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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승 님의 서재입니다.

천무제일존(天武第一尊)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김한승
작품등록일 :
2022.11.19 12:46
최근연재일 :
2023.05.06 0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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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31,965

작성
23.03.2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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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23

DUMMY

“이곳에서?”

“그렇습니다, 대사. 맘에 안 드신다면 실내로 모시지요.”

구양위가 법광을 데리고 간 곳은 실내가 아니라 야외였다. 사방이 완전히 탁 트인 곳은 아니고 구양위 전용의 개인 연무장이다.

“아니오. 아주 맘에 드오. 무인이라면 가장 친숙해야할 곳이 연무장 아니오.”

“다행입니다. 그리고 일단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연배로만 따지자면 저는 간신히 손자뻘 되는 수준입니다.”

“원한다면 그리 하겠네. 그런데 ‘일단’ 이란 말이 좀 거슬리는군.”

“저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공경하는 놈은 아니라서요.”

“언제라도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푸대접을 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자신 없으십니까?”

“하하. 자네는 상대를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군.”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자, 저쪽으로 가시지요..”

연무장의 한쪽 구석에 탁자가 준비돼 있었고 그 위에는 이미 푸짐한 주안상이 차려져 있다.

그런데 ‘푸짐한’ 주안상이라니? 소림사의 승려라면 당연히 술과 육식은 금기사항이다.

역시나 탁자 앞에 선 법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설마 파계(破戒)를 하란 것인가?”

“이미 그런 것들에 대해 초월하신 분이라 여겼는데, 제가 실수 한 겁니까?”

“나를 높이 평가해 준 것은 고맙네만,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물론 전설적인 고승 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분명히 계셨네만.”

“어차피 이미 한 번 파계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것도 술과 육식을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파계를 이미 사십 년 전에 말입니다.”

법광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할 말을 잊었다.

사십 년 전이라면 정사대전 당시다.

법광 역시 무승들을 이끌고 직접 참전했다. 당시에도 이미 소림제일 고수였던 그의 손에 마도의 무사들이 안 죽었을 리가 없었다.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있다.

법광이 직접 최후의 숨통까지 끊어놓은 적은 없었다. 그의 손에 제압된 자들을 뒤따르던 무림맹 무사들이 죽였을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일 뿐이다. 그리고 무림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변명도 하기 싫었다. 세존(世尊, 부처를 뜻하는 말.)의 입장에서는 정파의 무사들이나 마도의 무사들이 다 같은 중생이 아니겠는가.

“그래. 자네 말이 옳아.”

법광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하지만 자네가 준비한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겠다는 뜻은 아니야.”

“그러면요?”

구양위도 뒤따라 자리에 앉았다.

“승려의 신분인 나에게 술과 육식을 제공한 자네의 행동에 대해 탓하지 않겠다는 뜻이네.”

“대사께서 원하신다면 다시 음식을 차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리 되면 별로 유익한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저는 소림사의 무승들이 범하는 살계에 대해 대의명분을 인정하진 않지만, 그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정사대전에 참여하는 무승들은 부처를 모시는 승려의 신분이 아닌 무림의 평화를 지키려는 무인의 신분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 봐준다면 고마울 따름이군.”

“지금 상황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어떤 신분으로 만나러 오신 겁니까? 부처를 모시는 승려입니까, 아니면 정파를 대표하는 무인입니까?”

“······.”

“무인의 신분으로 오셨다면 아주 유익한 대화가 오가겠지만, 승려의 신분으로 오셨다면 대사께서 그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저에게는 설법(說法)일 뿐입니다. 아쉽지만, 저는 설법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구양위의 말이 끝나고 나서 한 동안 대화기 이어지지 않았다. 법광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한참 후에야 법광의 입이 열렸다.

“내가 정파를 대표하는 무인인 지는 의문이네만. 한 잔 따라주게나.”


우걱우걱. 쩝쩝. 냠냠.

“설마, 며칠 굶으신 겁니까?”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음식을 집어삼키는 법광이었다.

“자네도 한 번, 한 달 정도만 나물만 먹다가 고기를 먹어보게.”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고도 법광은 한참을 더 음식을 집어삼키다시피 했다.

“끄억. 이제 좀 배가 든든하군.”

다소 방정맞아 보이는 트림을 하며 드디어 음식을 집어삼키는 행위를 멈추는 법광이다. 그러면서 왠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 얼굴에 대해 물어도 되겠나?”

“일종의 전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구양위는 주저 없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붕대를 풀어버렸다.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멀쩡하군. 그런데 전술이라니?”

“이곳에서 제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여러모로 하고자 하는 일이 도움이 됩니다.”

“그런가? 그런데 내 앞에서 이렇게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상관없겠나?”

“당연히 대사께선 비밀을 지켜주시지 않겠습니까?”

“비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한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솔직히 궁금하군.”

“곧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되실 겁니다.”

어차피 저절로 알게 된다니, 법광은 더 이상 그에 대해 물을 필요 없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감히 소림을 능멸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상당히 도발적인 언사였지만 그에 답하는 구양위의 표정은 평온했다.

“어째서 능멸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황제도 아니고 일개 무림인 주제에 소림사의 방장을 수하로 삼겠다고 하니 능멸이 아니고 무엇인가?”

“천하제일 객점의 주인이 천하제일 요리사를 초빙하려는 것이 어찌 능멸이 됩니까? 그리고 요리사와 객점 주인의 관계는 결코 상전과 수하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만.”

“이미 다른 객점에서 일하고 있는 요리사가 아니겠나?”

“그 객점은 조만간 문을 닫게 될 테니까요.”

흠칫.

처음으로 법광의 안색이 굳어졌다.

“무림맹을 피로 물들이겠다는 것인가?”

“애초에 살인귀의 심성으로 태어난 자가 아닌 바에야 피를 보는 것을 즐기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피치 못할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리 하는 수밖에요.”

“피치 못할 상황이라니?”

“감히 말하건대, 저의 최종 목표는 무림의 완전한 일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림맹이 해체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해체하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해체시켜야지요.”

“강제로?”

“소속 문파들 중 절반 정도가 사라지게 되면 해체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

“여기서 사라진다는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무림맹에서 사라지거나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소림사 방장의 천무지존 수락 여부에 따라, 무림맹 소속 문파의 절반은 그 운명이 극명하게 갈릴 것이란 의미였다.

무림맹을 탈퇴해 천무맹에 가입하거나, 천무맹과의 전면전 도중 극심한 피해를 입거나.

“엄청난 협박이로군.”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협박보다는 경고라는 표현이 맞겠지요.”

“경고라?”

“말을 안 들으면 목을 베겠다는 소리는 협박으로 봐야겠지만, 종아리를 다섯 대 때리겠다는 소리는 경고가 아닐는지요.”

“무림맹 소속 문파 절반을 괴멸시키는 것이, 자네에게는 고작 종아리 다섯 대 때리는 것만큼 쉽고 간단하단 소린가?”

“그렇습니다.”

“······.”

“하지만 가학적 성향의 변태가 아닌 바에야 사람을 때리는 것을 즐기는 자 또한 어디 있겠습니까? 종아리를 때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그렇다면, 굳이 소림사를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고작 그것이었단 말인가? 귀찮게 종아리를 때리는 것이 싫어서?”

“고작이란 표현은 인정하기 싫습니다만, 대사의 말씀대로입니다. 저에게 소림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림일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습니다. 소림사가 제 뜻에 따르든 따르지 않든 무림일통은 무조건 됩니다. 하지만 피의 양이 천지차이가 될 겁니다. 그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제 수하들의 피도 포함될 테고 말입니다.”

“무조건 된다? 너무 자만하는 것은 아닌가?”

“자만이 아니란 증거를 보여드리면 제 뜻에 따르시겠습니까?”

“어떻게 보여준다는 것인가? 설마 이 자리에서 보여준다는 뜻은 아닐 테고.”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보여드릴 것입니다.”

“······?”

“일단 천무맹의 힘에 대해 보여드리지요.”

구양위가 품속에서 웬 서류뭉치 하나를 꺼내들어 법광 앞에 갖다 놓았다.

“이게 뭔가?”

“며칠 후 공식 발표될 내용입니다. 문구 몇 개는 수정 될 지 모르겠지만 명단은 확정된 것입니다.”

“명단이라고? 새롭게 추가되는 천무회의 인물들인가?”

“아닙니다. 문파의 수장이 아니라도 영입하긴 하지만 천무지존은 일단 무인이어야 합니다. 거기 적힌 명단은 무인들이 아닙니다.”

“무인이 아니면?”

“무림을 잘 통치하려면 무림인만으로는 안 되겠지요. 무림인은 아니어도 무림 전체에 큰 영향력을 끼칠 능력을 지닌 자들 역시 천무맹의 일꾼으로 만들어야지 않겠습니까?”

‘무림 전체에 영향력을?’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며 법광이 서류를 펼쳐들었다.

흠칫.

펼쳐들자 말자 법광의 안색이 굳어졌다.

잠시 후, 서류를 내려놓는 법광의 눈은 엄청난 불신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자들이 정녕, 이들 네 명이 정녕, 천무맹의 제의를 수락했다는 것인가?”

“수락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원래부터 우리 사람들이었으니까요.”

“······.”

“그들 뿐 아니라 그들의 아비도 할아비도, 역시 우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근 사백 년 동안 말입니다.”

서류에는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법광은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하지만 이름 자체는 몰라도 전혀 상관없었다.

삼화전장, 대련전장, 금성전장, 선경전장.

이른바 사대전장(四大錢莊)!

천하에서 가장 큰 규모와 가장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네 개의 전장. 바로 그곳 장주들의 이름 네 개가 모두 적혀 있었던 것이다.

벌컥벌컥.

법광은 술잔을 연거푸 두 잔이나 비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만할 만 하단 생각이 드는군. 하하.”

법광의 허탈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구양위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번뜩였다.

“하나 더 있습니다.”

“또 뭔가?”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제 능력입니다.”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건가?”

“대사께 정식으로 비무를 청하겠습니다.”

법광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고 보니, 장소를 이곳에 잡은 것부터가 애초에 나와의 비무를 염두에 둔 것 같군.”

“맞습니다. 대사.”

“나 역시 바라던 바일세. 그나저나, 정말이지 대단한 자신감이군. 쓸데없는 모험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모험이라니요?”

“나는 지금 반 이상은 자네 말에 넘어간 상태라네. 자네 말대로, 무조건 무림일통이 될 가능성이 높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있단 말이지. 하지만 자네와의 비무를 통해 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단 생각은 안 해봤나?”

“당연히 했고, 당연히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바뀔 것입니다.”

“······?”

“무림일통이 ‘될 가능성이 높겠구나.’ 에서 무림일통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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