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987,528
추천수 :
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6.09.28 23:28
조회
8,667
추천
19
글자
9쪽

베나레스의 총사(16)

DUMMY

* * *

주말이었다. 벨린은 평소처럼 총사대 예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조안과 알레한드로가 같이 술이나 마시지 않겠냐며 그를 꾀이려고 했지만, 벨린은 잠시 일이 있어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미안하군, 하지만 다음 주에는 놀 거리가 충분히 있을 거야.”

“알겠네. 그럼 다음 주에 보자고.”

조안과 알레한드로가 총사대본부 정문을 지나 저만치로 사라졌다. 벨린은 사방을 둘러보면서 거리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거리는 내일 개관할 히스파니아 중앙은행 때문에 크게 들떠 있었다. 시민들은 정부에서 붙인 공고를 보며 이곳저곳에서 술렁거렸고, 관리들이 고용한 몰이꾼들은 대량으로 인쇄한 전단을 하늘 위로 날리며 이렇게 외쳐댔다.

“은행에 자금을 예치하시면 물가상승에 준하는 수익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히스파니아 중앙은행은 황실이 직접 보장하는 안전한 은행입니다. 즉 최전선에서 싸우는 젊은이들을 위해 애국도 하고, 많은 자금도 안전하게 보관하는 길이 되는 거지요! 또한 국가가 발행하는 제국 채권을 사두시면 큰 수익이 보장됩니다.”

벨린은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주워보았다. 그 전단지에는 은행에 목돈을 저금하는 길이 즉 애국하는 길이라는 식으로 감정적인 호소를 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대다수가 솔깃한 모양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불황 속에서 자신의 재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면 은행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라가 보증하는 은행이니 돈을 저당 잡힐 염려도 없고 이자까지 쳐주니 말이다.

벨린은 단골 주점으로 걸어갔다. 하얀 가발을 쓴 신사가 삼각모를 옆구리에 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편지를 보여주었고, 벨린은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어 읽었다.

벨린은 잠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번에 답장을 보낸다면, 조만간 그녀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황궁에서 온 신사가 내일 답장을 가지러 오겠노라고 가려고 했다. 벨린은 평소와 달리 그를 멈춰 세웠다. 답장을 이 자리에서 바로 써주겠다는 것이었다.

벨린은 즉석에서 깃펜을 들어 일 분 만에 답장을 써주었다. 그리고는 평소와는 달리 초를 녹여 봉투를 봉하고서는 답장을 주며 태연히 말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오늘 안으로 마마께 전하지 못한다면 내일 큰 곤욕을 치를 지도 모릅니다.”

신사는 초조해하며 그 이유를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허락된 권한 밖의 질문이었으므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며 편지를 품안에 넣고, 삼각모를 머리에 쓰더니 거리로 사라졌다.

벨린은 술집 밖으로 나와 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아마 내게 어마어마한 포상을 지불해야 할 테지. 세 달 만에 국가의 상징과 실체를 둘 다 구한 셈이니까 말이야.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비록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지만, 아직 녀석들을 막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저만치에서 스피놀라가 술집의 입구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벨린이 총사 훈련관 같고, 스피놀라가 후보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가 벨린에게 오면서 물었다.

“총사대장 각하는 란툰 반도의 전선을 시찰하러 가시는 바람에 내일 아침에나 오시네. 기별을 보냈으니 빨리 돌아오시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마마께 소식을 전할 길이 자네밖에 없어. 자네가 메시지를 잘 보냈을지 모르겠군.”

“그 일에 대해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마께서는 제 말을 들을 테니까요. 그 편이 아무래도 안전하겠지요.”

스피놀라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내일은 나라의 경사를 처리하는 날이야. 근위총사대에 지원 요청을 했으니, 은밀하게 처리하는 게 중요하네. 만약 우리의 배신자가 그렇게 멍청하다면, 명부에 적힌 나머지 녀석들도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족칠 수 있겠지.”

“데 모레는 지금 성 마르틴가에 있겠죠?”

스피놀라가 나직이 한마디 했다.

“그곳이 놈의 무덤이 되겠지.”

* * *

물증은 이미 확보가 되었다. 그러나 이를 알 턱이 없는 데 모레는 그들이 꾸미는 거사가 완성되는 순간을 즐기기 위해 장소로 향했다. 만약에 데 모레가 무척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그는 충분히 미행이 따라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고, 그는 다른 쪽으로 도망을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조심성을 잃어버렸고, 그리하여 그대로 꼬리를 밟힌 꼴이 되고 말았다.

총사대에서 급파된 미행자는 데 모레가 성 마르틴가 구석 어느 골목 속의 지하실로 내려갔다고 보고했다. 벨린의 제보에 따라, 총사대는 변절자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아주 용의주도하게 준비를 한 차였다.

히스파니아 동방 회사의 탑시계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벨린과 스피놀라, 그리고 일련의 총사들은 데 모레가 내려간 지하의 계단을 향해 천천히 침입해 들어갔다.

그 지하계단은 언뜻 봐서는 근처 건물의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느 건물 같은 지하창고가 없었다. 대신 돌을 쌓아 만든 통로가 횃불을 환히 밝히며 길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총포와 세검으로 무장한 총사대는 발걸음을 죽이고, 천천히 지하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는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군데군데 술통 비슷해 보이는 큼지막한 나무통이 서 있었다는 것인데, 스피놀라가 횃불을 그 근처로 비춰보니 그 통의 정체는 확연히 드러났다.

나무통의 입구에 검은 색의 가루가 잔뜩 묻어있었다.

스피놀라가 작게 속삭였다.

“역시 화약이군. 계획대로 하려는 거야.”

화약통이 통로의 군데군데에 쌓여 있었다.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쌓여있는 화약통이 점점 많아졌다. 총사들은 쌓여 있는 화약통에 섬뜩함을 느끼며 기나 긴 지하 통로를 천천히 나아갔다.

이윽고 큰 방이 하나 드러났다. 매우 큰 방이었다. 어느 큰 건물의 지하실인 것이 분명했다. 돌로 튼튼히 쌓아올리고, 대리석 기둥으로 지반을 받친 모양이었다, 새로 지은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 화약통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치 어느 양조장의 술 저장창고로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족히 수백 개는 넘는 큰 화약통들이 이 지하실 내부에 한 가득 쌓여 있었는데, 이것이 만약에 폭발한다면 지상에 있는 건물은 기반이 무너져 단번에 폭삭 주저앉을 터였다.

그들이 주변을 예의주시하는 찰나에, 인기척이 들렸다. 총사들이 몸을 움츠렸다. 저 멀리에서 한 사내가 등잔을 목에 건 채로 큼지막한 화약통을 등에 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데 모레였다.

벨린은 슬슬 그를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총사대 후보생 주제에 총사들을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황녀 마마를 한 번 구했고, 또 한번 구할 수 있도록 큰 공적을 세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녀석도 피하지 못하리라.

벨린은 스피놀라에게 신호를 보내고 대담하게 앞으로 나갔다. 스피놀라와 총사들이 서둘러 화약통의 뒤에 숨었다.

이제 녀석의 자백을 받아낼 차례였다.

화약통을 이고 있던 데 모레가 벨린의 인기척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그는 놀란 눈으로 뚜벅 뚜벅 걸어오는 벨린을 쳐다보았고, 곧바로 큼지막한 화약통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베, 벨린 데 란테. 자네가 여길 어쩐 일이지? 하하, 자네가 이걸 알아챘구먼, 나는 포도주 유통업을 부업으로 하고 있어서….”

“요즘은 화약으로 포도주를 주조하나보군.”

벨린이 냉랑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머리카락은 밀짚 색깔이지.”

벨린은 주머니에서 머리카락을 한 줌 꺼냈다. 데 모레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의 동공은 헤시시를 복용한 사람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가 간신히 웃으며 말했다.

“그,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밀짚 색 머리칼은 나 말고도….”

“나는 이것을 당신이 황녀 마마를 습격했을 때 주웠어.”

벨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가지고 있으면 총사가 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그랬지. 그런데 알고 보니 총사대 내에도 배신자가 있었던 모양이군. 국가전복을 기도한다는 프로테스탄트가 말이야.”

“자,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데 모레가 질린 듯한 어조로 소리쳤다.

“밀짚 색깔의 머리를 가진 사람은 나 말도 많이 있어! 누군가 날 모함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게 누구지? 스피놀라인가? 아니면 데 몬테네….”

순간 데 모레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등잔불이 주변을 환히 비추는 가운데, 벨린이 주머니에서 결정적인 물건을 하나 꺼낸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졌고, 자신이 철저히 들통나버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벨린의 손에는 자그마한 병이 들려 있었다. 그 병 안에 들어 있는 신체의 일부분은, 데 모레를 단번에 공포로 빠트리는데 충분했다.

그것은 습격 때 잘려나간 그의 한쪽 귓불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베나레스의총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베나레스의 총사(27) +22 06.10.14 7,916 16 8쪽
26 베나레스의 총사(26) +27 06.10.13 8,010 19 8쪽
25 베나레스의 총사(25) +20 06.10.11 8,014 18 13쪽
24 베나레스의 총사(24) +26 06.10.10 8,242 16 8쪽
23 베나레스의 총사(23) +23 06.10.09 8,597 15 10쪽
22 베나레스의 총사(22) +28 06.10.08 9,402 16 10쪽
21 베나레스의 총사(21) +27 06.10.04 10,197 17 9쪽
20 베나레스의 총사(20) +29 06.10.03 9,249 18 7쪽
19 베나레스의 총사(19) +39 06.10.02 9,106 19 9쪽
18 베나레스의 총사(18) +26 06.10.01 8,709 18 9쪽
17 베나레스의 총사(17) +17 06.09.30 8,592 18 11쪽
» 베나레스의 총사(16) +17 06.09.28 8,668 19 9쪽
15 베나레스의 총사(15) +20 06.09.27 8,705 18 12쪽
14 베나레스의 총사(14) +20 06.09.25 8,786 16 14쪽
13 베나레스의 총사(13) +20 06.09.24 8,808 19 12쪽
12 베나레스의 총사(12) +25 06.09.23 8,913 17 18쪽
11 베나레스의 총사(11) +28 06.09.22 8,915 18 8쪽
10 베나레스의 총사(10) +25 06.09.21 9,274 20 13쪽
9 베나레스의 총사(9) +16 06.09.21 9,134 18 9쪽
8 베나레스의 총사(8) +20 06.09.20 9,227 20 9쪽
7 베나레스의 총사(7) +22 06.09.18 9,499 22 11쪽
6 베나레스의 총사(6) +24 06.09.17 10,256 20 20쪽
5 베나레스의 총사(5) +19 06.09.16 10,953 18 9쪽
4 베나레스의 총사(4) +32 06.09.15 12,956 19 26쪽
3 베나레스의 총사(3) +31 06.09.14 16,022 28 13쪽
2 베나레스의 총사(2) +23 06.09.14 20,021 42 12쪽
1 베나레스의 총사(1) +41 06.09.14 45,891 4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