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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2,836
추천수 :
518
글자수 :
272,824

작성
14.09.26 23:50
조회
623
추천
12
글자
9쪽

Episode 02 웃는 인형 (9)

DUMMY

-*-




송기철 회장의 프로젝트는 급박한 일정으로 인해 두 개의 팀으로 나뉘었다.


유진희와 태민은 희즈 웨딩샵에서 안면을 익힌 경찰 김정현과 함께 소방서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세준은 계영과 함께 송기철 회장의 집, 「도서출판 겨울나무」로 알려진 회사 회장의 가택을 방문했다.


오전부터 내린 보슬비는 저택의 담벼락을 촉촉하게 적셨다. 담벼락을 덮은 담쟁이덩굴이나 저택의 모양 때문인지, 회장의 집은 고풍스럽고 고고한 느낌을 자아냈다.


벨을 누르자, 대저택의 집안일을 맡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약간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여자가 입을 열 때마다 하얀 김이 나왔다.


“시크릿 세이버에서 오셨다고요? 안 그래도 아가씨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준은 저택에 오는 내도록 계영과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지난 4주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계영 역시 평상시에 자주 행하던 작은 악마 같은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는 커피를 부탁하지도, 혹은 비가 잠깐 갤 때마다 컨버터블의 뚜껑을 열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송가연을 부르기 위해 자리를 떴을 무렵에는 정적이 극에 달했다. 대리석 바닥으로 이뤄진 넓은 거실 안에는, 시계 소리만 묘묘杳杳하게 울렸다. 정적이 깨지는 순간은 계영이 차를 마시기 위해 테이블로 팔을 뻗을 때가 전부였다.


적요寂寥감이 주는 압박이 대단했다. 아날로그시계에서 나는 소리가 신경을 도발했다.


재깍재깍.


세준은 그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아무런 예감도 없이 문득 그 순간에게 사로잡혔다.


무심한 팔의 곡선은 유려했다. 아무렇게나 말아 올린 셔츠 소매 밖으로 드러난, 하얗고 긴 팔이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때문에, 푸른 혈관이 부드럽게 드러나고 의식하지 않은 채로 수줍게 움직였다. 팔 안쪽의 은밀한 살갗은,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 때문인지, 혹은 날씨나 비 때문인지 살짝 긴장한 것처럼 팽팽했다.


빛의 분말粉末이 여자의 벗은 팔 위로 온화하게 떠다녔다. 피부 위로 부드러운 빛이 번졌다. 그 순간, 여자의 벗은 팔은 나신의 의미로 돌변했다. 그것은 아무런 상징성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시선을 도발하며 사내를 자극했다.


재깍재깍.


세준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압도당했다. 촉매처럼 크게 울리는 시계 소리에 온몸이 오싹오싹했다. 자칫하면 계영의 팔꿈치 안쪽, 그곳에 빛이 닿는 순간 그 은밀해 보이는 피부에 손을 내밀 뻔했다. 그 부위는 누구나 볼 수 있고,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순간 내밀內密한 상징처럼 와 닿았다. 팔의 접혀져 수줍게 숨겨진 부분, 옴폭하게 팬 채 대체로 가려진 그곳을 벌리는 망상이 이어졌다. 망상은 탐욕적이고 게걸스럽게 치달아, 별 것도 아닌 피부의 점막을 탐하게 만들었다.


재깍재깍.


환장할 일이었다. 과한 호르몬이 뇌수를 흔들었고, 끝내 여자의 팔 안쪽 부근, 그 팬 곳에 숨겨진 습윤하고 촉촉한 맛을 빨아들이라고 종용해댔다. 팔의 주인은 그런 의도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지, 침착하게 자신의 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역시 조용한 속도로 그것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재깍재깍-.


화장기 없는 작고 소박한 얼굴이 잔과 입을 맞췄다. 습습習習한 공기 속에 부유하던 빛의 결정이 그 입술을 통해 온몸으로 분사됐다. 온화하고 짠한 빛의 후광이 도기 잔에 산란되며 표표히 사라져, 그 모든 것이 정지한 환상처럼 아름다웠다. 여자는 한 번도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잔이 테이블에 닿아 소리를 내는 순간 눈꺼풀을 반짝, 밀어 올렸다.


무결한 갈색의 눈동자는 조금 의아한 듯, 자신을 미혹하는 사내의 눈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다시, 고요함이 정류소의 버스처럼 정차하며 꽤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그때까지 갈색의 연한 눈동자는 무죄였다. 그러나 그는 곧 뭔가를 깨달은 듯 입술을 천천히 벌렸고, 희미하지만 굴곡 있는 숨을 내뱉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공기가 사내의 정욕처럼 들락거렸다. 살짝 추운 실내로 인해 내뱉는 하얀 공기는 길고 요염하게 보였다. 입술은 차의 물기로 젖어 반짝이고 천천히 그 온기에 전이된 듯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하얀 얼굴의 붉은 입술, 벌어진 붉은 입술.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을 들락거리는 하얗고 긴 숨.


세준은 비로소 이 상황을 깨달았다.


……‘그녀’를 의식하고 있었다.


상대를 여자로 의식했다. 한순간이나마 분명히 그랬다. 욕설이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지만 유죄였다.


계영 역시 태연한 얼굴이었지만 귀만 점점 빨개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표를 내지 않은 조용한 응시를 나누는 동안 그의 귀는 점점 빨개졌다. 무죄였던 갈색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면서 어두워졌다.


이제, ‘그녀’도 유죄였다.


세준은 혼란스런 대상을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킨십을 하면 뭔가를 본다고요?”


이게, 다 권계영이 자신의 지킬 DNA에 대해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푸른 수염인지 신데렐라 스토커인지, 하이드 DNA인지 때문이다.


계영은 난처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들락거리던 하얀 숨을 삼키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뭔가를 본다고 해서, 너와 다시 키스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누가 할 소리.”


세준은 팍팍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고집스레 응수했다.


“그런 좆같은 생각 안 했는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송가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아리따운 유족이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왔다.


상복을 입지 않았다면, 공주의 등장이라고 생각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칙칙한 옷도 그의 미모를 누를 수는 없었다. 약간 싸늘하게 치켜 뜬 눈매와 오뚝한 콧날, 갸름한 턱이 아름다웠다.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가 걸음을 뗄 때마다 보기 좋게 드러났다. 그에게는 계영에게서 이따금 느껴지는 모종의 기품이 존재했다.


“반갑습니다, 앉으세요. 며칠 전에 제게 전화 주셨던 분이 아니시네요?”


송가연은 두 사람의 명함을 받으며 인사했다. 네, 계영이 대답했다.


“원래 우리 팀의 다른 두 사람이 송가연 씨를 뵈러 올 계획이었습니다만, 일정상 저희가 맡게 된 겁니다.”


“아, 그렇군요.”


송가연은 대수롭지 않게 듣더니 곧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제가 아버지의 계약 사항을 듣긴 했는데……, 아직까지 시크릿 세이버가 그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니 이상하긴 하네요. 자서전을 수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계영이 부드럽게 웃었다.


“고인의 유지는 일단 자서전을 완결 낸 후, 폐기해 달라는 것입니다.”


가연의 표정은 점점 더 의혹을 드러냈다.


“그렇군요. 아, 네, 그 전의 분들은 그냥 자서전을 수거해 간다고 하셔서······.”


“네, 완결 난 것을 수거해서 폐기하는 거죠. 완결이 먼저입니다.”


“그럼 오늘 방문하신 이유가······?”


가연이 찻잔을 들어올렸다. 세준은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머릿속은 텅 빈 것 같았다. 혼란의 이유는 단순했다. 선임이자, 별스럽고 매력 저하인 여자를 상대로 잠시나마 느낀 부도덕한 망상 탓이다.


계영은 파트너 따위는 이제 잊은 듯,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저희가 오늘 방문한 이유는, 어서 자서전을 매듭짓기 위해서죠. 교정 작가이신 안지율 씨와 의논을 했는데 말입니다.”


“네.”


“그 내용에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서 꼭 확인코자 들렀습니다. 안지율 씨도 마지막 부분을 회장님께 받지 못해서······, 자서전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하셨거든요.”


계영은 안지율의 파일에 대해 거짓말을 했지만 따로 노림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세준은 둘의 대화에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고 아름다운 페치카는 장작만 쌓인 채 불이 꺼져 있었다. 확실히 벽난로를 키기에는 아직 이른 날씨였다.


페치카 위에는 조금 전까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던 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계 주변으로는 새것이 분명한 액자들도 달려 있고, 페치카 위에도 가연과 송 회장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즐비했다.


사진은 처음에는 송 회장과 가연의 부녀 사진이다가, 뒤로 갈수록 거의 가연의 독사진이었다. 벽난로 위에는 습기 때문인지 큰 향초가 세 개 정도 올려 있고, 모두 불이 붙은 상태였다.


작가의말


진짜 오늘치 분량 겨우 적고 1분 생각했습니다.


[나, 뭐래는 거야.] 라고. ^_^


Good Luck! 

금요일 밤입니다!



------------------------

업데이트 기록 _ 14.11.10 수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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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36 온연두콩
    작성일
    14.09.27 00:12
    No. 1

    반했네, 반했어.
    숨 죽이고 읽게 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09.27 00:41
    No. 2

    둘 사이의 긴장감 정말 좋아요. >_< 잠시 정지된 순간의 고요한 긴장상태를 진짜 잡힐 것처럼 묘사해 주시는 거 완전 사랑함. 전 로맨스는 안 읽는데 최승윤님이 쓰시면 읽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더마냐
    작성일
    14.09.27 00:46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2 더마냐
    작성일
    14.09.27 18:20
    No. 4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09.27 22:10
    No. 5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12.11 17:57
    No. 6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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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5) +10 14.12.15 729 12 23쪽
32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4) +11 14.12.09 675 11 32쪽
3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3) +7 14.12.03 637 11 13쪽
30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7 14.11.30 702 9 19쪽
29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7 14.11.30 615 9 7쪽
28 Episode 02 웃는 인형 (완결) +10 14.11.10 904 11 27쪽
27 Episode 02 웃는 인형 (13) +6 14.10.18 557 15 19쪽
26 Episode 02 웃는 인형 (12) +15 14.09.30 786 16 26쪽
25 Episode 02 웃는 인형 (11) +9 14.09.29 765 13 26쪽
24 Episode 02 웃는 인형 (10) +7 14.09.27 804 21 10쪽
»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4 12 9쪽
22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4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16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6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6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4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9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4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8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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