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비밀(3)
안녕하세요. 테트라찌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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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발표 하루 전.
“시간여행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마우수는 친구의 만행을 말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함과 동시에 또 쓴소리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눈앞의 친구는 전혀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이미 주사위는 땅에 떨어졌어. 취소할 수도 없고. 난 이걸 꼭 발표할 거야.”
거북이는 자신이 만든 이론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빠져있었다. 확신에 찬 친구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우수는 평소 습관대로 혀를 차며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무지가 신념을 만났을 때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는 눈에 뻔히 보였기에 그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네가 아인슈타인이라도 되는 줄 알아?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도 있잖아. 발표 취소해라. 내가 어떻게든 힘 써줄 테니까. 응?”
“말은 고맙지만…….”
거북이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 날 원망하지도 말고. 알았어?”
실처럼 가늘어진 눈으로 마우수가 말했다. 거북이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것보다 듣지 않을래? 내 이론이 옳다면 시간여행은 물론 시간의 패러독스도 해결할 수 있어.”
“또 그 소리야?”
마우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성질을 부렸다.
“그래, 들어줄게. 내가 아니면 누가 들어주겠냐?”
“후회하지 않을 거야.”
거북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우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지켜보았다. 가로가 x축 시간, 세로가 y축 시간인 그래프였다. y축에서 출발해 x축으로 나란히 뻗어 가는 세 개의 화살표에는 1, 2, 3번 우주가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마우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시간에도 y축이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친구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끝까지 들어주기는 하겠지만,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거북이는 칠판에 그린 그래프를 손으로 가리켰다. 주목하라는 뜻이었다. 그는 시간여행의 비밀을 이 자리에서 다 밝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y축 시간은 풀리지 않았던 시간여행의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해 주었으니까.
“블랙홀, 웜홀, 우주끈 등등 많은 가설이 있어. 그런데 만약에 시간에 y축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시간여행에 관한 생각 자체를 바꿔야만 해.”
“시간여행을 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얘기야?”
“방법은 아니야.”
거북이는 고개를 저었다.
“다만, 시간여행을 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y축이 해결할 수 있어. 어때, 신기하지 않아?”
“뜬구름 잡는 소리는 그만 하고 본론이나 말해.”
팔짱을 낀 마우수의 태도에도 거북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먼저 불문율부터 알려줄게.”
거북이는 시간에 y축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모든 상황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어떤 하나의 우주가 0에서 10까지 이동했다면, 다른 우주도 0에서 10까지 이동한다고. y축은 x축의 상위 개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마우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축을 세 개로 나눈 그의 상상력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으나, 증거 하나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잠시 후, 거북이의 말이 이어졌다.
“혹시 체크섬이라는 말 들어봤어?”
“데이터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 아냐?”
“맞아, 바로 그거야.” 거북이가 말했다. “시간의 y축, 그러니까 2차원의 시간도 이런 방식을 써.”
‘시간이 컴퓨터냐? 그런 걸 다 쓰게?’
마우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침을 삼켰다.
“아, 참고로 내 설명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생기는 현상을 말하는 거야. 알았지? 그럼 타임머신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볼게. 어디 보자, 과거부터 가볼까? 3번 우주가 좋겠다. 현재 시각을 11로 정하면 시간은 12로 갈 차례지. 이때 타임머신을 타고 10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거북이는 이렇게 말했다.
1번 우주 10, 11, 12 …… OK
2번 우주 10, 11, 12 …… OK
3번 우주 10, 11, 10 …… ERROR!
“그게 무슨 소리야?”
마우수가 신경질 내며 되물었다.
“3번 우주에서 에러 표시가 뜬 거야.”
“에러? 야, 시간이 무슨 컴퓨터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 해라.”
결국 마우수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차 싶었으나 거북이는 친구를 미워하는 기색은커녕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주었다.
“괜찮아. 솔직히 나도 불안하긴 하거든. 하지만 시간에 y축도 있다면 이렇게 돼야만 해. 넌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갔다고. 그렇지?”
“그래, 과거로 가야 정상이지.”
“하지만 y축이 있다면 넌 과거로 갈 수 없어. 절대로.”
거북이는 단호하게 말을 끝맺었다.
“왜지?”
마우수가 물었다.
“불문율을 생각해봐. 만약에 1번과 2번 우주가 10까지 갔다면 3번 우주도 10까지 가야만 해. 그런데 3번 우주가 9에서 10으로 가지 않고 8로 간 거지. 이러면 곤란해.”
“뭐가 곤란한데?”
“시간의 y축이 보기에는 곤란하지. y축 눈에는 x축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일 거야.”
“그래서?”
“그래서라니, 당연히 고쳐야지.”
“어떻게?”
“꾀를 부렸지.” 거북이가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y축은 꾀를 냈지. 간단해. 3번 우주를 과거와 똑같이 생긴 미래로 보내버리면 되거든. 3번 우주는 아마 이렇게 말할 거야.”
거북이는 이렇게 외쳤다.
‘과거와 똑같이 생겼으니까 여기는 틀림없이 과거야!’
“근사하지? 하지만 속사정은 달라. 3번 우주는 과거로 간 것이 아니라, 과거와 똑같이 생긴 미래로 갔으니까.”
“그러니까 네 말은, 진짜 과거가 아니라, 과거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미래로 갔다는 얘기야?”
“바로 그거야!”
거북이가 손뼉 치며 축하해주었으나 마우수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입맛을 다셨다.
“그럼 미래는 어떤데?”
“미래? 미래도 똑같아. 우리는 미래로도 갈 수 없어.”
거북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1번 우주 9, 10, 11 …… OK
2번 우주 9, 10, 11 …… OK
3번 우주 9, 10, 13 …… ERROR!
“왜 또 에러가 난 거지?”
마우수가 물었다.
“미래로도 갈 수 없으니까 에러가 났지. 불문율을 잘 생각해봐. 다른 우주는 전부 다 11로 가는데 3번 우주만 따로 놀 수는 없어. 그래서 y축은 이번에도 꾀를 부려. 역시 마찬가지야. 3번 우주를 미래와 똑같이 생긴 현재로 보내버리지. 그래서 시간을 똑같이 11로 맞춰.”
거북이는 이렇게 외쳤다.
‘미래와 똑같이 생겼으니까 여기는 틀림없이 미래야!’
“근사하지? 하지만 속사정은 달라. 3번 우주는 미래로 간 것이 아니라, 미래와 똑같이 생긴 현재로 갔으니까.”
“타임머신이 뭐 그러냐?”
마우수가 피식 웃자 거북이도 덩달아 따라했다.
“우리는 과거로도, 미래로도 갈 수 없어.”
거북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한 곳은 미래야.
우리가 미래라고 생각한 곳은 현재야.
우리가 현재라고 생각한 곳은 과거야.
“우린 어디로도 가지 않았어. 단지 다음 순간에 체험할 사건을 선택했을 뿐이지. 평범하게 사는 것이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는 얘기야. 타임머신을 타고 1500년대의 과거로 가거나 3100년대의 미래로 간다고 하더라도 y축 시간은 타임머신을 탄 사람과 타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
“흥미가 있긴 한데, 이해가 잘 안 돼.”
어느새 마우수는 거북이의 이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어디 예를 들어볼까? A와 B가 체스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봐.”
“체스?”
“그래, 체스. A는 초보고 B는 고수야. A가 한 수만 물러달라고 B에게 부탁한다고 해보자. 그럼 B는 마지못해 허락해주겠지. 이 상황을 잘 봐. 체스 게임 안에서는 과거로 간 게 맞아. 왜냐하면 과거와 똑같은 상황이니까. 그런데 체스 밖에서는 어떨까? 밖에선 과거로 가지 않았어.”
“밖에서 볼 때는 과거와 똑같이 생긴 미래로 간 것이 되니까. 맞아? 이게 진실이야?”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거북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또 다른 예를 들었다.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봐. A와 B가 방 안에 있어. 이때 B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먹을 걸 사러 잠시 밖으로 나갔지. 이때 A는 B가 보이진 않지만, B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 타임머신도 똑같아. B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간다고 하더라도 A의 입장은 변함이 없어. 그저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겠지.”
여기서 잠깐 숨을 돌린 거북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시간의 패러독스를 해결해 볼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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