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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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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2,223

작성
06.10.0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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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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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베나레스의 총사(20)

DUMMY

* * *

종종 세상은, 어린 감성을 지닌 소녀마저 어른이 되도록 강요하고는 한다. 이사벨이 그러했다. 그녀는 스물이라는 꽃다운 나이를 보내고 있었지만 사춘기 때도 사랑을 경계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엄연한 이 나라의 수장이 될 몸이었고, 이런 막중한 일은 그녀에게 사적인 감성 같은 것을 경계하는 정신구조를 구축해나갔던 것이다.

미로 정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면서, 이사벨은 다시 침착해졌다. 그래, 오랜만에 좀 별난 남자를 만난 덕분에 내가 긴장을 했던 거야. 마음을 가다듬고, 평소처럼 넘어가버리면 이깟 바람둥이도 어찌하지는 못하겠지.

사실 공적인 자리에서도 그녀를 유혹하려고 한 귀족 남자가 많기는 했다. 좀 더 은유적인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사벨 황녀는 남자들이란, 그 마음을 받아주면 결국에는 헌신짝 버리듯 내치는 존재들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남자들을 이용하여 독특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법은 취득했다. 좀 더 국가와 나를 위해 충성하면, 더 좋은 대가가 오리라는 식으로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되, 동맹관계를 형성해왔던 것이다.

이사벨은 그렇게 넘어갈 작정으로 시간을 벌었다. 저 자가 거의 방심함 틈을 타서, 옛날처럼 넘어가버리면 되는 것이다. 되도록 오만하고 뻔뻔하게. 그럼 저 자는 자기의 분수를 알 것이고, 그 분수를 안다면 부끄러워서라도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못하리.

그들은 미로 정원의 가운데로 당도했다. 이곳은 조명이 희미한 곳이라서, 서로의 얼굴만 간신히 분간될 뿐이다.

“네 마음을 알 것 같다. 데 란테.”

이사벨은 짐짓 매혹적이겠다 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벨린의 손을 조심스레 놓은 다음, 그의 몸을 찬찬히 한바퀴 돌았다. 이것은 그녀가 남자들을 가지고 놀 때 주로 쓰는 제스처였다. 보통의 남자들은 이렇게 하고나면 그녀의 페이스에 완전히 넘어가 버리고는 했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만도 하지. 짐은 이 히스파니아 제국에서 제일 손꼽히는 미녀니까. 게다가 대다수의 멍청한 남정네들은, 국가를 상징하는 짐의 지위 때문에 마치 제국을 가질 것처럼 어이없이 날뛰기 마련 아니더냐. 너 같은 바람둥이가 관심을 가질 법도 하겠지. 그것이 너의 음흉한 본능일 테니까 말이야.”

벨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그것이 이사벨에게는 잘 나가고 있다는 신호로 보였다.

이사벨이 그의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는 어둠을 흑막삼아 의기양양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데 란테. 네 주제를 안 다면 아직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 터. 다른 나라의 왕자조차 나를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네 공을 참작하여 기회를 줄 수는 있겠지. 네가 나의 사람이 된다면, 짐은 기꺼이 너를….”

이사벨의 말문이 외압에 의해 막혔다. 벨린이 번개처럼 몸을 놀린 것이다. 벨린은 이사벨의 허리와 어깨를 안고나서는 그녀의 입에 입을 맞췄다. 읍하는 신음과 함께, 그녀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애당초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벨린은 체면과 신사도를 중시하는 귀족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점잖을 때와, 점잖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할 줄 알았고, 애당초 점잖지 않게 행동해야겠다고 벼르던 차였던 것이다.

'아아!‘

그것은 이사벨의 첫 키스였다. 완벽하게 당한 것이기는 했지만, 처음은 분명 처음이었다. 보통 사랑에 빨리 눈 뜨는 히스파니아 아이들은 십대 후반만 되도 입맞춤을 아주 쉽게 접한다. 그러나 궁에서 생활하면서 차기 여제가 되기 위해 수련을 거듭해온 이사벨은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고, 그것만으로 벨린에게 녹아나기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됐다.

벨린은 키스를 아주 능숙하게 구사했다. 그는 황녀의 말마따나 경험이 매우 풍부한 바람둥이였고 그런 고로 경험 없는 여자 하나를 녹여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사벨은 움직일 수 없었다. 겁이 나고 힘이 빠져서 그랬다. 은연중에 숨어 있던 마음이 온통 끄집어 나와서 그녀의 뇌리를 완전히 잠식해나가는 듯했다.

벨린이 혀를 놀려 그녀의 입속을 휘저었다. 곧이어 발산되는 칵테일 같은 호르몬에, 이사벨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입을 맞춘 채 일분 간을 가만히 있었다. 턱 끝에 이슬진 이의 눈물이 목까지 타 내렸고, 그녀는 차가운 감촉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는 눈을 번쩍 뜨면서 그를 밀쳤다.

그녀가 벨린에게서 화들짝 입을 때고는 그의 뺨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벨린은 감히 이사벨의 두 손을 잡아버렸고, 이사벨이 발을 쓰려고 하자, 그녀를 미로 정원의 수풀 벽 끝으로 몰아붙였다.

자존심이 상한 이사벨이 뭐라고 외치기도 전에, 벨린이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설령 마마께서 저를 총살시킨다 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사벨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첫 키스를 치룬 뒤의 여운과 황홀함이 뒤늦게 그녀의 머리를 잠식하면서, 그녀 스스로가 깜짝 놀라도록 만들었다.

벨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이사벨은 도저히 그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저 남자에게 완전히 푹 빠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쾌락은 아무리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푹 빠지도록 만든다. 저 자는 그 쾌락을 통해, 반신반의하던 황녀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사벨의 정치적인 생각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그녀는 결코 밑지는 거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저 제멋대로인 작자를 완전히 얽히게 해주는 수밖에.

이사벨이 애써 태연해지도록 노력하며 말했다.

“벨린 데 란테. 너의 승리다. 네가 짐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제 청을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시지요?”

벨린이 짓궂게 물었다. 이사벨이 당황해하며 작게 말했다.

“그렇다. 네 청을 들어주마. 하지만 그 전에 네가 약속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이사벨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너는 바람둥이라고 했지. 그러니 너는 오늘 밤만 짐을 가지길 원할 터. 하지만 짐 앞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 너는 그 하룻밤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짐의 사람이 되도록 하라. 네가 좋든, 싫든 이것은 명령이다. 너는 제국과 짐을 수호하고 명을 따라야 한다.”

“물론입니다. 마마.”

“그, 그렇다면….”

이사벨이 무서움과 흥분이 반쯤 섞인 감정으로 어깨가 흘러나오는 드레스 자락을 쥐며 말했다.

“지금부터 짐의 옥체를 네 마음대로 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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