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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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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30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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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베나레스의 총사(17)

DUMMY

그것은 습격 때 잘려나간 그의 한쪽 귓불이었다. 그 큼지막한 살점은 건조된 곳에 두어 말라비틀어졌고, 피가 말라 이곳저곳이 검붉게 변색된 상태였다.

벨린이 냉랑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을 당신의 왼쪽 귀와 대조해보면 어떨까? 나는 분명 봤는데 말이야.”

데 모레는 아연실색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떨지 않았다. 마치 이렇게 들킬 것을 언젠가는 각오했다는 듯이 표정이 변했다.

“자네는 우릴 배신했어, 데 모레.”

스피놀라의 목소리였다. 총사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사브레를 뽑아든 채였다. 권총이나 머스킷총을 겨누지는 못했다. 지하 내부가 화약으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벨린 데 란테의 제보에 따라, 자네의 방에서 물증을 찾아냈지. 흥미로운 것들이 아주 많이 나왔어. 각종 장부서부터, 내일 개관할 히스파니아 중앙은행까지 파 놓은 비밀 갱도의 지도까지 말이야.”

데 모레는 천천히 자신의 검자루로 손을 댔다. 그대로 연행될 태세는 아닌 것 같았다.

스피놀라가 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황녀 마마를 암살하려는 일차 습격이 실패하자, 자네의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음모를 꾸몄어. 우리가 몰래 내사를 해보니 총사대의 탄약고 책임자를 매수하여 많은 화약을 빼돌렸더군. 자네가 훈련 때마다 들락날락하면서 매수한 탄약고 책임자들의 명단을 우리가 확보했네. 이 탄약으로 자네는 중앙은행 개관식 때 황녀 마마를 비롯한 모두를 날려버릴 계획을 세운 것 아닌가?”

이윽고 데 모레가 검을 뽑으며 살기 등등 소리쳤다.

“맞아. 자네가 한 말이 다 옳아. 하지만 아직 실패하지는 않았다! 동지들!”

그의 외침에, 어둠 속에서 사람 그림자들이 걸어 나왔다. 챙이 넓은 모자에 검을 쥔 사내들이었다. 그들이 검을 뽑으며 총사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면죄부는 필요 없다! 죽여라!”

신교도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총사대가 적과 검을 부딪치며 그들과 맞섰다.

서로가 인정사정을 봐줄 싸움이 아니었다. 총사들과 역모를 꾸민 반란자들은 짐승처럼, 마치 자신이 검이 마치 날카로운 이빨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을 찔렀고, 적의 안면에 대고 휘둘렀다.

적의 수와 총사대의 수가 엇비슷한 가운데 벨린에게로 한 명이 달라붙었다. 어쩌면 저번에 복면을 쓰고 마차를 습격했던 무리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었다. 벨린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무작정 세검을 휘두르는 그의 팔을 후려친 다음, 가슴을 힘껏 찔러버렸다. 녀석은 가슴을 쥐더니만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검술 능력이 우월한 근위총사대가 녀석들을 압도해나가면서 곳곳에서 밀고 들어가는 형상이었다.

한쪽에서 스피놀라가 데 모레의 검을 떨어뜨리고 그의 목에 검을 겨누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데 모레는 자포자기의 심정인지 허리춤에 끼고 있던 권총을 재빨리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스피놀라의 검을 고개를 숙여 피하고서는 무작정 뒤를 돌아 달려서는 권총의 격발장치를 당겨 장전을 하려고 했다.

총사들이 순간 섬뜩했다. 권총을 쏘려고 한다는 뜻은, 이 화약고에 불을 지르겠다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저 녀석이 권총을 화약통에 쏜다면 다 죽어나갈 판이었고, 문제는 녀석이 미친 사람마냥 괴성을 지르며 뒤로 달려서는 어두운 이 지하실 내부로 숨어버리려고 한다는 데 있었다.

그때 벨린이 나섰다. 그는 데 모레의 건너편에 있었고, 그가 손을 쓴다면 달려 나가는 녀석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순간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데 모레와 벨린에게로 눈을 고정했고, 벨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발을 뻗어 녀석을 걸려 넘어뜨렸다.

데 모레가 바닥으로 한바탕 굴러서는 넘어졌다. 벨린은 재빨리 그에게 뛰어가서는 발로 녀석이 들고 있던 권총을 차버렸다. 그리고는 녀석의 멱살을 잡아 주먹으로 얼굴을 힘껏 쳐서는 데 모레를 완전히 바닥으로 뻗게 만들어 헤치웠다.

벨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데 모레의 머리칼을 들춰 자신이 제대로 보았는지 확인해보았다. 틀림없었다. 그의 왼쪽 귓볼은 살덩이가 뭉텅 뜯겨 보기 흉하게 파여 있었다. 벨린이 병을 들어 살점과 모양을 비교해보니 딱 들어맞았다.

그 일이 반역자들의 기세를 완전히 수그러지게 한 게 틀림없었다. 그때 미늘창으로 무장한 근위총사대 소속 근위병들이 몰려왔고, 반역자들을 포위해서는 위력적인 미늘창을 겨눴다.

미늘창의 끝이 얼굴을 향하자, 반역자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들은 질린 얼굴로 검을 버리기 시작했고, 훗날 프로테스탄트 화약음모 사건으로 알려지는 이 역모는 이렇게 종지부를 맺고 말았다.


상황이 끝난 듯했다.

지원을 나온 근위총사대의 근위병과 나머지 총사들이 그들을 모두 밧줄로 묶어 압송해갔다. 그들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는 가운데 지하계단을 걸어 나와야 했고,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은 또 밀주 단속에 업자들이 체포 됐나 해서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반역자들 가운데 하나가 프로테스탄트 만세! 하고 외치자, 시민들의 반응은 꽤나 재미있어졌다. 그들은 요즘에는 제국의 전복을 기도할 정도로 돈이 많다던 프로테스탄트들도 밀주를 만들어 파는 모양이라고 키득거렸으며 신교도들은 빌랜드로나 가버리라며 온갖 야유를 퍼부어댔다.

스피놀라가 말했다.

“내일 있을 중앙은행 개관식까지는 이 일은 비밀로 해야 하네. 혼란을 일으키면 곤란하니까.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군. 자네 어떻게 황녀 마마께 메시지를 보냈다는 거지?”

“저에 대한 포상 문제 때문에 협상을 하던 차였습니다. 서신을 주고받았죠.”

“뭐라고?”

스피놀라가 어리둥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 친구가 지엄하신 황녀 마마와 협상을 했다고 말을 하는 것인가?

그때 어느 근위병이 반역자들을 처리할 행정절차 때문에 스피놀라에게 질문했고, 그는 상급총사의 도리대로 그 질문을 열심히 답변해주느라 자리를 비워야했다.

죄수 수송 마차가 반역자들을 실어갔다. 벨린의 주먹에 기절하여 들것에 실린 데 모레가 맨 마지막으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마차는 기병들의 호위 하에 사건 장소를 떠났고, 시민들은 진실도 모른 채, 어마어마한 밀주가 황실에 의해 압수되겠다면서 술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사라졌다.

한편 벨린은 자신의 챙이 넓은 깃털 모자를 똑바로 쓰며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니, 그는 황녀에게서 받아날 또 다른 빚에 희미하게 웃는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5장 - 무도회


11월이 되었다.

길고 긴 훈련 기간이 끝나고, 히스파니아 제국 신임 총사의 임명식이 총사대본부의 연병장에서 엄숙하게 이루어졌다.

총사대의 임명식은 보통 저녁에 이뤄지곤 한다. 이는 상징적인 의미로, 50년 전, 히스파니아가 처음으로 총사대를 창설했을 때 이 부대를 전장에서 저녁 전투를 대비하여 급조한 것에서 비롯되는 전통이다.

갓 임명된 총사 벨린 데 란테는 다른 수십 명의 신임 총사와 함께, 깃털 달린 모자에 푸른 총사대 예복을 입은 차림새로 연병장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연병장에는 삼백 명에 달하는 총사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들의 맨 앞줄에는 우수한 실적으로 총사대 훈련을 통과한 벨린, 알레한드로, 조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총사대 임명식은 거의 볼 만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총사대는 별로 예의를 차리는 부대가 아니었고, 애당초 총사대가 생겨난 이유도 유능한 정예 병사들을 곧바로 실전에 써먹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곳에 있는 병사들의 거의 대부분은 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5개 총사연대로 배치되어 실전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소리다. 그중 일부는 총사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근위총사연대에 편입되어 황궁을 호위하는 편한 임무를 맡게 될 테지만.

총사 임명식이 막바지에 치닫는 중이었다. 길고 긴 총사대장의 연설이 끝나고, 이제 예장대가 공중으로 축포를 쏘는 일만 남았다.

“이상.”

총사대장이 간결하게 말을 마쳤다. 그러자 의장대가 보병총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하늘을 향해 축포를 쏘았다. 임명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총사들이 검을 하늘로 뽑아 올렸다. 새 총사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였다. 이날의 임명식은 다른 날에 비해 더욱 특출한 감이 있었으니, 비밀리에 국가를 두 번이나 구한 벨린 데 란테가 공식적으로 총사가 된 날이라 그러 했다.

신임 총사들은 이제야 끝났다는 안도감에 모자를 벗으며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벨린은 어느새 조안과 알레한드로를 비롯한 다른 총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조안이 말했다.

“마침내 끝났어. 월급도 이제 두 배로 오른다고.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아.”

“자네 가족을 위해 좋은 일이군.”

벨린이 웃으며 조안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들은 삼 개월 간의 고된 훈련을 끝낸 총사답게 서로를 기쁘게 격려하며 연병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알레한드로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드라고니스에 가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야지. 아마 오늘은 우리들이 아스티아노 시내의 술집을 모두 점령해버리겠지?”

“자네들에게 무척 미안한 말이지만….”

벨린이 신임 총사들을 둘러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오늘은 곤란해. 약속을 잡아둔 게 있어서 말이야.”

그 말에 총사들이, 벨린이 빠지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우우 하고 야유를 했다. 하지만 곧 신임 총사들은 술집에다 계집질이라면 빠지는 일이 없는 벨린이 빠진다고 하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가 때였는지라, 그때를 노려 벨린이 한마디 덧붙였다.

“귀중한 분의 호출일세.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지.”

조안이 웃으며 말했다.

“어서 가봐. 우리는 같은 연대에 소속될 것 같으니 어차피 다시 볼 거 아냐.”

“그럼 이만.”

벨린은 다른 신임 총사들보다 먼저 연병장을 나섰다. 그는 잘 손질된 총사대 제복의 먼지를 털면서 총사대 본부 정문으로 향했다. 그의 복장은 정식 총사대 제복에, 하얀 깃털이 달린 삼각모, 훈장까지 단 예장용 차림으로, 어떤 고관대작을 만난다 해도 손색이 없을 차림새였다.

길 건너편에 어느 마차가 한대 대령해 있었다. 황실의 인장이 문에 찍혀 있는 고급스러운 마차였다. 벨린은 그 마차로 걸어갔다.

마차 앞에서 서 있는 황실에서 나온 신사가 물었다.

“당신이 벨린 데 란테입니까?”

“그렇소.”

그 말에 신사가 마차의 문을 열며 말했다.

“어서 타십시오. 마마께서 극진히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벨린은 희미하게 웃으며 마차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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