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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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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0.1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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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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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9쪽

12화. 먹어 줘!

DUMMY

“야자 끝나고, 기숙사로 와.”

“네??”

“…….”

“???”

야자가 시작하기 전, 한적한 교실. 저녁시간이지만 저녁을 먹고 나선 자유시간이기에, 여유롭게 민서와 미래와 얘기하며 놀고 있는 나. 문득 누군가 벌컥 다가온다. 선생님. 다가오셔서 무슨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하는 것처럼 불쑥 말하곤 떠나신다. ‘네?’ 하고 되물어도 선생님은 가차없이 이미 교실 바깥으로 나가셨다. 영문을 알 수가 없구먼.


“사감 선생님이?”

“그렇다니까. 나 참, 무슨 일인지.”

야자가 끝나고 터벅터벅, 기숙사로 향한다. 우리 밥 패밀리 중 유일하게 기숙사에 사는 성빈이와 함께 기숙사까지 같이 걸어간다. 선생님은 사감이라 그런지 야자 감독 같은 것은 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내내 기숙사에서 계셨겠지. 밀린 업무를 하고 계셨으려나. 지금쯤 기숙사 앞 계단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돌아오는 애들을 지켜보고 계시겠지.

“이렇게 같이 걸어가는거, 되게 오래간만이네?”

“그렇네. 헤헷. 작년에는 이렇게 같이 갔었는데.”

“응, 그렇지. 이제는 완연히 자취 라이프에 빠져서.”

“부럽긴 하지만. 가끔은 웅도가 기숙사 있던 때가 그립기도 해. 재미있었는데.”

“재미있긴 했지~ 위에 열람실에서 같이 떠들기도 하고~

“응응!”

내 말에 성빈이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작년 이맘 때에는 막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을 때지. 리유랑, 선생님이랑, 성빈이랑 같이 창고 같은 방 치우고, 오해 받고. 이럭저럭 잘 살면서 성빈이랑 얘기도 하고. 하하, 참 좋던 시절이었는데. 물론 자취가 훨씬 편하고 좋습니다. 무엇보다 컴퓨터를 할 수 있잖아요.

“여어. 꼬꼬마.”

“이런데서 이런 자세로 만나는 거, 꽤 오래간만이네요.”

“저번에 보지 않았었나? 지지배 문제로 꼬여서.”

“?”

“크헛, 크흠. 무슨 일 때문에 저를 찾으셨나요.”

여전한 편한 차림과 똥머리로 묶은, 자유분방한 모습의 선생님. 대나무로 만든 몽둥이를 휘두르며 인사한다. 심드렁하게 선생님께 말하니 선생님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한다. 성빈이의 시선에 괜히 떨떠름해 헛기침을 하며 얼버무렸다.

“음. 우선은, 이쪽으로.”

“에? 여기선 말할 수 없는 거? 비밀?”

“얼른.”

“넵.”

선생님은 걸터앉은 난간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며 말씀하신다. 은근슬쩍 드립을 시도해보지만 이내 선생님의 강압적인 말에 얼른 고개를 숙인다. 희세 이상으로 그 말에 절대복종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선생님의 말씀이니까. 안 그랬다간 강한 응징이…… 뭐, 응징이라 해봐야 장난이겠지만.

“대체 어떤 할말이길래 이런 데까지.”

“……그게.”

기숙사 뒤 으슥한 곳.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곳이다. 낮에도 을씨년스러운데 더해서 밤이니 오죽하겠어.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런 데에 데리고 오신 걸까. 약간 재촉하는 투로 선생님을 보며 물으니 선생님은 무언가, 말하기 겸연쩍은 듯 조금 망설이며 말씀을 아끼신다.

어둡지만 명확하게 보인다. 망설이는 선생님의 모습이. 나랑 키도 비슷해서 얼추 눈높이도 같은 선생님. 살짝 입술을 깨물다가, 마음을 굳히셨는지 입을 열려고 하신다.

“헉, 설마 지금 여기서 저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한다거나?!”

“……미쳤어? 기숙사 나갔다고 아주 막 나가지? 장난을 쳐도 정도껏 쳐야지?!”

“아하하, 농담이죠 농담. 선생님 잘 사귀고 계신 거 뻔히 아는데.”

“…….”

물론 100% 장난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선생님은 나, 완전히 애기로 보는데. 그런 건 둘째치고, 저번에 직접 봤잖아? 선생님 남자친구 생기는 과정을. 말도 안 되게 리유의 성화로 미행 비슷하게 해서 생라이브(?)로 지켜봤었지. 의외로 부끄러워하는 선생님의 모습도. 내 말에 선생님은 입을 다물고 뭔가 언짢은 표정을 지으신다. 분위기가 조금 심각해지는 것 같은 느낌.

“에…… 헤어졌어요?”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근데 왜 그런 표정 지어요. 꼭 헤어진 것처럼.”

“……그.”

눈치도 없이 바로 물어보는 건 내 특기. 아니, 다른 애들 앞이라면 조금 눈치를 살피겠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천방지축 철없는 사촌동생 같은 느낌으로 드립과 재롱을 마음껏 떨어도 되니까. 또, 이렇게 눈치 없이 툭툭 뱉었을 때의 선생님 반응이 재미있으니까. 괴롭힘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나, M?

선생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벌컥 화를 낸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는 대답을 잘 못 하신다. 몸을 베베 꼬며,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 봐, 아무리 봐도 이건 고백하고 싶은데 자존심이나 기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여고생 같은 느낌이잖아. ‘자존심이나 기타 이런저런 사정’은 역시, 나이차이겠지. 선생님하고 나하고, 띠동갑이니까. 흐핳, 망상을 해도 참.

“이번 주 토요일에, 학교로 와.”

“네?! 왜요! 쉬는 날까지 그렇게 부르면 안 되죠! 저 바쁜 몸입니다?”

“예전에. 부탁 하나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었나. 분명히, 그런 약속 했었던 것 같은데.”

“그, 그건…….”

선생님은 다시금 원래의 선생님 같은 태도를 회복하셨다.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내려지는 단호한 명령. 벌컥 짜증스럽게 답변하지만,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분명히, 약속 했었지. 유진이의 계략에 휘말려 우리 밥 패밀리가 초토화 되었을 적에. 계략주머니인 미래의 계략, 유진이의 말 녹음하기. 하지만 그 녹음본을 애들에게 들려줄 마땅한 자리가 없어, 선생님에게 부탁했었지. 덕분에 선생님 수업 중에 녹음본 틀었고, 유진이의 몰락을 이끌어냈지. 선생님 수업을 한 번 망치는 대신, 선생님 부탁을 한 번 들어주기로 했었지. 헌데 그 부탁이, 소중한 주말 중 하루를 반납하는 거라니!

“크흠, 무슨 일인데요?”

“그런 것까지 일일이 보고해야 들어주는 거였나? 나는, 너네가 무슨 일 하는지 별로 관심도 없었지만 들어줬는데? 역시, 꼬꼬마라 거래의 기본을 모르나.”

“아뇨아뇨! 안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하아.”

무슨 큰 유세를 떠는 정치인처럼 한 마디 꺼내봤다 본전도 못 찾고 선생님의 입담에 잔뜩 탈탈 털린다. 암만, 나 같은 젊은이는 어른이 시키면 그저 말없이 묵묵히 일을 해내야지. 그래야 나라가 돌아가고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거 아니겠어! 요즘 젊은 애들은 그래, 노력이 모자라서, 노력이! 에효. 어쨌든, 약속한 건 약속한 것이니까. 그렇게 우물쭈물 넘어갈 생각은 아니다.

“별로 힘들만한 건 아니야. 무거운 거 나른다던가, 어쨌든 힘든 거 없으니까.”

“아 그래요. 그럼 뭐, 놀러오는 느낌으로 와도 되는 거죠?”

“……뭐. 아, 그리고.”

“네?”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무거운 거 나르는 일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좋지. 힘든 일 아니라면야 뭐. 육체를 쓰는 쪽보다는 예능 쪽(?)이 더 나으니까. 선생님은 무엇인가 덧붙일 말이 있는지 ‘그리고’ 하고 말씀을 멎는다. 잠시 말이 없으신 선생님.

“뭐요?!”

“그…… 아. 내일, 점심 사줄게.”

“야, 신난다! 왜요, 갑자기?!”

“네 친구 중에. 그. 맨날 같이 다니는 가슴 큰 여자애랑, 기숙사에서 같이 붙어 다니던 여자애, 두 명도 같이 데리고 와.”

“……희세랑 성빈이요? 칭호가 상당히 거슬리는데. 왜요?”

계속 답답하게 무엇인가 숨기는 것처럼 말씀하시지 않는 선생님. 선생님 앞이지만 답답한 마음에 벌컥 화내듯이 ‘뭐요?!’ 하고 소리친다. 그만큼 친해졌으니까. 내 쪽에서 이렇게 강하게 나오면 응당 선생님의 괴롭힘이나 비꼼이 오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선생님의 대답은 엄청난 사례.

밥 사주신다고?! 그런 건 빠질 수 없지! 공짜 좋아하다 나중에 대머리 된다는데, 그런 건 상관없다! 공짜 밥이라면 난 어디든 가겠다! 하지만 뒤이어 사족을 덧붙이시는 선생님. 굉장히 거슬리는 지칭으로 희세와 성빈이를 가리키며. ‘가슴 큰 여자’와 ‘기숙사에서 같이 붙어 다니는 여자애’라니. 이름 좀 외우시지. 하긴, 나조차도 ‘꼬꼬마’라고 퉁 치시는 분인데.

“……그냥 데리고 오라면 데리고 와. 밥 먹기 싫어?”

“넵. 알아모십죠. 언제 어디로 데리고 오면 될까요!”

선생님의 단호한 자기위주의 대답에 나는 퍼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어쨌든 뭐, 밥 사주신다는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희세나 성빈이까지 사주신다면 더 엄청난 거고. 뭐, 미래나 유진이나 민서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걔네까지 다 데리고 갔다간 엄청 눈치 보일 테고. 뭣보다 선생님이 직접 희세와 성빈이를 호명하신 거니까. 말 해야지, 잘.


“점심?”

“응,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나 그 선생님하고 안 친한데.”

“무슨 일이시래? 나하고 희세하고 직접 부르셨다고?”

“응.”

다음날, 학교. 희세와 성빈이네 반으로 넘어가 미리 말을 꺼내놓는다. 의아한 표정의 성빈이. 희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성빈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직접 부르신 게 맞지. 딱히 ‘네 친구 두 명만 데리고 와’ 하는 게 아니라.

“그 선생님이 뭣 때문에 나랑 성빈이를 불러? 너하고나 친할까, 나는 딱히 친하지도 않은데. 성빈이야 기숙사생이니까 예외로 쳐도.”

“나도 딱히 친하진 않은데…… 사감 선생님, 여자애들은 싫어하니까.”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우선은, 내가 선생님한테 빚진 게 있어. 부탁 들어드려야 해서. 저번에 그, 수업시간에 그거. 선생님한테 부탁드려서 한 거거든.”

“아…….”

“그때 그, 녹음본 틀은 거?”

“응.”

희세는 여전히 별로 탐탁지 않은 투로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성빈이까지 가세. 하긴, 선생님이 좀 여자애들한테 까칠하긴 하지. 가차없으시기도 하고. 2학년 되니까 확실히 알겠더라고. 여자애들 엉덩이를 가차없이 때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러게 평소에 인덕 좀 쌓으시지. 나라고 딱히 선생님이 왜 희세와 성빈이를 부르는 지, 알 길이 없어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녹음본 때문이라는 말에 희세는 ‘그게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다. 성빈이는 다시금 물어 확인사살.

“그럼 어쩔 수 없네. 무슨 부탁 하시면, 우리도 들어드려야겠어. 선생님 협조 없었으면 힘들었을 테니까.”

“……뭐, 어쩔 수 없네.”

“하핳. 큰 건 아니고, 어차피 점심 사주신다는 건데 뭐. 맛있게 얻어먹으면 되는 거겠지? 부탁하시는 거 있으면 들어드리고. 세 명이니까.”

“그래, 뭐.”

성빈이의 공손한 대답에 희세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한다. 내 말마따나 지금은 점심 얻어먹는 건데 뭐. 계속 말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잖아?


“너무해요, 우리는 쏙 빼놓고!”

“어쩔 수가 없잖아, 선생님이 딱 그렇게만 지정하셔서.”

점심시간, 예상한대로 미래는 잔뜩 생떼를 부린다. 유진이나 민서는 얌전히 갔다오라고 하는데. 뭐, 미래도 실은 장난으로 그러는 거겠지만.

“네, 가서 맛난 거 드시고 오세요. 저랑 민서랑 유진이는 맛없는 매일 먹는 지겨운 값싼 요즘 양도 적어진 치킨마요 먹을테니까.”

“수식어가 상당히 많다?! 아으, 그러면 가기 좀 그렇잖아!”

“넝~담~ 데헷☆ 우리도 우리대로 외식 할 거에요! 분식집 가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잔뜩 말하는 미래. 뭔가 되게 미안해진다. 우리만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것 같잖아. 미래에게 시달리는 나를 보고 성빈이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미안한 미소를 짓는다. 희세는 꼴 좋다는 듯 웃고 있고. 미래는 피식 웃으며 활발한 목소리로 말한다.

“좋아. 오랜만에 떡볶이 튀김 순대로.”

“나, 나는 그런 거 먹으면 안 되는데…….”

“아 맞다 민서 있었지. 그러면…… 민서는 물에 행군 떡볶이랑 소금 안 찍은 순대 몇 조각만 먹으면 되겠네! 튀김은 안 먹고!”

“히이이이익…….”

상반된 유진이와 민서의 대답. 민서, 아직도 살 빼기 계속하고 있으니까. 미래의 명쾌한 해답에 민서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먹느니 차라리 안 먹고 말겠다. 극혐이다, 극혐. 미래와 유진이, 민서는 셋이 분식집으로 향하고, 나와 성빈이, 희세는 교무실로 향한다.

“왔어. 가자.”

“넵.”

교무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선생님. 힐끔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짤막하게 대답하고 선생님을 따르는 나. 성빈이는 괜히 긴장한 표정이다. 그 희세마저도 묵묵히 나와 선생님 눈치를 본다.


“자, 많이들 먹어.”

“네, 잘 먹겠습니다!”

“…….”

도착한 음식에,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지고 나의 밝은 인사가 가게를 채운다. 성빈이와 희세도 각각 ‘잘 먹겠습니다’ 하고 얌전하게 말한다. 예전에 왔었던 중국집. 중앙에 탕수육 대 짜리가 떡하니 있고, 각각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 같은 것들. 선생님, 중화요리 좋아하시는구나.


무릇 밥을 먹는 데에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서로 얘기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으면 비록 반찬이 부실할지언정 그 식사는 즐겁고 맛난다. 비록 엄청난 진수성찬에 비싸고 화려한 음식일지라도 분위기가 몹시 좋지 않다면, 그 음식은 맛도 없고 도리어 후에 체만 할 뿐이다.

지금이 딱 그런 분위기. 음식을 주문하고부터 지금까지 쭉. 딱히 아무 말도 오가지 않고, 다만 방정맞은 나의 드립고 선생님의 태클만이 조금 있었을 뿐. 성빈이와 희세는 먼저 말을 꺼내거나 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게, 선생님하고 별로 안 친하니까. 나 정도나 간신히 친하지. 선생님도 성격 상 먼저 말을 걸거나 하진 않아서, 계속 얼음장 같은 분위기가 유지된다.

그래서 밥을 먹는 분위기가 아주 좋다. 하하, 이렇게 먹으면 잔뜩 체하겠는데. 그래도 탕수육은 맛있다. 그래도 짜장면은 맛있다. 특히 이 간짜장의 볶은 맛이. 약간 담뱃재 맛도 나는 것 같고. 좀 태웠구먼, 주방장 아저씨.

“……흠. 그, 오늘 부른 건.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는데.”

“넵. 뭔데요?”

“……우선, 약속할 게 있는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 것.”

“네, 당연하죠. 그지?”

“응.”

“네.”

점차 분위기가 무르익어감을(?) 살피는 선생님.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잠자코 말을 꺼내신다. 다들 조용한 상태에서 선생님 눈치만 살피는 상태. 얼른 대답하는 나. 애들을 대표해서 내가 대답한다. 둘 다 선생님 어색해 하니까. 선생님은 보안을 당부하신다. 대체 무슨 할말이시길래, 우리 같은 학생들한테 신신당부하시는 건지. 그보다, 선생님 같은 어른이 우리 같은 애들한테 대체 무슨 부탁이 있으시다고.

“토요일에, 학교 나와서, 그…….”

“네, 학교 나와서 뭐요?”

“……요리, 가르쳐 줘.”

“네?!”

토요일에 학교 나오라는 건 어젯밤에 기숙사 앞에서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뭐, 희세나 성빈이는 처음 듣는 얘기겠지만. 물 흐르듯 진행하며 선생님에게 질문한다. 선생님은 굉장히 창피해하며, 머뭇거리다 겨우 말을 꺼낸다. 너무 의외라 나도 모르게 ‘네?!’ 하고 반문하게 된다.

“무슨…… 요리요?”

“……그! 도시락 싸야 하는데 전혀 모르겠단 말야!”

“에에…… 에?”

“??”

영문을 몰라 선생님에게 되물으니 선생님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셔선 쥐어짜내듯 말한다. 전혀 의외의 모습에 나도 성빈이도 희세도 어이가 없어 서로를 쳐다보다 다시금 선생님을 바라본다.

“이번에 놀러갈 때 정민씨 도시락 싸주기로 했는데! 전혀 못 한다구! 어떡해야 해, 그런 건!”

“아아…… 그런 거군요.”

“으으으!”

잔뜩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을 다 하시는 선생님. 그제야 이해가 간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을 못 하셨구나. 창피해서. 희세와 성빈이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본다.

“선생님, 자취 하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잖아! 학교 다니면서 늘 사먹기만 하고, 기껏해야 시켜먹고 그랬는데! ……요리 실력이 없는 걸 어떡해!”

“아하.”

“뭐!”

“아니에요, 그냥. 하하, 신기해서요.”

선생님은 이미 밑천이 다 털려서 잔뜩 짜증스럽게 말한다. 어째 짜증 부리는 게 꼭 츤츤대는(?) 희세와 비슷하다. 다만 선생님은 희세보다 훨씬 어른이고 훨씬 만능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면을 보이시니까 신기하기도 귀엽기도 하다. 나이는 우리보다 12살이 많은데, 이렇게 앙탈 부리시는 거 보니까.

“그래서! 그…… 희세인가, 너 요리 잘한다며. 꼬꼬마 아침도 차려주고 그런다며.”

“……그런 걸 말하고 다녀?!”

“아니, 아니, 그 선생님은, 그러니까 그.”

“……씨.”

아아, 요리하면 희세지. 근데 그걸 왜 희세 본인한테, 그것도 아침 차려주는 민감한 얘기로 꺼내는데요 선생님! 아니,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 그걸 말하고 다닌 내 잘못이구나. 희세는 대번에 도끼눈이 돼 나를 노려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의 희세.

“그리고, 성빈인가 하는 애도 요리 잘 하게 생겼으니까. 너도, 자취하니까 요리 정도는 할 거 아니야.”

“그럼 앞에서 말했던, 대학시절의 선생님 자취 경력은…….”

“……자취랑은 무관하다니까. 요리실력이 절망인 건.”

“하하하.”

“웃어?”

“스흡. 죄송합니다.”

확실히, 요리를 위해서 두 사람을 부른 것은 선생님의 판단이 탁월하다. 희세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성빈이는, 성빈이 요리를 먹어보거나 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얘기하는 것 들어보면 성빈이도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셋 중에 내가 제일 떨어지지만, 뭐, 나도 가끔은 희세 따라서 무얼 만든다거나 한 적도 있으니까.

처음 보는 선생님의 약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와 깔깔 웃어다가 선생님의 눈총을 받고 얼른 고개를 숙이고 복종한다. 어쨌든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그러니까, 토요일에 와서 도와줘. 요리특훈.”

“요리특훈……이요?”

“너희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 요리 실력을 올려달라고! 됐어, 올 거야 말 거야?!”

“네, 당연히 가야죠. 쇤내들은 응당 그래야만합죠. 안 그류들?”

“어, 응.”

“……뭐.”

선생님은 이제 자존심이고 뭐고, 우리랑 동 레벨이 된 친구처럼 털털하게 말씀하신다. 평소의 근엄한 태도는 온데간데없다. 그런 선생님이 얼떨떨해서 물으니 선생님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재촉하는 표정으로 성빈이와 희세를 바라보니 성빈이는 조금 눈치보는 표정으로, 희세는 떨떠름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수락의 의사를 표한다.


요리특훈이라, 하. 선생님 남자친구는 좋겠네, 여자친구가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자기가 직접 만든 도시락 먹여준다고 하고.


작가의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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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05화. 너를 내 것으로 하겠어 +12 15.08.18 1,174 16 19쪽
161 04화 - 2 +10 15.08.15 918 27 17쪽
160 04화. 마음만큼은 나도. +10 15.08.11 1,120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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