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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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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23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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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베나레스의 총사(12)

DUMMY

벨린이 말했다.

“자네, 매우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겁이 나는 거라도 있나?”

“겁이라니!”

그 말에 알레한드로가 발끈하여 소리를 질렀다.

“누가 겁이 난다고 그래! 나는 단치히 전투를 승리로 이끈 탈레스 연대 출신이야! 총탄이나 마법 따위는 전혀 겁이 나지 않아!”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벨린이 일어나며 여유롭게 말했다. 알레한드로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말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자, 자네는 내가 싸워온 방식이라는 걸 알지 모르겠군.”

그의 목소리는 목이 말라 칼칼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전쟁터에서 싸운 적이 없어. 자네야 사냥꾼이었다니 모르겠지만, 대열을 맞추지 않고 어떻게 전쟁에 임하란 말인가. 세상에, 총사라고 하기에 나는 최고의 부대인 줄 알았지, 그런 식으로 싸우는 부대일 줄….”

“자네는 그럼 무엇 때문에 싸워왔지?”

벨린이 날카롭게 물었다. 이것만큼은 알레한드로도 주저하지 않았다.

“당연히 국가에 충성하고 애국하기 위해서지! 나는 다른 멍청이들처럼 돈을 위해 군대에 들어온 게 아냐!”

“그렇다면 별로 중요할 것도 없겠군.”

벨린이 남의 정곡을 찌르는 듯이 말했다.

“만약 적을 무찌르는 것이 애국이라면 이 길이야말로 더 애국하는 길이겠지. 적의 지휘관을 사냥한다면 적 한 부대는 없앤 거나 다름없는 일이지 않나.”

알레한드로가 우물쭈물했다.

“하, 하지만 그건 정정당당하지가….”

“그건 자네의 문제겠지. 하지만 조국은 아마 자네가 바라는 명예를 바라지는 않을 걸세.”

벨린은 녀석이 빠진 딜레마를 느긋이 즐기며 팔베개를 하고 풀밭으로 누웠다. 알레한드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자기고민에 빠져 스스로가 화를 냈지만 벨린이 지적하는 말이 논리적인 오류가 없었기에 감히 화풀이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제길! 하고 내뱉고서는 병영으로 내달려갔다.

벨린은 하늘을 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빛내고 있었다. 물론 별들이 그가 살았던 란테 지방의 별만큼이나 무수할 수는 없다. 그곳은 높은 산에 올라가면 별들이 한 가득 보였지만, 이곳은 아무래도 도시인지라 주변의 빛들 때문에 별빛이 가려지게 된다.

벨린은 별을 보다 지그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서로 다른 가치 때문에 똑같이 싸운다는 게 참으로 이상했다. 누구는 벌어먹기 위해 싸우지만, 누구는 애국과 국가의 충성심을 위해 싸운다. 그런데 정작 애국을 한다는 녀석이 싸우는 방법을 따지고 들다니. 그 정도의 의무감이 있다면 자신의 명예는 국가에 희생할 정도의 헌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돈 때문에 싸우는 녀석도 가만히 있는 판국에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걸까. 아마 여흥 때문이겠지.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쏘아 죽이고 검으로 찌르는 것이 내가 가장 잘 할 줄 아는 일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그날의 그 일만 없었다면, 벨린도 저 거인처럼 단지 애국심과 충성심 때문에 총사가 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고, 그로서는 이제 마음껏, 이런 식의 해프닝마저 한량처럼 즐길 따름이었다.


훈련을 시작한지 둘째 날. 후보생 가운데 삼분의 일이 총사대의 자율성과 명예롭지 못한(?)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진으로 퇴소했다.(물론 그들 가운데에는 새로운 체계에 겁을 먹은 녀석들도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그들은 아마 원래 연대로 복귀할 것이고 그 연대에서 다시금 대열을 이루며 일제사격을 하는 임무를 띠게 될 것이다. 어쩌면 연대장이 유능한 병사가 돌아온 것을 축복하며 부사관으로 임명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밀집대형으로 경직된 군대를 이끌면서 장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총사대는 병사, 부사관, 장교로 계급을 구분 짓지만 모두들 똑같은 총사로 존중하고 대우한다. 이것은 총사대가 창설됐을 때부터 이어진 전통이었다.

이곳 훈련관들은 모두가 대위급 장교들이었다. 그들은 한번씩 전장에 나가 뛰어난 공을 세우고 돌아온 총사들로, 그들의 임무는 새로운 총사들에게 전투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기초 훈련이 반복됐다. 바로 체력 훈련이었다. 총사는 유격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사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이 바탕 되는 일이다. 단지 땅바닥에 서서 장교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그런 일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처음 한 달 동안, 그들은 오전 내내 연병장을 뛰었고, 장애물을 넘었으며, 숲을 가로질러 신속히 이동하는 훈련을 했다. 처음 한 달은 오로지 기초체력을 잡는 훈련뿐이었다.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다음 훈련을 효과적으로 치룰 수가 없었다.

연병장을 구보하는 첫날, 그들은 푸른색의 예장용 제복이 아닌, 녹색의 전투용 제복을 입고 달리기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벨린과 그 옆에서 달리던 조안은, 병영 안에서 보이지 않았던 한 거인이 뒤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레한드로였다. 그는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뒤에서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벨린 데 란테, 이 사냥꾼 같으니! 네 녀석의 말이 옳았어! 나는 국가를 위해 내 명예를 악마에게 저당잡기로 결심했다!”

“단순한 녀석.”

벨린은 작게 투덜거릴 뿐 큰 소리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는 녀석을 보고 총사대에 남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녀석이 무슨 선택을 했든 그것은 녀석 스스로의 문제였다.

달리기가 끝나자, 그들은 곧바로 연병장 구석에 설치된 장애물 코스로 갔고, 그곳에서 온갖 장애물을 넘고, 포복을 취하면서 적의 공격에 대비할 각종 요령을 익혔다.

특히나 그들이 한 달 간 많이 한 훈련은 바로 여러 가지 장애물로 구성된 코스를 빠른 시간 내에 지나가는 훈련이었다.

기초체력 훈련이 끝나자, 오후 들어 장애물 넘기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전장의 여러 지형 밑 상황을 재현해 놓은 코스였는데, 이 훈련을 받는 참가자는 외나무다리 건너기, 전력질주, 포복, 적의 총격 피하기, 굴러오는 통나무 피하기, 등등 다양한 함정과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이 훈련을 하는 이유는?

훈련관 중 하나는 종종 아주 간단히 말하곤 했다.

“너희들이 살 길은 오직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신속히 전진하거나, 아니면 신속히 도망치거나.”

알레한드로가 투덜거렸다.

“쳇, 옛날에는 도망치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는데.”

“자네는 덩치에 비해 쫑알대는 버릇이 있군. 세뇨르 알레한드로.”

후보생들이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알레한드로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덩치에 맞지 않게 단단히 삐진 얼굴로 변했다.

그 훈련에는 어제만 해도 보이지 않던 데 모레 훈련관이 나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챙이 접힌 모자를 귀 밑까지 눌러 쓴 차림새였고, 겉으로는 여유롭게 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곳저곳을 슬쩍 쳐다보는 눈길은 변하지 않았다.

훈련이 시작되면서 하나 둘 장애물을 넘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장애물을 잘 넘지 못했다. 그들은 이곳저곳에서 걸려 넘어졌고, 마치 순발력 부족인 것처럼 뜸을 들였다. 훈련관들이 그들을 따라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다.

“그렇게 뜸을 들이다가는 기병들이 네 등을 검으로 베고 말 것이다!”

“훈련관님, 차라리 그러기 전에 놈을 총검으로 찔러버리면 안되겠습니까?”

“놈들의 검을 모조리 막아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다른 후보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안은 비교적 장애물을 잘 넘었다. 마치 다람쥐 같았다. 그는 능숙하게 벽을 타고, 통나무를 넘고, 가짜 더미 공격 마법을 피해 무사히 달음박질을 쳤다.

데 모레가 몸소 그를 칭찬했다.

“움직임이 좋다. 1분 20초라. 몸이 매우 날렵하군, 조안.”

“감사합니다. 훈련관님. 이게 다 옆집 담벼락 덕분입니다.”

“담벼락 덕분이라고?”

“네, 동생들의 빵 값 때문에 뭐를 훔치려면 틈만 나면 넘어 다니고 해야 했지요. 쥐새끼가 따로 없었죠. 히히.”

그 말에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다. 이건 군대에 자원할 만큼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애국과 충정 때문에 지원한 이도 있었기에 못마땅하게 여기는 축도 있었지만 말이다.

드디어 벨린의 차례가 왔다. 덩치에 비해 은근히 소심한 알레한드로가 단단히 벼르는 가운데, 훈련관의 신호에 맞춰 벨린이 장애물 넘기 코스를 출발했다.

사실 그는 이 훈련에 매우 자신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했고, 그에게도 순수한 열정으로 고진감래를 견뎌내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가 열여섯 살 때였을 텐데. 잡풀이 무성한 공터. 그 공터 한복판에 벨린은 서 있었다. 그는 머스킷총을 어깨에 걸친 채로 수풀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셈을 새었다.

"셋, 둘, 하나."

갑자기 수풀 속에서 검고 작은 물체가 날아올랐다. 그는 지체 없이 머스킷총을 쏘았다. 타앙! 연기가 미처 피어오르기도 전에, 그 작은 물체가 공중에서 산산 조각났다. 그와 동시에, 청년은 총을 재빨리 내려놓고는 손 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비수가 청년을 향해 날아왔다. 그는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그리고는 몸의 균형을 가누자마자 다시금 전력 질주했다.

그의 눈앞에 긴 통나무로 만든 외나무다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다리를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놀라우리만치 뛰어난 평행감각을 보이며 통나무다리를 잰 걸음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통나무 다리를 반 정도 지나갈 무렵, 갑자기 기계장치라도 작동하였는지 통나무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균형을 잃어버릴 상황. 허나 청년은 여유 만만했다. 그는 상당한 점프력으로 공중을 한 바퀴 회전해서는 무사히 바닥에 착지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십자 형태의 허수아비 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청년의 머리를 힘껏 후려치려고 했다.

그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두 허수아비가 마치 살아 움직이기라도 하듯 펄쩍 뛰어서는 청년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덤볐다. 청년은 재빨리 세 검을 빼내서는 가장 먼저 달려오는 허수아비의 머리에 직격으로 그었다.

파악!

허수아비의 머리가 저만치 날아갔다. 나머지 허수아비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청년은 당황해 하지 않고, 칼을 빙 돌려 팔꿈치를 치듯 겨드랑이 사이로 푹 찔렀다.

뒤를 덮치려던 허수아비가 허리 기둥이 찍혀서는 완전히 나가 떨어졌다.

청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서는 마지막 함정을 피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고음의 날카로운 주문소리가 찌렁 하고 울려 퍼졌다.

눈부신 불덩어리가 날아오더니 청년의 바로 뒤쪽에 작렬했다. 곧이어 붉은 화염이 날름거리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태연자약했다.

갈색머리 청년이 전속력으로 달리며 코웃음을 쳤다. 저 멀리 밑줄을 그어 표시한 도착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뛰어가기만 하면 모든 테스트가 끝나는 것이다.

‘성공이다!’

갑자기 수풀 속에서 시커먼 것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도착지점에 들어가는데 한눈이 팔린 벨린을 등 뒤에서 덮쳤고, 벨린은 자기도 모르게 으악! 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벨린을 쓰러뜨린 그 존재가 단검을 그의 목에 겨눴다. 벨린은 청년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아연 침묵하고 말았다.

굵고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이미 죽었다.”

벨린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을 꼼짝 못하게 만든 남자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벨린이 모든 것을 눈치 채고는 원통해하며 외쳤다. 또 당했어. 또 아버지한테 당한 거라고!

아버지 빈센초는 아들의 어깨를 툭 치고는 단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아들을 일으켜주었다.

“네가 아무리 날아봤자 이 아버지한테는 못 당한다.”

“아, 참 너무하세요!”

“하하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벨린의 테스트를 지켜보던 은빛 늑대도 달려와서 그들 주변을 맴돌면서 꼬리를 쳤다.

“완벽하게 성공했는데, 한번쯤은 봐줄 수도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넌 아직 멀었다, 녀석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사기예요!”

그때 연습장 근처의 둔덕 위에서 누군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두 남자에게 포착되었다. 그들은 둔덕으로 눈을 고정했고, 일순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특히 벨린이 많이 놀랐다.

“어. 어머니?”

벨린의 어머니, 사이프러스의 키레네가 전형적인 전투 마법사 복장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붉은 머리는 풀어헤쳤고 나풀거리는 붉은빛 드레스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은 차림이었다. 목에는 각종 마법 장신구들이 걸려 있었고 한 손에는 붉은 빛을 뿜는 마력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나이는 둘째 치고, 기껏해야 30대 초반에 상당히 도도하고 요염해 보이는 차림에 두 남자는 눈을 때지 못했다.

“우와, 여보.”

빈센초가 헤벌레 웃으며 말했다.

“꼭 소싯적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

“훗.”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두 남자 곁으로 왔다. 벨린은 처음으로 어머니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아, 저런 게 바로 마법사의 복장이구나. 왠지 정말 강하고 대단해 보인다. 게다가 되게 매력적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다가가서는 허리를 손으로 감았다. 그리고는 낯부끄러워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역시나 내 마누라라니까. 마법 실력도 일품이고,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아.”

“아잉, 당신도 참.”

“헌데….”

빈센초가 아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희한하다는 투로 말했다.

“어떻게 그 나이에 회춘술을 유지할 수 있지?"

퍽. 아버지가 아랫도리를 부여잡더니 그대로 끽 소리도 못 내고 쓰러졌다. 아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로 그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손을 털면서 윽박질렀다.

“이 양반이 보자보자 하니까. 오늘 한번 제대로 붙어볼래?”

“아, 미안해, 키레네. 당신 마법실력에 걸리면 포병대를 동원해도 못 막지.”

부모님이 그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장난삼아 싸울 무렵이었다. 저 멀리서 은빛 털을 지닌 짐승이 뛰어왔다. 늑대였다.

“쭈!”

벨린은 바닥에 앉아 쭈를 품에 안았다. 녀석이 꼬리를 치며 컹컹 짖어댔다. 아주 영리한 녀석이야. 내가 시험을 받는 줄 알고 방해받을 까봐 멀리서 기다리다니.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 웃어보였다.

“허 참. 늑대를 벌써 삼년 째 키우니까. 저게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이 안 가는군.”

“늑대인 건 분명해요. 쭈 때문에 고기가 몇 근이 나가는데요.”

어머니가 늑대 녀석이 개 행세를 하고 얄밉다는 투로 이죽거렸다.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를 말렸다.

“그래봤자 당신이 만들어 파는 시약 가격의 백분지 일도 안 되는걸 뭐.”

“그럴 거면 도시에 나가서 살 일이죠. 내 실력이면 이 가족 전부 집채만 집에 살게 해줄 수 있는데.”

“설령 당신이 납을 금으로 만든다 해도 그러지는 않을 거야. 여긴 내 고향인걸. 고향을 두고 어디 가서 산단 말이야?”

“맞아요, 어머니. 우리한테 여기가 더 좋은 걸요.”

“촌놈들 하고는!”

어머니가 단단히 삐쳐가지고는 마법사 복장으로 먼저 걸어갔다. 쭈가 뒤에서 꼬리치며 따라오며 어머니의 노출된 종아리를 핥으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단번에 질색을 했고, 이 녀석이! 하고서는 집으로 손살같이 뛰어가 버렸다.

벨린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저 녀석 앞에서는 목숨도 맡길 수 있어요. 전에 숲에서 큰 일 날 뻔 했을 때요. 녀석 때문에 살았던 거예요.”

아버지가 진지한 어조로 충고했다.

“그때는 정말 조심했어야 했어. 자연이란 게 워낙 변화무쌍한 거니까. 어머니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죄송해요. 아버지.”

아버지가 벨린과 어깨동무를 했다. 그는 이미 아버지 키만큼이나 자라서 더 키가 자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두 부자는 포근한 마음을 품으며 집이 있는 언덕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고, 언덕 아래에 있는 쭈의 울부짖는 소리가 우우우 하고 울려 퍼졌다.


벨린이 골인 지점에 도착했다. 일순간 사방이 고요해졌다. 훈련관이나, 후보생이나 말문이 막힌 듯이, 그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데 모레는 침을 꿀꺽 삼켰으며, 스피놀라는 입을 서서히 벌렸다. 후보생들은 경직된 듯이 서 있었고, 특히나 알레한드로는 수염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멈추는 바람에 마치 박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일순간 한 훈련관이 박수를 쳤다. 그러자 조안이 박수를 쳤고, 일제히 박수를 치며 벨린에게 몰려들었다.

데 모레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벨린 데 란테, 자, 자네는 정말….”

“대단한 솜씨였다.”

스피놀라가 그의 말을 빼앗았다.

“벨린, 자네는 정말 신이 내려주신 총사감이 틀림없다. 지금껏 이렇게 빨리 장애물 넘기를 주파한 후보생이 없었어. 누구 시간 잰 사람 있나?”

“49초입니다.”

한 훈련관이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훈련관이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내 기록을 깨버렸어. 내 기록 55초는 히스파니아가 멸망하기 전에는 안 깨질 줄 알았는데.”

“자네 그거 백 번 만에 이룩한 기록 아닌가. 이 친구는 단 한번 만에 성공했어. 단 한번 만에!”

스피놀라가 대단히 흥분한 어조로 벨린을 바라보았다.

“자네 혹시 적국에서 활약하던 총사는 아니었겠지? 빈센초 데 란테가 조국을 배신해서 적국으로 아들을 팔아 넘겼다 해도 믿어질 지경이야.”

벨린은 기분 좋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격한 얼굴들이었다. 알레한드로는 입을 딱 벌리고 있었고, 조안은 그 옆에서 등을 치고 있었다.

그가 싱긋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전 그저 사냥꾼이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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