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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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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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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베나레스의 총사(15)

DUMMY

벨린에게는 사람 간의 인과관계에서도 딱 들어맞는 육감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는 이 천부적인 감각을 사냥에서 동물들의 심리를 파악하며 익혔다. 그 감각은 놀랍게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잘 통했고, 이것은 그가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조절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사격 훈련이 끝나자, 조안과 알레한드로는 어제 그 세 명의 신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했다. 때 마침, 점심시간이었는지라 그들이 물어볼 시간은 충분했고, 벨린은 배급 받은 포도주를 마시고는 간단히 말했다.

“그저 줄다리기를 좀 하고 있을 뿐일세. 내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서지.”

“정당한 대가라고?”

알레한드로가 의아해했다.

“자네 어디서 귀족한테 돈이라도 떼먹힌 적 있나? 자신의 고용인을 존귀한 분이라고 부르는 신사는 얼마 많지 않아.”

“비슷한 일이지. 하지만 돈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야.”

벨린이 더 이상의 질문은 사양하겠다는 투로 딱 잘라 말했다. 하긴 저 친구가 돈 문제로 연관될 녀석은 아닐 테지. 알레한드로는 자기가 또 괜히 나섰다고 후회했는지 고개를 저으며포도주를 마셨고, 벨린은 태연히 삶은 양고기를 열심히 뜯어먹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생각은 살아 있었다.

‘그녀가 내게 줄 수 있는 포상은 따로 있지.’

벨린은 그 스릴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벨린이 그녀가 지닌 은밀한 비밀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대 권력자와 담판을 짓는 것 치고는 보험은 충분하지 않은가? 일단 성공만 한다면 그 절대 권력자를 가져 볼 있으니 말이다.


벨린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평소처럼 주말에 여관으로 갔고, 그곳에서 주스트로 코트에 가발을 쓴 신사를 만났다.

그는 벨린에게 편지를 한 장 주었다. 신사가 지극히 사무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글을 쓸 줄 안다는 것 압니다. 마마의 은덕을 생각하며 잘 읽어보시고 일요일 안으로 답장을 주십시오.”

편지는 지극히 평범해보였다. 비공식적으로 쓴 것이 분명한지, 초를 녹여 인장으로 봉인을 한 것 외에는 일반 편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벨린은 평소처럼 주점 주인에게 셰리주를 한 잔 내오게 하고서는 술을 음미하면서 봉인을 뜯어 편지를 읽었다.

‘벨린 데 란테, 그대의 말은 잘 전해 들었다. 물욕을 이겨내고 신민으로써의 당연한 의무를 강조했으니 그대의 충정을 잘 알 법도 하다. 하지만 데 란테. 그대가 세운 공을 미루어 볼 때 그대에게 내리는 포상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짐은 이미 그대가 총사대장의 은덕을 입어 총사대 후보생 과정을 수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그대가 좀 더 다른 곳에 관심이 있다면, 이것은 어떤가? 그대가 정식 총사로 임명되는 대로 내 그대를 근위총사의 장교에 암관시킴과 동시에 군인으로서의 출세와 그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재물을 보장하겠노라. 이는 즉 그대를 내 사람으로 각별히 보살피겠다는 뜻이니 이 어찌 가문의 영광이 아니리오.

사양의 미덕은 한번이면 족하니 짐은 그대의 답장을 기다리겠노라.

이사벨 데 아라고른.'


벨린은 그녀의 편지를 품속에 집어넣고 셰리주를 마저 비웠다. 그의 입가에 좀처럼 보기 드믄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걸려들었군.”

그는 평소와 다르게 여자를 고르지 않고 방으로 먼저 올라갔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종이와 깃펜, 잉크를 빌려서는 테이블 위에 앉아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 * *

그 다음 주 월요일. 이사벨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답장을 받아들었다. 낮에는 각료들의 눈이 있어 심복에게 편지를 건네받을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과연 그 자가 어떤 답장을 보냈을까 궁금하여 서둘러 편지의 봉인을 뜯었다. 편지의 필체는 그 자가 제대로 교육을 받은 모양인지 간결하고 읽기도 쉬웠다.

‘편지는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마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어떻게 감사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마마께서 잘못 아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마마의 은덕을 거부했던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마마께서 이 무례한 한량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대접을 내려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아마 이 편지를 읽고 계실 즈음이라면 마마께서는 그 답을 알고 계실 겁니다.

벨린 데 란테.’


이사벨은 편지를 몇 번에 걸쳐 읽었다. 마치 난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녀는 이를 악물고 편지에 담긴 의미를 깨우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이 편지가 지닌 의미가 확실해지자 그녀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고, 지금껏 상대해본 적 없는 강적을 만났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화까지 났다.

“이 자가 감히….”

그녀는 편지를 손에 들고 비틀거리면서 침소로 걸어갔다.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대체 저 놈은 무슨 배짱으로 차기 여제가 될 나의 명을 두 번이나 거절한단 말인가.

그녀는 목욕을 할 마음도 없이 침대에 곧바로 누워버렸다.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지고는 했던 이사벨에게 그의 까다로움은 심히 무례하면서도 조바심이 나도록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정복욕이 녀석을 수단방법을 써서라도 가져버리고 말겠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보다 더 좋은 조건도 없었다. 그런데 적절한 대우라니? 녀석이 혹시 정말 성인군자라도 되는 것일까? 그래서 애당초 내 제의를 거절하기 위해 그런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 편지에 적절한 대접이라는 말을 썼을 리가 없다. 녀석은 음흉하게도 자기가 원하는 대우를 바라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녀석의 욕망을 한번 확인해봐야겠지. 그래야 녀석을 가질 방법을 모색할 테니까.

이사벨은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로 돌아가서는 단숨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었다.


‘벨린 데 란테, 너는 참 용감한 자로군.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답장으로 써 보내길 바란다. 만약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 대가라면 네 야망을 기념하는 뜻으로 총살형명령서를 쓸 테니 신중히 행동하도록.’


편지는 내용이 짧았지만 직설적이었고 일종의 강경한 협박이었다. 당근을 주었으니 이제는 채찍을 치는 거랄까? 그녀는 이 편지로 인해 벨린이 흑심을 보이기를 기대했다. 녀석이 아무리 기고만장하다 해도 칼자루는 이쪽에서 쥐고 있는 것이다.

이사벨은 편지를 봉투에 넣어 봉인한 다음 침소로 돌아갔다. 답장을 쓰고 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자가 답장으로 무슨 말을 써 보낼지 무척 기대가 됐다.


* * *


두 달 째 훈련서부터는 사격술을 비롯하여 검술 훈련도 병행되었다. 사실 웬만한 군인이라면 검술 정도는 능숙하게 소화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총이 절대적이라고는 해도, 명예와 관련된 결투에서는 검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이 시대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총기의 발달로 갑옷을 입지 않는 시대가 된 이례로, 평상복으로 싸울 때 효용을 발휘하는 검들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물론 사브레처럼 베고 찌르는 검도 동시에 발달했지만, 히스파니아식 검술은 일단 찌르기 기술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군인들은 제식용 군도가 사브레였음에도 대련시 가볍고 날렵한 레이피어 같은 검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검술 훈련은 워낙에 군인들의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에 자유 대련으로 진행되고는 했다. 총사 후보생들은 궁내 성당을 개조한 내부 강당에서 대련용으로 만들어진 끝이 뭉툭한 레이피어를 가지고 대련을 했다. 검술의 특성상 이 대련은 종종 격해지기 마련이라서 한쪽에서 실수를 하면 부상을 입을 위험이 컸다. 그렇지만 이 대련을 싫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벨린은 알레한드로와 대련하기를 즐겼다. 조안은 이 자리에 끼고 싶어도 그 만한 실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쪽에서 짚단에 검을 찌르는 연습만 하곤 했다. 그는 병사시절 지급 받은 검을 아끼기 위해 검술을 배우지 않았고, 그 바람에 훈련관의 지도로 기초부터 연습해나갔다.

“안 카르디노.”

벨린과 알레한드로의 대련이 시작됐다.

세검을 가지고 싸우는 히스파니아 검술에는 찌르기가 대단히 유용한 요소로 작용한다. 실전에 맞도록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 찌르기는 실전에 유용한 기술로 베기에 비해 정확도도 높고, 한 번의 공격으로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도 높다.

두 사람은 챙챙 소리를 내며 검을 놀려나갔다. 둘 다 웬만한 검객은 울고 갈 정도로 수준 높은 검술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초반에는 알레한드로가 덩치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밀고나가는 양상이었다. 그는 기량이 있었기 때문에 스피드보다는 진중하게 밀고 들어가면서 벨린의 이곳저곳을 공략했다. 벨린은 검을 들어 막으면서 알레한드로가 찌르려는 곳을 막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알레한드로가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찰나에, 벨린이 몸을 숙여서는 재빨리 검을 내질렀다. 대련용 레이피어가 알레한드로의 명치부분에 적중해서는 활대처럼 길게 휘었다.

알레한드로가 볼멘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젠장. 대체 자네 앞에서는 내가 나설 수 없군!”

“미안하네, 면적이 워낙 넓어서.”

벨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둘 다 오랜 대련으로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둘은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강당의 구석으로 쉬러 나갔고, 때 마침 한쪽에서는 훈련관들이 모여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깃털 달린 모자를 쓴 데 모레가 강당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검을 들고 있는 스피놀라가 유쾌하게 말했다.

“어이, 데 모레. 오랜 만에 한번 하겠나?”

데 모레가 곤란한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좀 바쁜데….”

“여유 있는 거 다 아네.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닐 테지? 오지 않으면 자네가 진 걸로 간주하지.”

스피놀라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데 모레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군.”

데 모레가 대련용 검을 들었다. 두 훈련관 총사가 라운드에 서서 서로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검을 앞으로 뽑아들었다.

스피놀라가 소리쳤다.

“안 카르디노!”

스피놀라가 처음부터 화려하게 밀고 들어갔다. 훈련관들의 대련은 후보생들에 비해 훨씬 과격하고 공격적인 면이 있었다. 그들은 진정 검술 대련을 즐겼고, 실전에서도 여러 명을 검으로 해치운 전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데 모레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스피놀라의 공격을 열심히 막고 피한 다음, 검을 갈라 스피놀라의 공격을 차단하면서 도로 밀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공격이 너무 거칠었던 탓일까. 일순간 빈틈이 보였고, 스피놀라는 주저 없이 그곳을 찔렀으며 데 모레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스피놀라의 검은 그의 관자놀이 부분을 위로 스치고 지나갔고 데 모레의 모자가 단번에 벗겨졌다.

그때 벨린은 무언가를 보았다. 대련이 중지되고, 스피놀라가 괜찮냐며 그에게 다가가서 묻는 와중에도, 벨린은 곧 이어 분명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데 모레는 모자를 도로 쓰고, 잠시 일이 있어 가봐야겠다는 투로 강당을 나섰다. 그것은 벨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알레한드로에게 먼저 가보겠다고 말하고서는 데 모레와는 정 반대의 출구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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