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넉넉히 사야 하는 이유
조재강 혜성그룹 부회장,
그는 지금 자신의 아버지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
희생양까지 내세워서 회피를 준비했지만, 증거들은 모두 자신을 지목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오히려 불러주니 고맙다고나 해야 할까.
피한정후견인 청구한 상태에서 개싸움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었는데 차라리 잘된 일이다.
7년 전이다.
지난 일 때문에 하나뿐인 자식을 살인 교사죄로 엮어서 고발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늙은 아버지가 차곡차곡 수집해 검찰에 제출한 증거들이 너무나 명백해서 빠져나갈 길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번 수사에 외국 사설 정보 에이전트 픽서들이 나서서 증거와 용의자들을 색출했다고 하는데 도무지 믿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어이없게도 그 멍청한 자식들이 왜 이제와서 맥없이 잡혔을까···
벌써 살인 용의자들에 대한 범죄인인도 외교 절차도 진행되는 중이라고 한다.
옭아맬 준비를 단단히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비서, 그 새끼들 전부 각오하라고 해. 돈값도 못하는 개새끼들 후···”
참으려 해도 분노가 통제되지를 않았다.
강비서가 메시지를 확인하며 말했다.
“부회장님, 김박사는 도착해 밖에서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정신 전문의까지 합석하라고 연락을 넣었다.
죽었어야 할 어린 조카놈의 주변에 어떤 놈들이 있길래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정말 다 죽는 길밖에는 남지 않았다.
신사동을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경찰차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연이어 요란하게 들려 왔다.
그게 자신의 사주를 받은 놈들 때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거지 같은 새끼들 싹 다 처넣어야 돼. 빌어먹을 개자식들···”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있는 강비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뛰어내리고 싶다 진짜···’
한남대교를 건너는 차창 밖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조재강을 태운 차가 한남동 회장 저택에서 속도를 줄이고 있다.
***
신화백화점,
정한욱 비서는 지하 주차장 화장실로 들어가는 시안을 바라보며
삽시간에 벌어졌던 일을 상기했다.
그가 달려 나간 거리가 100미터 안팎이다.
5초?
아니다··· 그것보다도 빨랐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겠지···’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사람이 낼 속도가 아니다.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을 이해까지 하기에는 그의 상식이 공고했다.
‘설마 초능력인가···’
시속 70Km 안팎에 해당하는 속력으로 트럭 앞 유리로 돌진한 사람이 부딪혀서 무사할 수 있을까?
정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상이 아니다,
아찔했던 그 순간에 자신이 그를 막아설 새도 없었음을 자책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속도로 달릴 수 있다고 해도 시도 자체가 그냥 미친 짓이다.
‘왜 그랬을까?’
글쎄?
그건 시안도 모른다.
자신을 살해하는 사주를 받은 인간들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마음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자신을 찌르려고 달려드는 놈의 팔을 부러트린 게 그제다.
그리고 오늘,
트럭들을 보면서 부모님들이 당한 교통사고가 떠올랐다.
그 개 같은 인간이 부모님과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
때문에 심장을 노려 찔러오던 칼보다 더 엿 같은 기분을 느껴서일 거라고 한다면 대충 맞지 않을까.
핏자국이 있던 얼굴과 입가를 씻어내고
거울을 봤다.
세상 물정 모를 만한 앳된 얼굴···
‘부족해···아직 약하다 약해.’
페어리 버프와 힐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병원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그 정도면 약하다고 비관할 일은 아니지. 투지는 좋았으니까.”]
웬일로 바사가 격려를 다 해 준다.
‘진심이야?’
[“속고만 살았냐? 그럴만해서 하는 말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바사의 말에 기분이 풀리기도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종이타올을 빼내 물기를 닦아내고 거울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위성전송 완료]
‘그래, 오늘 아주 끝장을 내줄게···’
화장실을 나온 시안은 정비서와 함께 명품매장으로 향했다.
“아··· 정실장님 아까 그 트럭 거기에 제 지갑이 떨어졌나 봐요.”
정비서가 시안을 쳐다보며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
“네, 그 트럭에 현장 보존 중인 경호담당들에게 찾아보라고 하겠습니다. 매장의 결제 대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부탁드려요.”
시안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 마음에 드는 캐주얼 정장을 골랐다.
한 벌을 더 살까 고민하다가 너무 늦는 것도 그래서 그만두었다.
갈아입으며 자신의 신발을 보니···
역시 구두도 필요하다.
구두는 매장 직원이 골라주는 디자인으로 사이즈 맞는 걸 신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진짜 징글징글한 새끼인 건 맞는 것 같다.
-대군주의 위엄이 열립니다.
상대의 살기가 진심일 때 자동으로 발현되는 패시브스킬···
[“네놈 방계 핏줄도 참 징글징글한 놈이네.”]
‘그러게나 말이다.’
A, B, C, D 플랜이 줄을 잇는 걸 보면 놈은 청부 업체를 아예 통째로 산듯했다.
자신이 구속될 마당에 제 자식 놈들이라도 혜성을 이을 수 있게 하려면,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그 걸림돌을 치우고 싶었겠지.
이번엔 정말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정한욱이 긴장된 표정으로 먼저 말했다.
“한 두 놈이 아닙니다.”
덤덤하게 휴대폰의 시간을 보던 시안이 정실장을 돌아봤다.
“그런 거 같네요. 여벌로 옷을 넉넉히 살 걸 그랬어요. 백화점 문 닫을 시간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까.”
“도련님, 여긴 경호원들에게 맡기고 지상층에 대기 중인 택시로 이동하시는 게 맞습니다. 강만 건너면 한남동입니다.”
정비서가 방금 한 말,
그건 시안을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이다.
열세 살에 홀로 되고 나서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3대 카르텔 가문의 수장인 알베로 아저씨는 그를 화초처럼 곱게 키우지 않았다.
그의 지원 아래 부모님의 법인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상속자의 운명은 그렇게 녹녹한 꽃길이 아니었다.
그동안 수 차례의 암살 시도를 겪었던 시안으로서도 지금 상황은 그저 일상처럼 느껴질 뿐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자신의 상태는 지금 어떤가.
“아니요. 일반인 차량만 잠깐 통제해 주세요.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한쪽에 서 있던 경호원을 불렀다.
“담당님.”
주변상황에 긴장하고 있던 경호담당이 그를 돌아봤다.
“좀 전에 들렸던 매장에서 이것과 같은 사이즈 옷으로 하나 더 부탁 좀 드려요.”
그 말에 머뭇거리며 정비서를 바라봤다.
“제발! 도···”
“어서요 백화점 문 닫습니다.”
정비서가 경호담당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드를 넘겼다.
그걸 확인한 시안이 CCTV 카메라를 바라보며
“경찰에 신고도 해 두시구요.”
“그···”
“다른 사람이 저 때문에 다치는 건 싫습니다. 그리고 이건 처음부터 제 싸움입니다.”
말을 마치자 제지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뛰어나가는 시안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를 따랐다.
“모두 따라붙어 엄호해!”
시안이 달려 나간 정면으로 흉기를 든 무리가 정렬해 다가온다.
대략 숫자가 20
그리고 그 뒤로 조금 떨어진 위치에 두 놈
‘이제 좀 익숙해···’
상승한 신체 능력을 활용하는 것에 자신감도 붙었다.
시안은 탄력받는 속도로 멈출 것도 없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퍽! 파바박! 퍽!
공중에 뜬 채로 내지른 다섯 차례의 발길질에 그대로 무너지는 다섯 놈,
‘17···’
그럼에도 시안은 아직 공중에 있다.
휘두르는 흉기들과 날붙이를 든 놈의 어깨를 딛고 그대로 뒤편에 선 두 놈 코앞까지 튕겨나가 듯 직진한다.
그의 빠른 몸동작에 흠칫한 두 놈이 사시미로 보이는 칼을 겨눴지만 거지까지다.
이미 한 놈의 몸통 깊숙이 파고든 시안이 칼을 쥔 그립을 돌려서 찔러오는 놈의 팔을 잡아당겨 어깨로 명치와 턱을 가격했다.
혀를 깨물렸는지 입으로 피를 쏟는 놈이 찰나 정신을 잃고 통나무처럼 무너졌다.
시안이 그놈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그걸 방패삼아 내던지며 또 다른 한 놈의 낭심을 걷어찼다.
‘15···’
-대군주의 위엄이 폭발적으로 만개합니다.
그때, 뒤쫓아 바짝 다가온 놈들이 시안의 무시무시한 살기에 멈칫하는 가운데 주저앉는 놈도 있었다.
지체할 것 없이 빠르게 한 놈의 팔과 멱살을 잡아 인형 더미 휘두르듯 패거리를 행해 날렵하게 패대기쳤다.
‘13···’
그때서야 정한욱과 9명의 경호원들이 놈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시안은 이제 그중 칼 든 세 놈만 마주봤다.
그리고 다시 몸을 날리는 순간은 모든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다.
자신을 향해 질러오는 칼은 놈의 목젓을 후비는 시안 손날보다도 무뎠다.
‘맞고 죽지만 마라 골치 아프니까.’
-퍽!
“컥!‘
‘12···’
동시에 오른쪽 옆구리로 제법 날카롭게 들어오는 회칼,
칼날을 살짝 흘려보내고 상대의 팔을 자신의 오른팔로 꼬듯이 말아 목덜미를 잡고 왼손은 칼 쥔 손을 제압한다.
이제 남은 한 놈에게 달려 나갔다.
-우두둑
“억! 끄아아아악 아악!”
튀어나가는 탄력에 붙잡힌 놈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
‘11···’
그래도 놓지 않고 달리던 탄력 그대로 남은 한 놈에게 던져 버렸다.
-꽈당탕!
당황한 놈이 어쩌지 못하고 날아오는 놈에게 부딪혀 나뒹굴었다.
‘10···’
칼을 안 든 열 놈은 경호원들이 알아서 하겠지···
시안이 정비서에게 말했다.
“일단 나가야겠네요. 경찰오기 전에···”
“··················”
“아 거기 컥컥거리는 저놈은 기도 확보 좀 해 주세요. 죽으면 골치 아프니까.”
정한욱은 정황상 그저 고개만 끄떡일 뿐이었다.
모두 제압한 경호원들에게
“먼저 갈게요. 경찰 마주치면 빠져나가기도 힘들 테니.”
“··················”
“아 맞다. 그리고··· ”
칼에 쓸린 자국과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옷매무새를 돌아보며
“옷은 역시 갈아입고 가야겠네요.”
아직 속도에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부작용이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던 정한욱은 이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다.
“네 그러시죠.”
정리하는 경호인력들을 현장에 남겨두고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멀리서 여러 대의 경찰 사이렌이 다가왔다.
[“네놈이 센 게 아니라 저놈들이 약한 것이다.”]
‘알아 인마. 아까는 격려를 하더니 무슨 변덕이야?’
[“이번에 나대는 걸 보니 자만할까 봐 그런다 자만···”]
-피식
바사의 말에 실소가 나왔다.
통화를 마친 정비서가 파악된 놈들의 신원을 설명했다.
“트럭과 백화점 모두 위조된 신분으로, 동양계 외국 입국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죠.”
“말씀대로 트럭에 있던 놈들은 경찰에는 신고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저들은 어쩌실 건지···”
“전부 회장님 댁으로 배송하세요. 어차피 검찰 수사팀이 체포영장을 그리로 들고 올 테니까···”
“네 도련님. 아 그리고 지갑은 찾았답니다.”
정비서는 이미 그들을 포박한 채 조태산 회장의 집 앞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한남대교를 건넌 차량이 한남동으로 들어섰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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