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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긴 토끼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파편, 외로운 용사의 송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귀가긴토끼
작품등록일 :
2023.11.21 17:15
최근연재일 :
2024.01.01 17:24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080
추천수 :
43
글자수 :
257,831

작성
23.12.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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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수련

DUMMY

2층에는 여러 개의 석상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과거 벨제붑으로 변했던 석상이 똑같은 위치에 서 있던 것이었다.

벨페고르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야 모르지. 가서 살펴보기 전에는 말이야. 크크크.>


현수는 떨리는 발걸음을 석상으로 옮기며, 벨페고르에게 물었다.


‘하긴. 벨제붑은 아닐 거야. 크기도 전보다 작아졌고. 그나저나, 천마 마저도 잡아먹어버린 마왕. 너도 힘을 되찾으면 그렇게 강해지는 거야?’


<크크크.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나를 그딴 벨제붑 같은 놈이랑 비교하지 마라. 그놈은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놈이었으니.>


‘그런데 넌 왜 천마에게 죽은 거야?’


순간 벨페고르는 당황한 듯 소리쳤다.


<그, 그건! 예전에도 이야기 했지 않느냐! 인간들을 우습게보고 내 힘의 대부분을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너는 얼른 그 마족들을 잡아다 힘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 이런데서 쓸데없는 시간을 버릴 이유가 없어!>


‘애휴. 알았다. 그나저나 저건 뭐냐.’


현수는 석상 바닥에 있는 글자를 발견했다.


‘뭐라고 쓴 거야? 읽을 수 있겠냐?’


<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나를 이겨야 올라갈 수 있다.’라는 뜻 같은데?>


‘나? 나가 누구냐? 나? 아니면 저 석상? 아니면 또 누가 있는 건가?’


스르르르릉

현수가 석상 여기저기를 만지며 조사하던 사이 갑자기 석상이 움직였다.


“뭐, 뭐야! 또 벨제붑이야? 성녀님! 피하세요!”


현수는 아이오네의 손을 붙잡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때 벨페고르가 말했다.


<마왕은 아닌 것 같다. 마기가 느껴지지는 않아!>


석상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현수는 뛰어올라 아직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석상에 검을 내리쳤다.


깡!


하지만 어느새 석상은 검을 들어 막았다.

현수는 재빨리 검을 몇 번 더 내려쳤다.


석상의 움직임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수의 검을 절묘하게 막아내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더 빠른 것 같은데!”


현수는 다시 거리를 벌리며 석상의 움직임을 살폈다.

석상은 당장이라도 뛰어와 공격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수가 거리를 벌리자 의외로 석상은 따라오지 않고 제자리에서 몸을 풀고만 있었다.


“그냥 다시 돌아가야 하나?”


그러나 천마를 집어삼켰던 벨제붑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석상을 그대로 놔두고 도망 갈수도 없었다.


그 사이 겁에 질린 아이오네는 저만치 떨어져서 기도문을 외웠다.


“혹시 모르니, 제가 축복을 내려 드릴게요!”


현수에게 황금빛 축복이 내려왔다.

그러자 벨페고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크아아악! 기분 나쁜 빛! 저년은 왜 또 시키지도 않은 짓을!>


현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딴에는 뭐라도 돕고 싶었나보지. 조금만 참아.’


석상은 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계속 몸을 풀었다.

그렇게 몇 번의 기지개와 스트레칭을 한 이후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놈의 움직임은 훤히 다 보인다. 자신을 이길 수 없는 자! 조용히 돌아가라.”


“뭐, 뭐야! 말을 했어!”


석상이 대답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너도 지금 말하고 있지 않느냐?”


“나는 사람이니까! 넌 돌이고!”


“나는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사람인 것인가?”


“헛소리 집어치워!”


어이가 없어진 현수는 다시 한 번 공격했다.

이번에는 두 다리에서부터 힘을 모아 몸을 쏘아 보내는 속도까지 더하여 검을 더 빠르게 휘둘렀다.


깡! 까깡! 까가강!


하지만 현수의 연이은 공격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막혀버렸다.

당연히 아이오네의 축복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석상이 마왕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석상은 다시 제자리에 서며 현수에게 말했다.


“네놈의 검은 너무 느리다. 헛수고 그만하고 그냥 돌아가거라. 그 실력으로는 절대 3층을 올라갈 수 없다.”


“3층이 있긴 한 거야?”


“나를 통과하지 못하면 3층은 꿈도 못 꿀 것이다.”


현수는 몇 번이고 반복하여 석상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석상은 언제나 그렇듯 간단하게 현수의 공격을 쳐냈다.


<이봐. 가만 보니 저거.>


조용하던 벨페고르가 입을 열었다.


‘뭔데?’


<저 녀석, 권능을 사용하는 것 같다. 동체시력.>


‘뭐, 저 석상이 어떻게?’


<지금 저 석상의 움직임은 딱 네 수준 정도다. 석상에 이렇게 적혀있었지? ‘나를 이겨야 올라갈 수 있다.’ 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야 네가 생각할 일이지.>


‘나와 같은 수준의 동체시력을 사용하는 적에 대한 공격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현수는 잠시 생각을 위해 석상에서 멀리 거리를 벌렸다.

현수가 적의를 보이지 않자 석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행히 선공은 아닌 것 같네. 괜히 먼저 공격했잖아.’


상황을 지켜보던 아이오네가 물을 건넸다.


“큰일이라도 날줄 알았는데.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어쩌실 거죠?”


현수는 이렇다 할 대답 없이, 물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공격하면 동체시력을 통해 나의 공격을 막는다. 내가 더 빨리 움직이면 그것 역시 나와 같은 수준의 빠르기로 막는다. 아악!!!! 대체 어떻게 하라고!!’


현수는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그렇게 머리를 뜯어봐야 대머리만 빨리될 뿐. 해결되는 건 없다. 그냥 지금이라도 나가서 나의 파편을 흡수하러 다니는 게 어때? 그것만 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는데 말이야.>


‘싫어! 난 이 탑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난 할 수 있어!’


자신 있게 소리쳤지만, 문득 현수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가 떠올랐다.


한국에서의 백수생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떤 노력을 해봐도 되는 일이 없이 매일 제자리인 것만 같았던 날들.


“하......”


현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었다.


‘이것 때문에 벨제붑도 2층에 머물러야 했던게 아닐까? 제 아무리 강한 마왕일지라도 자신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군. 아무리 강한 능력을 발휘해봐야 상대가 똑같은 힘으로 받아친다면 소용없으니 말이야.>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여기에 있을 수만은 없어! 일단 다시 싸우면서 방법을 생각해보자!’


현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석상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현수는 석상에게 공격을 퍼부었으나 언제나처럼 여유롭게 받아쳐낼 뿐이었다.


아이오네는 그저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볼 뿐, 너무나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현수가 공격을 마치고 석상에서 멀어지면 음식이나 물을 건주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이것 좀 마시고 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뭘요. 저는 하는 일도 없는데요. 현수님이 다치기라도 하면 혹시나 치료를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제가 할 일이 없어서 오히려 다행인가요? 호호.”


“이거 일부러 칼 한번 맞고 와야겠는데요? 하하.”


둘은 그렇게 지루했던 2층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앉아서 빵을 뜯어먹던 아이오네가 말했다.


“현수님은 정말 열심히 사시는 것 같아요.”


“예? 제가요?”


뜬금없는 아이오네의 말에 현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임과 웹소설을 보며 백수로 살아왔던 자신에게 ‘열심히’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은 현수 스스로가 더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뭔가 목표를 세우고. 지금도 매일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열심히 석상을 공략하고자 노력하시잖아요.”


“아! 그, 그런. 살기 위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왜 소환 전에는 몰랐을까?

그렇게 간단한 것을......


지근 당장 이룰 수 없어도 상관없다.

꿈이 작던 크던, 그 크기도 상관없다.

단지 꿈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 오늘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현수는 육표를 씹으며 지난 삶과 지금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며 일어섰다.


“뭐. 그렇다면 그런 거네요. 지금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거든요.”


현수는 다시 석상으로 다가가 검을 빼어들었다.

그렇게 또 다시 며칠이 지났다.

입이 둘이기에 가지고 왔던 식량도 빠르게 줄어 어느덧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오네님. 식량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 것 같은데. 일단 다시 마을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오네는 많이 지루했던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그래요. 일단 마을로 가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현수는 아이오네와 다시 마을을 찾았다.

마을에 들어서자 에멀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겼다.


“벌써 오신 거예요? 아침에 나가시더니. 뭐가 잘 안되었나 보죠?”


현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 아침이라니요? 출발한지 열흘은 넘은 것 같은데. 가져갔던 식량이 다 떨어져서 온 거라고요.”


에멀린은 현수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답했다.


“분명 아침에 두 분이 출발하셨어요. 그리고 점심 먹고 나니 두분이 오신 거고요. 정말 마을에서 미궁까지 걸어갔다가 바로 다시 되돌아 온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거죠. 그렇지 우고콰?”


옆에 있던 우고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자 아이오네가 현수의 편을 들었다.


“정말이예요. 신께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열흘가까이 그 탑에서 2층에 머물러 있다가 이제야 나온걸요?”


아이오네가 신의 맹세까지 언급하자 다들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크크크. 다들 어리석긴. 그 탑에서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흘러간다.>


벨페고르가 힌트를 주자, 현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혹시? 시간과 공간의 방....... 이라는. 아니. 그러니까. 그 탑 안의 시간은 이곳과 다르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아예 시간이 멈춰있던지.”


그러자 에멀린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네요. 저희는 분명 아침에 나갔다가 점심에 들어왔다고 느꼈지만, 두 분은 열흘이란 시간을 보내셨다니 말입니다.”


현수는 성장의 기회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웃으며 아이오네에게 말했다.


“아이오네. 그러면 이제부터 탑은 저 혼자 갈께요. 아이오네는 이 마을에 계셔도 될 것 같아요. 어차피 2층의 석탑은 저 혼자 공략해야 할 것 같으니.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현실 시간으로는 말이예요.”


2층에서 홀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던 아이오네는 순순히 수긍했다.


“그래요. 그럼. 미궁 입구에 식량을 가져다 둘 테니 식량이 떨어지면, 탑 밖에서 가져다 드시면 될 거예요.”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현수는 홀로 미궁의 탑으로 향했다.

2층의 석상을 대상으로 본의 아닌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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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출정 23.12.25 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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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 23.12.18 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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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가긴 어딜가려고! 23.12.16 10 1 11쪽
25 거기 누구 있어요? 23.12.16 9 1 11쪽
24 그놈들 때문이었네 23.12.16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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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천지개벽 23.12.14 1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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