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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는 재능빨로 혼자 다 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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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D
작품등록일 :
2023.10.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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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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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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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35화. 필리핀에서 온 복서.

DUMMY

035화.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이 묵게된 숙소는 동호해변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동호해변은 강원도 양양에서 가장 긴 7km짜리 해변을 가진 걸로 유명했는데, 사실 그게 다 동호해변은 아니고 중광정 해수욕장과 하조대 해수욕장이 일자로 주욱 이어진 형태였다.

일행은 땡볕이 쨍쨍 내려쬐는 해변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서피비치는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그냥 관광지네요.”

마재림이 땀을 슥 닦으며 말했다.

“헥, 헥. 뭐? 아, 뒤지겠네. 잠만, 좀 쉬자.”

겨우 빨래 당첨은 면한 허현찬은 날뛰는 호흡을 다잡느라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마재림이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이 비슷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발밑이 푹푹 파이는 고운 백사장을 전력질주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같은 이유로 혼자만 여력이 남아 보이는 마재림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마재림이라고 했나?”

최현욱이 마재림에게 다가왔다. 선글라스에 포니테일이 무척 잘 어울리는 그는 마치 보디빌더처럼 멋지게 단련된 몸을 하고 있었다.

“아, 네. 감독님.”

“나 선생님께 얘기는 대충 전해들었다. 복싱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며?”

“네.”

“근데 체력도 좋고 주력도 좋고 바란스도 좋고. 흠 잡을 데 없는 수준으로 단련이 된 모양샌데? 복싱 전에 다른 뭔가를 했었나?”

“아, 어렸을 때는 중국무술 같은 것도 했구요. 고등학교 와서는 종합 격투기를 수련했습니다.”

이제는 거의 오피셜이 되어버린 마재림의 격투 인생 백그라운드. 이쯤되니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오, 그래. 어쩐지 뭔가 다르다 싶었어. 나 선생님께서 너한테 거는 기대가 아주 크시더라. 열심히 해.”

“네, 알겠습니다.”

툭툭 마재림의 어깨를 두드린 최현욱이 좌중을 훑었다.

“자, 다들 잘 쉬었습니까!”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에 일행이 고개를 들었다.

“서피비치 잘 구경들 했으니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 에? 벌써요?”

겨우 호흡을 다잡은 허현찬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최현욱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여러분은 이 합숙이 끝날 때까지 매일 이 코스를 달릴 겁니다. 왕복 9킬로미터 코스이며 쉬는 시간은 없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라 특별히 쉬어 가는 겁니다.”

“...”

“...”

일행의 입이 자동으로 닫혔다.

“첫날이니 돌아가는 길은 페이스를 낮추겠습니다. 빨래 담당도 다 뽑았으니 말이죠. 그럼, 출발!”

하하, 웃음을 남기며 최현욱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


숙소로 돌아오니 곧바로 식사시간이었다.

모래판을 줄창 달려서 그런지, 일행은 모두 식욕이 폭발했다.

다행히 식사는 푸짐했고 맛있었다. 마재림은 식판에 음식을 가득 담아 돌아왔다. 당연히 고기 위주였다.

“또 먹냐?”

“이 정도는 먹어줘야죠. 형은 더 안 드세요?”

“난 됐다. 너 많이 먹어라.”

허현찬은 마재림의 식사에 혀를 내둘렀다. 연비가 개똥망인지, 저렇게 처먹고도 저 몸을 유지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삽질하듯 연탄불고기를 푹푹 입으로 퍼넣던 마재림이 갑자기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에 멀리 식당 입구로 들어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잡혔다.

“왜, 뭐 있냐? 오, 외국인들이네?”

식당에 들어선 것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인들이었다. 역시나 복서라 그런지 모두 제대로 단련된 몸을 하고 있었다.

마재림은 그 중에서도 가장 뒤에서 일행을 따르고 있는 마른 체형의 남자를 보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초중반쯤. 키는 170정도 될까. 마르고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보아 라이트급, 아니면 페더급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저 남자. 기도가 날카롭다.’

저 남자의 주변을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베일 것 같은 느낌.

마재림은 저런 기도를 가진 자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생이 아닌 전생에서.

휙. 문득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마재림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닥쳤다.

몇 초간, 둘은 서로의 눈을 통해 서로를 살폈다.

피식. 마재림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식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재밌겠는데.’

이번 훈련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저런 자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재림은 훈련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


“훈련에 앞서, 이번 합숙에 같이 참여하게된 필리핀 세부의 사블레이얀 체육관 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프로이신 분도 있고 아마추어이신 분도 있는데, 어렵게 모신 분들이니 모두 많은 걸 얻어가시는 합숙이 되길 바랍니다. 자, 인사.”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최현욱의 안내를 따라 일행은 필리핀 선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재림도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녕, 합니까. 피노이 무릴로, 입니다.”

조금은 어눌하지만 확실한 발음의 한국어. 마재림이 고개를 들자 아까 그 날카로운 기도를 가졌던 남자가 서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마재림입니다.”

“반갑, 습니다.”

피노이는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마재림은 마주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순간 마재림의 머릿속에 수많은 투로가 그려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중 상당수의 투로가 도중에 막히거나 잘려나갔다.

‘놀라운데.’

마재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좀전에 느꼈던 날카로운 기도로 보아 피노이 무릴로의 베이스는 복싱이 아닐 거라고 짐작하긴 했다.

하지만 직접 마주쳐보니 그 깊이가 생각보다 깊었다. 이 생에 깨어나 처음 만나는 깊이였다.

비슷한 걸 느낀 걸까. 피노이 역시 깊고 우묵한 눈으로 마재림을 살피고 있었다.

“자, 자. 가볍게 몸들 푸시고 잠시 후 세시 반까지 자유 훈련 시간입니다. 부상들 조심하시면서 자유롭게 교류하세요.”

최현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마재림과 피노이는 빈 링을 보았다.

“몸 좀 푸신 다음에 첫 번째 스파링은 저랑 하시죠?”

마재림의 물음에 피노이는 밝게 웃었다.

“Oh, sounds good. 좋은 생각, 입니다.”

둘은 각자 찢어져 몸을 풀었다.

마재림은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쉐도잉을 시작했다.

툭툭 펀치를 던지며 고개를 돌려보니 피노이는 코브라백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다.

코브라백은 바닥에 고정된 긴 스프링 끝에 펀칭백이 달린 훈련 기구로, 펀칭백을 치면 휘청 뒤로 넘어졌다가 스프링에 의해 다시 날아오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펀칭백을 세게 치면 칠수록 스프링의 탄성 때문에 펀칭백은 더욱 빠르고 세게 날아온다. 그래서 연달아 치거나 세게 치기가 어렵다.

그런데 피노이 무릴로는 그런 코브라백을 상대로 화려한 콤비네이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빠박! 슥, 빠바박! 슥, 빠바바박!

스프링의 탄성과 넘어진 각도로 인해 불규칙하게 날아드는 코브라백을, 피노이는 자연스럽게 추적하며 때리고 피하고 밀어낸다.

그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핸드 스피드와 동체시력에 체육관의 모든 선수들이 피노이의 훈련을 넋 놓고 쳐다볼 정도였다.

“와... 쟤 뭐냐?”

슬금슬금 다가온 허현찬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잘하네요.”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닌데? 완전 라이언 가르시아급이잖아. 얼굴은 아니지만.”

“얼굴이 왜요? 저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 너 가르시아 얼굴 못봤지?”

“네. 누군데요?”

“있어. 존잘남.”

땡! 공이 울리자 피노이가 코브라백을 붙잡아 멈췄다.

그가 마재림을 돌아보곤 턱으로 링을 가리켰다.

마재림을 고개를 끄덕이며 글러브를 챙겼다.

“오, 스파링?”

“네.”

“스피드 장난 아니던데. 괜찮겠냐?”

“해봐야죠.”

글러브를 끼고 다가가니 먼저 링 위에 올라가있는 피노이가 보였다.

헤드기어를 안 끼고 있길래 머리를 툭툭 쳐보였더니 피노이가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끄덕인 마재림은 그대로 링에 올랐다.

땡! 공이 울리는 소리에 마재림은 링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보다 10센티는 작은 피노이를 보면서 마재림은 조금 생소한 느낌을 받았다. 링 위에서 자신보다 작은 선수를 상대하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타닷! 피노이는 가벼운 스텝을 살리면서 좌우로 돌았다. 자연스럽게 링 중앙을 먹은 마재림은 스텝보다 방향 전환으로 그를 상대하게 됐다. 평소의 구도와 완전히 반대가 된 것이었다.

파앙! 번개 같은 인스텝 잽이 마재림의 가드 위에서 터졌다. 허공에 던진 견제용 잽에 이은 레프트 더블이었는데 놀랍도록 빨랐다.

‘이 정도 스피드면 이미 동남아 레벨이 아닌데?’

일반인들보다 훨씬 높은 마재림의 기준으로 봐서도 피노이의 핸드스피드는 상당히 빨랐다.

세계 일류급 선수들과 싸워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내력을 운용하는 내가고수들이 아닌 이상 육체 능력의 한계는 분명하리라.

그렇다면 라이트급이라는 체급 내에서 피노이 무릴로는 분명 세계에 먹힐 정도의 수준이었다.

처음 만나는 세계구급 복서에 마재림은 조금 설레임을 느꼈다. 순수하게 복싱만 봤을 때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끼긱! 마재림은 각을 좁히는 날카로운 스텝으로 피노이를 압박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피노이가 공격으로 돌아섰다.

패액! 날카로운 잽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마재림은 오른손으로 툭 받아내며 카운터로 인스텝 잽을 넣었다.

후웅! 체중이 실린 묵직한 잽이었지만 피노이는 맞지 않았다. 마치 보고 피하는 듯 간발의 차로 스웨이한 피노이의 코앞을 마재림의 펀치가 스쳤다.

회수하는 마재림의 주먹을 타고 피노이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재림의 왼손 위로 덧씌우듯 크로스 카운터가 날아들었다.

빡! 사각에서 날아든 주먹이 마재림의 어깨를 때렸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당기지 않았다면 턱에 제대로 꽂혔을 만큼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한차례 고속 공방이 이루어진 뒤 둘의 거리가 벌어졌다.

‘빠르네.’

스피드만으로 보자면 지금의 마재림보다 피노이가 한 수 위였다.

복싱에 국한된 이야기이기도 하고 체급 차이도 있겠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그렇다면 나도 내 장점을 이용해야겠지.’

상대의 장점을 전장으로 삼는 건 하책 중의 하책이다. 체급으로 인해 스피드에서 열세라면, 그 체급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전략을 써야 한다.

마재림의 스탠스가 변했다. 한층 넓게 자리잡은 두 다리는 스피드를 좀 낮추는 대신 안정적인 파워로 펀치를 전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걸 본 피노이는 한층 스피드를 올렸다.

끼긱, 패액! 고속의 스텝아웃과 함께 사각에서 뒷손 스트레이트가 날아들었다.

마재림은 그걸 받아치는 대신 가드를 굳히며 탱킹하듯 몸을 들이밀었다.

빠악! 묵직한 소리가 터졌지만 물러난 것은 피노이 쪽이었다.

끼기긱! 그 백스텝이 기회라는 듯 마재림은 낮게 상체를 흔들며 빠르게 따라붙었다.

파바방! 피노이가 재빨리 펀치를 던졌지만 마재림은 가드로 씹으며 몸을 붙였다. 그리고 곧바로 회전력을 듬뿍 담은 어퍼가 피노이의 가드를 후려쳤다.

뻐억!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피노이가 뒤로 튕겨나갔다.

철썩, 소리가 나도록 링에 부딪힌 피노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Wow. You’re such a beast.”

야수 같다는 피노이의 말에 마재림은 뒤로 물러서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피노이가 파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이후로도 둘은 비슷한 모양새로 공방을 이어갔다.

피노이는 스피드를 살려 고속의 콤비네이션을 날려댔고 마재림은 체급의 우위를 내세워 파워로 압도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마재림은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피노이가 안정적으로 공세를 취할 때는 괜찮았는데, 그가 수세에 몰릴 때 가끔씩 날카롭고도 변칙적인 공격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공격들은 거의 대부분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본능 수준에서 몸이 움직였지만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땡!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둘은 글러브를 터치하며 인사를 나눴다.

링을 내려오며 마재림은 문득 피노이가 감추고 있는 기술들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볼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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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036화. 복싱이 아닌 스파링. +4 23.11.12 1,147 54 12쪽
» 035화. 필리핀에서 온 복서. +1 23.11.11 1,216 50 13쪽
34 034화. 해변을 달렸다. +3 23.11.10 1,302 54 12쪽
33 033화. 말년에 로또가 터졌다. +12 23.11.09 1,405 5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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