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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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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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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5)

DUMMY

2. The Phone




“자, 그럼 전민주 학생에 대한 사건의 경위를 좀 정리해 보도록 하죠.”


누군가 말했다. 목소리가 나이에 비해 어렸지만 위엄이 서렸다.


형사 김정현이다. 짧은 머리의 경쾌한 라인을 가진 여자 형사는 눈을 빛내며 사람들을 돌아봤다.


세준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소위 ‘열심히 듣는 자의 미덕’을 시행 중이었다.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맞이한 월요일이라 머리가 띵했다. 이 현훈眩暈이 숙취나 휴일의 여흥이라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전全지구적인 초인들의 이야기를 흡수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개중에 가장 고민이 된 부분은, 바로 계영이 한 말이 사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유진희나 김태민은 사이코필드, 혹은 오래전의 실험에 대해 거의 모르는 눈치였다. 세준도 딱히 그 둘이 어떤 식으로 사이코필드를 알고 있는지, 혹은 주상현이나 계영에게 언질을 들은 적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다. 월요일 오전부터 유진희의 기분은 상당히 저조했다. 호피무늬 마니아, 쌍봉낙타를 꿈꾸는 X팀의 막내는 태민과 세준에게 자신이 ‘모두가 듣지 못하는 어떤 소리’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세준은 이미 계영에게 언급을 들었지만, 스스로도 이 방대한 이야기를 흡수하지 못했으므로 달리 끼어들지 않았다.


월요일 오전에는 귀신이나 혼령이 아니더라도 뭐든 바쁘기 마련이다. 시크릿 세이버의 현관도 분주했고, 엘리베이터는 일찍부터 만원이었다. 월요일에는 지하 주차장의 엔진 소리도 시끌벅적했다. 그 모든 것이 ‘사이코필드’나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현실 세계의 복귀를 가리켰다.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유진희의 고백은 몽환적이지만 은근히 현실적이었다. 귀여운 막내 신입을 둘러싼 세 명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김태민은 이맛살을 찌푸렸고, 세준은 괜히 천장 조명을 쏘아보았다. 계영은 눈두덩을 매만지며 커피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팀장 장가형은 여느 월요일처럼 본관에서의 회의를 끝낸 후, 조금 늦게 합류했다.


팀장은 다른 팀원들처럼 유진희와 ‘폰’에 얽힌 어떤 이야기도 전해 듣지 못했다. 그는 다만 모두의 기류를 감지하고, 어떤 지시를 내려야하는지 동물적으로 판단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폰에 대한 일이 중요하다는 건가?’

‘중요하죠.’


태민이 대답했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장가형은 살쩍을 문지르며 ‘왜?’하고 반문했다.


‘뭐가 중요하다는 거지? 계약을 한 당사자는 그 꼬맹이의 어머니고……, 그 꼬맹이나 어머니나 아직 생존해 있는데?’


업무상으로는 옳았다. 시크릿 세이버와 계약을 한 사람은 전민주의 어머니였고, 전민주나 계약 당사자인 어머니는 아직 살아있다. 이 건은 X팀, 혹은 심지어 시크릿 세이버에도 넘어올 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나 계영이 끼어들었다.


‘에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팀장님. 막내가 힘들어한다니까요.’

‘음, 그러니까 왜 힘들어하냐고. 그 폰이랑 무슨 관련이 있어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요. 설령 중요하다고 설명 드려도 이해 못하실 거예요.’


‘아니, 그럼 어떻게 하라고?’


장가형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계영이 배시시 웃었다.


‘뭐, 간단하죠. 지금까지 팀장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무능력한 가장의 포스를 그냥 유지하시면 돼요. 사실 팀장님은 무능력함을 가장할 정도로 정치력이 탁월하신 분이잖아요.’


무릇 무능력한 가장이란, 일의 본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법. 이 시대의 가장들이 출근하는 김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버려야 할 이유를 전심으로 이해하면서 수행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팀장은 결국 모든 현실적인 방안을 재빨리 포기했다.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급한 일 없으면 하루 이틀 내에 해결하라고.’


태민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현명한 단상을 제공했다.


‘세준 선배나 몇 명을 제외하고는, 내기에서 모두가 유진희 씨에게 걸었는데, 진희가 힘을 뺏기면 안 되죠. 진희 씨, 화이팅!’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팀원 모두가 정현과 약속을 잡았다. 단조로운 클래식이 흐르는 외부 카페에서의 만남이었다.


김정현은 느닷없는 X팀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감정을 드러냈다. 방문 전, 세준이 미리 전화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문은 상당히 예리했다.


‘그러니까, 시크릿 세이버의 정식 업무가 아니라는 거죠? 계약이 이행될 시기도 아니고. 그렇다면 왜? 민주에 관련된 형사 사건은 아직 기소 중이라서 꽤 민감한데…….’


사이코필드니 뭐니 거창한 말을 갖다 붙여도, 그 능력이란 일반적으로 ‘귀신을 보거나 듣는 자’일 뿐이다. 일반인, 그것도 형사에게 그런 퇴마적인 기행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계영이 공손한 태도로 적당히 둘러댔다.


‘전민주라는 학생의 어머니가 계약 당사자인데, 계약 수혜자를 민주로 해놨어요. 그 어머니가 지금 편찮으셔서 아무래도 계약 사항을 미리 점검해야 하거든요.’


전민주의 어머니가 몸이 안 좋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전에 계약팀을 통해 넌지시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전민주의 가계는 넉넉하지 않았다.


민주는 그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여고생으로, 어머니는 민주의 학교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그런 어머니가 시크릿 세이버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민주가 사고가 나고 식물인간의 판정을 받게 된 이후, 스스로의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공개 가능한 계약의 조건 상황이었으므로, 계영의 말이 온전히 거짓만은 아니었다.


‘그렇군요. 그럼 공개 가능한 사실들만 입각해서 설명 드릴게요. 단,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가능한 사실들을 알려드리는 범위 내에서, 언젠가 다른 사건으로 X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학창 시절에도 김정현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는 X팀의 누군가, 적어도 권계영 정도는 뭔가 말할 수 없는 정보망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신데렐라 스토커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기밀 상황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런 믿음을 부여했다.


계영 역시 가벼운 태도로 그의 조건에 동의했다. 정현은 주문한 커피가 채 식기도 전에 이야기를 풀었다.


“자, 그럼 전민주 학생에 대한 사건의 경위를 좀 정리해 보도록 하죠.”


카페에서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짧은 시간 동안, 오전에 태민과 유진희가 풀어낸 정보 몇 가지가 동일하게 흘러나왔다.


전민주, 현 18세, 공격을 받을 때의 나이, 17세.


전민주가 범죄자의 공격을 받고 vegetative state, 말 그대로 식물인간이 된 것은 1년 3개월 전의 일이었다. 김정현은 우울한 얼굴로 뇌까렸다.


“의료 업계에서는 대개, 3개월을 식물인간 상태에서의 보루 기간으로 삼고 있으니, 사실 민주의 상황은 낙관적이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기적이라는 게 있고, 같은 상태에서 몇 십 년 만에 의식을 찾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어머니 쪽에서는 희망을 걸고 있죠. 우리도 처음에는 민주가 깨어나는 것에 승산을 걸었어요. 왜냐하면……, 그 아이가 얽힌 ‘배달 살인범’ 같은 경우에는 결정적인 증거나 자백이 없어서, 민주의 증언이 몹시 필요한 상황이었거든요.”


시크릿 세이버의 계약서에는 폰의 원래 주인이 명시되어 있다. ‘강호경’이라는 여학생이었다. 세준은 물었다.


“강호경이라는 여학생이 전민주라는 피해 여학생과 사건 당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한차례 진술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그거. 일의 순서를 따지자면 이래.”


정현이 편한 말투로 설명했다.


“여기, 강호경이 자기 SNS에 공개로 올려놓은 자료와 사진이 있으니 이건 공개 자료로 열람해도 상관이 없어. 여길 보라고. 이게 강호경이라는 여학생이야.”


강호경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은 상당히 예쁜 얼굴로, 18살의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였다. 정현은 강호경의 SNS 주소를 알려주며, 아이의 사진을 가리켰다. 강호경에 대해서 설명할 때의 눈길은 계영을 향해 있었다.


“계영 씨도 같이 확인하세요. 보시다시피, 자기 프로필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강호경은 3선 국회의원이자 시장 후보인 모 정치가의 고명딸이에요. 위로 오빠가 둘,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죠. 일단 경찰 조사로 밝혀진 바는 이래요. 전민주라는 학생은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았지만, 홀어머니와 사는 특별 전형 입학생으로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런 상황에서 학생은 엄청난 따돌림을 받거나 괴로움에 시달리죠. 민주는 폰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고요. 강호경이라는 이 학생은 전민주와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 이 학생이 민주에게 집에서 몇 년 전에 쓰던 아주 낡은 폰을 선물로 준 거예요. 나중에 주변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선의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강호경이 여기 SNS에 남긴 글만 봐도 ‘관용 정신에 입각해서 적선했다.’ 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사건의 외부 인물이긴 하지만, 강호경이라는 여학생은 상당히 고약했다. 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SNS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전민주의 실명까지 공개했군요. 애칭이 ‘거지’라고 되어 있고요.”

“네. 그게 왕따의 일반적인 절차죠.”


정현 역시 께름칙한 어투였다.


“그런 식으로 공개적으로 ‘얘는 왕따입니다.’라고 강호경이 선언한 거예요. 알고 보니 중학교 시절 내도록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민주는 강호경의 아버지가 추천해서 그 고등학교에 들어간 거라서, 그런 말을 어른들에게는 전혀 하지 않았고요. 아무튼 그렇게 폰을 받았는데……, 그 폰에 강호경의 예전 남자 친구인 최용준이라는 학생의 전화번호가 있었던 거죠.”


듣고 보니, 완전 여고생 막장 스토리였다.


대략 1년 9개월 전쯤, 전민주의 동급생인 강호경이 민주에게 폰을 적선했다. 말 그대로 자신이 몇 년 전에 쓰고 버리려던 폰이었다. 가난한 집의 외동딸인 민주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폰이 없었다.


민주는 그 폰을 받았지만, 딱히 연락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폰에 남은 번호 몇 개를 눌렀는데, 그 상대가 하필이면 강호경의 남자 친구인 최용준이었다.


용준 역시 보고서에 올라와 있는 이름 중 하나였으나, 이 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의 개요에서, 용준은 단 두 줄로 언급됐다.


「강호경의 남자 친구 최용준에게 실수로 전화를 건 호경이 용준과 밤마다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됐다. 그 사실이 호경과 그 무리에게 알려지면서, 전민주는 계속 더 심한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민이 끼어들었다. 그는 ‘왕따’라는 단어에 울컥해서 흥분했다.


“근데, 왕따를 당하던 여학생이 왜 연쇄살인과 관련이 되게 된 거죠? 둘 다 범죄적이긴 하지만, 범위가 다른데요. 안 그렇습니까, 형사님? 전민주라는 학생은 범인에게 당하기 전에 경찰을 만났다고 우리 계약서에는 히스토리가 나와 있거든요.”


‘배달 살인’이라는 명칭은 용의자가 검거된 이후 알려졌다. 경찰의 말에 따르면, 용의자는 배달을 가장해 살인을 저질렀다. 항간에 30대 중반의 독신 남성이라고만 알려진 이 용의자는, 검거 이후 한창 기소 중이기 때문에 더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것은 피해자의 수와 지역 정도였다. 배달 살인범은 모두 같은 패턴으로 다섯 명의 사람을 살해했고, 전민주를 공격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전형적인 연쇄살인범들이 자신의 안정 지역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반면, 배달 살인범은 다소 특이했다.


“이 용의자를 묶을 수 있는 단서 자체가 희박한 이유가, 이 지역들이 인근 지역이기는 하지만, 좀 떨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정현이 밝혔다.


“일단 현행범이 아니고 기소 중이니까 용의자라고 지칭할게요. 아무튼 이 용의자는 일정 지역을 옮겨 다닌 기록은 있지만, 본 거주지는 범죄 기간 동안 하나로 고정적이에요. 피해자들은 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거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피살된 지 며칠 지나서 발견될 때가 많았어요. 이 용의자에게서 알아내기 가장 힘든 것이 범죄의 동기인데, 피해자와 얽힌 것도 없고 금전적인 이득도 없기 때문에 동기를 추궁할 수 없어서 자백을 받기에도 힘들어요.

일반적인 반사회적 성격 장애로 인한 범죄로 보기에는, 희생자들의 공통점도 상당히 빈약해요. 희생자들은 모두 CCTV도 설치되지 않은 낙후된 연합 주거지에 살았어요. 배달업의 특성상, 매일 여러 차례 같은 지역의 CCTV에서 용의자가 보인다고 해도, 빌미를 잡기가 힘들죠.”

“프로파일링 결과는 어떤가요?”


세준이 물었다. 정현이 대답했다.


“아, 그거. 너도 알다시피, 프로파일링은 주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의 특징을 분석해서 패턴을 읽어야 하는데, 배달 살인범에게 당한 사람들의 특징은 단지 몇 가지로만 추려져. 비슷한 인근 지역에 살았다, 혼자 살거나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가끔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전민주를 포함한 여섯 명의 희생자들, 개중에서도 사망한 다섯 명의 희생자들은 성별과 나이와 신체적인 조건들이 모두 달랐다. 수사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의도나 동기를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용의자를 잡은 공로는 전민주의 덕이었다.


정현은 잠든 여고생의 이름을 부드럽게 발음했다.


“어쨌든 이 용의자를 잡은 것에는 전민주의 공로가 컸어요. 네 번째 희생자의 마지막 통화자가 전민주였죠. 경찰은 네 번째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기 위해 민주를 만났어요. 사건의 시급함 때문에, 경찰은 그 아이를 학교에서 불러냈는데, 그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 같아요. 십대들에게 경찰의 방문은 일약 미운 오리를 백조로 보이게 하는 힘이 주어지죠. 하얀 백조이든, 검은 백조이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스타가 되고 싶어서, 경찰에게 공개적으로 잡혀가거나 조사를 받길 원하는 은둔자들도 있다.


“아무튼 민주는 그 일 때문에 유명해진 것 같아요. 학교에서 보는 눈이 달라졌는지, 강호경도 SNS에 온갖 비아냥을 늘어놨으니까요.”


민주가 경찰에 참고 진술을 하러 간 일에 대해서, 삐뚤어진 상류층 아가씨의 포스팅은 질투가 섞인 조롱이었다.


「같잖아 죽겠네. 용준이 같은 애가 어울려 주니까, 지가 스타인 줄 아나봐. 경찰에게도 거짓말이나 일삼는다더니. 대가리 빈 거지 년.」


문제는 전민주가 경찰에게 진술한 사실들이었다. 강호경의 조롱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의 진술은 정확했다.


“진술서에 따르면, 민주가 네 번째 희생자와 통화를 하게 된 건, 최용준과 통화했던 것처럼 ‘우연’이라고만 했다더군요. 그것 말고는 범인의 행각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이야기했어요. 정말 이상하죠. 경찰은 민주가 범인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용의자를 잡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아무튼 민주는 범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혹은 어떤 희생자를 다음으로 골랐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했어요.”


진술서에는 전민주의 말이 그대로 기록됐다.


「범인은 배달업을 하고 있을 거예요.」

「다음 희생자는 *** 씨나 ○○○ 씨일 거예요. 빠른 시일 내에 보호하셔야 해요.」


경찰은 아이가 지목한 다음 희생자를 주시하는 반면, 아이에 대해서도 다시 조사했다. 그러나 강호경이 그 즈음에 다시 SNS를 날렸다. 시장 후보의 딸이 날린 멘션은 의미가 컸다.


「거짓말. 사기꾼. 그년은 그 동네에서 그 사건이 일어날 때, 동네 만화 가게에서 죽치고 있었다고. 지가 알긴 뭘 알아. 우리나라 경찰이 그딴 년의 말에 속다니, 어이가 없어서…….」


전민주의 고등학교는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된, 혹은 그런 의미로 경찰의 방문을 받은 민주를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부당한 처사였지만, 그놈의 학교는 어차피 강호경 같은 힘이 있는 아이의 집안으로 굴러갔다.


“강호경의 멘션과 그 집안의 한마디 때문에 개입이 많아지고, 언론이 난리가 나고, 덕분에 조사는 잠깐 정체됐죠. 근데 민주가 경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말 ○○○ 씨가 다섯 번째 타깃이 된 겁니다. 경찰은 ○○○ 씨에게 배달 음식을 주의하라고 경고를 했지만, ○○○ 씨의 경우는 배달 음식 때문에 당한 게 아니었어요. 배달 음식이 아니라, 다른 방문이 목적이었던 것 같은데,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민주가 한 말이 맞았고, 민주는 징계를 받고 집에 있었기 때문에 놀란 형사 중 하나가 민주의 집으로 달려간 거예요.

하지만 민주는 이미 공격을 당한 후였어요. 범인으로 유력한 용의자가 현장에서 체포됐고, 지금 조사를 받고 있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어요. 범인이 민주를 공격했다는 정황적 시간대와 다섯 번째 희생자의 시간대가 거의 30분 직후로 맞물려요. 두 지역은 30분 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이긴 하지만, 다섯 번째 희생자가 살던 길의 골목에는 CCTV가 있는데, 이 CCTV가 있는 곳을 지나야 그 30분 내에 민주의 집으로 갈 수 있거든요. 하지만 CCTV에는 민주의 집 근처에서 잡힌 용의자가 포착되지 않았죠.”


“범인이 한 번에 두 곳에 있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군요.”


계영이 끄덕였다.


“형사님 말씀은, 그래서 지금 기소 중인 용의자는 전민주를 공격한 것에 대해서는 정황적으로 기소를 해 볼 수도 있지만……”

“네, 다른 다섯 건과 묶기 힘들다는 겁니다. 민주가 깨어나야 더 많은 정황들을 파악할 수 있어요. 제 사건은 아니지만, 경찰들의 일반적인 견해도 그래요. 걔는……, 뭔가 알았던 게 분명하거든요.”


세준의 집중력은 이제 폰과 소녀에 대한 것으로 온연히 돌아왔다. 자리를 파하고 나오는 길, 유진희가 새침한 얼굴로 뇌까렸다.


“그럼…… 그 망할 폰은 왜 울리는 걸까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주파수의 소리를 간혹 듣는 사이렌 DNA.


사이코필드의 기록지에 그 사이렌으로 등록된 유진희가 자신의 정체성은 꿈에도 모르는 얼굴로 툴툴댔다.


“민주의 어머니가 거의 8, 9개월 전에 우리와 계약을 했단 말이죠. 그 몇 개월 동안 그 폰은 울리지 않았어요. 근데 왜 하필 지금 울리는 걸까요? 이미 꺼진 폰인데!”


카페 밖 대로에는 차들이 휭휭 달렸다. 6차선 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바깥 보도의 사람들은 각각의 행로를 가졌지만, 하나의 공간에 묶여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과, 그보다 현격히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보행자들.


사이코필드라는 개념 역시 도로나 블록과도 비슷했다.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하나로 묶여 있다면, 아직 죽지 않은 그 소녀가 보내는 메시지가 폰을 건드렸을지 모를 일이다. 같은 필드로 묶인 영혼 중에, 개처럼 고주파의 소리를 감지하는 DNA의 유진희가 그것을 듣는 게 아닐까.


“진희 씨, 심리학에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라는 게 있어.”


세준은 중얼덌다. 유진희가 “네?”하고 눈을 깜박였다.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는 원래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초심령학? 심령학, 뭐 그런 분야에서 쓰이긴 하지만, 원래라면 칼 융이 만든 용어라서 심리학을 배운 사람들은 대체로 한 번씩은 접해.”

“그렇군요. 근데 그게 지금이란 무슨 연관이……?”


호피 무늬 애호가는 뾰족한 투였다. 계영이 빙그레 웃었다. 태민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못 보면, 택시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준은 스스로가 100살 정도 먹은, 목축업 종사자처럼 느껴졌다.


“아, 진희 씨가 궁금해하는 것의 답이 어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한 말이야. 아카식 레코드는 인류의 모든 정보가 다 기록된 무형의 도서관과 비슷해. 거대한 무의식의 바다? 뭐 그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지. 우주 전체의 모든 기록과 비밀이 다 저장된 무의식의 합과 비슷한데……, 그곳에 접속할 수 있으면 많은 천재들의 능력을 전수받고, 모든 비밀을 알 수 있기도 한다고들 하지.”


사이코필드는 학창시절 웃어넘긴 아카식 레코드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하나는 정신과학적인 개념을 차용해 쓰고 있고, 다른 하나는 신경정신과적인 개념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선배 말은, 아카식 레코드는 모든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우주의 정보가 담긴 곳이다? 그 꼬맹이의 메시지도 그 레코드에 기록되어 있고, 나는 거기에 있는 정보를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똑똑한 걸?”


세준은 100살의 심경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미소 지었다. 유진희는 흥, 하고 일소했다. 계영이 느닷없이 중얼거렸다.


“음, 그런 식이라면 조만간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는 걸?”


둘의 별 뜻 없는 대화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상당히 기습적인 개입이다.


“네? 그게 무슨 말……?”


세준은 ‘새로운 사건’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폰이 있는 보관실로 가서 폰에 남은 꼬마의 그림자를 투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갈등이 기분 나빴다. 그런 힘을 조율할 수 없다면, 계영은 에너지를 뺏기게 되는 셈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갈등 와중에 느긋하게 등장한 ‘새로운 사건’이라는 말은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택시를 향해 다정하게 손을 흔들던 태민마저 “네?”하고 돌아봤다. 유진희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습관처럼 신발 끝을 탁탁 쳤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같아 보였다.


계영이 대답했다.


“아, 세준 씨 말처럼 아카식 레코드 같은 개념이라면 말이야.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초연한 투였다. 얼마나 평온한 어조인지, 본의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 계영은 모두의 찌푸린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냥 사장의 숨겨진 아들과 진희 씨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으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 서로 공유하는 필드를 통해서, 그 꼬맹이가 자기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을 하고 있는 거라면……, 진희 씨 말처럼 그 폰이 보관실에 있던 몇 개월 중에 유독 엊그제 울렸을 리 만무하잖아. 왜 하필 ‘지금’ 울린 걸까, 그 폰은.”

“그러니까……”


진희가 모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대리님과 모두들……, 제가 남들이 듣지 못한 폰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은 진짜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군요.”


세준은 끄덕였다. 살면서 뭘 그렇게 열심히 수긍하기는 처음이다.


“전혀. 나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간혹 보니까. 문제는 진희 씨, 대리님 말처럼 왜 그 폰이 ‘지금’ 들렸냐는 거야. 대리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


태민이 택시를 향해 인사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가왔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어조로 뇌까렸다.


“한마디로 아이가 잠들어 있는 이유와 폰이 지금 울린 이유가 같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왠지 생각에 잠긴 듯, 고요한 눈빛이다. 세준은 계영과 눈빛을 교환했다.


태민은 뭘 알고 이야기하는 걸까?


작가의말

댓글은 퇴근후 차분차분! 하게 달겠습니다.

근데, 집에 고양이가 잠시 들어와 살게 되어서...-_-

저 진짜 요새 축생들을 보호하며 정신이 없는 것 같아요.


고슴도치 두 마리 (각각 따로), 나이 든 햄슷허 두 마리 (각각 따로), 보리 화분 세 개, 고양이 한 마리....?


모두가 그냥 집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_- 햄슷허 한 마리만 제가 보호소에서 데리고 온 애군요.


흐억!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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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99 크림
    작성일
    14.12.15 21:52
    No. 1

    미스터리한 사건의 연속!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16 17:06
    No. 2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좀 더 성실히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12.16 00:17
    No. 3

    작가님 댁은 애니멀 필드인가요. >_<
    아 그나저나 23쪽이나 되는데 왜 순식간에 읽어버리는 거지, 난.....;ㅁ;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16 17:07
    No. 4

    애니멀 필드가 됐어요..ㅠㅠ 흙.... 햄슷허만 제가 데리고 온 애인데, 어쩌다 보니, 집이 전부 보살펴야 할 아이들로 꽉 찼네요. 행복하기도 하지만 퇴근하고 들어갈 때마다 녹초가 되곤 해요...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더마냐
    작성일
    14.12.16 08:02
    No. 5

    태민도 능력발휘 하나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16 17:07
    No. 6

    아무래도 발휘해야겠죠?!!! 캬캬캭! ^__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12.17 18:01
    No. 7

    저도 고양이를 정말 좋아합니다만... 동물을 보살펴본 적이 없어서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인데 부럽습니다. 진심으로요... ㅠ.ㅠ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볼 때마다 흥미진진합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18 17:33
    No. 8

    데리고 온 고양이 정말 귀여워요. ㅠㅠ 차분차분하고 조용조용해요. 정말 귀여워요..ㅠㅠ 애가 너무 예뻐서, 출근하기 싫고 막 그래요..^^a 퇴근하고 나서도 글 안 쓰고 애를 들여다보고 있어요..ㅠㅠ 흙... 알러지만 아니면 계속 데리고 있고 싶어요..ㅠㅠ (순 고양이 이야기만 잔뜩..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온연두콩
    작성일
    14.12.17 22:11
    No. 9

    기묘한 능력자들의 모임이었어요.
    태민의 능력이 궁금합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12.18 17:34
    No. 10

    태민이의 능력은 '플란더스 DNA'~. ^^ 전편에 나오는데, 아마 다음 에피나 그 다음 에피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히히히. 어어억, 궁금한 것이 많으면 안 되는데!!! (설명 능력 부족..ㅠㅠ) 으으아아아악! ^____^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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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4) +11 14.12.09 675 11 32쪽
3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3) +7 14.12.03 638 11 13쪽
30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7 14.11.30 702 9 19쪽
29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7 14.11.30 615 9 7쪽
28 Episode 02 웃는 인형 (완결) +10 14.11.10 904 11 27쪽
27 Episode 02 웃는 인형 (13) +6 14.10.18 557 15 19쪽
26 Episode 02 웃는 인형 (12) +15 14.09.30 786 16 26쪽
25 Episode 02 웃는 인형 (11) +9 14.09.29 765 13 26쪽
24 Episode 02 웃는 인형 (10) +7 14.09.27 804 21 10쪽
23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4 12 9쪽
22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4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16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7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7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5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5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8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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