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부리는 아이
살인을 결행했던 때가 고작 열두 살이었다.
거친 곳에서 성장했다는 걸 가만해도 심리적 압박과 절대 열세에 놓인 완력마저 극복하고 성인 남자를 죽일 수 있을 만한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시안의 눈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희재라면 가능했다.
스쿨드가 말했다.
[이 아이는 나도 처음 보는 걸 가지고 있네?]
이름 : 이혜인(송희재)
나이 : 19세
가호 : 시르(괄목/비각성)
특성 : 살인/ 강신 귀문(점지)/ 지혜의 화신(개화)/생활 격투가/ 세이드(대기 중)
특성에 자리 잡은 강신 귀문···
그녀에게 잠재되어있는 타고난 특성,
북유럽 신화와 관계가 없을 뿐, 극동아시아 민간 신앙이라면 사실상 신성의 가호쯤 되었을 만한 한국 신앙에 특화된 가피였다.
알아본 바로도 무속의 가피는 태생적으로 점지 받게 되는 각인과도 같은 거라고 했다.
결착력에 있어 후천적 가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것이 ‘가피’라는 얘기다.
[한 방 안에 두 개의 가호가 있는데, 하나는 잠이든 상태고 하나는 깨어있구나···얘도 너처럼 감당이 어렵겠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 아우··· 난 기 빨려서 안 되겠다.]
스쿨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말에 요점은 가피의 발아 시점이었다.
[강신]의 개화는 미래에 닥칠 일이지만,
[귀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주 역학에서 말하는 귀문관살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귀신이 들어와 문을 닫아버린 형국이라고 했다.
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정신을 휘둘릴 수도 있는 빙의 상태가 그것 아닐까.
그러나 송희재는 문이 닫히지 않아 온갖 사령들이 카페처럼 자유로이 드나드는 지경이었을 지도 모른다,
악령의 빙의 하나만으로도 세계 각국에서 미친놈들이 넘쳐나 날뛰기 시작한 마당인데,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귀신들의 맛집인 그녀···
다행히 신을 부린다는 [강신]의 강력한 특성이 아니었다면 아마 정신이 피폐해지거나 미쳐버렸을 거라는 건 짐작할 만했다.
아무리 잡귀들이라도 신격이 침을 발라 놓은 영역에서 함부로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조용히 들락거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때문에 잡귀라고 할 사령들의 사념은 그녀 의식에 영향을 미쳤다.
염원과 집착, 그리고 암시와 자기최면 등등···
그녀가 어떤 결단을 했다면,
성인 남자를 죽이는 일에 나이가 어리다는 조건 따위의 장애 요소가 그녀를 맞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죽어도 싼 놈을 죽였는데 뭐라 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일로 그녀에게 남겨진 상처는 작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어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도 고개 숙인 그녀에게서 눈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시안은 조용히 티슈통을 그녀 앞에 끌어다 놓았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희재의 회상이 이어진다.
그녀는 옷을 입기 전에 먼저 죽은 놈의 지갑에서 현금을 챙겼다.
그리고 돈이 될만한 것들도 챙겼다.
놈의 것으로 보이는 큰 배낭에 두꺼운 옷과 덮고 잘 이불도 넣었다.
쉽게 상하지 않을 만한 육포나 초코파이 같은 음식들도 물과 함께 꼼꼼하게 챙겼다.
마지막으로 놈이 벗어 놓은 옷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도 챙겼다.
그렇게 놈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살인?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으니 그게 범죄라는 걸 잊고 싶었다.
그냥 무서웠을 뿐이다.
멀리 도망가서 보육원이라는 곳을 찾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도리어 놈들에게 쉽게 잡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들 중에도 놈들과 한통속인 놈들이 있는 게 현실이었다.
세상에 믿을 건 오직 자신뿐이라는 걸 아는 희재였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무조건 피했다.
때문에 인적이 없는 산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폐가를 찾아가 비를 피했고,
도시나 마을이 나오면 필요한 것을 살 때 말고는 가급적 외곽도로를 따라 걷다가 산이 보이면 다시 산을 따라 걸었다.
해가 떨어질 무렵이 되면 한적한 도로변에 주인 없이 방치된 텅 빈 폐가나 폐업한 주유소, 까페 등, 비어 있는 건물을 찾아 설잠을 자며 밤을 지새웠다.
침입자가 무서워서라도 잠을 편히 잘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속닥거리는 귀신들보다 사람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망막했고, 그래서 그저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멀리 가고자 했다.
그렇게 대책 없이 걷기만 하기를 16일째,
긴장의 끈을 붙잡고 설잠을 자가며 무작정 걷다 보니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희미해지는 의식을 겨우 부여잡고 산속을 헤매다가 너른 마당에서 사람들이 발차기를 연이어서 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 마지막이다.
그녀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허름한 집에서 눈을 떴다.
정신이 들자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일어났네.”
낯선 남자의 음성,
희재는 화들짝 놀라서 소리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 옷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마루에 부처님처럼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몸을 움츠리고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봤다.
그 후로 긴 시간이 흘렀지만, 노인은 앉은 자세 그대로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희재는 창밖이 어둑해지는 걸 보고서야 아차 싶어 일어났다.
어디든 비어 있는 폐가라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벅 인사만 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이틀을 꼬박 자더구나. 집을 나온 거지?”
노인의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이내 털어내고 마루로 나가 자신의 신발을 찾아 신으며 주변을 바라봤다.
‘산속?’
노인의 집으로 보이는 이곳은 산속에 지어진 집이었다.
“이 밤중에 가면 어디를 간다고··· 끼니때가 되었으니 밥은 먹어야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만 잔 녀석이 객기를 부리면 쓰겠냐?”
그제야 노인이 앉아 있던 마루를 내려서서 마당에 놓인 화덕으로 걸음을 옮겼다.
“넌 저쪽에서 땔감이나 좀 가지고 와. 꽁밥은 못 주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희재는 노인이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 땔감으로 쓸 나무쪼가리들이 싸여 있다.
희재는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 지옥에서 도망쳐 처음으로 푹 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틀을 잔 줄은 몰랐다.
그런데도 아무런 탈이 없는 지금, 이곳은 좀 안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잭나이프를 확인했다.
그대로인 것을 확인하고 마루에서 일어나 땔감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덕으로 땔감을 가지고 가서 한쪽에 내려놓을 때,
노인이 집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밥은 내가 할 테니까 너는 우선 좀 씻자. 네 녀석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난 잠도 제대로 못 잤거든. 네가 입을 만한 옷도 내 제자가 가져다 놨으니까 갈아입도록 하고···”
그녀의 산속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로 희재는 그곳에서 1년을 살았다.
그녀가 입을 열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노인에게 말해주기까지는 3일이 걸렸다.
그녀의 사정을 모두 들은 노인은 자신을 할아버지처럼 여긴다면 있고 싶을 만큼 있다가 가라고 말했다.
결국 그곳에서 1년 동안 합기도 배우며 노인과 지냈다.
하루 일과가 오로지 합기도 수련과 책을 읽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산속 수행을 하면서 희재는 웃음을 조금 되찾을 수 있었다.
노인의 제자들이 산 아래 도장으로 찾아올 때면 3~4일 동안 산장에 혼자 지냈다.
할아버지가 같이 내려가자고 몇 번 말은 했지만, 희재는 그것만은 못하겠다고 했다.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외부인과 마주치는 것도 가끔 송관장이라는 분이 옷과 책들을 가져다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년의 남녀가 산장으로 노인을 찾아왔다.
“그래, 어서들 와. 너도 이리 와라 업동아, 아주머니한테 인사를 해야지.”
할아버지는 희재를 업동이라고 불렀다.
주희라는 이름은 다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을 물어볼 때면 그저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 모습이 반복되자 할아버지는 그녀를 업동이라고 불렀다.
산장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이 희재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나마 함께 온 송진혁이라는 남자는 가끔 산장에 올라와 식사도 같이하고 대화도 나누어 봤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던 친근한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온 중년의 여자가 희재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르신이 말씀하신 아이가 이 아이군요.”
“그래 맞아. 어떻게 얘기는 좀 나누어 봤나?”
할아버지의 말에 여성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오게 된걸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던 할아버지
“그래그래 잘 생각했네. 오늘은 그쯤 해두고 저녁이나 먹고 가.”
희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대화였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서야 그 대화가 무슨 얘기였는지 알았다.
“너도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겠어. 언제까지 산다람쥐처럼 살 거야.”
학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
“이 할아버지가 봤을 때 말이다. 너라는 아이는 이런 산속에 썩혀둘 아이가 아니야. 그건 죄짓는 것과 같더란 말이지. 나를 몹쓸 늙은이로 만들 생각이 아니면,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 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그녀가 받아든 종이 위에는 <송 희 재>라고 쓰여 있었다.
“아까 왔던 송관장이 너만 좋다면 너에게 주려는 이름이다.”
말없이 종이에 적힌 낯선 이름을 바라봤다.
”그 아주머니가 앞으로 여기에 자주 올 거야··· 업동이 네게 정을 붙이려는 거겠지··· 밥도 같이 먹고 산나물 캐면서 대화도 나눠 봐, 너도 그만 두려움 떨치고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서 살아가야지.”
희재는 지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야 죽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날 것도 아니니까. 네가 간다고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할아버지 말 이해하겠니 희재야.”
그게 희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불린 날에 있었던 일이었다.
할아버지 유성재는 그녀가 두 번째 삶을 살도록 도와준 잊지 못할 은인이었다.
***
시안은 송희재의 이야기를 그쯤에서 멈추게 했다.
그 이후의 사건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하던 말을 멈춘 송희재는 가슴 속에만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에 속이 후련한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송희재가 잠시 여운을 삭히는 동안 시안은 커피를 가지고 왔다.
“입이 마를 텐데 좀 드세요.”
“저녁에는 커피를 잘 안 마셔요.”
시안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정신 사납게 하는 녀석들이 잠을 깨우나 보군요.”
“네?”
송희재는 시안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거 무카페인 커피에요. 마셔도 돼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는 듯
“잠깐만요. 혹시 저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가요?”
시안은 담담하고 정중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송희재씨가 납치되기 전의 본명정도는 압니다.”
놀란 송희재의 손이 서서히 입을 막았다.
시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친부모님들도 알고 있습니다. 3살 터울의 동생도 있더군요.”
“어··· 어떻게···”
송희재의 동공이 흔들렸다.
상태창에 이혜인이라는 그녀의 본명이면 충분했을 뿐이다.
그 당시 실종 신고자료들을 찾아 같은 나이 같은 이름으로 신고한 사람들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인 줄은 알지만, 말을 안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알면서도 상황이라는 이유로 다물고 있는 것이 옳다고도 볼 수 없어서 말이죠.”
손으로 입을 가리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송희재가 천장을 향해 눈을 두어번 깜박이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빠르게 시선을 시안에게로 옮겼다.
“혹시 초능력 가지고 계세요?”
예상 밖의 질문에 오히려 시안이 놀랐다.
“네?”
저 농담 같은 질문에 자신의 정체를 꿰뚫린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건···
그 다음으로 이어진 질문에는 심장까지 멎을 뻔했다.
“어? 이제 보니··· 시안씨한테 빙의한 무언가도 있는 것 같은데요?”
‘허걱!’
[“헉?”]
그 바람에 지금까지 폐관수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히 처박혀 있던 바사놈까지 경기를 일으키며 놀라서 뛰쳐나왔다.
시안은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면서 어렵게 미소를 그렸다.
“그런 농담도 하시고 이제 좀 기분이 나아지셨나 봐요. 다행이다.”
무카페인 커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던 송재희가 고개를 저었다.
“농담요? 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농담하는 거 극혐하는데··· 제가 왜 처음 보는 시안씨한테 농담을 하겠어요.”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난 거 같은데···
“농담 아니라고 하시니까 말씀드리지만, 초능력 같은 건 없어요. 송희재씨 실종 당시 신고된 자료들을 통해서 유추해낸 대상들을 중심으로 알아낸 것뿐이니까요.”
시안의 설명을 들은 송희재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말고요. 내가 불면증을 겪는 이유를 어떻게 알았냐는 말이잖아요.”
“아···”
[“이 자식! 조용히 과거의 기억을 찾으며 살려던 나를 깨우다니··· 그 잘란 주둥이 놀리고 탈탈 털리고 있었네?”]
시안은 송희재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결국 자신과 비슷한 예지력이 있는지 묻고 있을 뿐이다.
“네 그거라면, 송희재씨와 비슷한 과라고 해두죠.”
그 정도라면 뭐 쿨하게 인정할 만했다.
그 대답에도 뭔가 찜찜하다는 듯 송희재는 혀를 끌었다.
“싀읍··· 그거로는 설명 안 되는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송희재를 보니 이제 진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정비서님! 송희재씨 묵을 게스트 룸으로 안내 좀 해주세요.”
정한욱 비서가 좀 멀리 있는지 즉답이 없다.
시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저기요! 정비서님 계세요!”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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