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대첩
말년 병장 김병장은 지금 돌아 버릴 지경이다.
광화문역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지역은 그야말로 피바다였다.
‘시발 어쩌다가 세상이···’
온몸에 화상을 입고도 앞으로 돌진해오는 미친 괴물들을 향해 총검을 휘두를 수 있었던 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몸집이 작은놈들은 그럭저럭 총검의 칼날이 먹혔다.
그러나 2m가 넘는 덩치들이 등장했을 때부터는 도무지 인간이 감당할 레벨이 아니었다.
“헉, 헉···”
처음에는 덩치 작은놈들을 상대하며 그럭저럭 성과가 있었기에 뒤이어 온 큰놈들과도 육탄전으로 기세 좋게 맞붙었다.
멋모르고 달려든 대가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오크라고 불리는 푸릇한 피부의 인간형 몬스터는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줄로만 알았던 병사들은 그 실체를 현실로 목도하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방아쇠를 얼떨결에 당기지만, 그 짧은 순간이 생사를 갈랐다.
놈들에게 그렇게 맥없이 희생된 전우들이 중대 병력의 절반이 넘었다.
상황이 위태로워진 걸 파악한 지휘 본부는 작전지침을 바꿨다.
병사들은 육탄전을 피하고 놈들을 골목으로 유인하는 것에 사력을 다했다.
좁은 골목으로 몰려든 오크들을 향해 묵직한 자주포 포탄들과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쏟아졌다.
그런 식으로 고층의 낙하물리력을 이용해 잡는 방법으로 수를 줄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전시에 적진 파괴로 쓰였을 자주포탄들이 지금은 놈들의 머리를 깨트릴 짱돌 대용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그나마도 골목마다 시체가 쌓이자 놈들도 더는 유인되지 않았다.
그렇게 소강상태가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균열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일더니 고층으로 피신한 병사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와아아아아아!
김병장은 지친 숨을 가다듬으며 옥상으로 올라가 함성이 일었던 곳을 찾아 시선을 옮겼다.
-쿠궁! 쿠궁꽝!쾅!꽈꽝!
그리고 다시 들리는 폭발음,
“어?”
2m가 넘는 괴물들이 공중으로 날리는데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너덜너덜해진 공인형처럼 몸뚱이가 갈라진 채 피를 뿌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런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존재를 확인한 말년 병장 김병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저거 사람이야?’
균열을 마주 보고 묵직한 창을 휘두르고 있는 건 누가 봐도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휘두르고 있는 것이 창인지도 몰랐다.
사람의 주위로 비행기 프로펠러가 도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의 창이 멈췄을 때, 창대를 타고 흐르는 푸른 빛이 보였다.
균열의 주변에는 널린 괴이한 시체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쌓여 있다.
그리고 남은 건 이제 여섯 놈,
-우워워워···!
고막을 타고 머리가 진동할 정도로 우렁차게 괴성을 질렀지만···
그게 그것들의 마지막 진성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덕윤 총장도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저런 모습의 영화라면 가끔 보았던 터다.
그러나 지금 본 것은 그런 무술 따위가 아니었다.
인간보다 몸통 하나는 더 큰 괴물들 사이에 뛰어들기 전 저 청년이 보여준 화염의 참화는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법의 광경이었다.
난데없이 생성된 차원의 균열이라는 것에서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날붙이를 들고 끝없이 튀어나왔다.
시작부터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지만,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진 오크라는 괴물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1만에 육박하던 병력의 절반 가까이를 잃고도 저것들을 막지 못했다.
이제 화공으로 쓰인 연료들이 모두 동이 나버린 상황,
결국 저 무시무시한 근력의 괴물들과 육탄전을 벌여야 하는 순간이 닥쳐왔다.
‘그게 가능할까?’
저놈들은 도저히 사람이 감당할 놈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
그렇게 장렬한 일전을 결심하고 전군에게 현위치 사수 명령을 내리려던 때,
소년티도 벗지 않은 젊은이는 기적과 다름없는 화염을 일으켜 과물들을 쓸어내더니 이번에는 아군과 괴물들 사이를 홀로 걸어 들어갔다.
“어허···저···저···”
하총장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꾸웨액! 우워워웍!
누가 통역이라도 해 주면 좋겠지만 저건 그저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했다.
이후로 돼지 멱을 딴다는 말을 실감하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을 뿐이다.
그런 장면을 연출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와아아아! 멋져요 누님!”
마리아의 창이 오크의 심장을 꿰뚫을 때마다 고층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하아···”
마리아는 이제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마스터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몰라 몹시도 궁금했던 그녀였지만. 지금까지 묻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은인이었고, 지금은 그녀의 아들이 자신의 주인일 뿐이니까.
시궁창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살수로 살던 자신을 프랑스의 대부호의 비서로 이끌어준 사람,
음지에서 사람의 피밥을 먹던 쓰레기는 언제가 그 뒷골목에서 피 흘리다 죽는다는 것에 예외가 없을 정도로 험한 곳이었다.
여정조민이 세르비아에 머물던 때, 운 좋게도 그녀의 경호를 맞았던 것이 인연이었다.
그리고 스승에게서 거금을 들여 자신을 구입해 준 것도 그녀였다.
그 후 그녀와 약속했던 고등교육과정을 이수해 그녀를 찾았고, 그래서 지금은 그의 아들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그 은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지금 구사하고 있는 이 격정적인 창술로 생전 생각지도 않던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마스터의 말에 의하면 고블린들은 몬스터 중에 가장 약한 놈들이라고 했지만, 놈들의 민첩함은 보통의 인간이 따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각성이라는 고통의 순간이 부여해 준 혜택은 그래서 다행일 정도였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등장한 오크라는 것들은 그녀가 지금까지 만나 봤던 상대 중에 단연 최상위의 육식 종이었다.
전 같았으며 단 한 합도 못 견디고 죽었음이 명백했다.
그러나 저런 괴물들을 썰어가며 겨룰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즐거웠다.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다시 소음이 들렸다.
오크라는 괴물들이 함성을 지르고 오로지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제 남은 300 짐승들의 괴성은 결사를 다짐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저것들을 막으려 안간힘을 써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300의 오크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교전이 시작되고 시안과 마리아가 죽여 나간 게 600이 넘었다.
그중 오크만 100을 웃돌았다.
초반 고블린 코볼트 까지는 병력의 희생이 크지 않았다.
한데 오크가 등장하자 이건 싸움 자체가 되지 못했다.
9000의 병력 중에 3000이 갈려 나갔다.
초반 몰려 들어온 4,500의 고블린 코볼트를 전멸시키며 200명이 희생당했던 것도 작지 않았지만,
고작 100두의 오크를 상대로 2천8명이 희생된 셈이다.
교전비 28 대 1
이대로 300두의 오크들과 육탄전이 벌어지면 지금 남은 병력이 전멸을 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마리아!”
그녀가 자신에게 따라붙은 오크 둘을 썰면서 달려왔다.
“마스터.”
“나는 균열 앞을 염화 마법으로 부술 생각이야. 마리아는 균열 앞으로 돌진하다가 내가 부르면 바로 뒤돌아 달려와야 해 알았지.”
300의 어그로를 그녀 하나에 쏠리게 해야 한다.
“네, 마스터”
“그럼 부탁할게.”
시안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균열을 향해 달려 나가는 마리아는 신화 속 발키리의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빛을 발산했다.
그리고 내달린 그녀의 창과 오크들의 날붙이가 요란한 파공음을 내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시안은 그녀의 무사를 빌며 가슴의 뜨거운 서클을 식혔다.
“후우···”
저 멀리 오크를 정면으로 맞아 분투하고 있는 마리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온전히 그녀에게 쏠리고 있는 오크들의 분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균열 안에서 어떤 존재들이 느껴졌다.
-대군주의 위엄이 열립니다.
패시브스킬이 발동할 정도로 강한 놈이다.
그 존재들은 여느 오크와는 확연히 다른 기운을 품고 있음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시안은 마리아가 위험함을 직감했다.
허리춤에 저절로 손이 가며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마리아!”
시안의 외침에 그녀가 뒤돌아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휘리릭!
어느새 균열 저편에서 날아온 창이 마리아의 허리를 꿰뚫으려는 찰나,
-까앙!
시안이 던진 도끼에 방향이 틀어지며 그녀의 옆구리를 스쳤다.
“헉!”
섬뜩한 통증에 겨우 몸을 가눈 마리아가 다행히 멈춤 없이 달려왔다.
그녀는 예언과 치유의 여신 에이르의 화신이다.
어지간한 상처가 제약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리아의 진한 피 냄새가 번지자 오크들이 그녀를 향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다.
강자와 겨루는 것을 영애로 여기는 오크들은 강함을 쫓는 몬스터들이었다.
그녀가 강자임을 뽐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장 적합한 징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힘껏 울렸다.
[쏘레 엘두이그 붐베!]
영성이다.
-쉐에에에에엑!콰꽝!쾅!쾅!꽈꽝!꽝!우르르르꽈꽝!꽈꽝!
연쇄적인 화염의 쓰나미가 바닥을 쓸고 균열로 향해 내달렸다.
영혼이 내린 염화의 징벌이었다.
시안의 발치에 멈춰선 마리아가 뒤돌아 자신이 선 자리부터 균열을 향해 길게 이어진 불길을 바라봤다.
화염 폭발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새까맣게 타버린 오크의 시체들 사이로 시안 걸어 나가고 있었다.
“마리아 이제 좀 쉬고 있어. 갔다 올게.”
마리아는 대답보다 먼저 머리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네··· 마스터···”
눈앞에 남은 오크는 이제 100여두 뿐이다.
그것들의 분노가 온전히 그에게 쏠리자
그의 가슴이 다시 식으며 적막한 진언이 조용히 가슴을 울린다.
[루프트 붐베!]
-쒜에엑! 꽈꽝!꽈꽝! 콰앙!
이번에는 균열의 주변 전체를 진공의 공간으로 만들며 거대한 공기 폭발이 일었다.
영창 없는 영언의 시전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분쇄된 육편들과 함께 분무된 붉은 안개가 허공을 맴돌다 바람에 흩어졌다.
이제 남은 30여두의 살기가 그에게 겹쳐지고 그가 쥔 창에 푸른 오러가 오른다.
-혜안이 열립니다.
-훅! 후웅! 화악! 까득! 까강!
그에 대한 적의와 경외감을 투기로 치환해 자신들이 정예임을 입증하고자 오크들의 서슬푸른 도끼들이 강자에게로 난무를 시작했다.
‘혜안’의 도움으로 이 시공은 그의 편이다.
그러나 오크의 날카로운 공격은 시공의 불합리를 넘어서 그의 살갗을 노리며 빠르게 경로를 틀어 들어왔다.
시안이 바닥을 박차 강철 창대로 도끼의 동선을 막고 창의 날끝을 빠르게 돌렸다.
-후웅! 툭!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긴장 속에 오크의 머리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2m가 넘은 거체들이 허공으로 파편이 되어 날렸다.
-서걱! 서걱!
쓰러지는 오크의 몸둥이를 창끝으로 찔러 매달고 방패로 삼아 앞을 막다가 몸을 돌려 뒤를 노리던 놈의 가랑이부터 위로 썰어 날렸다.
-후웅! 석!
다음 순간, 마치 천조각이 둘로 갈라진 듯 두 쪽으로 나뉜 오크의 육신이 허공에서 펄럭이며 나르다 가로수에 널렸다.
눈에 보일 정도로 느린 도끼의 날선들이 다음 경로를 말해 주고 있다.
자신의 육신은 오크보다 강하다.
도끼의 자루를 팔꿈치로 막고 한 놈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뒤돌아 창날의 끝을 휘저어 돌렸다.
-팡! 타당탕! 까깡탕!
불꽃을 튕기는 쇠붙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던 놈들이 물러설 때,
파고든 시안의 어깨에 가슴이 부서져 무너지던 놈의 턱을 창대 끝으로 쳐올렸다.
-퍽!
“쿠액!”
그 허점을 노린 도끼들이 다시 호선을 그리며 그에게로 난입했다.
-터억!
턱이 부서져 쓰러지는 놈의 몸을 딛고 튀어 올라 떨어지는 탄력으로 회전하며 돌린 창날이 그 빈틈을 헤집었다.
-후웅! 석! 서걱!
어느새 오크들의 붉은 피는 그의 고단한 정신을 깨우고 오러에 비릿한 빛깔을 덧칠했다.
게임 속 눈마바사가 그랬듯 시안 또한 이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후웅!
-터덕! 턱! 투둑!
그의 입가에 미소가 오른다.
균열 저편의 존재가 이제 자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도 이제 마무리를 할 때다.
가슴이 다시 한번 차갑게 식으며 의식이 또다시 가슴을 울린다.
[쇼크뵐그!]
-파앙!
시안을 중심으로 은밀히 가해진 근접 충격파는 그를 둘러싼 오크들의 몸과 정신을 일시에 흔들었다.
-화아악! 후웅!
-턱! 터덕! 후두둑!
여섯이던 오크들의 사지가 끊어지고 그걸로 끝이었다.
오크들의 시체들 중심에서 선 시안이 창날에 흐르는 피를 털어내며 평온한 표정으로 균열을 바라봤다.
‘안목’에는 F급 균열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오크가 500두 이상이 튀어나온 건,
처음부터 오바다.
오크는 몬스터 체급으로 치면 페더급,
E급 상단을 차지하는 중량감을 가진 몬스터였다.
지구의 인간들이 대적할 수 없는 지능형 몬스터가 고작 F급 균열에서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반칙이다.
그렇다면 E급 균열에서는 트롤이나 오우거가 등장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이것도 오딘의 장난질일까?
거기에 균열 속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놈이 둘,
“어?”
분명 둘이었는데···
지금은 오롯이 하나로 느껴지고 있다.
지금 풍기는 기세는 오크도 오우거도 트롤도 아니다.
만족감에 가슴이 뛰는 포식의 기세,
우습게도 놈은 이 상황에 야수의 포만감을 위해 즐거운 포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둘이 었던 것이 하나가 된 묘한 위화감,
시안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리아를 멈춰 세우고 전음을 전했다.
‘마리아, 이곳에 있는 모든 병력을 멀리 물리라고 해. 가급적 멀리···’
‘네, 마스터’
‘마리아도 나와 거리를 유지해. 내 지시가 있기 전에는 100미터 안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
받아들이기 곤란한 지시에 마리아가 당황했다.
‘그···그건···’
‘놀랄 것 없어. 내 주변을 봐.’
그의 말대로 주변을 살폈다.
공중 위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시안에게 버프를 주고 있는 페어리 3대장의 모습이 그녀의 에이르의 예안에 드러났다.
‘그러니까 거리를 벌리고 대비하라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마리아가 하덕윤 대장에게로 달려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기세를 한껏 올렸다.
-대군주의 위엄이 활짝 열렸습니다.
‘파드리안, 참지 말고 지금 양껏 먹어 치워.’
그와 동시에 근방의 혈흔들이 증발해 자취를 감추고 전신이 피칠갑이던 시안의 모습도 말끔하게 씻겨졌다.
병력들이 이동하는 사이, 놈의 식사도 끝났다.
-툭!
월도를 변형한 폴암을 어깨에 걸쳐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제 녀석을 초대할 때다.
“밥 다 먹었으면 나와.”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