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해야 사는 아이
오후의 가을 햇살이 한적한 가운데,
시안을 태운 차량이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 차량 행렬 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대의 차량들이 거리를 두고 기차놀이 중이다.
같은 시간 한남동 조태산 회장저택 주변으로도 차량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와나 어그로 오진다 오져.”]
갱생의 동기화는 어느새 급식으로 회귀할 똘기잉어력을 쌓고 있다.
“어그로라···”
그래도 그 용어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시안을 겹겹이 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무리들을 흔히 보는 요즘이니까 말이다.
4중 경호라고 해야 하나···
근래 6차례에 걸친 암살 시도 때문에 바짝 긴장한 알베로 아저씨의 경호단과 다국적 정부기관들 간의 실랑이도 잦았다.
국정원과 CIA, 그리고 FBI까지,
그에 더해 각국의 정보기관들까지 난입한 모양새였다.
한반도를 전쟁의 화약고로 삼으려는 세력들이 음지에서 활동 중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안은 불과 반년만에 주목받는 요주의 관찰 대상이 되어 버렸다.
‘하고들 있는 꼴을 보니 껀수 잡히면 마녀사냥까지 할 기세네···’
강변도로를 따라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을 바라봤다.
바사의 말대로라면 괴수들이 저 강물을 헤엄치게 될 것이다.
잘 뚫린 도로 위로는 야수들이 활개를 치고, 하늘 위에는 그라핀 만한 맹금류들이 먹이를 찾아 활공하는 끔찍한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 인간들이 생각하는 모습의 전쟁은 일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전쟁보다 더 공포스러울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그 전에 시안은 가진 모든 재화를 한반도에 쏟아부어 생존의 시대를 준비하려 한다.
‘잘 될지는 모르지만···’
어느덧 시안을 태운 차는 한남동으로 들어섰다.
조태산 회장의 저택 앞에 멈춘 차에서 내린 시안이 대문을 통해 정원으로 들어섰다.
회장댁 사용인들이 고개 숙여 맞이하는 정원 길은 처음 방문 때보다 더 넓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회장님게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강호 비서실장이 그를 맞아 앞을 섰다.
그의 안내에 따라 조재강을 대면했던 별채를 지나쳐 본채로 들어선 거실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호오, 많이도 있네.’
대략 8명
머쓱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데 조태산회장이 누군가와 함께 다가왔다.
“민시안이 왔구나. 이번에도 일이 있었다지? 그래 별일 없어 다행이구나.”
“네 안녕하셨어요. 할아버지.”
“할아···?”
시안의 입으로 처음 들어보는 할아버지라는 부름에 잠시 멈칫하던 조태산회장의 표정이 세상을 다가 진 듯 활짝 개었다.
“그래 그래 아하하하하! 안녕해야지 그럼 그럼 할아버지니까 허허···”
할아버지 소리가 그리도 좋은지 한바탕 크게 웃는다.
“반갑다 민시안 나 병호다. 어제까지는 육촌 형이었지만 이제 너의 사촌 형이 되지.”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한 장년의 남자 어딘지 긴장감이 보였지만 시안은 그를 향해 환한 미소로 손을 맞잡아 인사를 대신 했다.
“네 반갑습니다. 제가 조민시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형님.”
“하하··· 시원시원해서 좋네. 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
조병호도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좀 더 활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그러지들 말고 이리 와서들 앉아라. 식사 전에 정리해 둘 것도 있고···”
모두가 서서 기다리는 직계들 사이로 조태산 회장의 좌우로 배정된 조병호와 시안이 자리해 앉았다.
나머지 직계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모두 착석했다.
주위를 둘러본 조태산이 입을 열었다.
“이실장. 준비되었나.”
“네. 회장님.”
“그럼 이제 시작하지.”
조태산이 잠시 긴 숨을 쉬고서 말을 이었다.
“내 자식이 만든 인연을 무책임하게 원망으로 놔둘 수는 없는 일, 그게 오늘 너희를 부른 내 뜻이다. 너희들의 친모들은 모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부른 것이라는 걸 알고 왔을 것이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어려 보이는 조그마한 아이가 다른 이들보다 외진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질도 제대로 안 된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눈을 힘없이 껌벅이며 낯설은 장소에 외딴섬이 된 아이는 아마도 방치된 채 살아 온 게 분명해 보였다.
조재강은 제 자식들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시안과 눈이 마주친 아이는 뭔가 주눅이 든 듯 갑자기 움찔하며 벌떡 일어나 몸을 숙여 배꼽 인사를 했다.
보통 저 나이에 아이들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닌 심리상태를 보여 준다.
지금 자신의 할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도 안 갈 나이,
저 아이는 이 자리에 다른 이들과는 별 상관도 없는 외딴섬 같은 아이일 것이다.
시안이 이강호 실장을 조용히 손짓으로 불렀다.
조태산 회장의 말이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말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입적과 가족관계 정정신청에 대한 설명이었다.
김일환 변호사와 나눈 적이 있던 얘기,
시안이 할아버지 손자로 재입적되었던 과정이었으니까.
거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조재강의 자식이면서 성씨가 각기 다른 자식들···
그들 중 호적에 올리지 못한 자식들이 모두 여섯이었다.
둘은 지금의 호적을 유지한다고 했다고 했다.
나머지 모두 조재강의 자식들로 입양 절차를 밟게 된다는 얘기였다.
조재강은 감방에서 그동안 방치했던 자식들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졸지에 호적에 올리게 되는 셈이다.
‘면회 와주기를 기다릴 사람들 많아서 좋겠네 조재강. 이 중에 몇이나 갈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
조재강의 차남인 조병선이 대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안나의 파티에서 봤던 인물이다.
“할아버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서로의 우애를 돈독히 해서 집안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리고 둘이 지금 상태를 만족한다고 했다지. 어디 보자.”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는 남자와 여자가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저는 스물네 살 정경훈이고 스물두 살 동생 정경아입니다.”
정경아도 그때 조병선과 함께 봤다.
“그래 너희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둘이 지금 연예계에서 활동한다고 했었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얘기군. 이 실장.”
“네 회장님.”
“저 아이들 엄마의 내일 일정 좀 물어보게. 올 수 있다면 자리를 한 번 더 마련하도록 하게.”
“네 회장님. 연락하고 직접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래, 경훈, 경아야.”
“네 회장님.” “네.”
“너희들의 뜻을 존중하마. 앞으로도 나를 할아비로 생각하라고 내어준 자리니 편히 앉아라.”
“할아버님 배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때 시안이 손을 들었다.
“할아버지.”
조금 전 눈에 띈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건, 단순한 호기심도 동정심도 아니었다.
시안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갈등하고 말고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래 민시안 할 말이 있나?”
단도직입적으로,
저 외진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는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저의 친동생으로요.”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시안의 손에는 조금 전 이실장에게 건네받은 그 아이에 대한 내력이 적힌 종이도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조병호는 머리를 갸웃했다.
‘저건 말려야 되지 않나?’
민시안에 대해 미리 언질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도 조태산 회장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이실장.”
“네 회장님.”
“저 아이가 민시안의 동생이 될 수 있는지 법적으로 알아보고 그렇게 진행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조태산회장이 민시안을 보며 재차 확인했다.
“정말 괜찮겠니? 저 아이는 재강이의···”
“네 저는 상관없어요. 누구의 혈육이든 아이만 잘 자라면 될 일이니까. 저도 외동으로 외롭게 자랐잖아요.”
아직 장가도 안 간 녀석이 덜컥 아이부터 맡겠다는 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를 보면 녀석은 저 아이를 정말 잘 키울 것 같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저 조그마한 아이가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조태산 회장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법적으로 시비거리가 될망정 혜성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법원으로부터 미성년 자녀 후견 복지라는 참작을 받아내면 가능할 일이다.
“제가 형제도 없이 너무 쓸쓸했나 봐요. 잘 돌봐 주고 싶네요,”
“그래 보모도 따로 구하면 될 일···”
아이의 이름은 감이솔,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녀의 친족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처럼 방치되었고 결국에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모든 조재강의 방계를 남김없이 찾아라.]
조태산 회장의 엄명이 떨어진 날,
조재강의 끈 떨어진 비서 중 하나가 그 사실을 이실장에게 알렸고 그래서 찾아왔던 터였다.
사실 그녀가 죽게 된 것이 사고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짐승 같은 놈 진짜 여러 사람 인생 망가지게 했네.’
아이는 얼마든지 잘 키울 수 있다.
아까 저 아이가 배꼽 인사를 했던 걸 떠 올리며 아직도 맥없이 주눅 든 눈으로 힐끔힐끔 자신의 눈치를 보는 아이에게 미소를 띠고 손짓했다.
“이리 와. 아가야.”
아이가 주섬주섬 자기 몸 절반 크기의 가방을 끌다시피 들고서 시안에게로 머뭇머뭇 걸어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이르자 다시 배꼽 인사를 하며
“안용하세여···”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기의 발끝만 바라봤다.
“그래 안녕, 나 오빠야 이솔아.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
시안이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네···”
그 대답과는 다르게 아이는 소파보다는 거실 바닥에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하지만 시안은 아이의 몸에 손을 대 소파로 올려놓을 수 없었다.
그런 행동마저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아이의 계산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재강의 핏줄,
그러나 이 아이는 이 세상에서 절대 괄시받으며 살면 큰일 날 아이다.
이름 : 조이솔
나이 : 4세
가호 : 에인 스코푸드 갈드라(비각성), 루나티르(비각성)
특성 : 노래하는 ??(개화 중)/ 루나티르의 손(주목 중)
생명 : 1.0
지력 : 10.5/30.0
체력 : 0.2
근력 : 0.1
민첩 : 0.3
마력 : 0.00001
▽
*클리어 보상 포인트 : 00▼
*각성을 충족하면 신성의 가호를 받아 능력치가 급상승합니다.
이 아이는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서 [노래하는 ??] 특성의 물음표가 마녀가 될 수도, 성녀가 될 수도, 천사가 될 수도 있는 아이였다.
가호에 ‘에인 스코푸드 갈드라’는 [주문의 유일한 창시자]라는 뜻으로 오딘의 별명 중 하나인데, 이건 시안이 눈마바사로 게임을 플레이하던 시절 목숨 걸고 얻었던 가호라서 잘 알고 있다.
하루에 한번 주문을 암송하지 않으면 마법 데미지가 24시간에 10%씩 빠지는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오딘의 가호인 만큼 강력한 가호인 건 분명했다.
현실에서 이 아이는 차원의 문이 열린 이후 그걸 스스로 터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데 1+1으로 묶음으로 가호가 하나 더 올라가 있었다.
‘루나티르’는 [룬 문자의 신]을 의미하는 오딘의 또 다른 별명이었다.
오딘의 가호와 특성이 지독하게도 각인된 아이였다.
쉽게 말해 오딘 영감이 더럽게 침 발라 놓은 위자드 화신인 셈이다.
가호와 특성이 동일한 주신으로 과부화가 걸리는 상황
때문에 [지력]에 유동이 부여된 걸로 보였다.
지력 : 10.5/30.0
맥시멈 - 300
미니멈 - 000+α
아니면 뇌가 망가질 테니까.
이 아이가 방치된 채 자란다면 극강의 마녀가 될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 중 하나가 그의 발치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자신이 괴물인 걸 감추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게 싫어서일까.
‘이래서 천재는 천재가 키우는 게 맞긴 해.’
한동안 조용히 닥치고 있던 바사가 퉁명스럽게 이죽거렸다.
[“네놈과 똑같은 놈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냐?”]
‘미친놈?’
[“···”]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찾아주신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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