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Prologue.
먼지가 사물의 가치를 결정할 때가 있다.
유진희는 회사 보관실의 한편에 서서, 단 몇 주 만에 내려앉은 먼지를 주시했다.
어느 회사나 보관실은 은밀함을 상징한다. 회사가 크고 오래될수록 강해지는 이 현상은 강해진다. 많은 사람들의 어두운 비밀을 보관하는 X팀의 경우 때로 더 의미가 있다. X팀의 자료들, 혹은 미제 사건에 연루된 계약자들의 자료나 유품들은 보관실의 가장 안쪽에 있기 때문에 각종 음침한 소문의 원상이었다. 그것들은 해결될 방도가 없이, 때로 몇 년째 보관 중이다. 시크릿 세이버 직원들은 그 구석까지 접근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고, 진희 역시 극히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오지 않을 수가 없지.”
눈앞의 먼지가 그 말에 응답하듯, 백열 아래에서 반짝였다.
금요일 저녁의 회사.
건물 안은 눈에 띄게 적적했고, 1층의 보관실은 더욱더 조용했다. X팀 전용 보관대는 보관실 안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어 스산한 공기가 감돌았다.
먼지는 인간의 등장을 환영하듯, 수다쟁이 공기와 섞여 허공을 부유했다. 공기 속에는 텁텁한 알갱이의 질감이 섞여 있었다. 진희는 그곳에 서서,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미스터리한 폰을 응시했다.
긴 밤 내도록 사람을 귀찮게 구는 구식의 폰.
유행과 동떨어진 전화기였다. 전원은 당연히 꺼져 있고, 꽤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폰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진희는 꽤 오랫동안 이 폰에서 나는 것이 분명한, 울부짖음, 파열하는 공기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진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주파수대의 소리에,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언제가 계영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최근에 약을 먹은 적이 있는지,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지, 혹은 과거에라도 얽힌 사연이 있는지를 간략하게 물었다. 진희는 모두 없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아주 어렸을 때, 비슷한 증상을 겁 없이 까발렸다가 병원에 갔었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들었으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대처법을 배웠다. 특이한 형질에 대한 처세란, 함구령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때로 사람들은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겁을 먹지만, 진희에게 이런 특징은 티눈과 비슷했다. 지금까지는 딱히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특징도 아니었다. 스스로의 성격적인 면도 영향을 끼쳤다. 최근에 X팀으로 들어온 한세준보다 증상이 심한 것도 아니다.
당시, 계영은 묵묵하게 듣더니 ‘소리란 근원적으로 진동이지.’ 하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진희 씨가 겪는 현상은, 꼭 빛의 난사와 비슷할 것 같아. 물론 빛과 소리는 다르지만 말이야. 빛은 파동이자 입자라서 진공도 통과하는 양자지만, 소리는 매질이 있어야 전달이 되니까. 하지만 우리가 지구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은, 공기랑 직면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건, 다른 사람이 어두울 때 갑자기 빛을 느끼는 것처럼 상당히 성가신 문제라고 생각해. 그러니 그런 경우에는 진희 씨,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 안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는 게 좋아. 패턴을 찾아내면 그때부터는 남들에게 들리는 것과 내게만 들리는 것을 분간할 수 있게 되고, 분별력이 생길 거야. 분별이야말로 이성의 힘이니까, 우리가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패턴이 곧 답인 거야. 뭐든지 어느 정도 답을 알고 나면 두려운 게 사라지거든. 그렇지 않아?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죽음 후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잖아.’
진희는 그때부터 계영을 좋아했다. 계영은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한 문제에 대해 유유했다. 그에게도 이런 종류의 문제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훨씬 능숙하게 다뤘다.
사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일에는 익숙했다. 권계영이나 한세준이 그들 자신을 대하는 방식들과도 비슷했다.
그러나 폰에서 감지되는 소리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였다. 폰은 꺼져 있다. 꺼져 있는 폰에서 전해지는 무의미한 진동이 신경을 건드렸다. 폰의 원래 주인을 의미하는 라벨에는 폰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주인은 우리나라 나이로 17세의 여고생이었다.
「16세, 전민주」
이 여고생에 얽힌 일화는 꽤 유명했다. 풍문에 의하면, 이 소녀는 왕따의 희생자였다. 소녀는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이 구식폰으로 아무 번호나 무작위로 누르며 통화를 시도했는데, 개중 하나가 살인 사건의 희생자였다.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중요한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됐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소녀가 통화중에 제공한 어떤 단서가 범인에게 치명적이었던 게 분명했다. 범인은 곧 검거됐다고 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범인에 의해 치명적인 상해를 입은 후였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발견 당시, 아이는 이미 청색증이 보일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이후로 소녀는 오랫동안 의식 없이 병실에 누워 있다.
사건은 진희가 입사하기 전에 이미 X팀으로 이전됐다. 그러나 소녀 역시 의식불명의 상태로 몇 개월을 입원 중이므로, 폰은 일종의 불길한 보관품으로 보관대에 방치됐다. 주변의 다른 물건들에 비해 구닥다리로 보이는 그것은, 먼지마저 쌓여 괜히 처연했다.
진희에게 먼지란, 외로움이나 방치 혹은 기다림이라는 가치를 상징했다. 진희는 폰에서 들리는 무방비의 소리에 그 가치들을 털어내고, 마침내 그것을 ‘발굴’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이 증상은, 시크릿 세이버에 입사한 후로는 처음이었다. 이럴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는 금세 떠올랐다.
계영은 약간 피곤한 음색으로 전화를 받았다. 진희는 빠른 속도로 털어놓았다.
“저기, 제가 1층 보관실에서 폰을 발견했는데 말이죠……, 엄청난 소리로 울리는 폰이에요. 아, 네, 뭐, 제 귀에만 들리겠죠. 아뇨, 확실해요. 왜냐하면 폰은 꺼져 있거든요. 아, 네, 지금은 얌전해요. 제가 찾아냈을 때도 한동안 그 소리들은 들렸거든요.”
통화는 몇 분 더 지속됐다. 먼지 위로 앙증맞은 손자국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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