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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긴 토끼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파편, 외로운 용사의 송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귀가긴토끼
작품등록일 :
2023.11.21 17:15
최근연재일 :
2024.01.01 17:24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120
추천수 :
43
글자수 :
257,831

작성
23.12.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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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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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거기 누구 있어요?

DUMMY

현수는 짐짓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인류해방전선이라고요?”


“자네 아직 모르는가? 인류해방전선이라고. 이곳과 같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납치해서 노예상에게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놈들 말일세.”


현수는 인류해방전선에 대한 평가를 듣자 인상이 찡그려졌다.


“제가 듣기로, 인류해방전선은 마족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준다던데.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봅니다?”


촌장은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다시 웃음을 찾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마침 아까 낮에 프리시스님이 다녀가시면서 좋은 차를 내어주시더군. 그걸 잊고 있었다니.”


촌장은 차를 우리며 현수에게 말했다.


“방금 뭐라 했었지? 아! 맞다. 인류해방전선! 그야 모를 일이지 않나? 그 망할 놈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말일세. 겉으로는 구해준다고 하면서 노예를 만들 줄 누가 알았겠나. 아무튼 그 덕에 내가 촌장이 되었긴 하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자네는 그게 왜 궁금한가?”


현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차를 홀짝거렸다.


“그저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밝아보였기에 촌장님을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촌장은 웃으며 차를 한잔 더 따라주었다.


“에이! 자네 칭찬이 너무 과하다네. 껄껄껄.”


현수는 촌장의 얼굴을 보면서 함께 웃었다.


‘이거, 보기보다 일이 쉽게 풀리겠는걸?’


“촌장님. 그나저나 궁금한게 있습니다.”


촌장은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뭐가 궁금한겐가?”


“마을 여인들의 대화에서 이 마을에 대한 만족도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야 그렇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모두 공짜로 할 수 있는데 말이야. 일도 안하면서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게 평민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가능하지.”


현수는 살짝 답답하다는 듯 찻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하, 하지만. 이 마을은 인간들에게서 생명력을 주기적으로 뽑아가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여기 사람들은 얼마나 살 수 있는 거죠?”


촌장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비어버린 현수의 찻잔을 다시 채워주며 말했다.


“자네는 누군데 그런걸 묻는 겐가? 뭐 물어보니 답해주겠네. 10년이지. 그렇게 조금씩 생명력을 뽑게 되면 한 사람당 10년간 10명분의 생명력을 마석에 담아갈 수 있다고 프리시스님께서 알려주셨다네.”


“10년 후 에는요?”


“10년 후? 글쎄...... 아마, 바알신님의 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겠지......”


현수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이 마을 여인들도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10년간 생명력을 뽑히다가 결국에 가서는 죽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촌장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프리시스님께서 비밀로 하라고 하셨기에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네. 하지만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아. 이미 이 마을에서의 행복을 맛본 사람들은 말이야. 다른 곳에 가서 절대로 살수 없거든.”


현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그게 무슨?”


“생각해 보게나. 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꿈꾸던 모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네. 실제로 몇 명이 이 마을을 떠났다가 반년 만에 다시 돌아오기도 했었지. 이 마을 울타리를 보았나? 사람들을 가둬두는 곳이 아니라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얼마든지 떠날 수 있어.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가?”


현수는 뭔가 큰 벽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 사람들을 구출한다고 해도, 그들이 과연 다른곳에서 정착할 수 있을까?’


촌장과 이야기를 하면서 현수는 인류해방전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죽겠지만.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면 그냥 이대로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현수는 말없이 차만 홀짝거렸다.

촌장은 미소 지으며 조용히 현수의 비어버린 찻잔만 채울 뿐이었다.


“어! 이, 이게 왜......”


차 주전자가 거의 비어갈 때 쯤, 현수는 눈앞이 살짝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촌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프리시스님께서 낮에 다녀가시면서 농장을 잘 살피라고 하셨지. 수상한 자가 찾아오면 이 차를 대접하라고도 하셨고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이야.”


현수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몇 발짝 걷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어이! 현수! 지금 뭐하는 거냐? 겨우 이런 독에 당한거야?>


벨페고르가 다급한 듯 외쳤지만 현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


“대장이 들어간지 얼마나 됐지?”


제국수도 용병단장 출신, 발라니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타이렐은 손톱을 다듬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벌써 그 질문만 다섯 번째야. 어련히 대장이 잘 하고 있을까.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뭔가 새로운 작전을 위해 준비할게 많은가보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 농장은 규모가 너무 크단 말이야. 우리가 그동안 너무 대장한테만 의지한 것 같기도 하고.”


“네가 무슨말 하는지는 알겠어. 솔직히 나도 걱정이 되는건 마찬가지니까. 만일 내일까지 소식이 없으면 내가 다시 마을에 들어가 살펴보고 올테니까, 단원들이나 단단히 준비시켜놔.”


그제야 발라니는 조금은 안도한 듯 미소가 서렸다.


“알겠어. 데커에게도 전해둘게. 단원들에게 곧바로 싸울 준비 끝내놓으라고 말이야.”


단원들을 찾아 달려가는 발라니를 보며 타이렐은 고개를 저었다.


“으휴. 저 근육바보가 또 사고치기 전에 얼른 확인해봐야겠어.”


타이렐은 내일 출발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느덧 브란딜라 영지의 인간농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대장.”


타이렐은 과거 현수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4년전 필크레 마을.


타이렐은 여느 때와 같이 먹잇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때 예전에 어디서 본 듯한 호구처럼 보이는 사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는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마왕을 상대할 동료로 마족을 들이라고? 중요한 순간에 뒷통수 맞을 것 같은데?”


타이렐은 혼잣말에 집중하고 있는 사내에게 의도적으로 부딪혔다.


툭!


어라? 단단하네?

타이렐은 저만치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꺄악!”


현수가 달려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신가요?”


“흥! 이거 어쩌실 건데요!”


타이렐은 흙먼지로 더럽혀진 치마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이, 이걸...... 죄송합니다!”


현수는 여자의 말을 이해하고 일단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있던 주머니에서 은화 몇 개를 꺼냈다.


“혹시 이걸로 어떻게 안 될까요?”


타이렐은 눈을 흘기며 은화를 낚아채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앞을 똑똑히 보면서 다니세요!”


“알겠습니다. 주의할게요. 죄송합니다.”


타이렐은 현수와 헤어지고 곧장 은신처로 향했다.


“호오! 이거 보기보다 두둑한걸?”


그녀의 손에는 현수의 허리춤에 있던 돈주머니가 통째로 들려있었다.


“이거면 당분간은 걱정 없겠어!”


그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타이렐.

하지만 여유는 얼마가지 않았다.


“헉! 헉! 여기 계셨군요?”


나름 은신처라 여기는 곳에 숨어있던 자신을 반나절도 되지 않아 찾아낸 현수를 보며 타이렐은 놀랐다.

하지만 최대한 정색을 하며 톡 쏘는 듯 말했다.


“뭐, 뭐예요! 제 옷을 또 더럽히시려고요?”


“안녕하세요. 이현수입니다. 인류해방전선의 대장이죠.”


그녀는 입을 오므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이정도면 미인계가 통하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함께.


“인류해방전선이요? 그게 뭔가요?”


하지만 현수는 타이렐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말만 늘어놓았다.


“마족에게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는 단체입니다. 그리고 당신께도 영입제안을 하러 온 겁니다.”


“흥!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저 나약한 여자일 뿐인데.”


현수는 웃으며 은행에서 찾아온 돈주머니를 흔들었다.


“돈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찾아왔죠. 이번엔 모두 금화들입니다.”


찰랑! 찰랑!


연신 금화들이 내는 돈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마왕에게서 사람들을 구한다고요? 저는 바빠서 이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현수를 지나치려했다.


탁!


“꺅!”


현수는 옆을 지나치는 순간 그녀의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저런! 저런! 손이 정말 빠르시군요.”


“이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러시면 소리를 지를꺼예요!”


“어디 한번 질러보시죠. 밤의 도둑고양이님?”


타이렐의 표정은 일그러지며 침을 한번 뱉었다.


“쳇! 뭐야. 알고 있었어? 이 손이나 놓고 말하지?”


타이렐은 어느 샌가 단검을 손에 쥐고는 현수의 손등을 탁탁 쳤다.

현수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이름이 뭐야? 계속 도둑고양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타이렐은 현수의 손을 한 대 탁! 치고는 말했다.


“내 정체를 까발리라고? 그러는 넌 뭔데?”


“말했잖아. 이현수. 인류해방전선의 대장.”


“그건 모르겠고, 마왕이랑 싸우려는 바보만 보이는데. 난 이만 가봐도 되지?”


“내 제안, 잘 생각해봐. 마왕과 마족이 갖고 있는 엄청난 금화와 보물도 같이 말이야.”


돌아서려던 타이렐의 몸이 순간 굳었다.

현수는 웃으며 타이렐의 뒷통수에 말했다.


“마족에게서 빼앗은 재물은 5대 5로 하면 되려나?”


타이렐이 조용히 속삭였다.


“싫어. 6대 4!”


인간농장을 향해 달려가던 타이렐은 과거를 회상하며 홀로 조용히 웃었다.


=================================


현수는 사방이 캄캄한 낮선 곳에 눕혀져있었다.


똑! 똑!


어디선가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

사방에 피냄새가 진동한다.


<...봐! 정신..... 리라고..... 내 말 들......>


“으...... 윽!”


<이봐! 드디어 정신 차린 거야? 고작 이정도 독에 당할 줄은 몰랐다고.>


“여, 여긴 어디지?”


<어디긴 어디야? 지하감옥이지. 영주성에 끌려온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고>


“단원들이 걱정 할 텐데. 제발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다들 가만히 있어주면 좋겠군.”


<고작 늙은이의 꾐에 넘어간 네놈이 할 말은 아닌 듯한데. 크크크>


“거기 누구 있어요?”


어둠속 저편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캄캄한 어둠속, 자신 외에 누군가 또 갇혀 있음에 살짝 반가움을 느낀 현수는 어둠속을 향해 답했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 누가 또 있나요?”


“아니요. 아무도 없어요. 그쪽과 저 빼고는 말이죠.”


현수는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여긴가 어딘지 아세요?”


“영주성의 지하감옥입니다. 그쪽은 왜 여기 갇힌 거예요?”


지하감옥!

현수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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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출정 23.12.25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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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 23.12.18 1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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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누구 있어요? 23.12.16 1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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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천지개벽 23.12.14 1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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