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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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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223

작성
06.09.20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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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베나레스의 총사(8)

DUMMY

* * *

훈련이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단체 생활이 항상 그러하듯, 같이 생활하고 훈련받을 지원자들과 만날 때까지는 기대와 관심과 초조 속에서 기다려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벨린은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벨린은 총사대본부의 후보생 막사에 있었고, 후보생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챙이 긴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자신의 침대에서 오후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병영은 연병장 구석에 지어진 단층 건물이었다. 안은 그럭저럭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층침대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가운데에는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추울 때를 대비한 난로도 한 구석에 자리 잡혀 있었으며 군대 특유의 상명하복적인 경직감이 약간은 방 전체에 드리워진 양상이었다.

문이 열렸다. 지원자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벨린은 잠에서 깼다. 그는 얼굴을 가린 모자를 손으로 걷어내고서는 단잠에 깨어 약간은 심술궂은 얼굴로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자들을 바라보았다.

챙이 넓은 모자에 푸른 제복을 입은 총사 후보생들이었다. 그들은 보통의 총사 제복이 그러하듯 푸른색 제복을 입었지만, 어깨에 달린 견장으로 후보생과 정식 총사를 구분할 수 있었다. 가령 정식 총사들의 견장은 금색인데 반해. 후보생의 견장은 은색이었다. 이층 침대가 열 대인 것을 봐서는 이 막사에만 족히 이십 명은 수용할 모양이었다.

군대에서 지원을 온 후보생들이 잠시 침대에 앉아 있는 벨린을 바라보았다. 벨린도 그쪽을 보았다.

맨 앞에 키가 2미터는 되 보이는 건장한 사내가 서 있었다. 평균 신장이 일 미터 육십 밖에 안 되는 히스파니아에서는 보기 드문 거인이었다. 벨린도 키는 좀 큰 편이었는데 그 앞에서는 건장함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벨린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곰이 원래 총탄에 잘 맞는 법이지.’

그 녀석이 심술궂게 물었다.

“너는 뭔데 여기서 자고 있냐, 꼬마야. 너도 후보생이냐?”

“하암.”

벨린은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했다. 낮잠을 자고난 뒤의 노곤함이 가시면서,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 거인의 얼굴이 보였다. 어깨까지 기른 갈색 머리털에 난쟁이처럼 수염을 풍성한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벨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너희들 몇 명이지?”

벨린의 어조에는 왠지 모르게 능숙하면서, 상대를 단번에 수긍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거인이 어안이 벙벙하여 뒤를 돌아보더니 후보생들을 쭉 훑어보았다.

“한 30명?”

“그럼 서두르는 게 좋겠군.”

벨린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담당관이 실수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는 이층 침대가 열 대 밖에 없거든.”

그는 느긋하게 반응을 기다렸다. 상황판단이 빠르다면 눈치 챘으리라. 서른 명 중에 열 명은 바닥에서 자야 한다는 것을.

후보생들이 머뭇거리는 가운데 뒤에 있던 누군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앳된 얼굴을 한 금발머리 후보생이었다. 그가 자신의 짐과 챙이 넓은 모자를 벨린의 윗 침대로 올리고서는 재빨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이 별안간 후다닥 침대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선착순 쟁탈전이었다. 누구는 자기가 가지고 온 가방을 집어던졌고, 챙이 넓은 모자를 원반처럼 날려서는 자기 자리를 차지하느라 소란을 피우는 부류들도 있었다.

주변이 좀 시끄러운 가운데, 벨린은 피식 웃으며 도로 느긋하게 침대에 누웠다. 윗 침대에 오른 녀석이 밑을 내려보고 있었다.

소년처럼 앳된 외모를 지닌 금발머리 청년이었다. 코와 볼 부분에 주근깨가 좀 나 있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활달한 개구쟁이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녀석이 밝은 어조로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나는 조안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벨린이 살짝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의 손은 이곳저곳 상처가 나 있긴 했지만 어린 아이처럼 손이 고왔고, 그것은 어릴 때부터 총을 만지느라고 굳은살이 베긴 벨린의 손과 대조를 이뤘다.

그때, 은빛 제복을 입은 총사가 들어왔다. 그 무렵이 되자 후보생들은 차지할 침대를 거의 다 차치한 참이었고, 그 거인을 비롯한 몇몇 녀석만이 바닥에 수틀리게 서 있을 뿐이었다.

수염을 기른 그 총사가 주변을 싹 둘러보더니 말했다.

“나는 이제부터 이 소대를 책임질 훈련관이다. 짐을 정돈하는 대로 연병장으로 집합하도록.”

거인이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훈련관님, 침대가 부족한 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군요.”

훈련관 총사가 주변을 싹 둘러보더니 사무적으로 말했다.

“연대의 사정으로 내일 침구가 마저 보강될 것이다. 오늘 밤은 별 수 없이 바닥에서 자는 수밖에 없겠지. 그럼 이만.”

훈련관이 밖으로 사라졌다. 거인 후보생이 뭐라고 자그맣게 욕을 퍼부으며 따라 따라나섰다. 그 뒤를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벨린이 어깨를 으쓱 하며 나갔다.

햇살이 연병장으로 눈부시게 쏟아졌다. 녀석의 그림자가 뒤로 걸어오는 벨린의 몸까지 드리워졌다.

턱수염을 기른 거인이 별안간 호탕하게 웃으며 벨린에게 물었다.

“이런, 오라질. 이거 내가 한 방 먹은 것 같군. 자네 이름이 뭐지?”

“벨린 데 란테.”

“어느 부대 소속이었나? 카스티야 연대? 아니면 세비야 연대?”

벨린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저 사냥꾼이었지.”

“카사도르(사냥꾼)라. 그렇다면 숲에서 늑대를 잡았나?”

그 말에 벨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곰은 많이 잡았네. 자네보다도 더 컸어.”

그 말에 거인이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웃었다. 호탕한 성격인 모양이었다. 그가 솥뚜껑만한 손을 펼쳐 벨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벨린은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거인 총사 후보생이 말했다.

“나는 알레한드로 바레스다. 탈레스 연대 출신이지. 꼬마라고 부른 것 사과하겠네. 자네가 많이 좋아질 것 같군.”

“앞으로 두고 보지.”

벨린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우호를 표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적이 된다면 가차 없이 없애버리기를 주저치 않았다. 두 사람이 굳건히 손을 잡으며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 무렵, 연병장 쪽에서 나팔 소리가 들리면서, 그와 함께 굵고 강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보생들은 전원 연병장으로 집합한다! 훈시가 있을 것이다!”

다른 막사에서 막 도착한 후보생들이 연병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벨린의 막사에 소속된 후보생들도 그곳으로 모였다. 약 삼백 명 정도였다. 그들은 어느 정도 제식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었던 터라, 기본적인 순식간에 대열을 이루고, 연병장의 앞을 보았다.

훈련관 역할을 맡은 총사들이 맨 앞에 일렬로 쭉 서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벨린은 눈에 띄는 훈련관 총사를 한 명 보았다. 이름이 데 모레라고 했던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벨린에게 알 수 없는 적개심을 품었던 그 자였다.

그가 훈련관들을 대표하여 앞으로 나왔다.

“나는 발리안 데 모레 대위다. 앞으로 4개월 동안 귀관들을 훈련시킬 훈련관들의 대표지. 나는 귀관들은 각 부대 지휘관들의 추천으로 왔다고 들었다. 물론 특별한 경우이긴 해도, 가령 훌륭한 공적을 세워가지고 온 자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는 여기서 말을 쉬었다가 다시금 벨린을 응시했다. 벨린이 세웠던 공적이, 그에게 꽤나 인상적으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그가 다시금 정면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 면에서 귀관들이 기초적인 역량은 매우 뛰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1분에 최소한 세 발은 머스킷총을 쏠 테고, 백병전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사대 기존의 군대와는 다른 개념이 있다. 귀관에게는 앞으로 매우 정확한 강선파인 머스킷총이 지급될 것이며, 이에 따른 모든 유격훈련이 병행될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들이 귀관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수나 때우기 위해 일렬대형에서 꽃꽂이 서서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동하여 적의 지휘관을 총으로 사살하고 위력적인 검술로 적군의 포대와 요새를 점령하는 일당백의 전사가 되는 일이란 말이다.

물론 훈련은 아주 고될 것이다. 수동적인 대형에 익숙한 귀관들의 정신구조를 완전해 재구성하는 일이 쉬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귀관 중 누군가 도로 원 부대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귀관이 가져간 한 달 치 월급을 도로 받고 돌려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처신하길 바란다. 이상.”

그가 연설을 마치고서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벨린은 차렷 자세로 데 모레를 계속 쳐다보았다.

데 모레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벨린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은지 살짝 웃어보였다. 그러나 벨린은 웃지 않았고, 다른 훈련관들의 호령에 따라, 후보생들은 각자 다른 곳으로 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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