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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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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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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베나레스의 총사(2)

DUMMY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가 쏟아 부운 화약이 목탄과 염초로 만드는 일반적인 흑색화약과 다르다는 점이었다. 바로 색깔의 차이였다. 그가 총구 속에 부운 화약은 보라색이었다. 더불어 또 한 가지 차이점은 바로 납으로 만든 총알이 없다는 점이었다.

청년은 총열 밑에 부착된 밀대를 재빨리 빼내어 화약을 다졌다. 그리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모든 동작을 기민하게 끝낸 다음, 마지막으로 화약접시에 남은 보랏빛 화약을 뿌렸다.

구리빛 얼굴을 한 청년이 마차를 습격하러 다가오는 적들의 대열을 향하여 총구를 겨눴다. 그의 행동에서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단번에 방아쇠를 당겼고, 격철이 철컥 하고 내려갔다. 부싯돌이 플린트(불꽃받이)에 부딪치며 불꽃이 약실로 튀었고, 단지 화약의 폭발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묘한 기운이 총구까지 타고 들어갔다.

파아앙!

쇳소리 같은 폭음이 터졌다. 총이 크게 들썩 거렸다. 공기를 찢는 총성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푸르스름한 빛이 번쩍 하면서 이상한 충격파가 마치 공간을 왜곡이라도 하는 듯이 총열을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총열 속에서 일반적인 탄환이 아닌, 에너지의 응집체 같은 광선이 방사되었다. 그것은 마치 색깔이 없는 순수한 빛이 응집하여 방사되는 것 같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마차로 다가서려는 적들의 한 가운데에 내리꽂혔다.

푸른색의 충격파가 순식간에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그 충격파는 마지막 돌격을 위해 모여있던 적들의 몸을 수풀 저 너머로 튕겨버렸다.

불의의 기습을 받은 적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격을 끝낸 청년은 빈총을 두 손에 들고 전방을 향해 힘차게 돌진해 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미 마차를 습격하는 자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한 참이었다. 가운데 마차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시대, 청년에게 살인 따위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못했다. 하물며 저런 범법자들 쯤이야. 그는 애당초 마차를 습격한 자들은 산적 따위의 범법자로 치부했고, 그런 식의 적들이라면 이전에도 얼마든지 죽여 본 경험이 있었다.

청년은 날렵하게 가운데 마차로 뛰어서는 놈들과 접전을 펼쳤다. 청년의 가공할 사격 때문에 이미 적들의 한 가운데 큰 구멍이 생겨있던 참이었다. 일부는 그 폭발반경에 휩쓸려 단번에 핏덩이가 되었고, 팔과 다리가 잘려 비명을 지르는 녀석들도 보였다.

“삼가 경의를.”

청년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남은 적들과 일전을 치렀다. 머스킷총을 거꾸로 쥐고 개머리판으로 한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서는 단번에 총을 버리고 끝이 뾰족한 레이피어검을 뽑았다.

그는 가르드 자세를 취하고, 날 넓은 검을 든 광신도의 가슴을 단번에 찔러 쓰러뜨렸다. 곧이어 옆에서 달려드는 녀석에게는 권총을 뽑아 쏘았고, 길을 막으며 머스킷총을 쏘려는 녀석에게 전속력으로 달려들어 검으로 가슴을 꿰뚫었다.

청년이 싸우는 스타일은 전형적인 총사들의 유격 방식이었고, 그 이유는 순전 오랫동안 걸친 학습의 결과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다른 총사들보다 돋보이는 이유는 바로 다크호스가 되어 싸움의 분위기를 평정해나가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으니. 총사들은 구원자가 자신들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남은 적들을 처리하는데 바빠 응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호흡은 충분히 맞았다. 총사들의 눈짓에 청년은 가운데 마차를 향해 빠른 속력으로 뛰어갔고, 때마침 운 좋게 살아남은 두 습격자들이 마차에 올라 망치로 문을 부수려는 참이었다.

마차의 문에 설치된 잠금장치가 망치질 몇 번에 부서졌다. 두 녀석들은 재빨리 문을 열었고, 결과적으로 청년이 한 발 늦었나 싶었다.

타앙.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문을 열던 습격자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문이 열린 마차 안에서 연기가 뿜어 나왔다. 안에서 단발 권총을 쓴 것이다. 그러자 한 놈이 더 이상은 살려둘 수 없다는 듯, 권총을 빼내어 마차 안으로 겨눴다. 그리고 단번에 쏘려고 하려는 순간.

청년이 몸을 날려 놈을 옆으로 밀쳤다. 그 바람에 습격자를 겨냥하던 총이 허공으로 발사됐다. 습격자와 갈색머리 청년이 바닥에 나뒹굴어 서로의 무기를 뺏으려고 애를 쓰며 옥신각신했다.

“후퇴! 후퇴하라, 동지들!”

반격을 당한 신교도들이 고함쳤다. 시간을 너무 끌었다. 더 이상은 그들에게 중과부적이었다. 말발굽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근처에 분산되어 있던 총사대가 전장으로 보강되는 양상이었다.

거리가 워낙 좁아 검을 쓸 겨를이 없었다. 갈색 머리 청년이 습격자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녀석이 주먹을 맞고 뒤로 나가떨어지더니, 공간이 벌어지자 악착같이 도망치려고 애썼다.

갈색머리 청년이 날렵하게 레이피어를 그었다. 검날은 녀석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 턱 부분의 복면을 완전히 찢어놓았다.

그러나 습격자를 저지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청년이 헐떡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습격자는 부상을 당한 턱 부분을 움켜쥐며 수풀 속으로 잽싸게 사라진 쥐였다. 대신 청년은 바닥으로 몸을 숙였다. 습격자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었다.

‘머리카락.’

녀석은 머리를 꽤 길게 길렀던 모양인지 밀짚색의 머리카락이 피 그리고 귓볼의 살점과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그는 흥미로운 눈초리로 입 꼬리를 올리면서 주머니 속에 감췄다. 만약 총사가 된다면, 그를 출세시킬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남에게 건네주고 싶지 않았다.

총사들이 자신들의 병기를 늘어뜨린 채 느릿느릿 다가왔다. 그와 함께 말발굽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말을 탄 자 여럿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청년은 검을 집어넣은 채 마차에 기대어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맨 앞에서 피로 물든 총사가 그의 모습을 보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있었고, 검은 머리에 콧수염을 길렀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으로 보였지만, 피에 젖은 바람에 더욱 늙어보였다.

구리빛 얼굴의 청년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무표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보니 웃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총사가 천천히 물었다.

“자네, 그 총….”

그는 청년이 맨 머스킷총을 가리켰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군.”

갈색머리 청년이 약간은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강선이 파인 바인 베스 32년식입니다. 아버지가 쓰던 총이지요.”

총사들이 술렁거렸다. 총사들의 제식총은 일반 평민들이 만질 수 없는 군용이었다. 수염을 기른 총사가 신중해하면서도 약간은 재밌다는 투로 말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벨린 데 란테입니다.”

청년이 이렇게 말하면서 모자를 벗고는 절을 했다. 여전히 약간 무뚝뚝한 몸놀림이었지만, 그의 그러한 태도에는 망설이거나 머뭇거리는 기색 따위는 전혀 없었다.

수염을 기른 총사가 무언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주안 스피놀라 소령일세. 근위총사연대 소속이지. 아니 그건 그렇고, 방금 전에 선보였던 그것은 뭔가?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마법사의 장난감인가?"

벨린 데 란테라고 자신을 밝힌 청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득 주안 스피놀라에게 스치는 생각이 이었다.

"으음, 신중히 생각해보니 자네에게 무언가 연관이 되는 게 있군. 자네 혹시, 빈센초 데 란테라는 총사와….”

“제 아버지입니다.”

벨린이 분명히 말했다. 근처에 있던 총사들이 경이로운 눈으로 청년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잘 생긴 외모였지만 남자다움과는 약간 거리가 멀었다. 히스파니아인다운 구리빛 피부에 코가 오똑하고 뺨이 갸름했으며 여성적이면서 날카로운 요염함을 지닌 이목구비였다. 표정에는 자신감 같은 것이 충만해 있었고,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의 그런 젊은이였다. 그럼에도 잘난 척 하는 인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그 무렵 근처에서 지원 나온 총사대원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전투는 완전히 종결된 듯했다.

스피놀라가 지원군에게 소리쳤다.

“이 멍청이들, 대체 정찰을 어떻게 한 거냐? 자칫하다간 마마께서 큰일 나실 뻔했다!”

지원군들 가운데 일부가 이 일에 대해 해명하려는 듯 앞으로 달려 나왔다. 스피놀라는 화를 억누르려는 듯 미간을 꿈틀거렸고, 벨린은 태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저 느긋할 뿐이었다. 저 총사는 약간 성깔이 있는 사내인 모양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상황은 끝났고, 사건은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잘 끝난 것이다.

그 무렵이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던 가운데 마차에서 누군가 우아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벨린은 위를 올려 보았다. 여자였다. 붉은색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백육십 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한 손에는 아직도 연기가 뿜어 나오는 권총을 들고 있었다.

“황녀 마마.”

총사들이 모자를 벗고서는 일제히 절을 했다. 그럼 그렇지. 벨린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녀석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 많은 총사들이 지키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그녀가 벨린을 스쳐지나가서는 바닥으로 발을 디뎠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고 꽤나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오똑한 코에, 뺨이 갸름했고, 큰 에메랄드빛 눈망울이 무척이나 이지적인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가 너무도 꾸민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무사하니 그대들은 걱정할 것 없다. 나의 무사가 곧 국가의 무사함이니, 그대들은 훌륭한 공적을 세운 것이다.”

“황송합니다.”

그녀가 도도하면서도 위엄 있는 눈길로 벨린을 톺아보았다. 엄격하고 냉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위에서 아랫것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태도로 이보다 좋은 것도 없었다.

그녀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내 이름은 이사벨라 데 아라고른, 대 히스파니아 제국의 제1황녀다.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벨린 데 란테입니다.”

그녀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데 란테. 도움으로 불령한 자들에게서 벗어났으니 너의 영광은 곧 나의 영광이요 국가의 영광이로다.”

“마마.”

그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마마의 영광과 제 영광은 다른 것입니다.”

이사벨 황녀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벨린이 간단히 대답했다.

“영광은 위로 향하지 아래로 향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총사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이사벨 황녀가 잠시 괘씸하다는 투로 벨린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응수한 청년은 겁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일까? 지극히 태연해보였다.

이윽고 황녀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마차 안으로 몸을 획 돌렸다.

“가자.”

마차의 문이 닫혔다. 총사들이 파손된 마차들을 길 양옆으로 치웠다. 일부 총사들과 군사들은 살아남은 자들과 다치고 죽은 자들을 가려내어 마차를 통해 이송했다. 다른 이들은 습격과 반란의 증거를 수집하였고, 곧 이어 죽은 마부를 대신하여 총사 가운데 하나가 말고삐를 잡았다. 그리고는 군사들과 총사대의 호위 하에, 황녀의 마차가 다시금 출발하기 시작했다.

벨린은 가볍게 웃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름다운 공주님이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오만하고 도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자네.”

스피놀라가 말했다.

“우리와 같이 갈 텐가? 우리는 수도로 갈 예정이네. 수도로 도착하는 대로 잠시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

“물론입니다. 나으리.”

벨린이 간단히 말했다.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총사들과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이었고, 그것이야말로 벨린이 애당초 원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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