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아르바이트 직원 장혜원
어질어질하다.
시안이 말한 것들이 사실이라면,
수사기관에 먼저 알려야 할 일이다.
그 생각을 아는지 시안이 그녀에게 덧붙였다.
“중국 범죄 조직과 관련이 있는 일일 겁니다. 국정원에서도 어느 정도 파악했을 일일 텐데요?”
서문정은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말을 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상부에 보고하고 결정된 사안은 오후에 알려드릴게요. 그러니 시간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의외로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서문정이다.
“네, 부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서문정은 시안의 비서가 된 듯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블랙요원 출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금 전 이솔이의 룩에 들떠있던 것조차 그녀의 연출일 수 있었으니까.
백화점을 나서면서도 시안은 명품관 쪽을 뒤돌아봤다.
오늘 이곳을 보고 싶다고 혼잣말을 했던 이솔이···
그리고 이곳에서 맞닥뜨린 기연을 보았을 때,
그건 강한 이끌림이었다고 생각해야 맞다.
그렇다면 프레이야도 오딘이나 세계수처럼 선을 넘어 전면에 나서려는 것일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자신의 한낱 망상으로 치부하려던 것들이 너무나 구체화 되는 건 불안했지만,
시안의 성향은 죽는 것보다 지는 걸 더 싫어하는 쪽이다.
알베로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시안이 엄마를 더 닮았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 민여정을 늘 ‘미니’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민’이라는 라스트 네임을 그렇게 발음하는 줄 알았었던 시안은 그가 어머니를 미니라고 하는 이유를 부모님 장래식이 끝나고 들었다.
부모님들의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7년 전 한국을 떠나 뉴욕에서 머물던 무렵,
허드슨강 하구의 리버티섬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던 알베로는 열두 살짜리 어린 시안에게 말했다.
[“샨, 저기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지?”]
그때 슬픔에 빠져 있던 시안은 고개만 끄덕였다.
[“너의 엄마는 저 여신상의 축소판과 같았지··· 그래서 나는 그녀를 미니라고 불렀단다. 왠지 아니?”]
그 말을 하던 알베로는 분노를 억누르고 쓰게 웃고 있었다,
[“네 엄마는 재성에게나 나에게는 승리의 상징과도 같았거든···미니는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재성은 이기려고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했지만, 미니는 더 큰 상대를 이기려고 리스크를 오히려 키웠거든··· 너의 엄마만큼 내 오금이 저리게 했던 사람은 없었어. 보는 것만으로 경외감이 들 정도로 살아 있는 여신이었기 때문이란다.”]
말을 마친 후 자신이 들고 있던 위스키병을 허드슨강으로 던졌다.
그리고 한동안 강물을 내려다보던 그가 자세를 낮추어 시안을 가만히 품에 안고 흐느끼듯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네 아버지 조민은 정말 행운아였지. 그게 참 부러웠는데··· 그들이 널 남겨준 걸 보니 나도 행운아라는 걸 알았다. 내가 보기에 넌 미니를 빼다 박은 것 같으니까···”]
그때 알베로 아저씨의 말이 스스로 위안하려는 말이었을지는 모르나 시안에게는 하나의 모티브를 부여해 버렸던 말이었다.
뭐가 되었든 이제부터 어떤 싸움이라도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의 연속일 것이다.
그게 오딘일지라도 말이다.
시안이 걸으면서 정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도련님.]
“킨텍스에 있는 백화점 명품관에 근무하는 직원 한 분 감시 좀 부탁드리려고요.”
[아···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호인원이 그곳에 대기 중입니다. 대상을 알려주시면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평소라면 시안이 할만한 지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정비서가 잠깐 당황한 듯 보였다.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까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그 직원의 이름과 위치를 알려주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위성 통신기로 마리아를 호출했다.
“그래 마리아, 그 사람이 묵는 숙소에서···”
시안이 모든 지시를 내리는 사이,
서문정도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고 있다.
“네 국장님, 그럼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한 곳이 국정원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전부 오픈해 그들과 공유할 생각은 없었다.
예상되는 소득을 위해서···
***
처음 보는 아이가 무어라 외치며 갑자기 달려들었다.
희재는 당황했지만, 상황에 반응해 아이를 받아 안았다.
그 뒤로 히잡을 두른 듯 꽁꽁 싸맨 남자가 다가와 사과를 건네며 아이를 데려갔다.
처음 매장을 지나칠 때 봤던 사람,
매장의 고객 응대는 늘 같았다.
내가 잘못이 없어도 고객의 기분을 최대로 맞춰 주어야 하는 업무,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장 한편에서 탄성이 계속 흘러나온다.
좋은 팔자를 타고 태어난 금수저 아이에게 명품 브랜드 의상들이 계속해서 입혀졌다.
‘그래 너라도 행복하게 살아라. 지옥 같은 세상이지만···’
누구에게는 축복받은 세상이지만,
누군가에는 저주받은 세상이라서 징그럽게 서글펐던 삶이었으니까.
“후우···”
긴 숨을 토하고 쓸데없는 상념을 지웠다.
점심시간 때쯤 되자 익숙한 사람이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한진주 대리,
“혜원씨!”
아침에 3억원이 넘는 금액을 털고 간 고객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인지 텐션이 한껏 높아진 목소리였다.
“네 매니저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온 그녀가 말했다.
“아침에 오신 고객님 말인데, 대리 피팅도 그렇고, 정말 수고 많았어. 오늘 점심은 내가 쏠게 같이 가자.”
“아··· 정말요? 다행이네요.”
“그렇지, 헤원씨 그래서 말인데, 알바 딱지 떼고 명품관 매장에 올라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에이 매니저님도 저 이제 두 달도 안 된 초짜잖아요.”
“아니! 나 진지한데? 일단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하자. 진지하게 할 말도 있고···”
“네 맛있는 걸로 사주세요. 매니저님.”
“그래.”
매니저를 앞세우고 따라나서는 길.
송희재가 한편의 은밀한 그림자를 흘겨냈다.
‘근데 저건 뭘까?’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듯 느꼈다.
설마 놈들이 다시 따라붙은 것일까?
조심하라고 했던 할아버지의 편지···
그럼 그럴지도 모른다.
어차피 3년을 숨어 살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건 힘들었다.
걸음을 옮기면서 지난 일이 잠깐 떠올랐다.
죽기보다 싫었던 지난 기억들···
지금 와서 찾을 수도 없는 부모님과의 생이별과 그 이후에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우울한 과거였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만 벌어진 건 아니지만,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그 일을 해결하고 싶어 법대를 지망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다시 쫓겨야 한다면 그 희망도 다시 사라지게 되겠지.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무사하실까?’
자신을 받아주고 3년간을 딸처럼 키워주고자 했던 합기도장 관장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때의 3년이 그녀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죽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유괴해 먹이고 재우며 앵벌이를 시키고 사육하던 인간들 틈에서 살던 희재였다.
***
그녀가 유괴된 것은 2005년 세 살 때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낯선 환경과 부모를 잃은 충격에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그런 곳에서 9년간을 어렵게도 버텄다.
어떤 아이는 들어왔나 싶더니 금방 사라지기도 했다.
그게 팔려 가는 거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디로 팔려 가는지 알 수는 없었다.
험한 곳이다 보니 다툼도 잦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었으니 스스로를 지키려면 싸움꾼이 되어야 했다.
그 와중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녀가 열두 살이 되도록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팔려 가지 않고 남겨진 이유는 유난히 예쁜 외모 탓이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열 살이 넘어서부터는 자신을 험하게 다루지도 않아서 좋기는 했다.
오히려 먹을 것도 잘 먹이며 조심스럽게 대했다고나 할까?
관리인 놈이 가끔가다 데리고 나가서 목욕탕도 보내주고 잘 먹여서 들여보내기까지 했다.
그놈은 그때부터 희재에게 손을 대었다.
틈만 나면 희재의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엉덩이에 손을 대기도 했다.
송희재는 그런 그 새끼가 싫었지만, 무서워서 아무런 소리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덜 영글었네. 우리 주희 흐흐···”
그때마다 놈이 했던 말이다.
만철···
지금도 끔찍스러운 기억이다.
만철 형님으로 불리던 더러운 새끼···
놈은 늘 멀끔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그 무리를 관리하던 두목?
열두 살이 되고 첫 멘스를 경험했던 이후,
그놈이 찾아와 그녀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목욕탕으로 보내 씻기고 밥을 사 먹여 준 것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시장에서 옷을 사 입혀주고 미용실에 들려 예쁘게 꾸며주는 것에 혹시나 팔려 가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런데 차에 태워 도착한 곳이 한적한 곳의 어떤 집이었다.
희재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영민한 아이였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릴 만큼···
그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은 이 새끼가 죽든 자신이 죽든 둘 중 하나는 틀림없다고 결의를 다졌다.
생소한 집으로 들어서자 놈이 말했다.
“우리 주희 이쁘게도 잘 컸네. 이 오빠가 앞으로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이제 걱정하지 말아. 넌 다른 아이들하고는 다르단 말이야.”
주희는 놈이 붙어준 당시 희재의 이름이었다.
놈의 그 비릿한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열두 살 희재는 161Cm로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들보다 조금 더 컸었다.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희재는 생각했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
놈이 술병을 꺼내와 잔에 따르고 과일을 깎아 먹으며 희재에게 말을 걸었다.
“앞으로 주희는 나를 오빠라고 불러도 된다는 거야. 내가 아주 비싼 값을 치뤘거든···”
이 새끼가 희재를 제놈 돈으로 사버린 거였다.
그런 놈이 희재 앞에 놓인 잔에도 술을 따랐다.
“너도 마셔봐. 몸이 따듯해질 거야.”
희재는 잔을 들어 마시는 시늉을 했다.
열두 살이 그걸 마셔도 되는 건지는 몰랐지만, 이걸 마시면 정신이 나간다는 것쯤은 알았다.
술 취한 놈들을 몇 번 봤으니까.
“으읍 맛이 이상한데요? 이게 뭐예요.”
희재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그것도 귀엽다는 듯 박장대소를 하는 만철이 새끼
“푸하하하핫! 그건 그래 하하핫 내가 너무 무리한 걸 시켰네.”
“그래도 이 과일은 정말 맛있네요. 더 먹어도 되죠?”
“그래그래 주희가 맛있다니까. 내 배가 다 부르네. 어여 더 먹어. 내가 깎아 줄까?”
“아니요. 나도 깎을 줄 알아요.”
“그럼 그렇게 해. 자식 오빠 소리는 기어이 안 하네.”
놈의 마음을 맞춰 주면서도 이곳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다.
술을 마신 놈의 눈빛이 묘하게 이글거렸다.
결국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그럼 식사를 하기 전에··· 일단 이리로 와봐 주희야.”
날이 어두워지자 취기가 오른 놈이 희재를 침실로 몰아가려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오빠가 좋아하는 술하고 과일은 가져가야죠.”
“응? 방금 오빠라고 한 거야? 오호 아 그렇지 그래 그것도 좋지. 그럼 들고 들어가자.”
희재는 술병과 과일을 올린 쟁반을 들고 침실로 함께 들어갔다.
저놈을 근력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걸 아는 희재는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작심을 했다.
쟁반에 과일을 올리며 함께 챙긴 과도···
-덜컥!
문이 닫히자
희재는 과감하게 옷을 모두 벗어 한쪽으로 던졌다.
어차피 둘 중에 누가 죽든, 이방은 피로 얼룩질 것이다.
다행히 자신이 산다면 피범벅이 된 옷을 입고 도망칠 수 없는 노릇이다.
미리 생각해 둔 계획대로 부끄러움 따위는 잠시 접어두고 아낌없이 벗어서 멀찍이 옷을 던져 놓았다.
그 모습을 보자 놈이 놀랐다는 듯이
“어라? 너 처음이 아니라는 거야?”
“아니요. 처음인데···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해서···”
배수의 진을 치는 희재의 과감한 모습에 놈이 다른 의미로 오해를 단단히 하는 듯했다.
희재가 양말까지 마저 벗고 몸을 움츠리며 울먹이듯 말했다.
“정말이에요. 차라리 이렇게··· 이게 덜 힘들고 덜 아플 거라고 했어요···”
“누가? 어떤 새끼가 그따위 소릴 했는데!”
열이 받은 만철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언···언니 들이요···남자랑 있을 때 반항하면 힘들고 아프기만 하다고···어차피 겪을 일이면 그냥 하라고···”
“이런 시발 그 빌어먹을 년들이 별 개같은 소릴 다해 가지고··· 허허···우리 착한 주희가 발딱 까진 줄 알고 놀랐잖아. 오빠가 소리 지른 거 미안해. 그래 차라리 이렇게 하면 무서울 것도 없어. 잘 해줄게.”
놈이 능글맞게 웃으며 제 놈의 옷을 신속하게 벗었다.
그리고 샤워실 문을 열어 놓고 들어가더니
“너 아까 과일 맛있다고 했지? 과일이라도 먹고 있어.”
희재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과일과 과도를 집어 들고 침대 위에 앉아 천천히 사과 껍질을 벗겼다.
희재는 지금 엄청 떨고 있다.
열두 살에 이런 일을 당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른다.
세 살 때부터 아예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희재 나이 또래들 중에 이런 일을 겪은 여자아이는 몇 번 봤다.
그 아이들이 말해준 그 짓은 정말 끔찍했다.
[“정말 그게 돼?”]
[“응··· 처음에는 더럽게 아픈데 되더라니까?”]
[“이런 씨발··· 더러운 새끼들···”]
기억을 더듬던 희재가 머리를 흔든다.
‘나는 그 꼴은 안 당할 거야. 오늘 저 새끼가 죽든 내가 죽든 곱게는 안 당해. 씨발···’
되뇌고 거듭 곱씹으며 결의를 다졌다.
불이 꺼진 침실,
놈이 완전한 나체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딸각!
침대 옆 스텐드가 켜지고 희재는 움츠린 자세로 고개를 푹 숙였다.
“주희야, 이렇게··· 이렇게 있어 봐.”
놈이 주희의 몸을 조심스럽게 잡고 자세를 교정했다.
-움찔!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에 희재는 몸을 떨었다.
“흠··· 내가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 넌 최고야 주희야. 아프지 않게 잘해줄게.”
그 말에 희재는 이를 악물고 질끈 감기려는 눈도 억지로 부릅떴다.
그런 희재의 시선이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오는 놈의 목을 향했다.
그 순간 천천히 오른손을 왼쪽 어깨 위 과도를 숨겨둔 곳으로 가져간 희재가 망설임 없이 힘껏 놈의 목젖을 가로로 그었다.
-사각!
“컥!”
죽을힘을 다해 놈의 목을 그어버린 희재의 손에는 과도가 역수로 들려 있었다.
-푹썩!
-푹썩!
-푹석!
그 후로도 멈춤 없이 칼이 살을 파고드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학! 이 년이?”
-끄르르륵···
‘한 번으로 멈추면 안 돼.’
전에 생활하던 곳에서 칼부림이 난 적이 몇 번 있어서 안다.
칼에 찔렸다고 바로 죽지 않았다는 걸.
이놈도 한 번에 죽을 놈이 아닐 거라고 이미 생각했다.
때문에 희재는 놈의 목을 그은 직후 바로 다음 동작을 이었다.
정신 차린 놈이 자신을 제지하기 전에 연속으로 목 부위를 정신없이 찔렀던 것이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놈의 뜨거운 피가 희재의 얼굴에 수돗물처럼 덮쳤다.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탄 놈을 올려다봤다.
침이 튀는 놈의 입에서 힘겨운 악이 뱉어졌다.
“이런 미친개 같은 년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놈은 자신의 목에서 뿜어져 쏟아지는 핏물을 왼손으로 감쌀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오른손으로 희재의 목을 눌렀다.
그러나 손아귀에 힘이 없었다.
“이런 씨이발녀언··· 어헉! 어허 어···”
그러나 과도한 출혈에 놈의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힘이 빠졌는지 눈을 뒤집으며 제 놈의 피로 범벅이 되어버린 희재의 몸 위에 고꾸라졌다.
몇 차례 부르르 떨던 놈이 지금은 움직임이 없는 걸 보니 숨이 멈춘 것 같았다.
끝났다.
“허억! 허억! 흐으윽 흐으윽···”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희재가 과도를 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처음에는 손잡이를 잡았던 자신의 손이 지금은 과도의 칼날을 잡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악력이 약한 탓인지 찌르는 동안 밀린 것 같았다.
이제야 손에 생긴 상처가 아려왔다.
피가 채 스미지도 않아 질퍽하게 젖어버린 침대에서 피비린내가 역하게 진동했다.
희재가 놈을 밀쳐 내고 침대를 내려와 샤워실로 향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샤워기를 틀고 자신의 몸에서 씻겨 내려가는 핏물을 바라보며, 다음을 생각하려니까 도무지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흐윽! 흐윽윽! 흐끄끄끄윽···”
고요한 정적 가운데에서 희재의 흐느낌 소리만 흘러나왔다.
짐승 같은 놈은 죽었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찾아주신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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