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오빠
“이솔아!”
“감이솔!”
보육사 이모는 왜 싫다는데 부르는 걸까?
이솔은 보육원 교회 계단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딱히 숨어 있겠다는 건 아니지만,
“나 여기 있어요.” 하기도 싫었다.
조금 전 보육원으로 들어온 두 대의 검은색 차.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보육사 이모가 새벽같이 깨우는 통에 따듯한 물로 몸을 씻고 머리도 감겨 주었다.
이것부터 뭔가 불안했다.
지난 6개월 동안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했었다.
누구 하나 때리고 괴롭히는 사람 없이 챙겨주고 예뻐해 주었던 곳이다.
이솔이가 생각하는 집이라 불리는 장소는 지옥이랑 같은 말이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지난 일들···
그 끔찍했던 시절에 엄마라는 존재는 본적도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입에 젖병을 물고 있던 어느 날.
꿈인 듯 아닌 듯 눈앞에 황금빛의 외눈박이 할아버지가 나타나 뭐라 중얼거리던 모습을 보았던 후로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젖병을 입에서 떼고 이유식이 시작된 무렵부터는 사람들에게서 발광하는 색깔들이 점점 더 뚜렷하게 보였다.
밝은 갈색빛이 나는 외삼촌이 없을 때면 집은 온통 울긋불긋 검붉은 빛으로 변했다.
끔찍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저주의 말들을 퍼부으며 꾸역꾸역 입안으로 억세게 이유식을 쑤셔 넣던 거친 손길,
[“네 엄마년는 죽었는데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서 살겠다고 꾸역꾸역 잘도 처먹네 저주받은 년이! 네가 네년 때문에 나도 못 살겠다고 알아!”]
갓난아기임에도 온통 어두운색으로 둘러쳐진 그 여자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게, 오히려 저주와 다름이 아니었다.
그때 보였던 악마 같은 그 표정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나마 외삼촌이라는 그늘이 힘겹게 버티게 해줄 뿐이었다.
그 여자와 비슷한 검붉은 빛의 낯선 사람들이 옹아리하고 누워 있는 자신을 가리키며 하는 말들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이솔이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차라리 말과 동떨어질 수 있는 글자를 읽었다.
미움을 사지 않을 것 외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걸음마를 할 수 있을 무렵부터 책을 펼친 자신에게 손찌검이 들어왔다.
눈앞이 번쩍하고 별이 보이는 충격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닌 당연한 일상으로 느껴질 무렵부터 책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끔찍했지만, 폭풍이 지나가면 편안한 일상이 되었다.
그 후부터는 그 여자의 손에 집힌 모든 물건을 흉기로 사용됐다.
갑자기 내지르는 발길질에 아픈 걸 느끼지 못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가 되던 어느 날,
아이는 처음으로 병원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퇴원하던 날,
외삼촌은 이솔이를 집이라는 지옥이 아닌 이곳으로 데려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여자에게서 처음으로 사람에게서 하얀색도 볼 수 있구나하고 느꼈다.
눈앞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밝은 갈색의 삼촌이 뒤돌아 멀어져 갔다.
그때부터 이솔이는 밝은색만 보며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비명과 울음만 내지르던 입에서 처음으로 말이라는 게 어눌하게 나올 수 있었다.
눈짓과 고갯짓으로 소통하던 아이가 네살이 되어서야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보고 싶은 글자들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보육원은 천당 같았다.
집이라고 부르는 지옥을 벗어난 천당.
원장 엄마는 정말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믿음에 금이 갔다.
오늘 아침 검은색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온통 파란색들이었다.
보육사 이모가 이솔이에게 새 옷을 갈아입히고 가방에 이것저것 넣는 것을 보고 그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빛이 나는 사람들이 원장 엄마와 이야기하는 것을 멀리서 보며 진짜 자신의 얘기라는 걸 직감했다.
6개월간의 짧은 행복이 끝난다는 절망감에 이솔이의 다리에 힘이 빠져나갔다.
겨우겨우 달려서 숨은 곳이 고작 교회 계단 밑이었다.
-야옹···
“해···해냥···”
자기를 잘 따르는 해냥이가 쪼그려 앉은 이솔이 정강이에 몸을 부볐다.
아이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두 뺨을 타고 흘렀다.
“해냥아 흐억···나 어···업떠도 잘 사라야데···으끄우윽끄···”
-야옹 야옹 그릉그릉···
“그···그래···흑흑으욱··· 차칸 해냥이··· 으으끄으끄 어엉 어엉···”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곳에 남을 해냥이가 너무 부러웠다.
해냥이가 혼자서 야옹거리는 것처럼 자신이 멍하게 혼잣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에 관심을 가지고 대꾸해주는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게 자신감이 되어 상상하던 자기의 이야기를 쏟아낼 때, 마치 동화 속 이야기를 들은 듯 꺄르르르 웃어 주며 즐거워하던 아이들···
정말 천국 같았다.
자기가 하는 혼잣말을 윽박지르지 않고 함께 즐거워하던 천국···
그런데 오늘, 그 천국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서러움을 억누르고 삼키던 이솔이의 가슴이 미어져
결국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그때 아이에게로 다가오던 발소리가 멈췄다.
이솔이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어억엉 어억 어어억 엉 어엉 어엄모오 어엄모오 어엉···”
생전 보지도 못한 엄마를 찾는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
원장 엄마가 다가와 이솔이 앞에 같은 자세로 쪼그려 앉아 눈물범벅 콧물범벅이 된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며 말했다.
“이솔이 울었네? 여기 코 풀어, 어서.”
-히잉!
“그렇지 한 번 더!”
-흐에잉!
“우리 이솔이 코도 씩씩하게 잘 푸네.”
“흐윽 끄끄 흐윽 끄···”
원망과 불신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솔이를 보는 원장이 이솔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솔이 어디 가는 줄은 알고 울어? 내가 이솔이 나쁜 곳으로 보낼까 봐 운 거야? 나쁜 원장이네.”
“흐윽윽 그···그럼 나아··· 흐윽 나 흑··· 앙 가도 대여? 오어오어···”
아이의 바람에 정말 의지되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원장이 배신을 때린다.
“아니, 더 좋은 곳으로 가는 데 왜 안 가려고 해?”
애솔의의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앙 가며는 앙 대여? 으흑 으흑···읍읍”
입을 다물고 바닥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는 이솔이에게 원장 엄마가 물었다.
“우리 이솔이 사람마다 색깔이 보인다고 했었지? 나 지금 무슨 색이야? 지금은 말해도 돼.”
원장 엄마는 사람들에게 색깔이 보인다는 말을 아무에게나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보내는 마당에 갑자기 하라고 하니···
“·········”
“지금은 해도 돼 이솔아. 지금 나는 무슨 색이야?”
입을 다물고 원장 엄마를 힐끔 보던 이솔이 눈에 투명한 광명이 비췄다.
“유리 가튼 색이요. 아주 발근 얼음색···”
“거봐 난 거짓말 안 하는 거잖아. 이솔이 정말 좋은 곳으로 가는 거야. 엄마 말 못 믿어?”
“미···밋눈대여··· 그래두 무서어여···히끅 으···윽···”
-야옹! 야옹!
해냥이도 원장 엄마 말을 한번 믿어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놀러 오고 싶다고 하면 데려다줄 분들이야. 그러니까 가보자. 우리 이솔이가 지금처럼만 하면 정말 예뻐해 주실 거야.”
아이가 고개를 푸욱 숙이고 원장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
“거봐 우리 이솔이가 이렇게 말 잘 듣고 착한데 누가 미워해.”
“······”
그녀에게 이끌려 차가 주차된 곳으로 향하는 중에도 아이는 고개를 떨군 채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차 앞에 다가서자 파란빛의 사람들이 이솔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파란색은 여전히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따듯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원장님 고생하셨습니다. 혜성 비서실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네··· 이솔이 잘 부탁드려요.”
그때 이솔이가 입을 열었다.
“자··· 잔시마뇨···”
“그래 이솔아···”
쭈뼛쭈뼛 원장에게 다가간 이솔이
“언장 엄마 나 항본 아나주세여.”
어느새 원장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래···”
조그마한 몸을 끌어 앉고 등을 토닥여 주며
“어른들 보면 인사 꼬박꼬박 잘하고··· 우리 이솔이 꼭 훌륭한 사람 돼서 보자. 약속할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며
“네에···그리고 새깔 얘기도 캄부로 아날께여.”
“그래··· 또 볼 수 있을 거야···이솔이만 건강하면, 알았지?”
“네···”
그리고 원장 엄마의 따듯한 품에서 벗어나 열려 있는 차 문으로 인도되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텅! -텅!텅!
차 문이 닫히고 보육원 정문을 지나쳐 곡선 길을 돌 때까지 이솔이는 돌아다 보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떠나가는 자신을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원장 엄마처럼···
보육원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별의 현실을 절감했을 때가 되어서야 이솔이는 좌석에 바로 앉아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방을 바라보았다.
외삼촌이 병원을 퇴원 할 때 마지막으로 사준 가방이었다.
지금 자신의 작은 몸을 기대어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는 고작 이 가방 하나였다.
옆에 앉은 아저씨를 올려다봤다.
울었던 자욱이 아직도 남아 있는 아이의 시선을 의식한 그가 환한 웃음으로 건넨 말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제 집으로 가는 겁니다. 영애님···”
마음 놓고 가는 길이 지옥의 그 길이라니···
“후우···”
이 아저씨는 이솔에게 지옥으로 간다는 소리를 웃으면서 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다시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집은 곧 지옥이니까.
지금은 울 때가 아니라 각오를 다져야 할 때였다.
***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집이라고 했는데 그전에 살던 지옥보다 너무나 큰 지옥이다.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잔디마당은 보육원 마당보다 넓었다.
가방을 얼싸안고 들어선 곳은 보육원 교회 예배당보다 더 컸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봤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보며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럴수록 주눅이 들었다.
이곳의 사람들 색깔이 보였다.
어두운색은 없었고 밝거나 파랑색을 띠고 있는 게 여느 지옥하고는 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육원치고는 사람들 나이도 어리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회장님이 나오실 겁니다. 아기씨”
그래서 사람들 뒤쪽에 조용히 앉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뒤돌아보고 입을 떼려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소근소근
-웅성웅성
느슨해진 자신을 추스르고 각오를 새롭게 했는데···
한편에서 저녁노을 같은 환한 빛을 내며 호랑이 같은 인상의 할아버지가 나온다.
가끔 보육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발산하던 빛과 같은데 그것보다 훨씬 밝았다.
그런데 그때 이솔이 들어섰던 문으로 눈부신 무지개빛이 나는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이솔도 깜짝 놀랐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곳은 집이라고 불리는 지옥이다.
외삼촌처럼 밝았다가도 그가 자리만 비우면 지옥이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우아···’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무지개색을 저렇게 밝게 비추는 건 정말 처음 본다.
사람들이 무지개 인간에게 보라색 파랑색 빨간색 노랑색 등 각가지 색들을 뿜는 게 보였다.
그런데도 무지개빛은 그 색들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호어···’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무지개빛을 내는 것하고는 별개로 머리 위에 둥근 달이 하나 떠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저 사람밖에 없어 보였다.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 말이다.
‘그럴 리가···’
그런 일이 생길 리가···
‘어?’
그런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원장 엄마 말대로 냉큼 일어나 인사를 했다.
짧지만 천금 같은 어필의 기회···
나도 좀 살자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데 그게 뭔 소린지 이해가 간다.
그야말로 저분이 자신의 진짜 할아버지다.
‘허···’
이해는 안 되지만··· 갑자기 할아버지가 생겼다.
근데,
무지개 인간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할아버지.”
“그래 민시안 할 말이 있나?”
무지개 인간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저 아이는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어···나? 진짜!’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이곳에 대빵인 호랑이 할아버지가 그러라고 했다.
무지개 인간이 부른다.
가방을 들려고 하는데 선택받은 충격 때문에 맥이 풀려서 들려지지 않았다.
-질질질
겨우 가방을 끌고 갔는데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다.
원장 엄마 말은 진리 같다.
“허어 허어··· 안용··· 하세여···”
한 번 더 확인 사살 인사를 하고 나니까 숨이 턱에 찬다.
“그래 안녕, 나 오빠야 이솔아.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
툭툭 치는 의자? 침댄가?
푹신한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데···
‘거긴··· 좀···’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다.
-풀석
그런데···
나도 오빠라는 게 방금 생긴 거 같다.
무지개 오빠···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찾아주신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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