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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2,831
추천수 :
518
글자수 :
272,824

작성
14.08.03 00:44
조회
839
추천
24
글자
8쪽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

DUMMY

Prologue




언니,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말에, 쥐고 있던 술잔이 출렁거렸다. 창밖으로는 비가 공격적으로 쏟아졌다. 최근에는 이런 날들의 연속이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자신의 큰 체형을 바라보다가, 우현은 가볍게 일소一笑했다. 동생과의 대화는 커다란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과 비슷했다. 매번 똑같은 말이 들리고, 그에 대한 대답도 한결 같다.


“말? 닥쳐, 차희현. 너 두 번 다시 안 볼 거라고 말했지?”


1년 3개월 전, 동생은 우현이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를 뺏어갔다.


남자에게서 부인으로 불리고 싶었던 여자는 처형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태어날 때부터 과체중으로 시달렸던 우현에게, 평생의 다이어트 다음으로 가장 열중하던 남자였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기를 쓰던 자신을 밖으로 인도했던 유일한 남자였다.


그런데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그 남자를 앗아갔다. 그때의 동생이 했던 대사가 1년 3개월 내도록 따라다닌다.


「아냐, 언니……!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비가 광기에 사로잡혀 수화기를 때려댔다. 유리창에 비친 뚱뚱한 여자는 거구를 끌고 산발한 머리를 흔들다가, 냅다 소리부터 질러댔다.


“시끄러워! 네 인생 끝장 낼 거야, 이 여우 같은 년, 언니가 수년 간 짝사랑한 남자를 훔치고, 내 디자인도 훔치고, 이젠 샵도 처분한다고······! 널 죽여 버릴 거야, 진짜 죽일 거야!”


다른 누구들과는 다르게, 우현은 자신이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았다. 술김도 아니고 홧김도 아닌, 그저 진심이다. 언제나 진심으로 외쳤다. 너를 끝장 낼 거야, 너를 완전히 끝내 버릴 거야!


「아냐, 언니, 그게 사실은……!」


누가 차씨 가문의 자매들 아니랄까봐, 동생은 상당히 집요했다.


우현은 넌더리가 나는 기분으로 수화기 너머를 주목했다. 어딘가 높은 곳을 오르거나 빠르게 걷는 듯, 빗소리와 동생의 가쁜 숨소리가 번갈아 이어졌다. 후드득-, 빗물의 눅눅함이 귀와 뇌를 적시며 우현을 흥분시켰다.


“샵을 처분하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 너는 어차피 디자인이고 뭐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까. 그저 미싱이나 잘 돌렸지. 네 마음대로 하세요. 나도 다 생각이……!”


「언니, 그게 아니라니까 실은……!」


동생은 샵을 처분하는 문제로 계속 전화했다. 두 사람의 공동 명의로 되어 있으므로, 혼자 결정하기는 힘든 문제였다.


그러나 우현은 샵이야 어찌되든 상관 없었다.


언제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결정장애자 같은 년.


그저 욕을 삼키며 동생의 씩씩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닥치라고 고함은 쳤지만, 막상 동생의 숨소리만 돌아오자 그것도 그것대로 은근히 화가 났다.


닥쳐, 라고 소리를 지른 건 정말 닥치라는 의미가 아니지 않은가. 와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울고 매달리라는 의미가 아닌가. 상대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전심全心으로 사죄해도 들어줄까 말까한 상황 아닌가.


그런데도 동생은 흡, 하고 저 혼자 힘든 소리를 내며 소란을 떨어댔다.


넘어졌나?


우현은 악담을 퍼부었다.


또 이년은 비가 오는데도 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었겠지. 꼴좋다, 차희현! 그러다가 그 가늘고 예쁜 다리가 부러져도 이젠 널 봐주지 않을 거야.


동생은 언제나 가늘었다. 뼈도 가늘고 머리카락도 가늘고, 눈썹도 길고 가늘고, 뭐든지 부서질 것처럼 사랑스러웠다. 28년간은 예뻐 죽을 것처럼 보듬어 왔다. 그러다가 동생의 29년 째, 죽이고 싶어 미워졌어도, 죽일 수 없을 만큼 사랑했다.


“뭐야, 이년……! 끝까지 지 마음대로 말하고 전화를 끊어?”


전화는 가쁜 숨소리만 울리다가 툭 끊어졌다. 우현은 허무하고 울컥했다. 듣고 싶은 말은 ‘미안해’였다. 아무런 단서나 핑계나 이유를 붙이지 않은 그런 말 ‘미안해’.


누군가는 그 말이 가족들 사이에 가장 듣기 어려운 말이라고 했다. 그래도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우현은 전화기를 홱 던지고 들고 있던 잔을 목 너머로 털었다. 독한 공장의 알코올이 식도를 태우듯 흘러갔다.


혼자 지내는 오피스텔 15층으로 빗소리가 아찔하게 울렸다. 고층에서 느끼지는 음산함은 내리꽂는 번개 때문에 더욱 강해졌다.


쾅-.


벽이 울렸다. 평소보다 어두운 밤의 공기 때문에 번개의 광도가 더 강렬했다. 천둥이 울리기 이전에 빛은 검은 하늘 위로 퍼졌다. 번개는 하늘에 피는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쾅, 콰쾅-.


빛이 떨어질 때마다 유리창에 비친 여자는 더 괴기하게 느껴졌다. 평생을 보고 살아도 사랑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우현은 멍하니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바닥에 내던진 전화가 천둥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였다. 무시하려 해도 집요한 발신자였다. 폰에는 동생의 이름이 수면水面의 낙엽처럼 떠올랐다.


차희현-.


원래 명명命名은 동생이었다. 그러던 것이 1년 3개월 전을 기점으로 그냥 이름을 박아 넣었다. 인간이 자신의 연결고리를 감성적인 단어에서 이름으로 교체하는 것은 의미가 컸다. 비록 동생은 모르겠지만-.


지독하게 이기적인 년.


동생에게 말은 안 했지만 -실은 말할 필요성도 못 느꼈지만- 사실 3개월 전에 방을 내놓았다. 계약기간은 끝나지 않았으나 부동산 업체 쪽과 집주인이 양해를 받아들였다. 그런 고로 누구도 모르게 이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제 연락처까지 바꿔야 할 이유가 새로 생겼다. 동생은 어차피 결혼 후 언니의 집에는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이제 번호만 없애면, 영원히-혹은 당분간- 외면할 수 있다.


“뭐야, 너, 네 멋대로 또 전화를 끊고!”


우현은 성가신 기분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욕이나 퍼붓고 도로 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낯선 자의 음성에, 우현은 흠칫했다. 유리창 너머의 여자, 산발한 여자의 기세도 단번에 얼어붙었다.


동생의 이름으로 걸려온 전화였으나, 낯선 남자가 속삭였다.


「……잘 들어.」


우현은 혹시나 해서 다시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차희현.


그 이름을 보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동생은 어디로 가고 이 이름만 남았지? 내 동생, 우리 예쁜이, 천사 여동생 등등을 갈음했던 내가 아는 어떤 여자의 이름!


“……누, 누구세요?”


두근두근, 심장이 뛰어올랐다. 알 수 없는 목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에는 포만감이 담겨 있다. 컴컴한 밤, 습한 공기가 폐부를 적시는 밤에는 이질적이고도 미스터리한 포만감이-.


불길함이 포말泡沫처럼 이었다.


뭔가 잘못 됐다. 이토록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밤에 만족감에 젖은 음성이라니. 이것은 잘못됐다……, 뭔가 상당히 잘못됐다……!


「잘 들어요, 차우현 씨.」


유리창에 비친 산발한 여자. 그가 전화기를 꽉 쥔 채로 유리잔을 떨어뜨렸다. 여자의 동공이 기묘한 공포감과 충격으로 커다랗게 확장했다. 번쩍-. 하늘 위로 다시 빛이 나무의 우듬지처럼 갈라지고 우레가 내리쳤다.


콰쾅-.


깨진 술잔에서 묘한 비린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붉은 냄새, 그것이 훅-, 바닥으로부터 올라왔다.


아까부터 켜져 있던 TV에서는 익숙한 앵커가 자그마한 볼륨으로 속삭였다.


「네, 지금 전문가와 함께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신데렐라 스토커’라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 중인데요, 그러니까, 김 선생님, 이 신데렐라 스토커라는 범인이, 그런 별명이 붙게 된 이유가 범죄의 패턴 때문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이 살인범은 비가 오는 날, 야심한 시간에 주로 혼자 걸어가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여자가 대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희생자들의 발목을 잘라가는 것으로 유명해서…….」


작가의말

14.11.10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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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가 더뎌 죄송합니다. (_ _) (글 약간 수정 중입니다.) +3 14.11.03 535 0 -
34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6) +5 14.12.18 592 13 14쪽
33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5) +10 14.12.15 729 12 23쪽
32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4) +11 14.12.09 675 11 32쪽
3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3) +7 14.12.03 637 11 13쪽
30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7 14.11.30 701 9 19쪽
29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7 14.11.30 615 9 7쪽
28 Episode 02 웃는 인형 (완결) +10 14.11.10 904 11 27쪽
27 Episode 02 웃는 인형 (13) +6 14.10.18 556 15 19쪽
26 Episode 02 웃는 인형 (12) +15 14.09.30 786 16 26쪽
25 Episode 02 웃는 인형 (11) +9 14.09.29 765 13 26쪽
24 Episode 02 웃는 인형 (10) +7 14.09.27 804 21 10쪽
23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3 12 9쪽
22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3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16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6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6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4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4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7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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