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러시아 땅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슐레프 중대는 러시아인이 살고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전차를 정비하고, 말에 건초를 먹이고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포수 에밀은 주포를 청소할 때 쓰는 기다란 도구를 이어서 깔끔하게 주포를 청소했다. 슐레프 중대장이 외쳤다.
"전차는 쓰는 것 만큼이나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차를 만들기 위해 독일 제국의 소중한 자원이 들어갔고, 자네들의 아버지의 세금 또한 들어갔다! 책임감을 갖고 전차를 자신의 여자처럼 관리하도록!"
1차 대전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볼프강은 이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장교 동기들은 다들 집안이 좋았는데, 볼프강만 고아였고 돈도 없었던 것 이다.
그 때 트럭이 하나 도착했다.
"고향에서 온 편지와 소포입니다!"
바닥에 자빠져 있던 병사들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더니 모두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비켜!! 비키라고!!"
이들은 저마다 부모님으로부터 편지와 소포를 받았다. 돈 많은 블라덱 녀석은 부모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담배를 받았고, 이를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다들 피게!!"
블라덱은 볼프강에게도 담배갑을 하나 던져주었다.
"자네도 피게!"
볼프강은 블라덱이 준 담배갑을 바라보았다. 그 담배갑에는 블라덱의 어머니가 손수 써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볼프강은 담배를 씹으며 편지를 읽고 있는 동료들을 부러운듯 쳐다보았다. 어떤 녀석은 집에서 양말도 받고 속옷도 받았다. 하지만 볼프강은 군사 학교 시절에도 그 누구의 면회도 온 적이 없었다.
볼프강은 친구들을 뒤로 하고 혼자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서 얼마전에 마을에서 구입한 당근을 씹었다. 목이 메이기 시작했다.
'윽!!'
수통을 꺼내어봤는데 물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젠장!!'
목이 막혀서 딸꾹질이 나기 시작했다.
"딸꾹! 딸꾹!"
그 때, 한 부인이 아이를 등에 엎고 지나가다가 한 손에는 먹던 당근을 들고 딸꾹질을 하던 볼프강을 보았다.
'독일군이다!'
그 부인은 볼프강이 없는 곳으로 뒷걸음질쳐서 피해가려고 하다가, 딸꾹질을 하고 아직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볼프강을 보고는 측은지심을 느꼈다.
'젊은데 전쟁에서 고생하네..'
"이거 드세요."
부인은 자신이 우물에서 떠오던 물통을 볼프강에게 건네주었다. 볼프강은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는 러시아어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푸웁!"
부인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에 기름떼가 묻은 볼프강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젊고 귀여운 인상의 부인을 보고 볼프강은 얼굴이 붉어졌다.
'호..혹시 나한테 관심있나?'
등에 아이를 업은 부인은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고, 볼프강은 슬쩍 그 쪽을 쳐다보고는 실실 웃으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스테판은 소련군 포로에게서 노획한 마호르카 담배를 종이에 말아서 불을 붙여보고 있었다.
"이게 소련 놈들이 피는 마호르카 담배 냄새일세! 모두 잘 기억해두게!"
보병 녀석들도 그 마호르카 담배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기 시작했다.
"경계 서다가 이 냄새 나면 조심해라! 알겠냐!"
"확실히 이 냄새는 독특하군!"
지바고 소위가 외쳤다.
"이 냄새 풍기는 새끼 있으면 소련 새끼니까 자비없이 목을 따 버린다!"
"질문 있나?"
한 어벙해보이는 병사가 손을 들고 외쳤다.
"제 반합과 숟가락을 모두 도둑맞았습니다!"
"이름 안 써놨냐!"
"써놓지 않았습니다!"
"자기 물건은 자기가 챙긴다! 모두 각자 소지품에 이름 써놔!!"
조종수 마티아스가 쑥덕거렸다.
"도둑놈들도 있나봐!"
"그래도 우린 전차에 물건 보관해서 다행이지! 보병 녀석들은 야전삽도 도둑맞는대!"
한 장교가 병사들을 보며 외쳤다.
"그 외 질문 있나?"
"머리에 이가 많은데 다 밀어도 됩니까?"
"안 된다!! 머리 밀면 아군 군복 훔쳐 입은 소련군이랑 구분이 안 간다! 가능하면 머리는 밀지 말도록!! 그리고 전차병들!!"
전차병들은 각 잡힌 자세로 긴장했다.
"전차병들은 암호 아닌 평문으로 송신 절대 금지다!! 무조건 암호 써야한다! 알겠나!!"
"네!"
"그리고 소련군 시체로부터 가능하면 노획은 금지다! 장티푸스 옮기 싫으면 가까이 가지 마라!"
보병들이 궁시렁거렸다.
"어차피 놈들 장비는 구려서 노획할 것도 없어!"
포수 에밀이 말했다.
"T-26 고폭탄은 수류탄 수준이야!"
다음 날, 볼프강은 마을을 걷다가 어제 보았던 그 부인을 다시 마주쳤다. 그 부인은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가고 있었다. 볼프강이 달려가서 부인을 도왔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아닙니다!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그 부인은 오늘은 아이를 업고 있지 않았다. 볼프강이 러시아어로 물었다.
"아이는 남편분이 돌보고 계신가 봅니다!"
"아, 혼자 집에 있어요. 남편은 지금 전쟁터로 갔습니다."
그렇게 볼프강은 부인의 집까지 짐을 운반해주었다. 아이는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부인은 독일군인 볼프강이 빨리 집에서 나갔으면 했지만, 그냥 내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물 한 잔 드시겠어요?"
"감사합니다!"
부인은 볼프강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이 정도면 금방 나가겠지?'
볼프강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한편, 오토는 슐레프 중대장과 함께 대화하며 마을을 걷고 있었다.
"조만간 3호 돌격포가 보충될걸세!"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3호 돌격포!! 차체가 낮으니까 수풀 속에 엄폐하기도 딱 좋겠군!!'
슐레프 중대장이 물었다.
"이보게 오토 파이퍼, 자네 아버지에게 뭐 들은거라도 없나? 소련 놈들의 KV-2 전차에 맞서기에는 아군의 3호, 4호 전차로는 무리일세! 뭔가 신 무기가 나온다면 좋을텐데.."
"아버지는 저에게 그런 말씀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대에 슈빔바겐이 하나 배치된다더군! 그 차량으로 물을 건널 수 있으니 강 건너에 있는 적도 정찰이 가능할걸세! 난 솔직히 그 차에 타고 싶지는 않지만 말일세!"
"하하..."
그 때, 옆에 있는 작은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뭐지?'
슐레프 중대장도 심상찮은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중대장은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고는 조심스럽게 집에 접근해서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
잠시 뒤, 슐레프 중대장은 오토와 함께 문을 발로 차고 집 안으로 진입했다.
"실례하겠습니...악!!!!"
슐레프 중대장과 오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오토는 자신의 눈 앞을 믿을 수가 없었다.
'!!!!!!!!!!!!!!!!!!!!!!!!!!!!!!!!!!!!!!!!!'
일순간 오토는 자신의 눈이 보는 정보와 뇌를 분리했다. 추잡한 볼프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실수입니다!! 이 여자도 좋다고 했습니다!!"
30분 전, 눈이 걷히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던 러시아 땅이 나타났다.
비옥하고 축축한 러시아땅으로 게르만산 철갑탄이 강선포를 나와서 회전하면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두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러시아 땅은 철갑탄의 공격을 받고는 하염없이 갈라지며 통곡했다.
강선포는 푹신하고 축축한 비옥한 땅에 한참을 따뜻하게 파묻혀 있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강선포는 자극을 받아 이미 러시아땅에 씨를 뿌렸다.
독일군은 아무도 몰랐지만 이미 러시아땅에는 작은 새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잠시 뒤, 슐레프 중대장은 볼프강을 두들겨패고 있었다.
"이 시발 새끼!! 독일 제국이 고아 새끼인 네 놈에게 자비를 베풀었건만!! 우리 부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흐아악!! 흐어엉!!!"
침대에서 자고 있던 아기가 깨어나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흐아앙!! 흐아앙!!!"
슐레프 중대장은 볼프강의 멱살을 잡고 전차 장교들이 모이는 대피소로 데리고 갔다.
"이 씨발놈 새끼!!"
오토는 눈을 크게 뜨고는 이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볼프강 새끼가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구역질이 났다. 사태를 파악한 스테판이 중얼거렸다.
"볼프강이 슬라브년 xx에 깃발을 꽂았네"
볼프강이 말했다.
"그 여자가 저를 집에 초대했단 말입니다! 그 여자도 저를 좋아했습니다!"
오토는 다리가 휘청거렸고 속에서는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슐레프 중대장은 부인의 집에 가서 많은 군용빵과 현금을 지급했다. 부인은 아이를 안고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제 부하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부모가 없이 자란 녀석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슐레프 중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장교 대피소로 돌아왔다. 볼프강이 질질짜며 말했다.
"제가 부인에게 직접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슐레프 중대장은 볼프강을 다시 두들겨팼다.
퍽! 퍼억!!
"이 애미 애비도 없는 좆같은 새끼!"
잠시 뒤, 슐레프 중대장은 볼프강에게 보드카를 주며 말했다.
"이번 일은 사고였네.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말게나. 알았나?"
"흐흑..으허엉..."
그 날 오토는 짚으로 만든 임시 침대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생각할수록 그 좆같은 광경이 떠올랐다.
'어..어쩌면 강간이 아닐 수도 있다! 애가 있는 여자니까 돈이 필요해서 꼬셔놓고 당한척 하는 거일 수도 있어!!'
오토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심장은 여전히 쿵쿵거렸다. 그리고 가장 고약한 것은, 솔직히 오토도 꼴렸던 것 이다.
'시발!!!!'
뒤에서는 여전히 볼프강이 질질짜는 소리가 들렸다. 게오르크가 슬쩍 볼프강에게 물었다.
"어땠어?"
"흐으엉!! 흐어윽!!"
볼프강이 눈물 콧물 흘리며 외쳤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으허엉! 이게 다 그 이상한 초콜릿 때문이아! 그거만 먹으면 잠도 안 왔다고! 흐어엉!"
실제로 독일군이 전투 전에 잠을 깨우기 위해 지급받는 암페타민이 든 초코렛은 확실히 이상했다.
"난 절대 이런 짓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자네들도 알잖아! 내가 왜 이런 짓을! 흐어억!"
블라덱이 말했다.
"볼프강 자네 조만간 아버지 되겠군."
볼프강이 울부짖었다.
"으아악!!!"
"시끄러우니까 닥쳐."
이 때, 한스는 슈토르히를 타고 전방 쪽에 있는 사령부를 방문했다. 드로셀 준장이 한스에게 경례를 했다. 드로셀 준장은 직접 차량으로 한스를 모시러 온 상황이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차량 운전병은 뚱뚱한 다그마라는 이름의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이 당시 독일에는 여자 운전병들이 있었는데, 고위 장교에게 커피 심부름을 하는 역할까지 같이 했다.
드로셀 준장은 이쁜 운전병을 기대했는데 뚱뚱한 다그마를 대놓고 구박했다. 한스가 다그마를 보고는 말했다.
"젊은 여자가 고생이 많군."
드로셀 준장이 외쳤다.
"다그마는 어지간한 녀석들보다 훨씬 힘이 좋습니다! 사실 공병이나 포병에 더 어울리는 녀석이죠!"
운전대를 잡고 있는 다그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드로셀 준장은 한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농담을 하기로 했다.
"다그마는 백병전에서도 혼자서 소련군 10명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탄약 상자 무겁다고 징징대는 어린 이등병 녀석들보단 훨씬 잘 싸울 겁니다!"
"하..하하..."
한스는 억지로 웃는 척 하며 슬쩍 다그마의 얼굴을 살폈다.
'좀 불쌍하네...'
한스는 직접 4호 전차에 탑승하고 헤드폰을 껴보고는, 전차병들에게 불편한 점을 물었다.
"따..딱히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그 때, 한 어린 전차장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헤..헤드폰을 착용할 때 헬멧을 쓸 수 없습니다!"
드로셀 준장이 그 어린 전차장을 노려보았다.
'저 멍청한 자식!! 이따가 각오해라!!'
하지만 한스가 말했다.
"전차장은 주변을 정찰하기 위해서 교전 중에도 종종 상체 위로 머리를 내밀어야 한다. 그런데 헤드폰을 착용할 때 헬멧을 쓸 수 없다면 전투에 큰 지장이 생길 것 이다! 아주 훌륭한 지적이네!"
한스는 자신의 부관에게 이를 메모해두라고 했다.
'빠른 시일 내에 헤드폰 디자인이 수정되어야겠군...'
마을 사람들의 우호적인 표정을 보니 관리도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드로셀 준장은 한스에게 사우나를 소개했다. 드로셀을 포함한 많은 고위 장교들은 러시아의 전통 명물인 사우나를 즐기고 있었던 것 이다.
"피로가 싸악 풀립니다!"
한스는 기왕에 온거 사우나를 체험해보기로 하고는 혼자서 들어갔다. 러시아인들이 베닉이라고 불리는 나뭇가지 묶음으로 등을 탁탁 쳐보기도 하고, 통나무를 베고 누우니 정말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요새는 편하게 싸우는군...나 때는 최소 몇 달은 목욕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위이이 위이이이
그 때 사우나 밖에서 누가 외쳤다.
"으아악!!! 폭격이다!!"
한스는 발가벗고는 사우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으악!! 대피호!! 대피호 어딨냐!!"
뚱뚱한 여자 운전병 다그마는 발가벗은 한스를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퍽!!
잠시 뒤, 한스가 깨어났고 드로셀 준장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한 멍청한 이등병이 아군 항공기를 적 항공기로 착각했던 것 이었다. 다그마는 당황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스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쪽팔려서 애써 화를 억눌렀다.
"그럴 수도 있네."
Commen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