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Go & Stop
쿠데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곳,
세계 3차 대전의 도화선은 중앙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동, 서부다.
그곳에 무장세력들이 서방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각 나라마다 반정부 전선이 존재했다.
중앙아프리카만 해도 크고 작은 반정부 군벌이 수백 개가 넘는다.
아포칼립스와 그 외 쉘터지대가 공존하고l, 첨단 밀레니엄 시대와 1800년대 식민지 세상이 뒤섞여 있는 대륙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1,500개가 넘는 종족 간 갈등과 권력형 군벌들의 준동은 자원이 풍부한 그 대륙이 지금도 가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였다.
아프리카의 금을 생산하는 나라가 외환보유고가 최빈국이라는 건 상식 밖이지 않은가.
자국의 외환보유고 50%를 프랑스 재무부가 관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아프리카에 수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했지만, 그건 문서상으로만 기록된 허울뿐인 독립에 불과했다.
서구사회가 지금도 그들의 고혈을 빨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들이 주류인 서구 국가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인들은 독립 후 몇 세대가 지났음에도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다수들이 존재했다.
1~2년 사이 군벌에 의해 정권이 매번 바뀌어도 그들은 식민지국가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런 타자성은 식민 지배의 결과에서 나타났지만,
독립 후 이어온 극심한 내전 속에서 난민들은 서구의 물자 지원과 원조 없이는 살기 힘들었던 사회적 빈곤에서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아프리카를 독립시킨다는 명분으로 소수의 병력만 남기고 철수한 서구의 국가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에게 당근을 주며 그들의 타자성을 조장하고 이용해 자원을 후려치며 피를 빨고 있다.
그런데 그 난장판에 아랍국가들을 등에 업고 러시아와 중국이 끼어들었다.
중앙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지도자는 그런 외교적 대안을 배경 삼아 지금도 미국과 프랑스를 배척는 스텐스를 취하고 있는 이유다.
그 이웃국가 부르키나파소는 식민지 시절부터 통용되던 통화인 프랑스의 프랑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기축통화로 갈아타려고 러시아와 중국을 끌어들이고 있다.
러시아는 몰라도 중국은 아니다.
그게 그들의 가장 큰 오판이다.
타자성은 서구 자본주의에 의해 조장된 심리적 의타심일 뿐, 동양의 공산주의자들에게까지 일관성 있게 발현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바였으니까.
그건 20세기 말, 미국 백인사회에 짓눌려 타자성을 떨치기 전의 흑인들이 황인들을 무시했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중국이 어떤 돈지랄을 한다 해도 뻘짓 한 번 제대로 걸려서 민심이 텃세로 꼬이고 여론이 악화되면 그 땅에서 뼈도 못 추린다.
미국과 EU 간에 스텝이 꼬였다면, 러시아와 중국의 스텝도 꼬이게 해야 한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는 그들의 골치를 썩게할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그 작업을 정밀하게 하기 위해서 ‘더블에이취’의 정보 네트워크가 필요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을 옭아매기 위해 내부 결함요소인 핀리 밴슨만큼은 꼭 같이 오라고 청했다.
중국도 헬덤 크래커라는 인물에 대해 매우 궁금해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늘 그가 휴대하고 들어온 기기들은 1.5센티 핀 크기에 스텔스 기능이 있어서 옷깃에 설치하면 검색되지 않는 물건이었지만,
주현아의 패시브 스킬 ‘투시’에는 소용이 없었다.
위험하거나 의심되는 것들을 탐지하는 능력,
그런데···
그러고 보니 아까 밴슨을 잡던 때의 임팩트가 여전히 가시기를 않는다.
시안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옆에 조신하게 앉아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존 해일과 스텔라 바티스타를 바라보는 주현아,
지금 생각해도 살벌하기가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은 채 그대로 점프를 하던 속도는 소닉붐이 터질 때와 흡사한 굉음이 났을 정도였다.
속도가 그렇게 빨랐음에도 공중에 떠 있던 그 찰나에 몸을 틀어 핀리 밴슨의 뒤로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다리의 오금으로 그의 목을 살짝 감싸 누르며 양팔을 뒤로 잡아챘다.
그걸로 끝이다.
그 순간적 움직임이 너무나 깔끔했다.
‘미쳤다 진짜··· 스쿨드가 괴물을 하나 만들어 놨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을 정도였다.
“흠···”
자신을 보고 있는 시안이 신경 쓰였는지 고개는 고정한 채 그녀가 물었다.
“왜 그렇게 봐요.”
“아, 아까 누나가 너무 멋지게 일을 해서 감탄하는 중.”
“핏!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할 소린 아닌 듯.”
시안이 고개를 슬며시 반대로 돌려 자쟈를 봤다.
“너는 어떻게 봤냐?”
자쟈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다리 움직임을 아주 섹시하게 봤다.”
그 말에 시안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자쟈,”
“응?”
“앞으로 우리 누나가 뭐 할 때, 넌 눈 감아. 그래서 죽게 돼도 그냥 감아.”
자쟈가 힐끗 시안을 보며
“그래 그럼 너도 엘리가 뭘 할···”
“응 안 봐.”
이미 안 보는 중.
시안이 다시 존 헤일과 스텔라 바티스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계약서를 보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둥거리며 의논하고 있었다.
별로 볼 것도 없는 내용인데도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아주 심각한 표정들이다.
“꼼꼼히 보랬다고 너무 섬세하게 살피네··· 미스 브라바츠키.”
“네 보스,”
옆에서 함께 대기하고 있던 대외 기획본부의 팀장 엘레나 브라바츠키가 보고 있던 서류들을 내려놓고 다가왔다.
“내가 확인한 그 계약서 맞죠?”
“네 컨펌 주신 계약서대로 전달했습니다.”
“그럼 문제없는데···”
그때 옆에 있던 자쟈가 말했다.
“너는 어떨 때 보면 나보다 더 멍청한 거 같다.”
“뭔 소리야?”
“내 눈에는 저 친구들이 네가 내놓은 계약조건들이 자신들에게 너무 좋아서 저러고 있는 거 같거든.”
아···
요건 자쟈보다 멍청했던 거 인정하기로 했다.
***
그들이 처음 눈에 들어 왔을 때,
맨 왼편에 그나마 나이가 있어 보이는 갈색 머리 남자가 자신들을 초대한 헬덤 크래커라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그자라고 소개한 사람은 젊어도 너무 젊었다.
그가 비록 가면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끽해야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른편에 있는 여자도 그 언저리쯤으로 보였다.
게다가···
‘동양인?’
스텔라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러나 때문에 더욱 명확하게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능했다.
그들이 자리를 비켜준 사이 자신이 체크했던 정보를 확인했다.
PS와 접점이 분명한 그룹은 그곳뿐이었다.
JM재단의 총수로 알려진 인물,
성년이 되는 올해 초부터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이 사람,
스텔레는 모바일에서 이미지를 찾아 옆자리에서 계약서를 읽던 존 헤일에게 건넸다.
그녀의 모바일 이미지의 인물을 확인한 존은 적지 않게 놀랐다.
PS재단 계열사와 관계된 홍콩과 싱가포르의 금융계 대부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파치슈바벤 총수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국의 공항에서 그와 함께 찍힌 사진 한 장,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존 해일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는 나누는 조민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계약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계약서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더블에이취는 독립성을 유지한다.]
[JM재단은 더블에이취 정통성과 정체성 그리고 운영에 대해 일체의 간섭을 할 수 없다.]
[더블에이취는 JM지단의 의뢰에 대해 교섭의 최우선권을 부여한다. 교섭 후 의뢰 수임의 거부권을 가진다.]
[아프리카에 있는 더블에이취 단원 전체를 한국으로 불러오고, 아프리카에서 더블에이취가 처리하던 모든 의뢰들을 JM재단이 완수한다.]
[단, 의뢰의 일 처리는 모두 더블에이취가 감사하고 결과는 데블에이취가 마무리한 것으로 한다. 그 대금도 전액 더블에이취가 수령 한다.]
[한국 입국을 거부하는 더블에이취 단원의 퇴직금은 법정 금액으로 정하되 더블에이취가 정하는 보너스를 추가로 지급한다.]
[아프리카에서 더블에이취가 지원했던 구호활동업무를 JM재단이 인계받아 실행하되 모든 지휘와 책임은 더블에이취 단장에게 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더블에이취는 JM산하 기관에서 실전 전술 교관과 전투 훈련 교관으로 파견 재직하거나 유사시 전투에도 참여하게 되며, 연봉은 별도로 계약을 하고 계약된 금액 총합을 JM에 청구한다.]
[모든 물자와 자금지원은 JM재단이 총괄하되, 더블에이취가 사용처를 양해를 구할 시 선 실행 후 협의를 할 수 있다.]
그밖에 잡다한 사항들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들이었다.
하다못해, 계약 기간도 없었다.
나가고 싶으면 어느 때라도 자유롭게 나가라는 식의 조항이었다.
지금 싸인하고 돈 받고 지금 바로 나가도 된다.
물론 평소라면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목숨은 보장 못 받을 테지만, 계약서 맨 끝부분에 목숨도 보장한다는 내용이 버젓이 있었다.
[본 계약에 기간은 없으며, 더블에이취가 원하면 언제든지 떠나도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관례적으로도 해악이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단, 계약일로부터 1년은 의무로 JM 근속한다.
*이 마지막 조항을 위배할 시 파기 전까지 JM으로부터 더블에이취가 수령한 연봉 총합의 3배를 배상함.]
모든 조항들을 꼼꼼하게 살펴본 존 해일이 계약서를 흔들며 스텔라를 바라봤다.
“스텔라, 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스텔라는 잠시 입맛을 다시고 말했다.
“1년을 근속한다는 조항이 좀 그렇긴 한데, 그 아래 400명의 단원들 연봉 보이시죠? 무려 3배 인상이라고요. 게다가 맨 마지막 부분까지도 독소 조항이 될 수 없도록 앞 조항들이 탄탄하잖아요?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것 같은데요 대장.”
그들에게 이 정도 조건이면,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고생했지? 우리가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 앞으로 1년간 한국에서 그냥 놀다 가라는 소리와 같았다.
휴가라고 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
그런데, 그걸 계약하자는 놈의 현재가 영···
상대하기 끔찍하지만,
그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믿을만한 놈이다.
그 단서는 조금 전 스텔라가 찾아냈다.
알베로 파치슈바벤이라는 인물을 공항까지 마중 나왔던 인물,
헬덤 크래커라는 인물이 과거에 자신들이 빨대를 제보했던 그때의 소공자일 줄은 꿈에도 예상 못 했다.
동양인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스텔라의 직감이 아니었다면, 놓치고 갈뻔한 힌트였다.
하긴 그때도 빨대를 꼽아던 자들에 대한 처벌은 끔찍했다.
금수저 소공자의 지원금에 손을 댄 관료와 단체 관리자들의 최후를 생각해보면···
지금 헬덤 크래커로 성장한 그와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빨대를 제보한 직후, 어느 날 아침 도시 관문에 나란히 벌거벗겨진 채 목이 매달린 그들의 입에는 모두 기다란 빨대가 물려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적힌 푯말이 아래에 걸렸다.
[이것들은 사람이 아니므로 날개 없는 모기로 죽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부검 결과 그들의 혈액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의 사인은 교사가 아닌 과다 출혈사였다.
그들은 헬덤 크래커의 뒤에 누가 있는지 잘 안다.
모기들을 처형한 것도 그의 지시였을 것이다.
존 해일이 스텔라 바티스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스텔라.”
“네 대장,”
잠시 뜸을 들인 존 해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까 보여준 그 사진.”
“네 맞아요 분명히 조···”
존 해일이 자신의 입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허쉬,”
스텔라가 입을 다물었다.
허쉬는 더블에이취의 첫 번째 이름이다.
폭풍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면 주목받지 말아야 할 깊은 침묵 ‘허쉬’
존 헤일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사진 이미지 지워.”]
그의 뜻을 알아차린 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민시안의 정체를 안 이상 그걸 알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어둠의 세상 최상층부가 그의 정체를 알아도 모른 체 해주는 존재,
세계 7대 특급킬러들이 1억 달러라는 의뢰비에 둘은 죽고, 하나는 병신이 되었으며, 나머지는 포기하고 등을 돌렸다는 헬덤 크래커의 얘기는 유명한 일화였다.
스텔라 바티스타가 물었다.
“그럼 우린 이제 이 계약은 해야겠죠? 대장.”
존 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모르긴 해도 저자가 이 계약서를 우리 단원들에게 보낼 것 같으니까.”
그의 말에 스텔라 바티스타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탄성을 뱉었다.
“아하··· 그럼 단원들이 우리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겠군요. 이 좋은 조건을 거절한 걸 알게 되면···”
존이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그전에 와이엇 해리슨이 우리 둘의 귓구멍에 욕을 처박아 고막부터 찢어 놓고 시작할 거야.”
“그게 더 끔찍하군요.”
역시 이 계약을 안 하면 누구 손에든 죽을 거 같다.
“그럼?”
그가 더블에이취의 두 번째 이름을 말하며 고개를 끄덕했다.
“허슬!”
“네, 직진···”
두 사람의 의견이 드디어 일치했다.
허쉬와 허슬,
더블에이취의 모터가 되는 두 단어의 정체는 다른 의미로
고스톱이었다.
***
더블에이취와의 계약이 잘 마무리되고 단원들이 입국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절차들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제,
결국 JM에 남기로 결정한 서문정은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
많이 생각하고 깊게 고민했겠지만, 시안을 둘러싼 주변의 변화에 그녀도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이 상식 밖의 일들로 혼란스러워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도 느꼈다고 했다.
이다원이라는 이름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직장이 바뀌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JM을 택하는 결정을 한 것인지 모르지만,
의아함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눈빛을 본 시안은 당분간 그녀를 더 지켜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입사계약을 하던 때, 그는 자신의 생각이 부질없음을 알았다.
원래 돈이란 그런 거다.
서문정이 최종계약서 내용을 읽어보고 서명을 한 뒤부터는 아주 맑은 눈빛으로 항상 미소를 머금고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혜성그룹 계열사 사장급 연봉의 계약서···
그런 변화 때문에 시안이 다소 거북스러운 점이 있다면,
“이사장님, 말씀하신 서류 정리를 마무리하고 전송해 드렸습니다. 필요한 일은 없으십니까?”
“네 없어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일찍 퇴근하시고 푹 쉬세요.”
“괜찮습니다. 친구분들이 방문한다는 전달을 받았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적응이 안 될 만큼 빠른 태세전환,
아무리 그래도 정도껏 해야지···
정상으로 보기 힘든 애들과의 만남까지 서문정이 알게 되는 거라면, 지금은 사양하고 싶다.
“저기··· 서문정 비서님?”
“네 대표님,”
“오늘 8국장님 리조트에 오신다면서요, 먼저 가서 준비를 해야죠?”
“아···”
그녀가 뒤돌아서서 빠르게 직무실을 빠져나갔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