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파이퍼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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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와 요하네스는 도망가는 소련군을 쫓아갔다. 나무가 빼곡한 숲으로 질주하는 그 녀석은 워낙 잽쌌기 때문에 도저히 조준사격을 할 틈도 없었다.
'제기랄!!!'
그 때, 한 영감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오토가 물었다.
"영감! 아까 전에 달아난 소련군 못 보았습니까?"
그 수염이 길고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팬 영감은 말 없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오토는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자를 믿어도 될 것 인가?'
오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영감이 가리킨 곳으로 냅다 뛰어갔다. 그 곳에는 동유럽식으로 건축된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오토는 요하네스와 함께 MP40을 들고는 어느 정도 떨어져서 집의 창문과 문을 조준했다.
'미..민간인이 있을 수도..놈은 지나쳤으려냐?'
문도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 언제 문 안에서 총알 날라올지 모르는 법 이었다. 오토와 요하네스 둘 다 제각기 다른 나무 뒤에 엄폐한 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오토가 러시아어로 외쳤다.
"안에 계십니까? 잠시 실례 하겠습니다!!"
그 때, 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오토는 본능적으로 지붕을 향해 MP40을 들고 지붕을 향해 긁었다.
트드드등
지붕 위에 숨어 있던 소련군이 굴러서 바닥에 떨어졌다.
퍽!!
"허억!!"
그 소련군은 허벅지에 총알을 맞고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흐..흐아아...흐으..."
오토와 요하네스는 둘 다 이 소련군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오토가 말했다.
"조..조심해!! 수류탄 있을 수 있다!!"
요하네스는 벌벌 떨면서 그냥 냅다 그 소련군한테 MP40을 더 갈기려 하고 있었다.
"흐..흐아악!!"
그 때, 아까 전에 길을 알려주었던 노인이 천천히 걸어와서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이 집은 그 노인의 집이었던 것 이다. 요하네스는 여전히 벌벌 떨면서 MP40을 겨누고 있었다. 오토가 말했다.
"요하네스!! 진정해!!"
그 노인이 낫을 들고 집 밖으로 나온 다음에 부상당한 소련군을 보며 말했다.
"이 녀석들이 내가 평생 일군 땅을 다 빼앗아갔지..."
그 노인은 부상당한 소련군의 배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요하네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아악!! 으헉!!"
"허억..."
마을 장터에 쇠꼬챙이에 걸려있는 고깃덩이에 살을 발라내듯이 노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나이 어린 소련군 또한 도축했다. 노인의 소매와 낫은 피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 노인은 포대를 가지고 나와서는 그 소련군의 시체를 넣었다. 그리고 수레에 넣어서 시체를 어딘가로 운반했다. 아마 묻으려는 것 같았다. 오토는 완전히 겁에 지린 요하네스에게 말했다.
"노..놈들 진지로 간다. 얻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토는 요하네스와 함께 아까 전에 소련군의 통신분대가 있던 곳으로 갔다.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끄르륵..끄륵...살려주.."
한 소련군은 목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고 피칠갑을 한 손으로 그 상처를 애써 지혈하고 있었다. 요하네스는 이 광경을 보고 공포에 눈이 뒤집혔다.
"아아악!!"
트드등!!
요하네스는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다른 소련군들을 향해서도 MP40을 긁었다.
트틍 트틍 트틍
요하네스는 MP40의 탄이 떨어지자 새 탄창으로 재장전 한 다음에, 움직이지 않는 소련군의 시체를 향해서도 확인 사살을 했다. MP40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트틍 트틍
요하네스에게 확인사살을 당한 소련군의 시체에서 또한 총알이 박힌 부분에서 김이 나왔다.
그 때, 오토는 아직 살아있는 한 통신분대 장교를 보았다. 훈장을 보아하니 직급이 꽤 높은 것 같았다. 그 장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오토를 바라보았다. 요하네스가 MP40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만둬!! 요하네스!"
오토는 그 통신분대 장교의 옷을 뒤져보았다. 중요한 작전 지도와 수첩이 안에 들어 있었다.
'이..이건...'
그 작전 지도에는 다른 소련군 진지의 위치와 앞으로의 작전이 쓰여져 있었다. 탈영을 한다면 이 녀석들 진지의 위치를 피해서 슈빔바겐을 타고 튀면 될 것 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 지도는 아군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오토는 머리 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까 전에 거침없이 소련군의 배에 낫을 휘두르던 노인이 떠올랐다. 소련군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공포가 척추에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고?'
여태까지 오토는 많은 동료들과 소련군을 보았지만 그 노인만큼 아무 두려움이 없는 자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땅을 잃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전쟁이 계속되고, 민심 관리에 실패하면 아마 그들의 증오는 독일군을 향할터였다.
'튀자..튀어야 해!! 탈영해야 한다고!! 이 시발 좆같은 전쟁!! 이딴 전쟁은 왜 벌인 거야 시발!!! 망할 놈의 카이저!! 망할 놈의 히틀러!! 좆같은 한스 파이퍼!!! 그냥 이 새끼 죽이고 튀자!!! 죽이고 튀는 거야!!'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 요하네스가 오토에게 물었다.
"어..어떻게 할까요?"
잠시 뒤, 오토는 요하네스와 함께 그 소련군 장교에게 대강의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복부에 총상을 입으면 차를 타고 가다보면 상처가 흔들리면서 장기가 엉망진창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버틸 수가 없을 것 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복부에 총을 맞은 것이 아니었기에 슈빔바겐을 타고 복귀하면 위생병의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을 것 이었다.
오토는 슈빔바겐 뒷좌석에 놔둔 음식을 앞좌석 아랫쪽으로 옮기고는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이번엔 내가 운전하겠네."
슈빔바겐의 시동이 걸렸다.
트으응 트으으으응
요하네스는 이제야 좀 진정이 되었는지 입을 열었다.
"군인은 참 힘든 직업 같습니다."
"좆같지..."
뒤에 있는 소련군은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부상 부위가 쑤시는 건지 신음 소리를 냈다.
"으흐흐..으흐.."
'저 새끼나 우리나...'
그렇게 슈빔바겐의 엔진과 바퀴 소리만 들렸다.
트으응 트으으으응
요하네스가 말했다.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전우들과 같이 싸운다는게 큰 안심이 됩니다. 놈들도 힘들테니 말입니다."
트드등 트으으응
"저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독일군으로 계속 싸우고 싶습니다."
요하네스의 말에 오토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저는 20살도 되지 못하고 결국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겠지요."
오토가 말했다.
"전쟁은 오래가지 않을 걸세."
트등 트드등
"금방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걸세. 그럼 자네도 학업을 계속하고. 대학은 진학할건가?"
"저희 아버지는 농부이십니다. 전쟁이 끝나면 저는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을겁니다."
"먼 곳에서 아들이 이렇게 고생하니 아버지가 걱정이 많겠군."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남자는 전쟁에서 죽으라고 태어나는거라구요. 저는 제가 애국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애국심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오토는 운전대를 잡고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애초에 이딴 좆같은 전쟁을 왜 시작한거야!! 전쟁만 아니었으면 지금 집에서 편히 있었을텐데!! 이런 좆같은 일도!!'
오토는 가족과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슈빔바겐은 계속해서 오토의 부대를 향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다음엔 꼭 탈영하자...이번 만이야...진짜 이번 만이야!! 작전 지도랑 포로만 넘겨주고 다음엔 꼭!!!'
하지만 오토는 다음에도 결국 탈영을 하지는 못할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토는 오토 파이퍼라는 개개인의 자유 의지가 아닌 독일인으로서의 어떤 집단적 의식과 본능에 의해서 싸우고 있었던 것 이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하던 적 전차를 격파하는 전쟁 영웅의 환상은 완전히 박살났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탈영하고 싶고, 튀고 싶고, 한 없이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는 것이 군인의 모습이었다. 요하네스만 없었다면 뒷칸에 있는 소련군한테 총을 갈기고는 운전대를 돌리고 이대로 튀고 싶었다.
'시발!!! 아아악!!! 그냥 요하네스 이 좆같은 머저리 새끼도 총 갈기고 튀어버릴까!! 맨날 질질 짜는 병신 새끼가 꼴에 무슨 애국심이야!!'
옆자리에 앉은 요하네스는 판처리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폭풍우가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태양이 우리를 비웃어도!"
트으응 트드등
"불에 타듯 뜨거운 태양에도! 오줌도 얼어붙을 시린 밤에도!"
오토도 요하네스와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기름투성이가 되어도! 우리들은 행복하다! 그래 행복하다!"
슈빔바겐은 다시 물을 건너기 시작했다. 뒤에 타고 있던 소련 부상병은 물에 차가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신음했다.
"으흐...으흐흐흐.."
오토가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죽음의 포탄이 명중하여 운명이 다하거든! 그래! 운명이 다하거든! 우리의 전차는 긍지 높은 관이 되리라! 으흐흐..."
오토의 입은 크게 웃고 있었지만 눈은 슬프게 찌그러졌다.
'그래!! 앞으로는 전공도 세우지말고 대충 버티는거야! 잘 못 싸우면 후방에서 서류만 만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오토와 요하네스는 소련군 장교를 포로로 잡고 작전 지도를 노획하는 전공을 세웠다. 슐레프 중대장이 오토를 칭찬했다.
"아주 훌륭해! 모두 이런 용기를 본 받아야하네! 오토 파이퍼, 자네는 조만간 중대장이 될 수도 있을 걸세! 앞으로도 최전선에서 열심히 싸우게!!"
오토가 속으로 절규했다.
'나인!!!!'
이 작전 지도는 곧바로 상급 부대에 보고되었고, 회의 결과 내일 소련군의 진지를 향해 공세를 할 것 이었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 전차를 살펴보러 걸어가는데, 전차병 녀석들이 모여서 뭔가를 구워먹는 모습이 보였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네들 뭐 먹나? 고기가 없을텐데?"
"소대장님도 드시겠습니까?"
포수 에밀 녀석이 무언가를 들고 외쳤다.
"개구리 뒷다리입니다!"
"뭐라고!! 으악!!"
알프레트가 개구리를 먹으며 외쳤다.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이렇게라도 고기를 보충해야죠!"
"나..나는 됐네!"
'저 미친 자식들!!'
21세기, 루카 파이퍼는 집 창고에서 오토 파이퍼의 회고록을 발견했다. 그 회고록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1940년 12월 23일
아직도 난 가끔 그 때 다른 결정을 내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흐르고, 개구리마저 없어서 못 먹는 상황이 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독일인으로서 목숨걸고 싸워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도덕심, 사회적 규율, 그딴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허상일 뿐이다. 전 인류에게 욕을 얻어 먹어도 좋다. 이반을 단 하나라도 더 죽여야 한다.]
루카는 오토의 회고록 페이지를 덮었다.
'오토 파이퍼, 이 자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을까?'
루카는 떨리는 손으로 오토 파이퍼의 회고록 첫 페이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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