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무객 45화. 황당한 죽음
45.
누군가의 얼굴을 뜯어내고 그 가죽을 얇게 갈아서 만든 것이 보통의 전문가가 만든 기술이 아니었다. 청룡은 인피면구를 동방총관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요원들이 가끔 가다가 누군가를 밀행할 때 써먹기가 좋을 것 같군, 총관이 가지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총관에게 인피면구를 천천히 날려보냈다.
“각주와 루주는 놈이 맞는가 확인을 해 봐.”
루주는 근처에 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각주는 놈에게 가서 놈의 멱살을 잡고 아주 세밀하게 확인을 하였다.
“그 철천지원수 같은 놈이 맞습니다.”
각주는 청룡을 보고 그렇게 대답을 한 후, 루주에게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다고 확인을 해주었다.
루주가 청룡과 이미 들어왔을 때 청룡이 진력을 사용하여 인피면구를 공중에 부양시키고 있는 중이어서, 루주는 인피면구를 쳐다보지 않고, 놈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당한 그 원수 같은 놈인 줄 이미 알았고, 놈에게 이제껏 가혹하게 당해온 분한 생각에 몸을 떨고 있는 중이었다.
놈인 것이 확인이 되자, 청룡은 무공을 폐하고 온몸을 움직일 수 있게 점혈을 풀어줬다.
놈은 자신의 인피면구가 이미 벗겨진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젊은 술꾼으로 위장하는 흉내를 계속 내는 중이었다. 청룡은 더 괘씸하다는 생각에 바로 타혹타타 일초식을 날렸다.
놈은 갑자기 당한 충격에 몸을 뒹굴면서, 비명을 질렀다. 한참 기다렸다가, 놈의 눈동자가 검은 눈동자로 돌아오자, 바로 혹 위에 진력을 비비 꼬아 다시 타를 특별히 더 세게 날렸다.
이런 식으로 타격을 하면 한번 타격하는 것이 종소리처럼 길게 여운을 가지며 오랫동안 충격을 주는 효과가 있다.
비월각 각주와 루주의 얼굴에, 속으로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자신들이 저놈에게 고문당할 때가 엊그제 같았다. 자신들을 놀려가며 재미를 느끼는 그 잔인한 행태는 지금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놈이 지금 주객이 전도가 되어 자신들 앞에서 당하고 있는 것을 보니 속이 어찌 시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청룡은 놈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타혹타타를 세 번까지 만 타격한 후, 놈의 이마에 늘어진 혹이 눈을 덮을 지경에서 멈췄다.
“네가 먹인 이 두 사람의 독약은 내가 모두 해독해 줬다.”
그 말을 들은 놈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금방 놀랐던 사실을 얼굴에서 감추어 버렸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순식간에 순발력을 발휘하면서, 이 정도까지 자신을 치밀하게 다룰 줄 안다는 것은, 훈련을 아주 지독하게 받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비록 마공이라고는 하나, 무공 실력이 초절정 초입에 도달해 있다면 쉽게 생각할 놈은 아니었다.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
놈은 그렇게 당하고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청룡은 다시 한번 물었다.
“혈마교에서 너 정도면 어느 정도 되는 위 치냐?”
그 말을 묻자 놈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청룡이 지레짐작으로 놈의 표정을 읽기 위해 한말이 적중을 한 것이었고, 놈은 자신의 정체가 들킨 것에 너무 놀란 나머지 주체할 수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팔 소매 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청룡은 다시 놈의 표정을 읽기 위해 놈에게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놈의 눈이 갑자기 뒤집어지면서 뒤로 넘어가 입에서는 거품이 가득한 분비물을 끓어 올리면서 진저리를 한번 치더니 몸의 움직임을 멈췄다.
청룡은 생전에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 당해보는 일이었다. 설마 초절정을 바라보는 고수가 이리도 쉽게 자결(自決)을 할 수 있다니, 무척이나 이상했다.
청룡은 잠시 그 상황을 한번 뒤집어 생각을 해보고 다가가서 놈의 입안을 열어 보고 살폈다.
이빨은 멀쩡했고, 독약을 깨문 흔적도 없었다. 동방총관이 말해준 손톱을 보았지만, 손톱에도 독약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동방총관이 뭔가 어떤 직감이 생겨서 인지, 급히 다가와 놈의 소맷자락을 살펴보았다. 전직 살수 두목이라 그런지 상황 판단이 빨랐다.
놈의 양쪽 옷소매에는 손톱만 한 송진으로 만든 작은 병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가 나자, 놈은 능청을 떨며 자신의 긴장을 감추려는 듯한 모습으로 옷소매를 씹는 척 연극을 해, 청룡도 전혀 의심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든 후, 감쪽같이 자결(自決)을 해버린 것이다. 실로 대단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혈마교라...! 이놈들이 본격적으로 나와 설치면, 무림맹은 정말 골치 아프겠구나. 감당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청룡은 이놈을 살려서 좀 더 알아 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그냥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놈을 살리는 것은 청룡에게 아무 일도 아니었다. 청룡의 품속에 대침을 꺼내서 심장에 꼽고, 대나무 침 속에 박혀 있는 은 침에 양기를 발현시켜 손가락을 튕기듯 양기를 주입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진력을 사용하여 독기를 모두 빼 버리거나 중화를 시키면 되는 일···. 그러나, 그 후가 문제였다.
이놈을 불게 하려면 영단을 먹여야 하는데, 그 귀한 영단을 하오문을 망쳐 놓은 이런 쓰레기에게 먹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이놈이 그 귀한 영단 값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였다. 그 상황이 청룡에게는 확실하지 않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라는 회의적이 생각이 우선 앞섰다. 그 때문에 그런 생각을 일찌감치 그냥 포기해버렸다.
“이놈의 소지품을 잘 살펴보고, 수상한 것이 있으면 바로 보고를 해줘."
“네 철저히 조사를 해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혈마교인지 마교인지는 몰라도, 이곳 합비에는 이놈들의 연고가 되는 지부가 혹시 있을지도 몰라. 이 자가 자신들의 연고에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이 자를 찾으려고 주변을 맴돌지도 모르니, 그런 놈들도 잘 살펴봐.”
“추측하 건데, 경험적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다분히 있겠습니다. 이곳 합비에 연고가 있다면 말입니다.”
“어쩌면 아주 먼 곳에서 온 놈일지도 몰라.”
“문주님 말씀대로 다른 지역에서 파견을 나온 놈이라면, 아마 오리무중임으로 찾기가 어렵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합비에 지부가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혼자 파견을 나왔는지 그것만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럴 수도 있겠군. “
“놈이 비월각 각주에게 전장의 막대한 자금을 맡겨 놓은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우리가 모르는 다른 비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자가 소속된 단체도 모르는 비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네!”
“그래! 그건, 나도 짐작이 가는 상황이야! 그리고 이놈은 마공을 배워서 초절정 초입에 들어와 있고, 조만간 상위를 바라보는 수준에 올라있었어.”
“마기가 저렇게 풀풀 풍기는 놈이 저리도 쉽게 자결을 한다면, 저 놈도 혈마교에서 잘나가는 편이 아닌 밑에서 맴도는 자인 것 같은데, 혈마교의 세력이 보통 강한 세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요원들이 그런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혼자 행동하지 말고 바로 루주나 각주에게 일단 보고부터 먼저 올린 후 명을 받고 움직이라고 확실하게 명령을 내려놔.”
“전 같으면 놈들이 나타나면 루주와 각주가 바로 굴복을 하겠지만, 이제 루주와 각주의 무공도 상당해질 테니··· 저 죽은 혈마교 쓰레기 실력 정도라면, 저놈 네 명 정도가 루주를 둘러싸고 공격을 해야, 대충 엇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야.”
'.....'
“그런데 저런 자들은 자신의 일행들을 찾으러 올 때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선견지명이 있는 처세로 행동해야 해. 괜히 불필요한 놈들 때문에 우리 요원들이 쓸 데 없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명령을 내려놔.”
“네! 그리하겠습니다.”
“동방총관이 루주와 각주가 함께 대응을 잘 할 수 있도록 서로 의논을 해서 준비를 해주면 좋겠어! 이 상태로 놈들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다행이고, 오면 좋은 정보 하나 줍는 것이니···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야.”
“준비를 잘 해 둬서 심려를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산장으로 떠나니까 얼굴을 보지 못할 거야!”
“아니! 내일 아침식사도 안 하시고 산장으로 가시려고요?”
“응! 산장에 중요한 할 일이 있어.”
“그러면 저는 이곳을 좀 더 안정화시켜 놓고, 몇 가지 상황을 파악한 뒤 보고를 올리기 위해 조만간 산장으로 찾아가 뵙겠습니다. “
“그래! 중요한 일들은 모두 일러 두었으니, 각자 맡은 자리에서 제대로 일을 해주면 비월각이나 하오문도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네! 되도록 일이 빨리 처리되도록 신중을 기해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소문주와 대숙영감과 문필서생은 급한 일들을 좀 끝내 놓고 산장으로 와서 무공을 좀 더 배워야 하니까, 그동안 동방총관이 남는 시간에 지도를 해줘.”
“네! 그러잖아도 제가 손을 좀 봐주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각주와 루주도 이제는 개과천선한 상태이고, 우리 청룡문의 문도이니까 청룡문의 무공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좋은 생각이야. 그 두 사람은 우리 청룡문의 심법을 사용해서, 무공 지도를 좀 받아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본신의 내공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겠지···”
“네! 그 정도 내공을 그 따위 살수 무공으로 사용하기 위해 둔다는 것은 정말 아까운 일입니다.”
“하오문 소문주와 그의 식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청룡문의 가족이니 제가 좀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수고 좀 해줘.”
“어차피 문도라면, 빨리 본문의 무공을 배워, 본문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바른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맞는 말이야. 하오문 사람들은 산장에서 배울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최소한 내공 심법은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 정도는 동방총관이 자세히 가르쳐 주면 금방 할 수 있겠지. “
“하오문과 비월각 식솔들에게 심법을 가르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비월각 루주가 알고 있는 하오문 배신자 놈들에게 터득한 하오문 정보를 잘 취합해서, 총관과 문필서생에게 알려주고, 얻은 정보를 토대로 서로 의견도 개진해 봐!
나와 총관은 앞으로 청룡문 개파 때문에 건물 올리는데 바빠서, 그 일에 제대로 신경 쓸 처지도 못되고, 지금 현재 귀가 가장 밝은 사람이 루주이니, 루주의 정보가 가장 도움이 될 거야.”
“네! 문주님의 말씀에 절대 실망을 시키지 않도록 일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문주님! 루주가 이번 하오문 처리를 하는 것을 보니 루주를 믿어도 실망하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동방총관이 한마디 거들며 말했다. 아마, 이번 문필서생의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신임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 나도 날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믿어. 그런데 말이야, 문제는 우리 문도들이 모두들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아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서로 호흡에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잖아도 저도 그런 점이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야. 그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재해석해 모든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 것을 우리 청룡문의 기초 사고 방식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좋겠어.”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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