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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긴 토끼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파편, 외로운 용사의 송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귀가긴토끼
작품등록일 :
2023.11.21 17:15
최근연재일 :
2024.01.01 17:24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100
추천수 :
43
글자수 :
257,831

작성
23.12.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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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반복된 상실

DUMMY

주베르는 여유 있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저 놀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구나. 지금부터 재밌는 것을 보여주지.”


주베르는 붉은 대검에 자신의 마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 대검 주위로 핏빛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대검의 핏빛 아지랑이와 마기의 흐름을 느끼자 벨페고르가 외쳤다.


<저건 위험하다! 절대 검을 맞대지 마!>


‘저게 뭔데 그래?’


<상대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마왕의 검이 저 녀석에게 있을 줄이야. 나도 저걸 찾아 헤맸던 적이 있었지. 아무튼 저 검에 당하거나, 혹은 검이라도 맞대는 순간 네 생명력은 빨려 들어가게 된다.>


현수는 공략 난이도가 조금 더 올랐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이 치밀었다.


“어째 쉽게 되는게 하나도 없냐.”


검의 봉인이 해제되자 주베르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뿌뜨뜨뜩!


비싸보이던 옷의 단추들은 부풀어 오르던 주베르의 근육에 터져나가고, 결국 상의는 내의만이 걸레처럼 일부 조각만 걸쳐지게 되었다.

덩치가 점점 커지며, 팔꿈치와 어깨, 손등에는 날카로운 뿔이 돋았다.

끝으로 주베르의 등 뒤로 흐늘거리는 촉수들이 점차 자라나더니, 징그러운 십여 개의 촉수가 뱀처럼 꾸물대기 시작했다.


현수는 문득 어릴 적 봤던 만화영화가 생각났다.


‘변신하는 중간에 때리면 되는거 아니야? 변신하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고 있잖아?’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주베르가 변신하자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마기와 새롭게 추가되는 위협의 모습은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주베르는 가볍게 목을 돌리며 웃었다.


“이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만. 이 녀석을 다루는데 시간이 필요해서 말이야.”


주베르는 만족스런 얼굴로 붉은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럼 이제 가도 되겠지?”


쾅!


주베르가 도약하자 땅이 깊게 패이며 폭발음이 들릴 정도였다.

다행히 현수는 동체시력을 통해 주베르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체시력을 통해서도 주베르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빨랐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흐물거리던 촉수는 채찍과도 같이 현수의 몸을 옭아매려 달려들었다.


콰쾅!


현수가 대검을 피한 곳 뒤편으로는 어김없이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주베르는 웃으며 공격을 이어갔고, 현수는 있는 힘을 다해 피할 수밖에 없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주베르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던 현수는 결국 작은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핏!


“크흑!”


작은 상처!

아픔이나 출혈이 문제가 아니었다.

현수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가 뭉텅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기력, 의욕과도 같은 것이 살짝 줄어든 느낌.


핏!


붉은 대검에 의한 작은 상처가 늘어날수록, 현수는 자신의 생명력이 빠져나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마치 이 세계 소환 전 백수생활을 하던 모습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울증.

무기력감.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패배의식.

두려움과 공포.


만사가 다 귀찮아지고, 심지어는 그냥 주베르의 검을 맞고 깔끔하게 이세계 생활을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반쯤 눈을 감고 검을 내리려 하자 벨페고르가 소리쳤다.


<정신차려!>


그러나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하면서, 빠져나갈 대로 빠져버린 생명력, 의욕, 삶을 위한 의지 같은 것들은 더 이상 현수의 내면에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주베르는 현수의 상태를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단칼에 끝내버릴 수도 있었지만,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기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치명상을 입히지 않으며 현수의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즐겼다.


<정신 차리란 말이야!>


벨페고르는 소리쳤지만, 이미 눈이 풀려버린 현수의 귀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 귀찮다. 그냥 쉬고 싶어. 그래. 저 검에 맞으면 영원히 쉴 수 있지 않을까?’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벨페고르는 자신의 파편을 소모하여 현수의 반지에 마기를 불어넣었다.


슈화학!


반지가 빛을 내뿜기 시작하자, 현수의 눈빛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뭐, 뭐지? 이런 기분은?’


현수의 근육이 점차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주베르처럼 촉수라던지 각 관절의 뿔이 돋아나지는 않았지만, 전신에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수가 정신을 차리자 벨페고르가 말했다.


<드디어 정신을 차린거냐? 일단 내 영혼을 소모하여 네 반지를 활성화 시켰다. 지금이라면 저 녀석과 호각으로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능동적으로 적의 약점을 찾고, 결정적인 순간에 네 온 힘을 집중해라. 나는 잠시 피곤하......>


갑자기 벨페고르의 말이 끊겼다.


‘뭐야? 이런 중요한 순간에 피곤하다니!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고?’


현수가 불렀지만, 벨페고르는 답이 없었다.

현수는 연신 달려드는 주베르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생각했다.


‘빈틈을 찾으랬어. 그리고 저 녀석과 검도 부딪히지 말고.’


현수는 주베르에 대한 공략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찔러드는 주베르의 검을 피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검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검을 부딪치면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주베르는 검을 찔러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울의 반지가 활성화 되어 속도면에서 주베르의 움직임이 더 이상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 속도는 대등하다. 저 녀석이 지금 빠르다고는 하지만, 나 역시 그만큼 빨라졌어!’


주베르는 이전과 같이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자 슬슬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지? 다 죽어가던 녀석이. 어떻게 갑자기 내 공격을 모조리 피할 수 있지?”


그러면서 전보다 더 힘을 내어 공격속도를 높였다.

그래도 현수는 주베르의 속도에 맞추어 모든 공격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현수는 끊임없이 주베르에 대한 공략을 생각했다.


‘일단 공격을 피할 수는 있어. 그리고 나는 저 녀석이 없는 동체시력 권능을 갖고 있다. 그러면 어디 한번?’


순간 주베르의 검이 현수의 목을 노리며 들어왔다.

현수는 무릅과 허리를 숙이며 검을 피하면서, 동시에 주베르의 다리에 검을 찔렀다.


콰당탕!


주베르는 다리에 검상을 입자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공격하던 자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며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먼지를 뒤집어 쓴 주베르가 소리쳤다.


“크아아악! 이놈!”


“왜? 한 대 맞으니 분해?”


주베르는 다시 붉은 대검을 휘두르며 현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수는 주베르의 대검 움직임을 하나하나 지켜보며 모두 피해낼 수 있있다.

게다가 흥분한 주베르에게서 빈틈이 이전보다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다!’


현수는 주베르의 검을 피함과 동시에 그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크흑!”


주베르는 길게 베여버린 옆구리를 붙잡고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힘을 줄때마다 왈칵 쏟아져 내리는 피를 막아보려 했지만 검상이 깊은 나머지 한손으로는 출혈을 제대로 막기 힘들어 보였다.


“크아아아악!”


갑자기 주베르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옆구리에서 흐르던 피가 땅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붉은 대검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이, 배은망덕한!”


주베르는 변신을 풀고는 검에 찔린 다리를 질질 끌며 자신의 저택으로 달렸다.


‘저걸 쫒아야 하나?’


현수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가는 주베르를 보면서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주베르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쾅!


문이 닫혔다.

어두운 저택 내부는 조용했다.


‘어디로 간거지? 이봐! 벨페고르?’


벨페고르는 아직도 대답이 없었다.

현수는 할 수 없이 주베르의 흔적을 찾았다.

마족 특유의 회복능력으로 출혈은 거의 줄어들었기에 걱정은 사라렸다.


그러나 어두운 주베르의 저택에서 핏자국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현수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현수는 작은 흔적을 발견했다.


‘찾았다!’


다행히도 저택 문 앞에서 핏방울의 방향이 일정하게 찍혀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신발에 묻어있던 핏자국이었던 모양이다.


핏자국 흔적은 1층 복도의 맨 끝까지 이어진 뒤 사라졌다.


‘여기에서 흔적이 사라졌다. 어디로 간거냐!’


꺄아아악!


그때 저 멀리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주변 방문을 닥치는 대로 열어보면서 주베르를 찾기 시작했다.


벌컥!


‘지하로 가는 계단?’


어둡긴 해도 그나마 주변을 볼 수 있던 1층과는 달리, 문 너머 지하계단 저편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현수는 횃불을 찾으려 하다가 그냥 지하로 달려들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꺄아아아악!


또 다른 여자의 비명소리.

현수는 저곳에 아이오네가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자, 걸음을 더 빨리 했다.


여인들의 비명은 주기적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완전한 어둠속 내리막길 계단을 빨리 뛰어 갈수는 없기에, 벽을 짚으며 최대한 속도를 높였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주변이 점차 밝아졌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횃불들이 있었다.


꺄아아악!


여자의 비명소리가 계속되었다.


‘대체, 이놈 뭘 하고 있는거냐.’


마음이 급해진 현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백하게 질려서, 여기 저기 누워있는 여인들의 시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여인들이 모두 목 경동맥이 뚫린 채 죽어있었다.

끔찍한 참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현수가 소리쳤다.


“주베르으!!!!! 어디 있는 거냐!”


지하에 현수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메아리 쳤지만, 주베르의 기척은 없었다.

대신 또 다른 여자들의 비명만이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거기냐?’


현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언제나 한발 늦은 듯, 현수가 도착한 곳에는 여자들의 시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곳이다.’


지하의 공간이 거의 끝난 듯 보였다.

모퉁이만 돌면 지하의 공간을 모두 살펴보게 된다는 것을 인지한 현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렸다.


꺄아아악!


털썩!


주베르는 마지막 여인의 피를 마저 빨아먹고는 쓰레기처럼 저만치 던져버렸다.

현수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오네?”


걸레짝처럼 던져진 시체를 보며 현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오네!”


소리치는 현수를 보며 주베르가 말했다.


“응? 아는 여인인가? 가장 맛있는 피를 갖고 있는 여인이기에 마지막으로 영혼을 취했거늘. 크흐흐흐.”


피와 생명력을 흡수한 주베르는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다.

게다가 이전보다 더 커진 몸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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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검은 그림자들 23.12.30 7 0 12쪽
46 칼레스 제국 23.12.29 7 0 11쪽
45 소식을 듣다 23.12.28 7 0 12쪽
44 마법의 배낭 23.12.28 6 0 11쪽
43 새로운 목표 23.12.27 5 0 11쪽
» 반복된 상실 23.12.27 7 1 11쪽
41 주베르의 권능 23.12.26 6 1 11쪽
40 기사단장 일리예프 23.12.26 6 1 11쪽
39 정예기사 슈르딘 23.12.25 8 1 11쪽
38 출정 23.12.25 7 1 11쪽
37 라올렛 23.12.23 9 1 11쪽
36 수확 23.12.22 9 1 12쪽
35 수련 23.12.22 11 1 11쪽
34 니가 왜 거기서 또 나와? 23.12.21 10 1 12쪽
33 불덩이들 23.12.20 9 1 12쪽
32 재회 23.12.20 10 1 11쪽
31 내 촉은 정확하단 말이야! 23.12.19 14 1 12쪽
30 황금빛 승리 23.12.19 11 1 11쪽
29 괜찮은건가? 23.12.18 12 1 11쪽
28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 23.12.18 11 1 11쪽
27 지옥의 사냥개 23.12.16 11 1 11쪽
26 가긴 어딜가려고! 23.12.16 10 1 11쪽
25 거기 누구 있어요? 23.12.16 9 1 11쪽
24 그놈들 때문이었네 23.12.16 8 1 11쪽
23 가늘고 길게 먹기 23.12.15 16 1 11쪽
22 천지개벽 23.12.14 15 1 11쪽
21 사술 23.12.14 17 1 11쪽
20 모두 모였다! 23.12.14 1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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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미궁 23.12.12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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