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광대들의 아레나
감겼던 눈이 번쩍 떠졌다.
“쓰읍···”
침으로 흥건히 젖은 입가를 훔치며 몸을 일으켰는데···
땀으로 범벅이 된 찝찝함에 인상이 구겨졌다.
‘꿈을···’
[“그게 꿈이겠냐”]
바사놈의 목소리,
‘···꾼 것 같지는 않고, 뭐였지?’
엄청난 격통을 겪은 몸치고는 몇 시간 푹 잔 것처럼 개운했다.
‘1시간?’
그런데 정말 변화가 있는 걸까?
몸과 정신이 너무나 가볍기는 했다.
그때 울려 퍼지는 의식 속의 걸쭉한 음성,
[“상태창!”]
바사의 부름에 응답하듯 눈앞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그것,
이름 : 조민시안/ 눈마바사(갱생 중)
나이 : 19세
가호 : 씨앗/ 갱생
특성 : 최종 보스(비활성)/만개한 지혜의 화신/ 만개한 생활체육인/ 준비된 전사/ 개화된 갱생의 동반자/ 몬스터 학살자(비활성)/ 몬스터 로드 척결자(비활성)/ 마족 클리너(비활성)/ 마왕 척살자(비활성)/ 살신의 화신(비활성)
생명 : 2.25
지력 : 25.6
체력 : 5.0
근력 : 5.0
민첩 : 8.1
마력 : 0.1
▽
클리어 보상 포인트 : 00▼
*눈마바사 누적 포인트 : 60 +6α (미개방)▼
*각성을 충족하면 신성의 가호를 받아 능력치가 급상승합니다.
액티브스킬 :
▼일검 10/100레벨
▼살검 100레벨(비활성)
.
.
.
.
눈앞에 상태창을 나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며 든 생각은,
‘상태창이라고 이것저것 참 깨알같이도 박혔네···’
물론 3년간 게임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바리바리 챙겨 먹다보니까 저렇게 된 거겠지만,
뭔가 어지럽고 조잡하고 구질구질하다고나 할까.
‘일단 가호부터 가관이네···’
가호 : 씨앗/ 갱생
‘갱생’은 그렇다 치는데, ‘씨앗’?
무슨 포털사이트 메이버 카페 등급도 아니고···
‘이거 열심히 키우면 숲이 되는 거야?’
머리가 절로 흔들어졌다.
특히 특성창은 좀 애잔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특성 : 최종 보스(비활성)/ 만개한 지혜의 화신/ 만개한 생활체육인/ 준비된 전사/ 개화된 갱생의 동반자/ 몬스터 학살자(비활성)/ 몬스터 로드 척결자(비활성)/ 마족 클리너(비활성)/ 마왕 척살자(최종 보스로 전환)/ 살신의 화신(비활성)
게다가 ‘최종 보스’?
‘뭐 이런 개떡 같은 게 붙은 거야?’
아니 누가 최종 보스라는 건지···
‘바사? 아니면 나?’
[“거기에 왜 나를 가져다 붙여 자식아! 마왕 척살하고 그런 특성을 얻은 거 구만··· 가만! 아니지··· 그럼 진짜 난 가?”]
사실 바사를 앞세워 시안이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시안의 특성에 ‘최종 보스’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로 들어앉아 있다.
바사 놈이 말한 차원의 문이라는 것이 열리면···
‘설마 내가 최고위 몹으로 등재된 건 아니겠지?’
눈이 벌게져서 죽일 듯 달려오는 인간들 모습이 그려졌다.
‘아닐 거야. 심신미약으로 정신이 잠깐 분열되고 있는 것뿐인데 뭘···’
나오려는 욕을 삼키며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밖에 ‘만개한 지혜의 회신’과 ‘개화한 생활체육인’은 게임 안에 존재하는 특성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건 현실 반영
그리고 뒤를 잇는 모든 비활성 특성들은 게임에서 얻었던 특성들이 맞는데 저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특성이라기보다 그냥 쓸모없는 정크파일이라고 보면 되는 눈마바사의 게임 속 흔적일 뿐이라고 정리해도 될 것 같았다.
‘정작 중요한 신성에게 받은 가호 특성은 모두 사라지고 없네···’
이를테면 ‘오딘의 찬란한 아침’이라든지···
그런 신의 가호로 얻었던 특성만 수십 개나 있었다.
그래도 하나 추가되기는 했다.
[준비된 전사]
데뷔전은 치를만하다는 얘기랄까
‘쩝··· 정신분열 환각이라도 이건 좀 아쉽긴 해···’
바사라는 놈도 입맛을 다셨다.
[“흐음···이제 벌레 수준은 넘어섰군.”]
생명 : 1.0
지력 : 25.6
체력 : 5.0
근력 : 5.0
민첩 : 8.1
마력 : 0.1
▽
클리어 보상 포인트 : 00▼
확실하게 적용된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액티브스킬 중 일검이 10레벨로 활성화된 것도 눈에 띈다.
‘그래서 이게 정말 현실에 적용된다?’
[“못 믿겠으면 밖으로 나가 확인하면 될 것 아니냐.”]
시안이 시계를 확인했다.
밤 10시,
확실하게 확인할 거라면 근처의 공원으로 가면 되겠지만···
뭐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경호원이 따라붙을 불편한 짓을 굳이 할 이유는 없다.
방 안에서 점프 몇 번 하는 걸로도 확인이 가능할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점프를 뛰어 봤다.
-탁!
-쿵!
“···!”
정수리에 느껴지는 통증···
자칫 천장이 뚫릴 뻔했다.
정말 가볍게 점프했다는 느낌인데 평소 전력으로 뛴 것보다 더 높으니 놀랄 수밖에···
“아니 이게 무슨···”
[“너 진짜 작심하고 뛰면 네놈 키 정도는 거뜬히 넘을걸?”]
시안의 키가 178m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좀 더 커진 느낌이다.
“그건 좀···”
좀 전에 가볍게 점프한 게 그 정돈데 정말 작심하고 뛰면 천장이 뚫릴 것만 같은 느낌을 정수리로 직접 확인했다.
평소보다 가벼운 몸동작과 침실 한 편에 놓인 30Kg 바벨을 한 손으로 솜방망이처럼 가볍게 들어 올리는 정도로도 확인은 충분했다.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하려나?’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자신이 흘린 땀 탓일까.
뭔가 칙칙하고 찜찜한 느낌에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이건 뭔··· ”
그제야 주변 악취의 원인을 확인하고 샤워실 문을 급히 열었다.
“우··· 웨엑!”
***
세상은 생명이 깃드는 한,
끊임없이 구분되고 규정되어 진다.
그건 신이라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순행의 진리,
각성과 진화는 그것 하나로 영겁을 운행될 뿐이다.
오롯한 신성의 존재로 스스로를 자각하는 것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러함에도 그녀가 묘한 위화감을 느꼈던 날,
그 찰나의 불쾌감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무지 지워 지지가 않는다.
위그드라실이 세계수 잔가지 하나를 오딘의 전당 발할라에서 회수하던 날이다.
그것을 세계수의 경고로 받아들인 오딘이 두 손을 맞부딪히던 순간,
‘어? 놓쳤다···’
그녀는 일상의 찰나로 단지 한순간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분명히 뭔가를 놓쳤다.
방심하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는 걸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한 번의 눈 깜박임이 마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단절된 의식을 깨워 홀연히 다시 선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눈 감기 직전과 감았다 뜬 직후가 교묘한 짜깁기처럼 이어진 것 같은 찜찜함.
석연치 않던 그 간극이 거슬렸다.
‘찰나였을 텐데···’
불쾌했던 그 날의 느낌을 갈무리하며 미드가르드를 바라봤다.
‘정말 알 수가 없는 건 그 다음 이어진 오딘의 변화···’
신으로서 느꼈던 찰나의 간극이 이렇게 컸던 것일까.
그때 일순간일 뿐인데도 주신 오딘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내가 그를 너무 오냐 오냐 했던 걸까?’
신이 하는 일이란 자신이 만든 세상을 정원처럼 가꾸는 것뿐이다.
‘좀 지겨워서 일수도 있겠지···’
그 후로도 같은 주제로만 달려왔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쉼 없이 반복되는 라그나로크 멸망의 갱생 테마.
외계 신성의 간섭을 차단하고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신들의 발버둥이었다.
‘그도 이제 지쳤는지 모른다.’
며칠 후면 갱생 테마가 진행될 미드가르드가 저기에 있다.
‘저곳은 이번이 다섯 번째라고 했지.’
그만큼 리셋 되는 동안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행성···
리셋을 세 번을 넘긴 행성은 없었다.
여러 위습들의 침탈로 인과율이 꼬여도 단단히 꼬여있는 행성.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테마가 진행될 이번 행성 특성에 맞춰서 그녀의 외형도 변했다.
행성 특성에 맞춤으로 외형이 꾸며지는 환골탈태.
테마가 진행되는 동안 폴리모프를 하나로 고정했다,
그녀는 여신 프레이야.
하얀빛을 발하는 피부에 금발의 머릿결,
아름다우면서도 고고한 용모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짙푸른 눈동자에서 발하는 은은한 빛이었다.
마치 깊은 바다를 품은 듯 쉽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그 눈가에 알 수 없는 상심이 서려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려 해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면,
노른의 여신 스쿨드의 말을 쉽게 떨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테마의 행성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불길해요.”]
그 불길함은 인간을 초월한 특이점이 저 행성에 나타났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무심한 표정과 굳게 닫혔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온다.
미래를 보는 스쿨드의 예지로 불길함이 예견된 마당에 공교롭게도 오딘이 내세운 테마의 주제마저 너무 생뚱맞았다.
지금까지 어떤 간섭도 하지 않던 그가 갑자기 직접 설계까지 한 이번 테마···
[심연에 핀 모닥불]
이게 오딘이 직접 설계한 갱생 테마라고 했다.
‘모닥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숨겨진 복선이 있음은 알지만,
그가 원하는 결말은 알 길이 없다.
지금까지 수천 번의 갱생 테마를 열 때마다 그가 주제로 정했던 건.
‘마계 정벌과 마왕 주살, 실패 시 인간 세상의 종말.’
인간들이 이룩한 판을 엎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주제를 바꿨다···
‘그자는 갑자기 음유시인이라도 되고 싶은 것일까?’
그녀의 고민이 깊어 질 무렵,
자신을 향하는 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어둡지만 찬란한 시공 저편에서 반짝이던 빛 하나가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정원에 닿았다.
그녀의 권속 중 하나인 발키리 란드그리즈였다.
“무슨 일이지?”
“프레이야님, 조금 전 그녀의 본줄기 하나가 은밀히 움직였습니다.”
방금까지도 나른하기만 했던 프레이야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다.
그녀의 본줄기라면 위그드라실 휘하의 요정들,
“페어리군···”
은하성단 전체를 통틀어서 각 행성마다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절대적 신성이 세계수였다.
인간족들의 언어로 그것을 신화 속 나무로 표현하지만,
우주 필라멘트의 줄기들이다.
우주 근원에 뿌리를 두고 은하 전체를 감싸 이루는 근본이며 보호막이기도 한 검은빛 에너지의 줄기 중 하나가 위그드라실,
지금 이곳 항성들을 품은 은하가 그녀의 권역이었다.
은하계 전체를 아우르는 작지 않은 몸집이기에 먼저 움직이는 것은 납득이 되지만,
‘이르다?’
그건 너무나 빠른 움직임이다.
이번은 시작부터가 달랐기 때문일까?
눈치가 빠른 이들은 벌써부터 화신을 찾아 운신을 넓히고 있을 정도였다.
“스쿨드는 그 일에 관해 별다른 얘기가 없었나?”
그 말에 입술을 짓씹던 란드그리드가 한숨을 쉬었다.
“그 일 때문에··· 오딘께 불려갔다고 합니다.”
노른의 여신 스쿨드는 자신의 일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실각이 거론되고 있었다.
이건 정말 전에 없던 일이기도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노른을 건드리다니···’
이번 테마를 설계하던 오딘은 미드가르드에 자신의 분신들을 내려보내 인간들과 섞이게 했다.
그 후, 인간들의 시간으로 20년을 작업했다.
그리고 3년 전, 갱생 테마와 똑같은 오락 게임까지 미드가르드에 직접 만들어 인간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 모든 걸 오딘이 직접 주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갱생 테마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적은 없었다.
“오딘 권속들의 동요는?”
“지금 시그룬의 휘하들이 은밀하게 준비 중인 것 같습니다.”
시그룬은 스쿨드만큼의 신격이다.
오딘의 직할대인 만큼 그녀는 위력도 막강했다.
“란드그리즈, 위그드라실의 줄기 뒤를 따라 주시하라.”
“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프레이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란드그리즈가 자리를 떠나고 그녀는 확신했다.
‘위그드라실이 움직이는 곳에 오딘이 이번 테마를 주도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면, 나 또한 서둘러야겠지.’
그녀의 시선이 다시 시공 저편 미드가르드에 닿았다.
들어 올린 손가락 끝이 그곳 어딘가를 가리켰다.
‘헤니르, 나의 자매야. 페어리들의 흔적을 따라 그 근처 어딘가에 너의 진명 시르를 감당할 화신에게 닿아라···’
-딱!
금빛을 띤 작은 낱알 하나가 그녀의 손끝에서 튕겨져 가리키던 곳으로 사라졌다.
푸르게 빛나는 행성은 그저 고요할 뿐이다.
그러나 이번 테마는 시작부터 꼬이고 있었다.
‘저기에 대적자라도 있다는 의미일까···’
그건 외부 신성의 침습을 의미한다.
‘오딘! 네 놈은 대체···’
굳게 다문 그녀의 푸른 안광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찾아주신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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