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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2,840
추천수 :
518
글자수 :
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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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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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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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Episode 02 웃는 인형 (2)

DUMMY

2. 웃는 인형




회사 책상에 놓인 물건들을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마주친 것은 마늘과 십자가, 불경과 성경이다. 토요일 새벽에 안지율의 집에서 난장亂場을 겪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책상에는 작고 앙증맞은 다스베이더 인형도 있었다. SF 마니아라면 누구나 홀릭한다는 반전의 대명사 다스베이더.


일찍 출근한 태민이나 계영은 이 일을 모른 척, 업무에 몰두했다. 세준은 다스베이더 인형을 들어올렸다.


“얜, 뭡니까?”


“내가 니 아비다, 라고 한 놈.”


신비한 정수리가 대답했다. 정수리의 주인은, 고개를 들어 이제 출근한 후배의 얼굴을 보는 배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세준은 한숨과 함께 토로했다.


“저도 그건 아는데요, 이거랑 제가 이상한 걸 보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사건 해결에 송곳 같은 공로를 한 너의 그 이상한 점을 칭송해 주기 위해서지.”


분명 권계영도 남다른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아는데 짓궂었다. 심지어 그는 태민보다 더한 태도로 놀리고 있었다.


세준은 어지러운 인형들을 정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태민이 키득거리며 사무실을 나섰고, 계영과 둘만 남은 사무실은 조용하고도 어색했다.


몇 분인가 일에 전념하다가, 세준은 열쇠고리처럼 생긴 다스베이더 인형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에 걸려 달랑거리는 인형을 보고 있으니, 최면이라도 걸릴 기분이다.


“선배는 귀신이나 혼령이라고 믿지 않지 않습니까, 제가 보는 것들…….”


“물론 난 안 믿지.”


무신경하면서도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가 무엇을 보든 그건 귀신이나 혼령이 아니야. 투시나 염사, 그런 것들은 귀신과는 상관없지.”


“그럼 이것들은…….”


“네가 보는 것들에는 효과가 없어, 나도 알아.”


시원한 음성은 명쾌하기도 했다.


“단지 저 녀석이 널 놀리고 싶어 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우리가 뭐라고 설명하든, 그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 편한 식대로 이해할 거야.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단어가 ‘귀신’이니까.”


“……선배는 투시가 에너지의 투영이라고 말했죠? 그 에너지가 존재하는 차원의 문제라고.”


“그랬지. 그리고 네가 보는 걸 우리 세계에서는 하이드 DNA라고 부른다는 거지.”


계영은 자판을 치는 대신 손으로 뭔가를 갈겨썼다. 그는 존재론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한 자세로 말을 바꿨다.


“이제 그 문제는 됐고. 아참, 어제 밤에 어떤 여자가 전화를 했어. 안지율인가, 하는…….”


지난 새벽잠을 방해한 안지율의 이름.


세준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는 동시에 태민이 들어섰다. 놈은 문제의 노트북을 들고 대신 대답했다.


“아, 안지율 씨? 선배, 그거 제가 엊그제 말씀드린 송기철 회장님 자서전에 대한 거예요. 송기철 회장의 자서전을 정리하고 교정이나 교열을 보는 작가? 뭐 그런 거죠.”


태민이 노트북을 열어, 자서전 파일을 띄웠다.


“금요일에 제가 퇴근하면서 도와달라고 말한 프로젝트, 기억하시죠?”


“아, 나의 일요일 밤을 방해한 그 프로젝트가 그거였군. 송기철 회장 계약건이잖아. 그 유명한 송가연 씨의 아버지…….”


“어? 선배도 아세요? 그런 거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계영이 자신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가리켰다.


“원래라면 관심이 없지. 단지 송기철 회장의 출판사에서 좋은 책들을 많이 내서 관심을 갖고 있었어. 그러다가 송가연 씨가 아버지보다 유명하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아하, 유명하죠. 엄청난 미인인 데다가, 파파라치까지 있으니까.”


송가연은 유명하다. 태민이 계약 파일 속에서 꺼낸 사진 중 송가연의 얼굴은 세준에게도 익숙했다.


가연은 주로 인터넷에서 유명했다. 처음 몇 번 TV의 전파를 탄 것이 유명세의 시작이었다. 잘 사는 집 외동딸에, 학벌도 좋고 능력이 출중한 싱글은 연예인이 아니라도 인기가 많기 마련이다. 그는 긴 생머리에 하얗고 자그마한 얼굴로 모델 같은 인상이다. 남자들이 보기에는 묘한 신비감을 자아내는 여자다.


이런 여자는 찬양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법.


계영이 시들한 태도로 계약건을 검토하는 사이, 세준과 태민은 정신없이 송가연의 외모를 찬양했다.


유진희가 호피 슬리퍼 소리로 등장한 것은 정오가 다다를 무렵이었다. 또각또각, 발소리부터 먼저 들렸다. 김태민이 유진희의 지각에 “어?”하고 놀라며 돌아봤다. 놈은 송가연의 비키니를 찬양하던 중이었다.


“진희 씨가 웬일로 지각?”


굽이 있는 슬리퍼 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다소 격앙된 것처럼 들렸다.


“오늘 새벽에 집 근처에서 불이 크게 났거든요. 뭔 창고였는데……, 아침까지도 도로가 꽉 막혔어요.”


유진희는 확실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 김태민이 서둘러 송가연의 사진을 숨기며 달랬다. 뜬금없이 곱살스런 목소리였다.


“아, 맞다. 진희 씨 그 일대에 살지. 요새 불이 많이 나는 그곳…….”


계영이 그 모습에 콧방귀를 끼더니 “근데, 불?”하고 되물었다. 세준은 보고 있던 모니터를 돌려 방화로 추정되는 사건 기사를 가리켰다.


“여기 이거요, 선배. 요새 중구에서 6개월 가까이 ‘묻지 마, 방화’ 사건이 계속 되잖아요.”


“음? ‘묻지 마, 방화’ 사건이라니, 그건 또 뭐야?”


유진희가 지친 태도로 툴툴댔다.


“근처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예요. 아, 팀장님도 그것 때문에 늦으시는 걸 거예요.”


진희는 자신의 발목에서 슬개골까지 어루만졌다. 종아리가 아픈 것처럼 보였다. 태민이 노트북의 자료를 띄우며 타박했다.


“발목 아프지? 그러니까 낮은 슬리퍼를 신어.”


웃으며 하는 말에, 진희는 으하, 하는 이상한 탄식을 쏟아냈다. 그는 자신의 슬리퍼를 집어던지더니 맨발로 일어섰다. 길고 가는 다리가 사뿐사뿐 가볍게 움직여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그는 맨발로 커피를 타온 후에야, 태민이 만지는 노트북을 알아보았다.


“어? 근데 저거 태민 씨랑 나랑 맡은 프로젝트 건 아닌가?”


맞아, 태민이 대답했다.


“근데 계약 내용 자체가 ‘자서전 관련 데이터의 완성 후 폐기’잖아. 그래서 그제 아침에 수거 해 온 거야.”


지난 새벽에도 느꼈지만, 계약 내용이 이상했다. ‘자서전 관련 데이터의 완성 후 폐기’라니.


아무튼 별스러웠다. 송기철 회장은 어떤 이유로건 자서전의 초고를 마련했다. 그것을 자기 회사의 대필 작가에게 맡겨서 다시 정리하고 완성 후 교정을 봐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래놓고는 자신이 죽은 후에는 그 원고를 폐기해달라니…….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권계영 역시 갈색 눈동자를 반짝였다.


“폐기라니 좀 이상하지 않아? 그 원고, 작고한 송회장이 집필 중이던 자서전이라며? 거의 완성도 되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데 왜 출판을 안 해?”


“저도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는 그 부분이 이상하긴 했는데…….”


태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계약서를 읽어갔다.


“모르죠, 무슨 변덕인지는. 아무튼 계약 내용이 그래요. 첫째, 대필 작가에게 원고를 찾고, 데이터들의 완성을 확인한 후 모두 폐기해 달라, 둘째……, 유무형의 재산 건이나 그 밖의 지분에 관한 회사 건은 회사와 송가연 씨의 계약에 따라 그쪽으로 넘긴다, 라는 거예요. 이런 부분들은 대외적으로 처리됐습니다. 송기철 회장이 우리 회사로 넘긴 특수한 유지나 유품은 이제 자서전 원고에 대한 첫 번째 건과 요상한 마지막 건밖에 안 남아서 우리에게 넘어온 거예요. 마지막 내용은…….”


혼란스러운 말투가 중얼댔다.


“마지막 계약 내용은 더 이상해요. ‘그 아이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전해 달라.’ 입니다.”


계영이 졸듯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그 아이……? 그게 뭐야?”


“저도 몰라요.”


태민이 다소 억울한 듯 계약 서류를 내밀었다.


“보세요, 계영 선배. 여기 형광펜이 쳐진 부분요. 비고란에 그렇게 유지를 남겼어요. 송 회장의 다른 유지들은 거의 처리됐는데 이 부분만 모호해서 남겨졌죠.”


유진희가 자신의 슬리퍼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럼 그런 모호한 문장을 왜 법률팀에서 처리 안 한 거래요?”


“법률팀에서는 이 부분이 송기철 회장의 딸 송가연 씨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사실, 다른 부분들은 재산이나 유품에 관한 것이라 꼼꼼히 처리해야 했지만, 비고란의 이 두세 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였지.”


“중요한지 아닌지는 그 사람들이 판단할 몫이 아니야.”


권계영이 싸늘하게 말하며 계약서를 훑었다. 그는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머리를 연필로 고정하며 따졌다.


“그럼 첫 번째 일부터 처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안지율 씨가 우리에게 원고를 넘겼으니, 이걸 폐기하면 되는 거잖아. 법률팀이 동석한 자리에서.”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러나 태민은 웃으면서 난색을 표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대리님. 그래서 도와달라고 말한 겁니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왜?”


태민은 그게, 하고 열없는 투로 내뱉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보세요, 계약서에는 분명히 ‘완성본’을 확인한 후에 ‘폐기’해달라고 되어 있거든요. 이런 단어들이 사실 가장 섬세하죠. 그런데 지난주부터 안지율 씨와 이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안지율 씨 말로는 자서전 초고의 뒷부분이 통째로 사라졌답니다. 회장님의 인터뷰 원고인데요.”


유진희가 “뭐라?”하고 깔깔댔다. 어이가 없어하는 얼굴이다. 태민 역시 난처한 상황에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그랬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안지율 씨가 실수로 삭제를 한 게 아닐까 해서 물어봤는데……, 사실 그 이야기를 저와 할 때 안지율 씨가 상당히 불안해 보였거든요.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면서 정말 무서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실수로 몰아가기에는 좀 안타깝기도 하고…….”


권계영이 작성하던 메모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는 들고 있던 연필의 끝으로 자신의 입술을 누르며 “안지율 씨…….”하고 아는 척을 했다.


“바로 그 안지율 씨가 어제 나에게 전화를 했지. 일요일 밤에 말이지.”


세준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눈은 집요하게 말했다. ‘그렇게 된 건 네 탓이야.’


“한세준, 네가 내 명함을 준 모양이더라고.”


“……제가요?”


일요일 새벽에 그 집을 떠나기 직전, 안지율이 분명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내가 미쳐서 뭔가 잘못 보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나는 상황······. 내가 정말 미친 건가, 하는 오싹한 상황…….’


세준은 그가 말한 상황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지만 여자가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또 겁을 먹고 있었다. 당시, 안지율은 뭔가를 털어놓으려고 하다가도 계속 멈췄다. 그래서 세준은 연락처를 주고 녹차를 끓여서 먹인 후, 몇 분 정도 의미 없는 대화로 긴장을 풀어준 뒤 귀가했다. 경험상, 그런 종류의 일들은 마음이 정리되면 먼저 말을 꺼내기 마련이다.


확실히 안지율이 마음을 정리하고 연락을 하긴 한 모양이다. 단지 그 상대가 명함철에 잘못 꽂아진 계영이었다.


“어, 나에게 전화를 했더라고. 뭐, 그 덕에 모르는 여자와 한참 이야기를 했지. 그 여자 정말 겁먹고 있던데?”


“맞아요, 저와 만났을 때도 계속 겁에 질려 있었어요.”


태민이 거들었다. 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계영의 눈은 흥미로운 쇼를 보는 것처럼 반짝였다.


“맞아, 정말 겁에 질려 있었어.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것에도 시간이 한참 걸렸어.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는데, 지금 태민 씨가 말하는 거 들어보니 대충 이해가 되는군. 결국 이런 이야기야. 어젯밤, 안지율 씨는 태민 씨가 노트북을 들고 간 후에, 이 원고의 초고를 복사해서 자기 노트북에 옮겨와 쓰고 있었대. 아무리 회장님이 폐기하라고 했어도, 원고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게 자기 일이라서 말이지. 그런데…… 이번에도 자기가 잠이 들고 나면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하더군.”


자판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


세준은 태민과 시선을 교환했다. 권계영이라면 광기의 사람도 진정시킬 수 있는 특유의 태도가 있다. 그 권계영이 헛말을 들었을 리는 없다.


“이상한 일이긴 하지.”


계영은 헛기침 끝에 뇌까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몇 번 대화를 해봐도 안지율 씨는 제정신이었어. 무엇보다도 그 소리가 이상해서 지난 새벽에는 녹음도 해놨다고 하더라고. 자기는 무서워서 제대로 듣지는 못 했지만 말이지. 아무튼……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래. 처음에는 송기철 회장의 정리하던 초고 뒷부분이 느닷없이 삭제되더니, 그 이후로 계속 밤마다 누군가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하고……. 뭔지 모르겠지만 아주 리드미컬하게 타닥탁탁 이런 소리가 들린대. 혹시나 해서 노트북을 우리 회사에 넘겼는데도, 자기 노트북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했어. 그 뿐만이 아니야. 게다가……”


그는 잠시 말을 끊더니 충격적인 반전이라도 꺼내듯 덧붙였다.


“소리가 점점 심해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인형도 웃는다고 했어. 책상 위의 인형이 웃는다고.”


역시나 이런 종류의 말에는 침묵이 필수였다. 몇 분이 지나, 유진희가 전장에 나가는 전사처럼 확인했다.


“인형은 잘 모르겠지만, 내용이 삭제되거나 자판 소리가 들리는 거……, 그런 거, 어떤······, 바이러스 같은 거 아닐까요? 악성 코드나.”


아뇨, 태민이 단호하게 반대했다.


“내가 살펴봤어요. 이 노트북에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안지율 씨는 자기 노트북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원본 파일이 담긴 이 노트북에서도 같은 현상을 겪은 거니까.”


계영이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뛰어난 전산 수리공 주태민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전공이라니까요!”


김태민의 전공과 능력을 둘러싼 공방이 무의미하게 이어졌다. 세준은 책상 위의 인형들을 건드렸다. 이런 인형들이 웃는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무심코 말이 튀어나왔다.


“컴퓨터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인형이 웃으니까…….”


정신을 차려 보니,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다. 뭔가 알아낸 게 있는지 궁금해 하는 의미심장한 시선들이다.


세준은 손을 저으며 방금 자신이 꺼낸 말을 부정했다.


“아뇨, 제가 아니라, 그 분이요. 인형이 웃는다고 했던 그분의 말을 반복한 겁니다. 아, 아니라니까요, 제가 웃는 인형을 본 게 아니라고요. 그렇게 노려보셔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안지율 씨 집에서는 아무 것도 못 봤어요.”


아무것도 못 본 게 이렇게 억울할 줄이야.


장가형이 정오에 가깝게 도착했다. 그는 늦었어, 하고 X팀의 문을 열었다. 마침, 세준이 좀비 떼와 같은 팀원들의 의혹에 시달릴 때였다.


“늦어서 미안. 불이 났다고 해서. 어? 내가 모르는 팀 회의? 웬일이야, 긴급팀의 팀원들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다니.”


근본 없이 감격해하는 말투였다. 계영이 빙그레 웃으며 받아쳤다.


“애사심愛社心입니다, 팀장님.”


그 말을 진심이라고 여기는지, 장가형은 가슴에 손을 올리며 감동했다. 심박동에 대한 응급한 처치가 필요해 보였다.


“으, 권계영,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이건 공포다, 공포. 어디 보자, 그 계약서들은 뭐야? 아, 송기철 회장의 계약건? 이건 왜?”


딴에는 팀장 앞이라고, 태민이 다소곳하게 손을 모았다.


“약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계약서에 분명 송회장은 ‘완성 확인 후 폐기’라고 적시했는데 교정자에게 받은 원고가 완성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복구할 수 없으면 계약을 이행할 수가 없죠.”


“……뭐라?!”


“보통이라면 모른 척하고 폐기하겠지만, 이분은 거대 출판사 회장이고, 부자니까요. 이런 사소한 일이라도 나중에 유족들이 어떻게 걸지 모릅니다. 그래서 권계영 대리님께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장가형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계영을 돌아봤다.


“음? 그래서 태민 씨가 권계영 대리에게 SOS를 쳤다? 근데 저 인간이 무슨 수로 파일을 복구해.”


계영이 자분자분 대답했다.


“파일 복구는 못하겠지만, 누구의 책임인지 조사는 할 수 있죠. 나중에 우리에게 해가 안 되도록.”


지나치게 모범적이고 공손한 대답에, 장가형은 치를 떨었다.


“네가 웬 성실함? 섬세하게 미쳤나? 왜 그래, 도대체. 무섭다, 무서워……!”


물론, 계영은 팀장의 공포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뭐, 어쨌든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 완성된 자서전을 출판하지 않고 폐기라는 둥, ‘그 아이’에게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둥······.”


“‘그 아이’가 왜? 유명한 송가연 씨잖아.”


장가형은 되레 이상히 여기는 투였다. 계영은 그런 팀장을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뭐예요, 팀장님. 보통 딸에게 ‘그 아이’라고는 안 하죠. ‘내 아이’라든지, ‘우리 딸’이라든지······, 이렇게 표현하죠. 아무튼 이상합니다, ‘그 아이’는 제 3자를 지칭하는 말이잖아요.”


장가형은 다시 계약서를 읽어갔다. 그의 입에서 “그럼 그렇지.”하는 한탄이 이어졌다.


“어쩐지. 권계영이 뭔가 열심히 한다고 했더니, 성실해진 게 아니라 그놈의 호기심 때문이군.”


정작 자신의 일을 떠넘긴 태민이 “그렇긴 합니다.”하고 동의했다.


“하지만 팀장님, 계영 선배가 궁금해 할만도 해요. 제가 잘은 몰라도, 송기철 회장님의 사고도 약간 이상하긴 합니다. 처음에는 의문의 사고사로 처리됐죠. 운전사가 실수로 산길에서 가드레일을 박고 추락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운전기사의 사체에서 약물 성분이 검출돼서 수사가 길어졌답니다.”


계영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약? 어떤 약?”


추궁하는 계영의 말투에 태민이 흠칫거렸다. 장가형이 분위기를 평정하기 위해 나섰다.


“에에, 그만들 해. 형사 사건이나 사고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이렇게 하자고. 시간이 촉박하니까······, 권대리의 말처럼 누가 파일을 삭제했는지 조사해 볼 필요는 있어. 그럼 그 일은 권대리가 하도록 하고, 일정 내에도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으면 원고 문제는 그때는 유족에게 통보하는······.”


장가형은 당혹스러울 때마다 벗겨진 이마를 문지르는 습관이 있다. 이번에도 그의 이마는 단숨에 시뻘게졌다. 세준이 다소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것을 응시할 때였다.


그때였다.


“들어가게 해달라고요!”


갑자기 X팀이 있는 지하 공간의 복도에서 비명 같은 것이 들렸다. 여자의 고음이 엄청난 데시벨로 울리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P.S

집에 일이 좀 생겼습니다.

많이 큰일이라서, 아마 연참대전에 참가하지 못할 확률이 크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그래서 제가 다니던 직장도 좀 정리하고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 해서, 어쩌면 소리 소문 없이 몇날 며칠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몇 분이지만 읽어주신 분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는데, 저는 완결까지는 꼭 갑니다. ^^ 

사람이 나이가 드니까 어른들에게 이것저것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는군요.


--------------------------

업데이트 기록 _ 14.11.10 수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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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09.18 23:15
    No. 1

    진희양 혼자 뭐하고 있다가...웃는 인형이라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09.18 23:18
    No. 2

    엇....아버님이. 어서 건강을 되찾으시길 기원합니다. 분명 금방 털고 일어나실 거예요. 힘 내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그린데이
    작성일
    14.09.19 22:50
    No. 3

    저도 작년말에 어머니께서 수술받으시는 바람에 맘고생좀 했는데, 아버님게서 쓰러지셨다니까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부디 일없이 쾌차하시길 마음으로나마 빌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12.10 15:19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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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透視, Second Sight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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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5) +10 14.12.15 729 12 23쪽
32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4) +11 14.12.09 675 11 32쪽
3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3) +7 14.12.03 638 11 13쪽
30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7 14.11.30 702 9 19쪽
29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7 14.11.30 615 9 7쪽
28 Episode 02 웃는 인형 (완결) +10 14.11.10 904 11 27쪽
27 Episode 02 웃는 인형 (13) +6 14.10.18 557 15 19쪽
26 Episode 02 웃는 인형 (12) +15 14.09.30 786 16 26쪽
25 Episode 02 웃는 인형 (11) +9 14.09.29 765 13 26쪽
24 Episode 02 웃는 인형 (10) +7 14.09.27 804 21 10쪽
23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4 12 9쪽
22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4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7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7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5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4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8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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