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무객 6화. 청룡문의 무공입문
6.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분위기였고, 그 느낌은 마치 승천해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단 첫 번째 방에 들어가서 서책들을 살펴보았다. 죽서는 주로 의가의 주요 비방과 처방전의 결과 요지 같은 것이었고, 간혹 가다가 의가의 진기도해 같은 해석들이 주를 이루었다.
청명심법 십 이성을 득달한 이화명에게는 특별히 암기하는 노력이 필요치 않았다. 그냥 한번 흩어보면 그것이 암기한 것이었고,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는 상황은 있을 수 없었다.
일단 죽서(竹書)로 만들어 놓은 유의문에 관한 자료는 며칠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 읽었다. 죽서(竹書)에 나온 의가에 관한 자료들이 일반 의가에 이어진다면, 그 의가는 중원 제일 의가라는 칭송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자료들이었다.
특히 구음절맥 치료방법은 정말 값진 의가 기록이었다. 내기로 막힌 혈을 뚫어 주는 비방이었고 바로 스승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그 창세천기보록(閶世天奇寶錄)의 비방이었다.
구음절맥을 고치는 방법은 아주 먼 곳에 있지 않았고, 무지함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었던 것이다.
청명심법은 원래 이런 환자들을 고치기 위해서 선대가 만들어 놓은 의가의 심법이었다. 워낙 그 심법이 뛰어나 무가에서 활용하고 나서부터 그것이 무가 쪽으로 더욱 크게 발전되었던 것.
그런데 천기명현심법의 힘은 무가에서 놀라울 정도로 커져버렸고, 그러다 보니 점차 의가에서는 원래의 사용목적에서 퇴행돼 버렸다.
구음절맥 환자는 천기명현심법의 진력을 아주 가늘게 쏘아서 환자의 혈을 밀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방법이 사부의 할아버지 사부(즉, 청룡문주 동생)가 문주직을 이어받지 못해 단절됨으로써 유의문의 모든 비방이 이백 몇 십년 동안 이 굴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이화명은 동굴 속에서, 그 죽서(竹書)를 보면서, 진기도인 분야에 대해 나온 설명에 더욱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고, 즉시 진력을 가늘게 하여 대기중에 내보내서, 수정벽을 눌러 실험을 해보았다.
책의 내용처럼 가는 바늘 구멍이 바로 만들어졌으며, 더 깊이 있게 파낼 수도 있었다. 이 진력을 물처럼 부드럽게 혈 따라 흘려보낼 수 있으면 성공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막힌 구음절맥의 혈을 뚫을 수 있다는 책의 설명에 납득할 수 있었고, 완치를 시킬 수 있다는 확실한 신념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고칠 수 있는 이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송진을 녹여 은침에 옷 칠하듯 입힌 침으로 죽은 사람의 심장을 찔러 양기를 환자의 몸에, 주입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침술은 고금에 들어보지 못한 신묘함 그 자체였다.
침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대나무로 만들고 하나는 은 침에 송진을 녹여 옻칠하듯 입혀서 만드는 방법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을 집밖 추운 곳에 대기시켜 놓고 있다가 일일이 한 사람씩 불러 그 은 침을 손가락으로 만지게 하면, 작은 벼락이 만들어져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고,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새벽에 밖에서 추위에 떨던 사람이 따뜻한 실내에 들어와 바로 그 대나무 침에 손을 대면 그 어떤 양기보다 효과가 좋다고 나와 있었다.
대부분 죽서(竹書)의 내용은 이런 비방이 많았고 사람 살리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영약을 가공하는 방법과 각종 약재를 만드는 방법도 드문드문 끼어 있었지만, 거의가 사람을 살린 경험을 체계적으로 서술해 놓은 내용이었다.
벌써 동굴에 들어온 지 보름이나 됐다. 벽곡단을 열다섯 개를 먹었고 벽곡단의 효과가 나타나 피곤한 것을 몰랐다.
물론 생사경에 도달하게 되면, 피곤한 것을 원래 모르게 되어버리지만, 피곤하지 않아도 진기도인해서, 주천은 부지런하게 해줘야 몸이 개운해지고 신진대사가 수월하게 되어 늙지 않게 되는 것이다.
죽서(竹書)를 워낙 부지런히 보느라 동굴 안에 들어와서 진기도인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함에도 늘 생사현관을 진기도인해 순행한 것 같은 개운한 느낌은 바로 저 벽곡단의 조화인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벽곡단은 앞으로 벽공영단이라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보름 동안 죽서(竹書)를 모두 섭렵하여 숙지하였고, 지금부터는 가죽 서책을 섭렵을 해야 하는데 분량이 상당했다.
아마 모두 청룡문과 관계되는 무공인 듯하고 간혹 어떤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살수들의 심법과 살수환혼심법 또는 살수유령신법 같은 것도 있었고, 하오문 같은 곳에서 쓰는 역용술 같은 것도 선대에서 만들어 놓은 책자가 있었다.
물론 저 역용술은 하오문에서만 쓰는 것은 아니고, 거대 문파에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간혹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청룡문 선대가 내공을 활용해 저런 수법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별일이었다.
얼굴의 근육을 단전에서 올라오는 진력을 가지고 비틀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아무튼 각설하고,
동굴 안에 보존되어 있는 책들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책장의 한 줄만 남은 상태에서 따로 담아 두었던 벽곡단 백 알을 벌써 다 먹고 두 번째 동굴을 찾아가 단지를 열고 우선 백 알을 다시 꺼내 왔다.
이제는 동굴 생활도 워낙 익숙해져서, 원래 살아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청룡문의 모든 무공의 원리를 이해하고 뇌리 속에 담아진 결론과 무공과 의술서 속의 그 숱한 설명 속에 제법 현기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깨달음이었고, 해석의 논제에 대해서,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상승의 단련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힌다 함은 완성이 목적이자, 그 완성의 가치는 무인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 어떤 깨달음을 찾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진짜 공능을 발휘하는 분야는 진정 따로 있다는 것을 무를 연마하고, 궁극을 찾으려는 그 수많은 수행 속에 만들어지는 결과물로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좁은 폭 속에 숨어 있듯이 존재하는 극의 세계는 모든 무인에게 욕망이자 꿈이고 희망의 영역이었다.
무인으로써 인간이 쉽게 가보지 못한 어떤 미지의 세계, 즉 그 무공의 경지를 구하고자 끝없이 탐구하고, 그 극의에 경지를 바라보는 초인적 이해력 속에 모든 것을 깊게 들여다보려는 그 형용할 수 없는 경험의 과정.
고독한 일 인의 자아에서 냉철하고, 현묘하게 성찰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어떤 가르침을 찾아내는 것은 자신의 깨우침에서 나오는 궁극의 스승이기만 했다.
무인이라고 한다면, 무의 맹목적 발전에 대한 추구는 자신의 자아 속에서,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될 무인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 본능적인 노력이 자신의 몸의 육신에 단련과 영혼의 단련이 함께 어우러져 완성되는 순간, 심상(心象)속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극 의가 나타나고, 그렇게 형성된 공간 속, 초극의 체계에 입도했을 때, 그제서야 완전함으로 이해하고 안도하게 되는 것.
이는 모든 초극을 바라는 무인에게 있어서 공통된 과정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무인으로써 늘 추구하는 삶의 보편적 목적이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노회한 나이에 특별히 바랄 것도 없었고, 단지 제자에 대한 책무가 아직 가슴속에 영글어져 있어 모든 것이 그 안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제는 가죽으로 만든 무공서는 모두 보았고, 드디어 용각 된 돌상자에 들어있는 창세천기보록(閶世天奇寶錄)을 열어 볼 때가 되었다.
이화명은 동굴 전체를 찬찬히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 첫 번째 천무동 동굴로 돌아와서 용각 된 상자를 열고, 그 안에 있던 황금실과 비단을 섞어서 짜 놓은 황금 보자기를 꺼내서 돌 탁자 위에 올려놓고 풀었다.
금 보자기는 성인 피 풍만 했고, 금실 보자기 속은 금실로 만든 서책과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가 담겨 있었다.
먼저 가죽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주머니 안에는 동그랗고 찬란한 쌍용각이 양각된 금패가 하나 있었고, 가죽으로 만든 문자 서신 같은 기록물이 있었다. 금패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그리 길지는 않았다.
황제 삼대, 즉 선 황과 현황제와 황세손의 유전병을 유의문의 문주가 고쳐주어 황실을 장수하게 만든 보답으로 받은 패이고, 이 패를 가지고 있으면, 그 어떤 죄를 짓더라도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법령이 제도화되었다는 기록물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황패를 받을 때에 상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황궁에서 나온 칙사가 본문을 찾아와서, 유의문 사방 오 십리를 유의문 땅으로 하사를 해주어 황제에게 좋은 호의를 가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합비성 성주란 작자가 군벌들과 짜고 황제가 하사한 유의문의 영토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하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빼앗아갔고, 오히려 사방 오리가 되는 유의문의 약초 밭까지 모두 빼앗아갔다.
그 추악한 일이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 일이 황제가 시켜서 한 수작인지, 아니면 합비성 성주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저지른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에 그냥 억울함을 묻고 그것으로 끝내 버렸다.
괜히 황실과 관련되어 더 이상 억울하게 엮여가는 것도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괘씸한 황실과는 더 이상 아무런 관련을 하고 싶지가 않았기에 마음 속 저주의 말 몇 마디로 끝내 버렸다.
그 아쉬움과 억울함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한동안 울화병과 한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선대 유의문 문주께서는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고, 정말 대단한 일도 하셨구나!’
한참 과거의 상황을 상상해 보다가 다시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와 현란하게 눈을 현혹하고 서기가 스며 나오는 듯한 황금 서책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책 표지는 옻칠로 글을 써 놓은 듯했고 내용들도 모두 옻칠로 써내려 갔다. 아마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묵서(墨書)재료였던 것 같았다.
창세천기보록(閶世天奇寶錄)에는 무록과 의록이 있고 부록으로 창세귀원진결(閶世貴雯陳結)이 있었다.
창세천기무록을 먼저 구성 이상 습득하고 그 이해력으로 창세천기의록을 공부한 후, 창세귀원진결을 모두 암기하라는 설명이었다.
선대의 진중한 당부가 있음으로 해서,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았고, 선대의 주문대로 책임감을 가지고 그렇게 시작을 했다. 창세 천기무록을 펼치자, 해석이 먼저 나오고, 그 무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언급이 있었다.
특히 무록에 나오는 칠채진경은 자세한 설명기술이 없었더라면, 무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한 자신에게도 정말 이해하기 힘든 무공서였다.
모든 것이 자신이 배웠던 청명심공의 바탕위에 터득된 그 숱한 무공과는 거리가 아주 먼 무공 이론이었고, 어떻게 보면 허황된 무공 같게도 보였다.
무천칠채심공(武天七彩心功)은 일곱 가지의 색을 진력으로 사용하는 공부이고, 칠성 정도 되면, 칠채내단(七彩內丹)으로 형성되어, 주천을 하거나 진력을 발현할 때, 주변에 무지개색의 운무가 형성되었다가, 진기를 멈추면 온몸으로 운무가 스며든다는 설명이었다.
처음 느낄 때는 중단전의 내기가 구름 같은 느낌으로 작은 수박만 한 단이 조성된다고 한다.
칠성 정도까지 쌓게 되면, 그 내기가 장정 두 사람을 열십자로 교차시킨 크기만큼 커져서, 기의 포만감을 느끼게 되고, 중단전의 내기를 발현시키면, 자신의 형상이 흐릿해져, 보는 사람은 환각처럼 느끼게 된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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