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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긴 토끼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파편, 외로운 용사의 송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귀가긴토끼
작품등록일 :
2023.11.21 17:15
최근연재일 :
2024.01.01 17:24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101
추천수 :
43
글자수 :
257,831

작성
23.12.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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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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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그놈들 때문이었네

DUMMY

프리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영주님. 하지만 벨제붑님의 의도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분은 지속적으로, 차근차근 인간을 키워서 생명력을 수확하길 원하십니다."


주베르는 불만이 섞인 어조로 명령했다.


"그야 그렇지만. 다른 마족들과 똑같이 하다가는 영원히 이 변방에 처박혀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방법이든 찾아내어라!"


프리시스는 능숙하게 피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영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서도 영주님의 중앙 진출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해 있었던 소식을 떠올려보십시오. 벨제붑님이 보내신 신의 사자단에 의해 초토화 된 영지를 말입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버려 과도한 확장만을 하던 영지에서 인간 농장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완전히 꼬리자르기를 당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프리시스는 영주 주베르를 향해 주저하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영주님, 때로는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전략일 수 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영주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있사오니, 농장 확장 계획에 대한 보고를 조속히 준비하겠습니다."


주베르는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신의 사자단에 초토화 된 영지, 인류해방전선이라는 녀석들이 인간농장을 파헤쳤다는데 사실인가? 우리 농장에 문제가 없겠지?”


프리시스는 안심시켰다.


“그 부분은 우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인간들에게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니 말입니다. 이제는 강제로 내보내려 해도 제 발로 다시 찾아 들어오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촌장의 충성심도 확실합니다. 여기에 작은 보험도 마련해 두었죠.”


주베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구나! 그나저나 오늘의 선물은 뭐지?"


프리시스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새로 들인 처녀가 있습니다. 성녀 후보였던 자로, 영주님의 취향에 맞을 겁니다."


주베르는 기대에 찬 웃음을 지었다.


"하하! 기대되는군!"


프리시스는 공손히 일어섰다.


"그럼, 준비할 일이 있사오니 이만..."


"알겠다. 돌아가거라."


프리시스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주베르는 기대감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연신 피의 잔을 들이켰다.


프리시스는 집무실을 나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족 주베르의 심복 프리시스.

그 역시 마족이었으나, 반은 인간이었기에 마족들의 행태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출세를 위해 마족에게 충성하고 있을 뿐, 언제든지 기회가 생기면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칼을 갈고 있었다.


"저 사악한 자. 언젠가 너에게 맞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프리시스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인간 농장으로 향했다.


=============================


목책으로 둘러싸인 작고 평화로운 마을.

인간농장이라기에는 경계가 삼엄하지는 않다.

작은 목책이 마을의 안과 밖을 구분해 주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마족 병사에 의한 경계탑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었다.


“프리시스님이 오셨다!”


말을 탄 프리시스와 마족 기사 열 명이 마을로 들어섰다.

그들을 보자 마을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길을 비켰다.


“그래. 모두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보기 좋구만, 지내는데 불편한 것은 없는가?”


“영주님의 은혜로 너무 행복한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프리시스를 향한 감사의 인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프리시스는 웃으며 제일 앞에 선 여인에게 물었다.


“촌장은 어디에 있는가?”


“오전까지 마을회관에 있었으니, 아마 지금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인은 얼굴에 홍조를 띄며 대답했다.

프리시스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리고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누군가? 초면인 것 같은데? 이 마을에 남자는 드물기 때문에 모든 남자는 다 알고 있는데 말이야.”


현수는 마족이 자신을 콕 집어 이야기하자 내심 당황했다.


<이런. 위험하게 되었군. 얼른 매혹의 술을 발휘해라.>


현수는 침착하게 프리시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간 현수의 눈동자에 검은 안개가 일렁였다.


“예. 저는 이 마을에 온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여기가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왔습죠.”


인간농장은 대부분이 여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남자들은 번식과 경계를 위한 최소인원만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낯선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프리시스는 불안감과 언짢음을 함께 느꼈다.


“그런가? 자네 잠시 이리와 보게나.”


아무래도 이상함을 느낀 프리시스는 손을 뻗어 사내의 머리에 가만히 올렸다.

그의 손에서 이내 붉은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답하게나. 진정 이 마을 사람이 맞는가?”


현수는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며 답했다.


“아이고! 제가 어찌, 영주님과 바알신님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흐음. 그렇단 말이지? 자네의 충성을 시험 해봐도 되겠는가?”


“제 마음속에는 오직 바알신님만이 존재하실 따름입니다. 위대하신 분의 시험이라니, 저는 오히려 영광입니다.”


과도한 굽실거림에 프리시스는 피식 웃으며 사내의 머리에 올려둔 손에 마력을 계속 주입하였다.


지이이잉.


그러나 프리시스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빛줄기에 변화는 없었다.


“흠. 그만하면 되었다. 네 말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는구나. 그래도 모르니 네게 작은 마법을 하나 심어둘 것이다. 만일 바알신님을 향한 너의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터이니 언제나 믿음이 충만한 생활을 하거라.”


프리시스의 손에서 흘러나오던 빛은 그대로 현수의 머리에 흡수되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현수는 연신 굽실거리며 말했다.

그의 태도에 프리시스는 웃으며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크크크. 저 마족놈. 이제 보니 인간이 절반 섞여있어. 반푼이 주제에 어떻게 마족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프리시스가 십여 명의 마족기사를 대동하고 떠나자 벨페고르가 현수에게 말했다.


‘뭐? 저 녀석의 절반은 인간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마족들 가운데 취향이 특이한 녀석들이 있다. 그놈들의 사생아가 분명해.>


‘절반은 인간이니 인간들 편에 서서 싸워야 하는거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마족이 더 좋으니 마족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크흐흐>


‘애휴. 말을 말자. 그나저나 방금 저 녀석 나에게 뭘 한 거야?’


<저놈은 마법사야. 방금 네 머리에 손을 올렸던 것은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 같은 거라고 볼 수 있고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행동은 네 머릿속에 일종의 폭탄을 심어둔거지.>


‘뭐라고? 폭탄?’


현수는 놀라며 자신의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봤다.


<크크. 너무 걱정 말라고. 고작 반푼이 마족일뿐이야. 어쨌거나 나보다 하급마족이니 내가 수호하는 너의 생각을 읽거나, 네게 해가 되는 마법을 심어 둘 수는 없다. 내가 없었다면 넌 그 자리에서 모든 생명을 쪽쪽 빨렸을 테고 말이야.>


현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농장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온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하단 말이야.’


타이렐의 추적능력을 통해 인간농장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 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농장의 많은 사람들을 모두 안전하게 구출하여, 파라몬트 제국까지 탈출시키는 이번 일은 생각할수록 난관이었다.

작전을 위해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봤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인간농장을 찾은 것이다.


‘몇 십 명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말이야. 천명을 어떻게 아무도 안다치고 모두 구할 수 있을까? 그것도 대부분이 여자인 상황에서.’


<뭐가 걱정인가. 그냥 다 쓸어버리면 될 것을. 달려드는 마족들은 네가 다 없애버려라. 혹시 알아? 그러다 내 파편을 하나라도 흡수할 수 있게 될지 말이야. 크흐흐.>


‘지난번 회의 때 넌 자고 있었어? 이 영지에 추정되는 마족만 5천명이 넘는단 말이야! 아무리 나 혼자 날뛴다고 하더라도, 쪽수에 장사는 없는 법이지.’


<미안. 너의 일상생활은 관심이 없거든. 크크크. 그나저나 아까 그 마족 녀석 촌장을 만나러 간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해. 마법을 사용한다면 꽤나 고위층 같은데 말이야. 이곳까지 직접 찾아와 촌장을 찾고 있으니. 이따 촌장에게 들려봐야겠어.’


현수는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날이 저물때까지 마을을 관찰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여느 마을과 다름이 없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임신중인 여자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상점과 식당, 카페, 술집들이 똑같이 운영되었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현수는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요즘은 매일이 꿈만 같아요.”


“그러게 말이예요. 나누어 주는 좋은 음식에, 돈도 조금씩이나마 주잖아요? 예전 같으면 힘들게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해봤자 세금내고 나면 남는 것도 거의 없었는데 말이예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제 남편은 농사를 짓다가 할당된 세금을 못채웠다는 이유로 그해 수확한 밀을 그대로 몽땅 빼앗기기 까지 했었다니까요. 그땐 정말 굶어 죽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죠. 호호호.”


여자들의 대화속에서 이곳에 대한 엄청난 만족감을 알 수 있었다.


‘정말일까? 노동의 고통이 사라진 삶이 정말 행복한 걸까?’


현수는 당장 뛰어가 그녀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이념적 고찰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촌장님. 계십니까?”


저녁이 되자 현수는 마을회관에서 촌장을 찾았다.

문을 연 촌장은 투명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현수는 또다시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눈에서 검은 안개가 뭉실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촌장의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뭐. 누구면 어떤가? 이리 들어오게나.”


“감사합니다. 촌장님. 몇 가지 여쭈어볼게 있어서요.”


현수는 촌장을 따라 회관으로 들어갔다.


“거기 앉게나. 혹시 차 좋아하는가?”


촌장은 물을 데우고 차를 준비했다.

그런 촌장의 모습을 보며 현수는 마을에 대한 칭찬 등 잡다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촌장님.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정말 밝은 듯합니다. 이게 다 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주셨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에이. 내가 뭘 했다고. 클클클. 그저 바알신님과 주베르님의 은총을 입은자로서 열심히 살고 있을뿐이지.”


“그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촌장님의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쉽지 않을겁니다. 그나저나 촌장님. 여기서 촌장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얼마 안되었네. 전 촌장이 작년에 작은 실수를 저지른 이후부터 내가 촌장이 되었지.”


“실수라고요? 무슨?”


“그게 다 인류해방전선인가 뭔가 하는 놈들 때문이었네.”


촌장은 주먹을 쥐며 분노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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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검은 그림자들 23.12.30 7 0 12쪽
46 칼레스 제국 23.12.29 7 0 11쪽
45 소식을 듣다 23.12.28 7 0 12쪽
44 마법의 배낭 23.12.28 6 0 11쪽
43 새로운 목표 23.12.27 5 0 11쪽
42 반복된 상실 23.12.27 7 1 11쪽
41 주베르의 권능 23.12.26 6 1 11쪽
40 기사단장 일리예프 23.12.26 6 1 11쪽
39 정예기사 슈르딘 23.12.25 8 1 11쪽
38 출정 23.12.25 7 1 11쪽
37 라올렛 23.12.23 9 1 11쪽
36 수확 23.12.22 9 1 12쪽
35 수련 23.12.22 11 1 11쪽
34 니가 왜 거기서 또 나와? 23.12.21 10 1 12쪽
33 불덩이들 23.12.20 9 1 12쪽
32 재회 23.12.20 10 1 11쪽
31 내 촉은 정확하단 말이야! 23.12.19 14 1 12쪽
30 황금빛 승리 23.12.19 11 1 11쪽
29 괜찮은건가? 23.12.18 12 1 11쪽
28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 23.12.18 11 1 11쪽
27 지옥의 사냥개 23.12.16 11 1 11쪽
26 가긴 어딜가려고! 23.12.16 10 1 11쪽
25 거기 누구 있어요? 23.12.16 9 1 11쪽
» 그놈들 때문이었네 23.12.16 9 1 11쪽
23 가늘고 길게 먹기 23.12.15 16 1 11쪽
22 천지개벽 23.12.14 15 1 11쪽
21 사술 23.12.14 17 1 11쪽
20 모두 모였다! 23.12.14 17 1 11쪽
19 의문의 기사들 23.12.13 18 1 11쪽
18 미궁 23.12.12 18 1 11쪽
17 보물찾기. 아닌가? 23.12.11 18 1 12쪽
16 올리비아. 고멘네(ごめんね) 23.12.09 2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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