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인신매매 중계업자 소진원,
놈이 있다는 옥련동의 술집은 중급 호텔 지하의 고급 룸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자쟈의 부탁대로 차량을 멀찍이 주차해 대기하고 인원 중 셋만 외각에 은밀히 배치했다.
그리고 박석찬과 권영길이 영업장으로 들어갔다.
술집 중앙 홀 정면에 웨이터로 보이는 종업원이 다가왔다.
“어서 오서오십시오. 예약은···”
인사를 하던 종업원에게 박석찬이 지갑을 열어 5만 원권 10장을 내밀었다.
“마담 불러오고 이걸로 생수나 좀 가져와.”
깜짝 놀란 직원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예약 없는 것 확인했습니다. 일단 아늑하고 조용한 방으로 잠시 모시겠습니다.”
그때 박석찬이 고개를 저었다.
“제일 넓은 방부터 보도록 하지.”
그는 벌써 이 공간의 기척을 읽고 업장에 몇 명이 있을지 대충 파악을 했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손님이 많이 들지는 않았군.’
웨이터는 중앙 홀 입구로부터 깊숙이 떨어진 곳으로 안내해 방문을 열었다.
“여기입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방으로 안내···”
직원을 따라 안내된 방으로 들어섰다.
“여기로 하지 다른 특실이라고 뭐 다를 것 없을 것 같은데 문제 있나?”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세팅해 드리겠습니다.”
웨이터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박석천이 여유롭게 실내에 숨겨진 장치들을 살폈다.
그보다 먼저 권영길이 탁자와 의자가 놓은 곳의 맞은편에서 무언가 발견하고는 휴지를 찢어 벽에다 린치를 가하고 있다.
신속하게 일을 마친 그가 박석찬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아 업장이 위치한 지하실 도면을 상기하고 자쟈가 원했던 방인지를 다시 한번 복기했다.
그리고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문이 열리고 마담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웨이터가 들어왔다.
“어머, 젊은 분들이 들어오니까 정말 밝은 빛이 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곳에 마담 주리입니다.”
“주문받는 사이에 애들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습···”
박석찬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오늘은 됐고···”
테이블 세팅을 하려던 웨이터를 물리며 시선을 권영길에게 돌렸다.
의아해하는 마담 앞에 5만 원권 백장 묶음 두개 탁자에 올려졌다.
“내일 VIP와 함께 방문 예정인데··· 이건···”
“···”
“당일 불편함이 없게 이 방 청소라도 한번 해두라는 의미니까. 일단 넣어둬요. 내일 것은 따로 계산하도록 하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던 마담이 탁자의 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 두 분만 오시는 거면 이거 사이즈가 너무 넘치는데요. 최선을 다해 준비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가시게요? 살짝 목이나 축이고 가시지. 그냥 서비스로 차원에서 대접해 드릴게요.”
박석찬이 대답 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안 될 것 같군. 마음만 받도록 하는 걸로 하고··· 혹시 여기 에이스들 좀 볼 수는 없을까? 미리 초이스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거액의 돈을 미리 챙긴 마담의 입장에서도 괜찮은 제안이었다.
“금방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그녀가 나가고 자쟈에게 연락이 왔다.
[보안실 접수완료,]
건물의 구조를 파악한 자쟈는 어느새 보안실 모니터 직원을 은밀히 재워 놓은 채 CCTV 앞에 앉아 있었다.
이제 소진원의 룸으로 숨어드는 건 그의 몫이었다.
투입한 대기조들을 보안실로 불러들여 경비시스템을 점거했다.
그사이 자쟈는 잠시 주차장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날 신호를 기다렸다.
‘자식 잘 해야되는데··· 영 믿음이 안 가 믿음이···’
어느 정도 연기가 필요한 역할인데 박석천이 미덥지 않은 자쟈였다.
그때,
-똑똑똑 -덜컥!
박석천이 있는 방문이 노크와 함께 열렸다.
문으로 들어선 30대 중반의 남자,
옷차림부터가 서비스업 응대와는 거리가 먼 명품 차림새의 남자였다.
저런 인물이 영업부장이라고 했던가···
“우선 저희 랑스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곳에 총괄지배인 조아해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사장님들의 요청을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석천은 냅킨으로 토끼접기에 열중 중이다.
권영길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얘들아 줄 서고 민아부터 들어와 인사드려!”
갑작스런 예약 초이스 미팅이 시작되면서 가뜩이나 좁은 통로가 종업원들로 혼잡해졌다.
웨이터들도 거액을 선불을 내놓고 예약을 했다는 큰손에 대해 신기해하며 업장의 모든 관심이 그 방으로 쏠렸다.
자쟈가 요구한 건 이거 하나였다.
업장 관계자들의 관심을 돌릴 약간의 소란,
자쟈는 그 소란한 틈을 이용해 그림자처럼 조용히 이동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소진원의 방이었다.
‘세 명···길어야 15분.’
안에는 박석찬이 예약 초이스를 걸어 종업원들이 호출된 지금,
-똑똑
“뭐야?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간 자쟈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의아해하는 소진원과 주변 인물들에게 활기찬 소리로 인사 멘트를 날린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들.”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멈칫하던 놈들이 짜증 난 목소리를 높였다.
“뭐? 그···닌 뭐네?”
갑자기 등장한 자쟈를 보며 의문부호를 잔뜩 떠올리는 표정의 남자 둘,
함께 있던 업소녀들은 역시 호출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일단 무시하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는 형님들을 즐겁게하라는 특명을 받아 마술을 보여드릴 크리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때 소진원이 어이없다는 듯
“뭐? 저기 미친놈 아니냐? 됐으니까 닌 나가고 불려나간 아들이나 다시 오라 해라. 디주기 싫으면 언능 꺼지라.”
짜증스러운 몸동작으로 자신의 왼쪽에 앉은 부하에게 손짓했다.
“뭐하니. 저 새끼 빨리 내 보내라. 그리고 주리 불러!”
소진원은 흥이 깨졌다는 듯 인상을 구기고 짜증 게이지를 잔뜩 올리고 있다.
그의 부하 한 놈이 자쟈를 향해 막 일어나는 상황,
“여흥은 밤의 유흥을 돋게 하는 법이죠.”
-화르르르르르륵
자쟈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쪽으로 벌린 그의 두 손에는 불길이 일었다.
“어 뭐? 뭐야 저 새끼 저거? 진짜 마술사였니?”
모두 놀란 눈으로 그걸 바라보는 가운데,
손에서 일어난 불길을 하나로 모으자 갑자기 36년 된 발레타인으로 둔갑했다.
지금 이들이 마시는 발렌타인은 25년산이었다.
“발렌타인 36년 이건 제가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형님들 저희 랑스를 이용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걸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던 소진원이 자쟈에게 말했다.
“허허 이 새끼 가짜 양주 팔러 왔구만, 진짜 미친놈이네.”
“아니요 형님 이건 진짜 서비스인데요?”
자쟈의 웃음기까지 천진난만한 표정에도 의심을 지우지 않는 소진원이 부하에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야 저거 따서 저 새끼 한번 먹여봐. 선물을 그냥 받을 수 있나.”
그 잔을 받아서 자쟈에게 다가간 놈이 발렌타인을 뺏어 들고 마개를 개봉해 맥주 글라스에 한 잔 가득 따라 주었다.
“오 형님들 뭘 좀 아시네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그걸 넙죽 받아서 단번에 들이켰다.
“허허 저 새끼 잘 마시네. 야 니도 마셔봐.”
소진원의 부하는 머뭇거릴 때,
자쟈가 나섰다.
“형님들 잠깐! 술은 제가 한번 말아 들이겠습니다.”
“허허···양키 같은데 여기 말을 잘하니, 그래 말아 보라.”
자쟈가 바텐더만큼 화려한 동작으로 양주를 글라스에 얼음과 함께 한 잔씩 채웠다.
“정성을 다했습니다. 저는 그럼 애기들 오기 전까지 형님들 무료하지 않게 다음 마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분위기가 경계에서 호응으로 바뀐 순간이다.
그새 자쟈가 따라준 양주를 마신 한 놈이 설레발을 쳤다.
“형님, 이거 진짠데요. 죽입니다.”
자쟈가 얼굴에 살인적 미소를 그리며 다음 마술을 준비했다.
마술은 역시 카드지···
***
박석찬이 시계를 봤다.
‘10분이 지났다. 녀석은 15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예약 초이스는 이제 종업원 중 소진원의 방에서 호출된 둘만 남은 상태였다.
“우리 랑스가 에이스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이에요. 어떠세요?”
“안녕하세요 나희입니다.”
“전 보라라고 해요.”
마담이 몸이 달아서 말을 이었다.
“내일 오시면 최대로 잘 모시게 준비 단단히 해 둘게요.”
옆자리에 총괄지배인이라는 조아해가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미리 말씀만 주십시오. 업장 문이라도 닫고 화끈하게 모시겠습니다.”
박석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애매하게 말을 끌었다.
“뭐 일단 잘 봤어요. 내 취향은 만족인데··· 그 VIP가 어떨지는 애매하네.”
“사장님 애들은 송도 바닥에서 불러오면 됩니다. 저 능력 있는 지배인입니다. 믿어만 주십시오. 최고의 비주얼로 보답하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되어간다.
고개만 끄덕이는 박석찬의 신경은 온통 인이어로 쏠렸다.
‘자쟈야. 시간 됐다. 적당히 좀 하자.’
***
마침 자쟈의 마술쇼도 클라이막스에 다다랐다.
잠시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소진원,
자쟈의 카드 마술을 보며 마음의 경계가 완전히 풀어져 있었다.
“호오 카드 마술이 시발 진짜지 너 좀 하는 구나?”
자신의 지갑에서 돈다발을 꺼내 자쟈에게 던졌다.
“아주 좋았어. 너 마음에 든다.”
그런데 눈앞이 흐려지는 게 뭔가 이상했다.
자신의 양옆에 열심히 떠들던 애들이 눈이 풀린 채 조용하다는 걸 그때야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던져준 돈다발을 밟고 탁자로 올라서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술사는 마치 자신을 귀여운 아이처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미 룸의 문은 안쪽에서 잠긴 상태,
자쟈가 소진원을 보며 말했다.
“이제 진짜 재미있어질 건데···”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자쟈가 소진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이려는데 도통 힘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놈의 웃음에 숨이 멎을 것 같다.
비명을 지르려는 소진원의 입을 틀 막고
“쉬이··· 조금만 참아.”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가는 자쟈는 마치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는 아이와 같이 천진했다.
“내가 하는 마술은 지금부터 거든요 형님.”
그 말과 함께 소진원의 정신은 약에 취한 듯 아득히 멀어졌다.
자쟈가 무선 인이어를 꼽았다.
“아!아!”
자쟈의 마이크 테스트에 짜증이 묻어나는 시안의 대답
[들린다고.]
“밖에 인원들 들어와서 얘네들 좀 부축해 들고 가라 해. 웨이터한테 차 빼 달라하고··· 어차피 만취한 것처럼 보일 거야.”
밖에서 들어온 인원들이 술값을 지불하고 소진원을 마치 자신들의 보스인냥 정중하게 부축해서 데리고 나갔다.
박석천은 자쟈의 콜을 신호로 중앙홀에 미리 나와 있었다.
그리고 들려 나가는 무리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이구 저게 누구야! 저 친구 언제 왔었어? 많이 취했네?”
그 말에 뒤를 돌아보는 지배인
“어? 사장님! 벌써 가···”
“오빠! 하··· 그새를 못 참고 뻗어 버렸네. 팁도 못 받았는데···”
“그러게··· 얼마나 취한 거야?”
그들을 뒤쫓으려는 여종업원 둘을 권영길이 가로막고 붙잡았다.
“저 친구들 잘 아는 사람인데, 저래 가지고 팁 계산이나 되겠어? 주리씨.”
“네 오빠. 진짜 그것도 대신 계산하시게요?”
권영길이 고개를 끄덕여 능청스럽게 웃으며
“그르치 그르치···”
그녀들 앞에 돈뭉치를 꺼내 주었다.
“어머, 의리 무야! 웬일이니 진짜.”
“너무 짱이다. 의리 미쳤다 미쳤어. 고마워요 오빠.”
여종업원들이 폴짝폴짝 뛰며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그사이 보안카메라 메모리칩을 회수했다는 통신을 받은 박석찬이 지배인에게 5만 원권 백장 묶음 한 개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지금까지 조지배인의 노력에 대한 성의니까 넣어 두세요. 아쉽게도 여기에는 까다로운 VIP취향에 맞는 아가씨들이 없는 듯 하네. 아까 지불 한 돈은 그냥 직원들 위로금이라고 생각해. 나중에 한번 꼭 들리지.”
“아니 그······”
무슨 대답을 하려는 지배인을 뒤로하고 랑스의 정문을 나셨다.
그 뒤로 지배인이 웨이터들에게 소리쳤다.
“야 니들 뭐해 빨리 튀어 나가 차 빼서 대기시켜!”
정문으로 따라 나섰던 웨이터가 달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뛰어나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리무진을 타고 출발하시던데요?”
지배인은 큰 손님을 놓쳤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쩝! 그래도 뭐 공돈으로 위안이나 삼아야지 어쩔 수 있나.”
갑자기 예상도 못한 돈벼락을 맞고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네 하는 사이, 누군가가 말했다.
“근데 이거 진짜 돈 맞기는 해?”
“어? 그러게··· 하나같이 빳빳하네. 진짜 미쳤다.”
고개를 갸웃하며 주리가 말했다.
“아까 처음에 준 돈뭉치는 진짜 맞았거든···”
중앙 홀에서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던 지배인의 입에서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진짜···”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찾아주신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