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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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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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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0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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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23)

DUMMY

란툰 반도는 에우로파에서도 유서 깊은 지방이다. 이 반도는 에우로파의 고대 문명이 태동하고 최초의 제국이 탄생한 곳으로, 이 지역이 지니는 문화적, 역사적 영향력은 말 그대로 신이 내려주셨다고 해도 옳다.

란툰 반도에 근거지를 두는 교황이 그 증거라 할 만하다. 교황은 통칭 구교라고 일컫는 전통적인 가톨릭교의 수장으로 이 란툰 반도의 중심지에 교황령을 구축했다. 그곳은 찬란한 고대 란툰 제국의 중심지인 '로마네스'라는 도시로 교황은 이 도시를 근거로 과거 천 년 동안 모든 기독정교의 전파와 세력 확장에 영향을 끼쳤다. 이 위대한 교회의 수장은 전통적으로 모든 세속적인 군주의 우위에 있으면서 몇 백 대에 걸쳐 이어지며 모든 기독교국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힘의 균형 또한 재편되기 시작하였다. 교황의 수호국이던 다니치 신성 제국에 프로테스탄트 혁명이 일어나면서 제국의 지위는 히스파니아로 넘어갔다. 지금의 다니치는 수십 여 개의 왕국과 공국이 각자 독립하여, 구교와 신교로 나뉘어 싸우는 판국이 되었고, 이 구교, 신교 분쟁에 강대국들까지 끼어들게 된 것은, 전적으로 권력 승계의 복잡한 갈등 때문이었다.

20년 전, 란툰 반도 북부의 까살라 지방을 다스리던 대공이 죽고 말았다. 이 일은 란툰 반도의 도시 국가를 비롯하여 여러 국가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대공의 가문이 얽힌 복잡한 계승 규정 때문에 대공의 지위를 이어받아 까살라 지방을 통치할 사람이 북부 프로테스탄트의 헬센 가문 공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공은 자신의 영지를 신교도들에게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의 모든 영지를 교회의 수호국인 히스파니아 제국 아라고른 황가에 바치기로 결정한 터였다. 까살라 지방은 항상 교황이 정한 제국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 제국이 다니치에서 히스파니아로 바뀐다 해도 그것은 변치 않았다. 그러나 헬센 가문이 그것에 반발했고, 교황은 중재할 생각조차 없었으며 두 진영 다 단단히 벼르던 전쟁은 그런 식으로 일어나게 됐다.

이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전쟁을 치루는 주요 국가들은 많은 부분에서 극심한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히스파니아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다니치에서는 영지를 물려받을 헬센가의 공작은 홧병으로 죽고 말았다. 까살라 지방의 란툰 반도 사람들은 인구의 10분의 1이 전쟁으로 사망했으며, 신교 측의 헬센가가 끌어들인 빌랜드인과 북부의 발트인들은 언제 발을 빼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끈질긴 전쟁을 계속해나갔다.

그것은 까살라 지방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의용군을 편성했고, 도시로 침범해오는 신교도 군대와 싸웠다. 전쟁이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들은 프로테스탄트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의 투쟁을 거듭해왔다. 그들은 애당초 프로테스탄트 주인을 받아들일 마음도 없었고, 그것을 교황과 제국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각국의 협상가들은 에우로파 전체를 파탄으로 끌어들인 이 전쟁을 종식하고자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 허사가 되었다. 까살라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고, 헬센 가는 까살라의 일부라도 얻지 않으면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전쟁은 별 수 없이 10년을 끌었다.

히스파니아와 란툰 반도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히스파니아의 수도 아스티아노에서 마차를 타고 가면 란툰 반도의 경계선까지 다다를 수 있다. 북 란툰 반도의 까살라 지방은 이러한 지리학적 위치 때문에, 히스파니아의 영향력을 많이 받아온 곳 중 하나였다. 통일된 왕국이 없는 란툰 반도에서, 대공이 다스려온 이 까살라 지방은 넓은 평야에 풍요로운 곡식들이 생산됐고 많은 인구가 상주하고 있어서 예로부터 지리적으로 가까운 히스파니아가 영향력을 행사했던 곳이다.

그러므로 까살라와 히스파니아 사람들의 동질성은 위화감이 없는 수준이다. 그들은 같은 란툰 민족이고,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며, 비슷한 식생활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비슷한 기후에 정열적이고, 인생을 열정적으로 즐기며 포도주를 좋아하는 것도 똑같다. 다만 전쟁만 아니었다면 히스파니아보다 풍족하게 살았겠지만 말이다.

병력을 실은 포장마차 대열이 국경을 넘고 있었다. 히스파니아에서 란툰으로 향하는 국경에는 산맥이 하나 있는데 이 험준한 산맥을 넘게 되면 란툰 반도의 넓디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지중해의 가운데로 길쭉하게 나 있는 평야의 가운데에는 교황령인 로마네스가 있다. 그들의 도착지인 까살라는 이 평야 북부의 노른자위 땅을 먹고 있는데, 이곳은 란툰 반도가 위치한 지중해의 바다 및 항로와 직접적인 연결이 되어있다.


늦은 오후였다.

마차의 대열이 산맥을 지나, 란툰 반도가 펼쳐지는 내리막길로 이동하고 있었다. 덜그럭거리는 마차 안에서, 녹색 제복 차림의 총사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벨린은 시집을 한 권 다 읽고서는 팔베개를 베고 누운 참이었다.

‘술 고프군.’

일주일 째 술을 마시지 못했다. 산맥을 따라 내려간 탓도 있지만, 포도주의 본산지인 란툰 반도에서 포도주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전쟁 통에 포도주가 말라버린 건지, 아니면 포도밭이 집중포화를 당한 건지. 술을 즐겨 마시던 인간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라, 벨린은 삼각모로 얼굴을 덮고서는 속편하게 시에스타(낮잠)를 즐기기로 했다.

문득 그의 뇌리에 총사대 장교가 주었던 임명서가 떠올랐다. 벨린은 제복 재킷 속에서 그 명령서를 꺼내고서는 태연히 봉투를 열어봤다. 알고 보니 봉투에는 명령서 말고도 또 다른 종이가 한 장 더 있었다.

벨린은 그 종이를 들춰보고서는 자리를 고쳐 앉았다.

알고 보니 황녀가 쓴 짤막한 편지였다.

‘너는 사냥꾼이 되어주겠다고 했지. 짐이 제공하는 사냥터가 마음에 들길 바라마. 그곳에서 큰 사냥감을 많이 사냥한다면 짐이 너를 다시 보겠다.

-이사벨 데 아라고른-’

그는 편지 내용을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이 편지를 쓰고 있을 황녀와 그녀의 복잡한 심정과 이도저도 못하는 딜레마가 저절로 떠올라서였다.

‘자존심이 센 황녀 마마로군.’

일단은 거리를 두고 싶은 모양이로군. 아마 집무에 해가 될까봐 기를 쓰는 걸 거야.

아무렴 그녀가 무슨 선택을 내린다 해도 벨린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급하고 초조한 것은 그쪽이지 이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극히 여유로웠다. 수도에 있을 때보다는 전쟁터가 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이 전쟁터의 특성이기는 해도, 애당초 사는 것이 생존하는 것이다. 지금처럼만 해나간다면 문제될 일이 없다.

그가 편지를 집어넣고 눈을 감으려는데 마차가 갑자기 멈췄다.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사람들이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는 소리가 났다. 어디선가 희미한 둔중음이 들리는 듯했다. 아마도 폭발음인 모양이었다.

총사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깬 가운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모두들 나와 봐! 전장이 보인다!”

그 말에 총사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삼각모를 쓰고 총을 챙긴 다음 포장마차 밖으로 나섰다.

벨린은 맨 마지막으로 그들을 따라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산맥 아래로 펼쳐지는 란툰 반도의 평야가 보였다. 그 평야의 구석에는 까살라 지방의 영지와 도시가 있었고, 그 도시 밖의 비옥한 평야 위로 이열대형과 밀집대형을 갖춘 야전 부대의 행렬이 드러났다.

견장을 단 장교가 망원경을 꺼내 전장을 보았다. 그가 큰 바위 위로 올라가서는 주변에 있는 총사들을 위해 자신이 보이는 것을 말해주었다.

“아군 부대가 있군. 히스파니아군의 깃발이 보여. 란툰 반도 사람들도 제법 참전을 한 모양이야. 오랜 만에 큰 전투를 치르는 거야.”

“적은 어느 나라 부대입니까? 누구와 싸우게 되는 거죠?”

“다니치의 신교도 연맹 국가들의 깃발이 보여. 빌랜드의 경우 군기는 어느 부대인지 모르겠어. 붉은 색 군기를 달고 있는데 처음 보는 부대야. 아마 마법사 나부랭이 같은 놈들이겠지.”

“그런 놈들이라면 자네들이 멀리서 총탄을 쏴주면 되겠지. 아니면 대포로 날려버리던가.”

총사대의 이동을 인솔하는 대령이 호탕하게 말했다. 그는 저 전투에 참전하려거든 서둘러야 한다고 종용했고, 총사들은 즉각 대규모 전투에 대해 수군거리면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총사들을 태운 마차가 다시금 평야에 펼쳐지는 전장을 향하여 출발하기 시작했다. 대포 소리가 나지막이 메아리를 치는 바람에 총사들은 다시금 낮잠을 잘 수 없었다. 덕분에 그들은 자기의 총을 쥐고 긴장을 풀 겸 떠들어댔고, 벨린은 이왕 지옥으로 갈 것이라면 화려한 지옥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쳤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평야를 향해 달리는 와중에도 수만 명이 동원된 치열한 전투는 펼쳐지고 있었고, 그들이 그렇게 지옥의 한폭판에서 죽어나가는 것도 참으로 재미난 일이었다. 그들의 군복과 깃발은 죽음보다는 영광을 기리듯 화려했지만, 머스킷총의 일제사격과 5파운드 대포의 포도탄은 그들을 주저 없이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그것도 서로가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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