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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윤의 서재입니다.

투시透視, Second Sight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최승윤
작품등록일 :
2014.08.03 00:37
최근연재일 :
2014.12.18 17:34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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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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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글자수 :
27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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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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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DUMMY

실내는 스탠드 불빛만이 전부였다. 상당히 어둡고 어지러웠다. 차우현은 입고 있던 카디건의 앞섶을 여미며 소파에 앉았다. 소파 위에도 찢어진 고지서며 서류들이 가득했다. 세준은 앉을 자리를 찾는 것에 고심해야 했다.


테이블도 그 난장판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거의 모든 술병들은 널브러져 있었다. 우현은 그 병들 중에 술이 조금 남은 병을 들어 패잔병처럼 들이켰다.


“흥, 저 따위 웨딩드레스가 뭐라고.”


비꼬는 말투에도 박스를 바라보는 눈길은 고되고 고단했다. 계영이 차우현의 맞은편 자리에 자기 집처럼 편히 걸터앉았다. 그가 앉을 때 보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났지만, 집주인도 그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계영이 자신의 손을 만지작대며 시작했다.


“벌써 다섯 번 정도 저걸 전해드렸는데 다섯 번 모두 반납하셨죠.”


두 개의 검지를 앞으로 모아 뾰족하게 붙인 모습이 꽤 자신 있어 보였다. 우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그랬죠, 당신 정말 지독한 거 알아요? 첫날은 택배로 위장하고, 두 번째는 창문으로 밀어 넣더니, 세 번째는 현관 앞에 안 보이게 숨기고······.”


“네 번째는 크레인도 불렀습니다. 기억하시죠? 얼마 전이니까. 하하, 그건 제가 생각해도 멋진 생각이었습니다만······.”


박스 하나 배달하겠다고 크레인을 불렀다니.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발상이다. 세준이 “그게 뭡니까.”하고 다소곳하게 따졌지만 계영은 뭐긴,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뭐긴, 고객 감동 배달 서비스지. 다섯 번째는 더 놀라워. 내가 직접 들고 여기에 눌러 앉았어.”


“……그랬습니까, 정말?”


딱히 반문은 아니지만 우현이 대신 대답했다. 그랬죠, 그는 실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반나절 만에 경찰을 불렀지만.”


계영은 그 모든 것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허리를 바로 했다.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인지, 더없이 차분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안 돌아갈 겁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죽어서 썩어도 당신 탓이니까.”


우현은 냉기 그 자체였다. 계영은 괘념치 않는 얼굴로 자신의 모바일을 꺼냈다. 그가 우현에게 보여준 것은 차희현의 박스와 함께 보관된 물품 목록 사진, 바로 웨딩드레스였다.


“……저번에도 사진으로 확인시켜 드리려고 했지만 계속 바로 찢어버리고 거부하셔서요. 이거면 제 폰이니까 찢지 못하실 거라 생각해서 따로 찍어 왔습니다.”


“치워요!”


우현이 신경질적으로 폰을 쳐냈다. 퉁, 하고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계영은 침착하게 폰을 다시 주우며 온화하게 권했다.


“다시 보세요, 차우현 씨, 우현 씨가 놓치고 있는 게 분명히 있습니다.”


“치우라고, 씹할, 치우라고!”


차우현은 상스러운 말을 하며 벌떡 일어섰다. 산발의 머리와 시뻘건 눈, 계영보다 두 배는 큰 몸집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다소 안타까웠다.


공격적으로 굴지만 않으면 상당히 예쁠 텐데.


세준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며 계영과 그 사이를 막아섰다. 차우현은 씩씩대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치우라고! 씹할, 당신은 몰라, 저 드레스! 내가 입으려고, 내가 그 서세영과 결혼하기 위해 디자인 한 거였어!”


우현이 주변의 물건들을 테이블 위로 던지기 시작했다. 퍽, 퍽, 타격하는 소리가 야구 경기장처럼 울렸다.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나와 결혼하기로 한 남자가, 그걸 아는 내 동생이!!! 내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나에게 사실은 둘이 사랑하는 사이래! 나와 결혼하기로 하기 훨씬 전부터 사랑하던 사이래! 그러면서 내가 직접 디자인 한 저 옷을!!! 그년이 입고 내 자리에서 결혼을 치렀다고! 그게 말이 돼?”


“……물론 말이 안 됩니다.”


계영은 우현이 던지는 것들을 섬세하게 원래의 어지러운 자리로 돌려놓으며 대답했다.


“말, 분명히 안 됩니다, 차우현 씨. 하지만 강속구 투수가 될 생각이 아니시라면 이제 물건 던지는 것은 그만 하시고 저희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강속구 투수?


차우현이 티슈 박스를 들다가 멈칫했다. 계영이 음, 하고 기분 좋은 듯 그르렁댔다.


“아시겠죠, 차희현 씨? 좀 있으면 변화구까지 익힐지도 모릅니다. 드문 거죠, 그런 건. 강속 전문 투수가 완벽하게 변화구까지 익힌다는 건, 야구 강팬인 저도 본 일이 거의 없거든요. 변화구는 어깨를 곧잘 상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요.”


“뭐라는 거야, 당신!”


차우현은 여전히 씩씩거렸지만 힘이 빠진 상태였다. 세준은 그 순간, 계영이 가진 묘한 특이함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런 식으로 약간 미친 사람을 다루는 것에 능숙해 보였다. 광기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다면, 계영은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전에 그것을 제어했다. 그것도 상대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저 사람은 어떤 미친 사람도 진정시킬 수 있겠군.


세준은 대학 시절과 석사 중반까지 공부했던 전공을 떠올리며 숨을 들이켰다. 차우현의 거친 숨소리만이 방을 가득 채웠다. 좋아요, 계영이 성난 동물을 다루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좋아요,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차희현 씨. 나는 당신이 상처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어요. 당신은 몸이 좀 크고, 나는 전혀 꾸밀 줄 모르고……. 우리 같은 여자들은 남자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저도 압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공주처럼 바라봐주던 남자, 분명히 매력 있죠. 동생이 그런 남자를 가로챘다면 내 인생의 유일한 기회를 가져간 것 같아 분한 것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상처 받은 건 배신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어요. 믿음의 문제가 자존심의 문제인 거죠. 바보 취급당한 게 화가 나는 겁니다. 당신의 남자를 가로챈 동생, 내 남자를 가로챈 내 친구, 모두……. 우리에게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이렇게 바보가 된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텐데……, 그런 거죠…….”


요트 클럽 반지를 끼고 있던 남자, 권계영이 한때 클럽 문밖에서 한참 기다리던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세준도 우현도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목소리에 진정성이 있었다. 담백하지만 따뜻한 어투였다.


“잘 생각해 보면, 차우현 씨, 당신은 그 남자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냥 그 남자 말고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았을 뿐일 겁니다. 저도 잘 몰라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그 남자가 아니라 진짜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더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요. 살아보지도 않은 인생인데 누가 내 마지막 사람이 될지, 혹은 내가 평생 혼자로 남을지 말지, 그런 걸 어떻게 지금 결정할 수 있겠어요. 미래에 일어날 일인 걸요. 중요한 건……, 당신은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시간이 남아 있지만, 동생은 없다는 겁니다.”


계영이 가열차게 폰을 내밀었다. 차우현은 여전히 계영을 노려보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맞잡았다.


자세히 보세요, 고양이를 달래는 음성이 속삭였다.


“당신이 동생을 미워했던 게 나빴던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동생이 남긴 것을 확인한다고 해서 당신이 동생을 꼭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동생을 용서하면 당신이 동생을 미워했던 게 나쁜 감정 같으니까 죄책감마저 들겠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차우현 씨, 동생이 죽은 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당신이 동생을 미워해서 동생이 죽은 게 아니에요. 동생은 그냥 나쁜 놈에게 당한 겁니다.”


신데렐라 스토커.


차희현이 죽은 원인은 발목을 잘라 가져가는 신데렐라 스토커 때문이었다. 차우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차우현은 폰의 사진을 오랫동안 노려보았다. 조금 진정한 것처럼 호흡이 잦아들었다. 계영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혹시-”하고 물었다.


“예전에 당신은 디자이너고, 동생은 제작자였죠. 서세영이 이 옷의 제작에 관여했습니까? 혹은 다른 웨딩드레스 제작에라도 관여한 적이 있습니까?”


“무슨 소리!”


우현이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그 남자는······, 옷에 대해서는 먼지만큼도 몰라요.”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사진의 웨딩드레스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 듯 시선을 가까이 댔다. 계영이 부드럽게 대꾸했다.


“그럼 더 확실하네요. 차우현 씨는 동생 분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죠? 그러니 모르셨을 겁니다.”


차우현의 얼굴 근육이 조금 떨렸다. 턱이 안쪽으로 바싹 당겨지고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계영이 내민 사진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지, 눈동자가 불안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뭐?”


따지듯 반문하는 목소리였지만 힘은 사라진 후였다.


“동생은 아무도 초대하지 못했어. 세영 씨와 단 둘이 성당에서 결혼을 급하게 치렀다고······. 축하받을 결혼식도 아니었어. 언니의 남자를 뺏었는데 어떻게……!”


“그럼 결혼식 이후에 신혼집을 방문하신 적도 없겠네요? 샵도 마찬가지고?”


차우현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왜……, 하고 되묻는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졌다. 마침내 차우현도 계영이 알아낸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근데, 그게 도대체 뭐지?


세준은 박스와 함께 놓인 문제의 웨딩드레스 사진을 집어 들었다. 저 여자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차희현이 자신의 결혼식에서 입었다는 드레스, 유품으로 시크릿 세이버에 맡겼던 드레스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건가.


“조금만 생각해 보셨으면 아셨을 겁니다.”


계영이 계속했다.


“급하게 치룬 결혼식,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 아마 차희현 씨는 웨딩 사진을 찍는 것은 생각도 안 했을 거예요. 오늘 웨딩샵을 갔지만, 역시 차희현 씨의 결혼사진은 없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보통이라면, 그렇게 유명한 웨딩샵의 미인 운영자라면, 자기 결혼사진 정도는 걸어놓겠죠. 하지만 없었습니다. 저도 오늘 이상해서 확인해 봤습니다만, 역시 샵의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구나!


세준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맞다, 계영의 말이 맞았다. 미인 운영자로 유명한 희즈 웨딩샵, 그 웨딩샵의 여주인이 결혼식을 했다면 그 사진 정도는 샵에 걸려 있을 법한 일이다. 그만한 마케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차우현의 얼굴도 더 하얘졌다.


“그, 그건····· 희, 희현이가 그렇게 죽어서······, 서세영, 아니, 제부가······, 뺏겠지······. 맘이 아파서……, 그런 사진을 걸어두면 맘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죠.”


계영은 동의했다. 담담한 어조였다.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자기 손의 결혼반지를 빼버린 것도 이상하죠. 부인이 죽은 지 3개월 밖에 안 됐는데, 다른 여자의 화장 분을 얼굴에 묻힌 것도요.”


맞다, 반지.


세준 역시 그 ‘손’이 뭔가 이상하다고 계속 생각했다. '이상한 점'은 바로 반지였다.


샵에서의 서세영이 떠올랐다. 차를 마실 때 선명하게 드러난 빈 ‘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인이 살인자에게 희생당했다. 그런데 한창 신혼이었던 남편의 손가락은 비어 있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계영처럼 정확하게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얼굴의 분粉.


서세영이 시크릿 세이버의 방문자들에게 다가올 때 묻히고 있던 얼굴의 가루. 처음에는 초크가루라고 생각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계영이 미리 확인했다. 계영은 차우현에게 세영이 ‘제작에 관여하느냐’라고 물었고, 차우현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서세영이 옷의 제작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그 얼굴에 초크가루를 묻힐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계영의 말처럼 그 샵의 커튼 안쪽, 「피팅룸」이나 「환복실」에서 그와 함께 나왔던 여자 직원의 화장 분을 얼굴에 묻혔다는 의미다.


……아내가 죽은 지 3개월도 안 된 남자가 으슥한 곳에서 다른 여자와 밀행密行을 나눴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반지와 얼굴의 분은, 서세영이라는 남자가 가진 성향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었다.


“제 예상이 맞을 겁니다, 차우현 씨.”


계영은 확신한 듯 부드럽고도 단호했다.


“서세영은 제게 초크가루라고 둘러댔지만, 화장품이죠. 여성의 파우더. 차를 내 온 직원은 뺨에 얼룩이 있었는데, 화장 분이 지워진 거였어요. 우리가 방문했을 때, 둘은 같은 방향에서 황급히 나왔고요.”


말을 잠시 끊은 계영은 덧붙였다.


“서세영은 우리가 오기 직전까지 그 여자와 뭔가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 바람둥이에요. 그냥 바람둥이도 아니고, 아주 질이 나쁜…….


어떻게 생각하면……, 범죄적인 뭔가도 가지고 있겠죠. 동생 분은 절대로 그 남자와 좋아서 결혼한 게 아닐 겁니다.”


마치 법정에서 상대의 형刑을 확신하는 검사의 말투였다.


바람둥이, 질이 나쁜.


바람둥이를 수식하는 ‘질이 나쁜’이라는 말에서, 세준도 감을 잡았다. 그때서야 왜 계영이 청담동에서 놀던 여자와의 인터뷰를 먼저 요청했는지 이해가 됐다. 그 여자가 희즈 웨딩샵에 대해 이야기하며 떨던 이유도 짐작이 갔다. 죽은 차희현이 ‘겁에 질려 있었다’라는 것 역시 같은 논리였다.


“그럴 리가 없어!”


차우현이 흥분해서 일어섰다. 그는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애증에 사로잡혔는지, 몸부림을 치듯 팔을 휘저었다. 물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드레스 박스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영 역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자를 열어보세요, 차우현 씨! 사진 속의 그 ‘진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동생이 죽으면서도 지켜달라고 한 ‘우리들의 명예’라는 말이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동생 분이 말한 ‘우리들’은 서세영 씨를 의미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당신과 자기 자신, 그리고 그 서세영에게 당했거나 당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거죠! 동생 분은 당신도 모르는 어떤 위험에 처해 있었을 수도 있었어요! 이제 다른 사람들도요!”


박스는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내몰려 굴러다녔다. 두 사람은 다시 전쟁을 벌일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는 사이, 세준은 박스로 다가섰다. 한쪽 귀퉁이가 찌그러진 그것을 들어 올리는 순간, 어두운 현관 쪽에서 안개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등 뒤에 있던 인기척이 연기 같은 무형의 벽에 가로막혔다.


환영 같은 이 현상은 언제나 갑자기 시작했다. 세준은 이를 악물었다.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 씹할……! 간장 종지 같은 내 마음에 준비할 틈이라도 달란 말이다!


‘까불지 마, 마누라.’


청연 같은 안개가 박스와 세준 주변을 에워쌌다. 그 안개 위로 마치 스크린이 펼쳐지듯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차희현으로 보이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숨을 헐떡였다. 이를 드러낸 남자가 차희현의 목 섶을 잡고 키득거렸다.


‘까불지 마, 마누라. 누구에게라도 이 일을 발설하기만 해 봐. 그 즉시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당신의 벗은 몸을 볼 거니까.’


서세영의 손이 여자의 목을 죄기 시작했다. 목덜미까지 감싼 커다란 손에는 혈관이 불거졌다. 차희현이 괴로워하며 손을 뻗었다.


‘이 개자식······! 놔, 놓으라고······!’


서세영은 부인의 눈동자가 거의 뒤집힐 때야 그 손을 놓았다. 차희현이 구역질을 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검은 안개 같은 장벽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차희현이 쓰러진 듯 엎드린 바닥에, 또 다른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여자의 목에서 선혈이 쏟아져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장판이 깔린 바닥에는 핏물이 웅덩이처럼 고여 들고, 그 웅덩이 끝에는 전화기가 팽개쳐져 있었다. 차희현이 부들부들 떨며 피 묻은 손으로 몰래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서세영이 괴수처럼 달려들어 그 손을 밟아버렸다.


‘아, 아앗……!’


차희현이 제발, 하고 신음과 함께 남편의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제발 이러지 말고 구급차를 부르자. 내가 실수였다고 증언해줄게, 응? 세영 씨, 이러지 마······, 아무리 그래도 강간보다 살인은······!’


세영이 부인을 일으키더니 뺨을 강하게 후려졌다. 피부가 찢어지는 소리가 강하게 울렸다. 서세영은 차희현이 도망가지 못하게 그 어깨를 감아쥔 채로, 눈의 흰자위를 드러냈다.


‘닥쳐, 마누라.’


흰자위가 웃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이 여자의 흔적을 없앨 거야. 그리고 우리는······ 이 여자를 진열할 거야.’


작가의말

업데이트 기록 _ 14.11.10 수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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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36 온연두콩
    작성일
    14.09.11 23:35
    No. 1

    으어... 나쁜 사람이네요. 이렇게 되면 죽은 여동생은 배신자가 아니라 희생자가 되는 거군요. +_+
    그나저나 계영씨의 처세, 너무 매력적이예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09.12 03:16
    No. 2

    계영 씨는 좀 독특한 캐릭터인 듯합니다.. 하하...ㅠㅠ 정작 저는 안 저러는데. 어디서 저런 녀자가 튀어나왔을지 모르겠습니다.
    네, 서세영 씨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더마냐
    작성일
    14.09.12 08:35
    No. 3

    웅앙웅엉어어어어~ 서세영이 나쁜 놈인 것 같다 싶긴 했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군요.
    작가님 글은 완결이 난 다음 한번에 싹 몰아보면... 그게 정말 꿀맛인데요...

    그나저나 전작에서도, 전전작에서도 작가님이 만드신 여주 캐릭터는 참으로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남자 캐릭터도요...
    저에게 약쟁이 서상영씨를 주세.... 아.. 아닙니다...(먼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0 최승윤
    작성일
    14.09.13 00:03
    No. 4

    서상영 가지세요...^^ 서세영은 나쁜 놈이고요. (근데 둘이 이름이 비슷하네요. 하하, 저의 작명 센스가 이런 식인가 봐요..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더마냐
    작성일
    14.09.13 12:32
    No. 5

    어허허허허~~~~
    이걸로 서상영씨는 저의 것이 된 것입니다!! 도장 쾅!!!!
    무르기 없어요.
    (아이~ 행복해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4.09.16 02:34
    No. 6

    그래서 드레스가 붉게 보인 건가요. 왕...;ㅁ;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윤도경
    작성일
    14.12.07 01:45
    No. 7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12.09 17:32
    No. 8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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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透視, Second Sight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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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6) +5 14.12.18 592 13 14쪽
33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5) +10 14.12.15 729 12 23쪽
32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4) +11 14.12.09 675 11 32쪽
31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3) +7 14.12.03 638 11 13쪽
30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2) +7 14.11.30 702 9 19쪽
29 Episode 03 그때 당신이 통화했던 사람(The Phone) (1) +7 14.11.30 615 9 7쪽
28 Episode 02 웃는 인형 (완결) +10 14.11.10 904 11 27쪽
27 Episode 02 웃는 인형 (13) +6 14.10.18 557 15 19쪽
26 Episode 02 웃는 인형 (12) +15 14.09.30 786 16 26쪽
25 Episode 02 웃는 인형 (11) +9 14.09.29 765 13 26쪽
24 Episode 02 웃는 인형 (10) +7 14.09.27 804 21 10쪽
23 Episode 02 웃는 인형 (9) +6 14.09.26 624 12 9쪽
22 Episode 02 웃는 인형 (8) +9 14.09.25 754 12 26쪽
21 Episode 02 웃는 인형 (7) +4 14.09.24 616 17 25쪽
20 Episode 02 웃는 인형 (6) +4 14.09.23 690 15 18쪽
19 Episode 02 웃는 인형 (5) +4 14.09.22 683 16 10쪽
18 Episode 02 웃는 인형 (4) +4 14.09.20 817 15 21쪽
17 Episode 02 웃는 인형 (3) +6 14.09.19 649 17 18쪽
16 Episode 02 웃는 인형 (2) +4 14.09.18 667 14 19쪽
15 Episode 02 웃는 인형 (1) +7 14.09.17 1,265 23 11쪽
14 Episode 01 빨간 드레스 (완결) +6 14.09.17 591 16 3쪽
13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3) +7 14.09.16 637 17 25쪽
12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2) +8 14.09.15 575 15 20쪽
11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1) +9 14.09.13 561 17 22쪽
10 Episode 01 빨간 드레스 (10) +5 14.09.12 545 17 18쪽
» Episode 01 빨간 드레스 (9) +8 14.09.11 515 14 17쪽
8 Episode 01 빨간 드레스 (8) +9 14.09.10 718 14 10쪽
7 Episode 01 빨간 드레스 (7) +5 14.08.03 818 1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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