지하 주차장은 썰렁했다. 시멘트의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계영은 그곳에서 웬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준은 정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 주차장으로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카페라기보다는 병원이었지만, 병원은 주로 비어 있고, 1층 카페 손님이 많아서 모두가 카페라고 부르는 곳이다.


세준은 지하에 도착하자마자 계영에게 김정현의 계획과 대답을 모두 전했다. 그는 세준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을 한 듯 보였다.


“당신이 아는 경찰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는 자그마한 음성으로 “내일 밤.”하고 마무리했다.


“내일 밤이 작전의 시작이야. 유진희와 태민이를 이용해 먹기로 하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겁니까? 서세영 그 새끼 정말 나쁜 놈이라고요, 대리님. 잘못하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유진희가 자원했어. 걔 정도 미모면 될 거야. 서세영을 덫에 걸리게 할 계획이니까.”


호피무늬 슬리퍼의 유진희가 그런 일에 자원을 했다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권계영과 함께 있을 때 ‘자원’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세준이 “대리님.”하고 무겁게 부르자, 계영은 벌레를 떨듯 손을 저었다. 그래도 “대리님!”하고 강하게 부르자 마침내 좋아, 하고 실토했다.


가방을 하나 투척했지, 로 시작하는 고백이었다. 한마디로 유진희를 양심회복 작전에 투입하기 위해 가방을 하나 사줬다는 의미였다. 브랜드 이름으로는 별 게 다 나왔다, 샤넬인가 뭔가에서 에르메스도 있고, 어쩌고저쩌고도 있었다. 세준은 다소 억울한 기분으로 그런 걸 살 돈이 있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꽤 야무졌다.


“벤틀리 20년 무이자 할부의 꿈을 버렸다고.”


세준은 한숨과 함께 알려주었다.


“아니죠, 대리님. 정확히는 벤틀리를 잘생기고 어린 식스팩의 남자에게 사주고 대리님이 20년을 무이자 할부로……, 아니, 그거 말도 안 된단 말입니다.”


권계영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그맣게 “Wanker!”라고 말했다. 양배추의 색감의 웃옷이 조금 커 보였다. 세준은 실소를 지으며 따졌다.


“지금 저에게 영어로 욕한 겁니까? 아니, 제가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해서? 왜 이러세요, 저도 배울 만큼 배운 인간입니다.”


계영은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는 듯 방금 도착한 차에 다가섰다.


“맞잖아요, 대리님!”


세준이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았지만, 계영은 다시 뭐라고 중얼대더니 차에서 내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 박훈철.”


검은 세단에서 내린 박훈철은 말끔하게 생긴 남자였다. 준수한 외모에 키도 훤칠했다. 잘 차려입은 편으로,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비싼 정장이다.


남자는 계영을 보자마자 입 꼬리부터 벙긋, 올렸다.


“여~, Whistle-blower!”


“뭐래, 스파이 주제에.”


계영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세준을 불렀다.


“자, 배울 만큼 배운 사장의 숨겨진 아들이여, 방금 저 인간이 뭐라고 한 거야?”


세준은 선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왠지 스스로가 딱한 기분이 들었다.


“뭐래요, 대리님. 저에게 Wanker라고 욕했으면서 저 말을 모른다고요? 휘슬브로어, 내부고발자라고 말한 거 아닙니까.”


“흐흥, 그렇군. 아, 영어? 내 영어는 내수용이야. 수출용이 아니라고.”


거짓말.


거짓말이다. 세준은 어릴 때부터 클럽에서 놀면서 유학파를 많이 만났고, 정자기증자 아버지 덕에 어릴 때도 외국인들과 만날 기회가 꽤 많았다. 욕설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억양과 무의식적인 반응은 쉽게 구별이 됐다.


도대체 권계영이 가진 비밀들은 뭘까.


어리석은 중생이 된 기분으로 고민할 때, 박훈철이 다가와 봉투를 내밀었다. 계영과 그는 서로를 욕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꽤 친해 보이고, 꽤 다정해 보였다.


“내가 없어지니 좋냐? 얼굴이 더 반듯해졌다, 권계영?”


“좋지, 당연히.”


계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귀신 타령하던 네가 없으니 속이 편안하고, 지랄 같은 X프로젝트 팀으로 가서 뇌가 편안하거든.”


“자식, 일관성 있게 까칠하기는.”


서로가 웃으면서 욕을 해댔다.


웃으면서 욕하는 사이.


난데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계영은 개의치 않는 듯 “그래서, 부탁한 거는?”하고 물었다. 남자는 “이거.”하고 봉투의 입구를 열었다. 그리고는 그때서야 세준의 존재를 확인이라도 한 듯 돌아봤다.


“아, 그쪽이 다른 팀에서 왔다는 새 파트너입니까?”


계영과 비슷한 연배의 남자로 보여서, 대뜸 반말을 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그랬으면 주먹을 날려야하나, 라고도 생각했는데 허를 찔렸다. 세준은 예의바르게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 좀 착한 사람이었지.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여기 이 까칠이가 이야기하더라고요. 페라리 주인이라면서요? 그렇다는 말은, 내가 나오기 전에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던, 사장의 숨겨진 아들?”


“아, 그건…… 아무튼 안녕하세요, 시크릿 세이버 X팀의 한세준이라고 합니다.”


“하하, 저는 권계영이 예전 파트너 박훈철이라고 합니다. 진짜 고생이 많죠?”


계영이 서류를 들여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훈철을 가리켰다.


“아, 맞아, 내 예전 파트너야. 나는 잘 모르는데, 내 고발로 잘렸대.”


세준은 얌전하게 사실을 확인했다.


“정말입니까? 모두가 원하듯,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야 했던 건 아니고요?”


훈철은 크게 웃었다.


“하하, 네, 모두가 그러길 원하죠. 하지만 사실 제가 시크릿 세이버에서 금지된 회사 외 부업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실은 회사 하나를 차린 거예요. 정보제공센터? 뭐 그런 겁니다.”


아하, 흥신소.


세준은 그가 내미는 명함 속 「정보센터」라는 단어를 쉽게 이해했다. 계영은 자신만의 서류를 다 검토한 뒤 다시 봉투에 넣고 “그럼.”하고 짧게 인사했다.


“그럼 이건 무료다? 네가 우락부락한 논개도 아니면서 나를 끌어안고 회사의 오명이라는 바다로 날 던졌으니 무료로 해, 알간? 흠, 내 한 몸 팔아서 얻은 자료라니, 어쩐지 비장한데?”


“뭐라는 거야, 권계영.”


훈철은 야유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웃었다. 계영은 손을 흔들며 야멸차게 돌아섰다. 훈철이 차에 올라타며 “한세준 씨.”하고 세준을 불렀다.


세준이 다가서자, 그는 차 창문을 활짝 내리며 말했다.


“저 친구 잘 부탁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도, 훈철의 눈꼬리는 샐쭉하게 휘었다.


“충고입니다. 당신도 계영이랑 좀 있다 보면, 계영이가 가진 비밀들을 어느 정도 눈치 챌 겁니다. 아니면 계영이가 당신에게 이야기해 줄지도 모르죠. 일은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요. 잘 들으세요, 어떤 사람들은 평범해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평범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권계영도 그런 부류라는 겁니다.”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에게든, 권계영에게든.”


시동을 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계영이 저만치에서 “안 와?”하고 소리쳤다. 가요, 세준은 다급하게 대답하고 훈철을 돌아봤다.


“권계영 씨……, 뭐가 대단한 비밀을 가지고 있죠, 그렇죠?”


훈철은 잘생긴 얼굴로 씩 웃었다. 욕이 나오지만, 남자도 홀릴 만큼 잘생겼다.


“아니라고는 말 못하죠, 한세준 씨. 그리고 나는 흥신소 일을 합니다. 말이 흥신소지, 내가 수년간 일하던 곳이 바로 당신 아버지가 만든 시크릿 세이버죠. 거기서 얼마나 많은 고위직과 고급 비밀들을 알게 됐는지 아시죠? 세상에는 당신이 모르는 게 정말 많습니다. 심지어 당신도 그 아버지가 당신에게 남긴 사후 보험이 뭔지는 모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탄식이 나왔다. 정자기증자가 나를 위해서 사후 보험을 들었다? 그럴 수도 있구나, 정말 그런 수 있어!


“정말 충고입니다, 한세준 씨.”


박훈철은 강조했다.


“세상에는 당신이 모르는 비밀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강력 범죄나 사건은 그런 비밀들을 지키려고 하다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그리고 권계영을 끝까지 지키세요.”


차는 그 말만 남기고 출발할 기세였다. 세준은 출발하려는 차에 필살의 노력으로 매달렸다. 박훈철이 알고 있는 것 또한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잠시만요, 제가 조심하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권계영 대리가 조심해야 하는 건 또 뭡니까? 그…… 신데렐라 스토커?”


“아, 신데렐라 스토커.”


훈철은 별 거 아닌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약과입니다.”


사회의 큰 사건을 약과라고 표현한 남자는 부드럽게 숨을 토했다.


“그런 사건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왜 그런지 한 가지만 알려드리죠. 내가 예전에 당신 아버지의 부탁으로 작성한 서류와 비밀들 중에는 그 숨겨진 아들에 대해서…… 이런 사항이 있었습니다. 투시透視를 하고 있다, 라는 말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 아버지는 당신의 성정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온화하고 다정하며 방황하지만 성실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않는다.」라고요. 그 문장의 마지막에 당신을 감정했던 심리학자는 20%라고 적었죠. 전 세계의 20%의 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이타적인 뇌, 그런 뇌라고 말입니다. 그 옆에는 0.01%라는 수치도 따라 붙었어요. 이게 뭔지는 아무도 모르죠. 아마도 저는 당신이 가진 투시透視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신과는 오늘 초면이지만, 당신에 대한 정보는 이렇게 모두 나와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내가 뭘 보는지 안다?


세준은 그런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고, 중학교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다. 어머니께 많은 돈을 주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도 알고 있다……?


“투시透視를 하는 0.01%라는 의미입니까?”


젠장.


욕이 나왔다. 투시가 뭔지도 모르고 그 단어가 편한 것 같아서 그냥 사용했는데, 막상 남이 그걸 편하게 부르니 대혼란이 왔다. 그냥 귀신을 보는 거라고 걱정했던 지난날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훈철은 핸들을 꽉 잡은 채 덧붙였다.


“제가 권계영 씨를 잘 지키라고 한 것에는 같은 이유가 붙습니다. 계영이도 누군가가 계영이를 위해 사후 보험 처리를 시크릿 세이버에 의뢰했습니다. 그 의뢰를 한 이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계영이도…… 당신처럼 0.01%라는 수치가 따라 붙었습니다. 단지 그 수치 앞에 마이너스 –가 있었죠.”


-0.01%라는 수치가 가능한가.


세준은 먼발치의 계영을 일별했다.


“그럼 권계영 대리와 제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까?”


다급한 질문에 훈철은 모릅니다, 라고 대답했다.


“모릅니다. 아마도 비슷한 뭔가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죠. 연락주세요.”


세준은 끄덕였다. 훈철은 “다음에 또.”하고 고개를 숙였다.


“조심하세요. 내가 알고 있는 건 그 0.01%라는 숫자가 붙은 사람들 몇이 살해당했다는 겁니다. 신데렐라 스토커는 그 숫자와 관련이 있죠. 스토커라는 범죄자 자체가 아니라, 그 배후에 대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0.01.


마지막 말은 정말 진지했다. 갑자기 극도로 작은 숫자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검은 세단은 묘한 말만 남기고, 들어오던 속도대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주차장과 카페로 이어지는 지하 입구에서 계영이 봉투를 팔랑거리며 서 있었다. 세준은 축축한 지하의 습기를 들이키고,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작가의말

연참대전...^^; 저는 조만간 사라질지도 몰라요...하하하! 작가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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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데이트 기록 _ 14.11.10 수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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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5) +10 14.12.15 729 12 23쪽
32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4) +11 14.12.09 675 11 32쪽
3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3) +7 14.12.03 638 11 13쪽
30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7 14.11.30 702 9 19쪽
29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7 14.11.30 615 9 7쪽
28 Episode 02 웃는 인형 (완결) +10 14.11.10 904 11 27쪽
27 Episode 02 웃는 인형 (13) +6 14.10.18 557 15 19쪽
26 Episode 02 웃는 인형 (12) +15 14.09.30 786 16 26쪽
25 Episode 02 웃는 인형 (11) +9 14.09.29 765 13 26쪽
24 Episode 02 웃는 인형 (10) +7 14.09.27 804 21 10쪽
23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4 12 9쪽
22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4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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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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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7 17 25쪽
»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5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4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8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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