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지랄 준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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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말이지?”
김일환 변호사는 시안이 오면 먼저 물어보려던 일이었다.
그런데 시안이 먼저 확답을 주고 있었다.
“네··· 사고가 있기 전 아버지와 통화했다고 하신 게 기억나서요.”
“재성이가 회장님 호적으로 재입적하는 걸 물어 왔었다. 상속 포기를 했었던 법적 효력 같은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문제들은 모두 접어두고 입적만 하겠다고 말이다.”
그 얘기는 7년 전 부모님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김일환 변호사가 시안에게 했던 말이었다.
두 부부의 서명도 받은 터라 시안의 결정만 남아있던 일이었다.
그때 미국의 알베로와 시안이 거부의 뜻을 비쳐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너도 이제 아버지 생각을 따르려는 거지?”
“네··· 아마 절차에 들어가면 혜성에 이강호실장님이 먼저 연락을 주실 겁니다.”
“그래 알았다. 혜성에 어르신도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이 크셨다고 알고 있다. 너라도 그 상심을 덜어 드리는 게 옳겠지··· 그건 그렇고 네 명의로 되어있는 JM갤러리는 어떻게 할 거냐? 지금은 내 뜻대로 내가 관리하고는 있지만··· ”
“그건 지금처럼 놔두었으면 하는데··· 혹시 불편하세요?”
“그건 불편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전문경영인이 관리하고 있으니까. 다만 그곳 직원들도 그렇고··· 아무래도 너의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지···”
“그 문제라면 차차 제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미국쪽 법인에 지시를 따로 해 두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네 어머니가 많이 아끼던 곳이었으니까 신경이 쓰여서 그렇지.”
“네 늘 감사해요. 그리고 대학을 준비 할까 고민 중이에요.”
“오호!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눈앞에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김일환변호사였다.
시안은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바로 JM&K로펌을 찾아온 이유다.
“네, 각 분야 학자나 과학자들 같은 전문가들 불러다 돈을 지불하고 거래하는 것 보다, 그들과의 공감될 수 있는 관계부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라서요. 그러려면 그게 순리에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 그래 독학으로 준비할 건가? 아니면 학원을···”
“네? 아··· 올해 해야죠.”
“응? 올해 바로 입학하겠다고? 그야 뭐···”
김일환이 슬쩍 달력을 봤다.
9월 16일···
수능까지는 고작 두 달이 남았다.
허긴 고등교육 6년 치를 1년에 정리했던 녀석에게 되묻는 것도 의미가 없다.
“어디로 지원하려고.”
“당분간 외국 갈 계획은 없으니 이왕이면···”
“한국대학교? 하하하하하··· 허긴 너라면 가능도 하겠지.”
두 사람의 말을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정비서는 이 상황이 참 어이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저게 일반적으로 가능한 대화 패턴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대학이 어린아이 유치원도 아니고 더구나 한국대학?
게임만 주구장창하며 놀다가 수능이 3개월 남짓 남았는데 거길 들어가겠다는 게 아무리 천재라도 말이 되는 얘기는 아니지 않나.
정비서는 조용히 문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실장님 정한욱입니다.”
[그래 무슨 일이라도?]
“그게··· 아무래도 입시전문 강사들 섭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도련님이 드디어 대학을 가실 생각인가 보군.]
“네, 목표가 한국대학이시랍니다.”
[음··· 일단 알겠네. 회장님께는 보고드리지. 그밖에 필요한 사안도 이쪽에서 꼼꼼하게 검토해서 준비할 테니 자네는 곁을 지키게. 아직 여유가 있으니···]
“그게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응? 그게 그럼··· 설마 올해 입신가?]
“네···”
[하아···내가 도련님을 너무 띄엄띄엄 봤군···]
[정비서]
“네.”
[지금 JM&K로펌 김일환대표 직무실이지?]
“네.”
[그럼 저녁 무렵 입시전문가를 도련님 댁으로 데려가겠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게. 사소한 일이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지체없이 연락하고···]
“네.”
휴대폰을 집어넣고 다시 실내로 들어섰다.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김일환 변호사의 말이 그의 귀에 박혔다.
“그래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서 그 돈 일부로 운용하겠다는 말이지? 흠···”
뭘 잘못 들었나 했는데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갑자기?’
이어지는 시안의 말이 그를 다시 당황하게 했다.
“네 미국에 알베로 아저씨가 관리하는 저의 재산이 많이 불었나 봐요. 그리고 제 미국 법인도 새로운 글로벌 분야를 개척하려던 참이었고요. 그래서 대표님이 저의 JM법무팀과 공조를 해 주셨으면 해요.”
“흠··· 조금이라고 하기에는 초기 자금 10억 달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인데··· 그럼 네가 설립하고 싶은 법인은 어떤 분야로 하려는 거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연예와 민간경호보안 분야 그리고 대학 설립을 위한 학교법인이에요.”
“그거 민간경호보안은 모르겠기만, 학교법인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쉽지 않은 길일 텐데··· 꼭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거··· 꼭 필요해요.”
“흐음···”
정비서는 둘의 대화를 뒤로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 이번에는 또 뭔가?]
“그··· 그게··· 법인들을 설립하신답니다.”
[뭐?]
휴대폰 너머에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허어··· 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네, 미국에 관리 중인 자금의 일부도 활용하신답니다.”
[그런 게 있었군. 미국 쪽 자금에 대한 정보는 들었나?]
“네, 부모님 친구가 관리하는 자금의 일부를 미국의 법인으로 활용한답니다. 약 10억 달러 정도···”
[···············]
이강호 실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 금액은 미국 국세청에 상속세를 내고 상속받은 재산으로 불린 자산일 테니 온전하게 시안의 재산이었다.
그 일부를 활용하는 게 10억 달러라면···
혜성그룹 계열 통신사의 1년 치 영업이익에 육박하는 액수.
대략 1조가 넘는 돈···
‘돌아가신 둘째 도련님의 능력은 죽어서도 빛을 발하는구나···’
이동통신을 기획한 조재성이 없었다면 혜성은 일찍이 분해되었거나 아니더라도 변방에 머무른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정말 아까운 인재를 놓친 건 혜성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놓쳤다고 해야 했다.
“도련님이 어떤 법인들을 생각하고 있던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경호업체였습니다. 경호보안 스포츠 연예로 세분화 하시려는 걸로 얘기 중입니다. 그리고···]
통도 참 크다.
글로벌이라니···
“더 있나?”
[네, 학교법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학교법인이라면 쉽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대학 설립을 말하는 건가?”
[네, 그런 걸로 들었습니다.]
“알았네. 회장님께 말씀드리지··· 자네는 계속 수고 좀 해주게.”
[네,]
전화를 마치고 이강호 실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그제 시안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가 본 사람은 열아홉 살짜리 철없는 청춘이 아니었다.
숨소리 하나로도 온몸이 얼어붙던 기억을 되짚었다.
자로 잰 듯이 타이밍을 주도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장님을 고양이 쥐 놀리듯 다루었다.
그 자리에 혜성의 장남인 조재강 부회장을 끌고 가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모르긴 해도 오줌을 지렸겠지···”
살기라는 막연한 표현을 현실로 느껴보긴 처음이었으니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건가···”
이실장이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그제 손자의 집에서 상당히 무리했음을 안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회장실 문을 노크했다.
‘회장님 심장에 자꾸 무리 주면 안 되는데···’
***
조태산 회장은 모처럼 고민이 많아졌다.
고민의 이유가 근심이 아닌 호기심이라는 게 평소와 달랐을 뿐이다.
‘학교와 창업이라···’
게다가 10억달러라는 출자금까지,
조태산도 자신의 손자가 대주주로 있는 JM재단이 어렵지 않게 끌어올 자금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자신에게 손 내밀 필요도 없다는 것도···
지금은 그마저도 아쉬울 따름이다.
대학을 간다고 했다는데, 그것 또한 다른 목적의 변덕일 뿐임을 노회한 회장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어디 그 녀석 입지에 대학이란 허울이 성에 찰 녀석일까···’
손자 녀석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미국에 있다가 4년 전, 갑자기 입국한 녀석이 아무 생각 없이 방구석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손자 녀석의 주변을 살피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감시 아닌 감시가 되어 버렸을 뿐이다.
다 알지 못해도 JM재단은 분명하게 조민시안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있던 바였다.
한국에 머문 지 고작 4년,
명석한 아이니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아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나마 절실할 수 있는 것,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면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믿고 쓸만한 인맥···
조태산은 그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맥이라면 이 조태산도 만만하지는 않으니까···’
노회장이 비서 인터폰을 눌렀다.
[네 회장님.]
“그래 이 실장 들어오라고 하게.”
[네 회장님.]
‘학교법인과 경호보안 스포츠 연예 엔터테인먼트라고 했느냐.’
조태산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
시안이 김일환 대표실 옆 밀실로 들어섰다.
30평 내외에 칸막이가 설치되 비서실과 시안의 방이 나눠진 구조,
JM&K법무법인에 마련된 시안의 전용 사무실이다.
외부 도청이 불가능한 지역,
부모님의 사진이 놓인 책상에 앉아 위성 통신기로 레이먼드를 연결했다.
“레이먼드,”
[네 보스.]
“준비하라는 거 어떻게 됐어?”
[학교법인에 대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외에 해외 투자에 대한 준비는 대부분 마무리되었습니다. 다만 일본 쪽에서 미적되는 게 신경을 거슬리 게 할 뿐입니다.]
“학교법인은 혜성그룹의 성현학교법인이 대안이 될 수 있으니까 두고 보자고, 그리고 일본은 신경 쓰지 마. PS에서도 곧 정리가 들어갈 거니까. 그때 필요한 만큼 빼버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마리아가 준비하는 것에는 차질 없겠지?”
[네 없습니다. 바로 송금이 가능하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주현아 기자 미국 들어갔지?”
[아니요, 그녀는 스위스에서 바로 제주로 갔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 사람 주변 캐어 잘해. 다치면 너 죽을 줄 알아.”
[물론입니다 보스.]
통화를 끝낸 시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을 추려야 한다.
자신이 믿고 쓸만한 사람들을 단시간 내에 구하는 건 무리였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어떨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의 거점을 한국에 둔 이유가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부모님의 고향이 그런 꼴로 부서지는 건 용납하기 싫었으니까.
시안의 입국은 대외적인 공언과 같았다.
자신의 JM과 알베로 파치슈바벤의 PS 카르텔 연합이 전쟁을 조장하는 카르텔들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과도 같은 상징적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를 향한 암살 시도가 벌써 두 차례,
그리고 한차례가 더 남았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는 상황이면, 이 무언의 협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국에 남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떠나서 이제 정말 저 새끼들을 조져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잃어야 하는 게 너무 많았다.
그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이 될 것이고 같이 망하는 길일 뿐이니까.
스피커폰으로 마리아 스펜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그녀는 회사에서도 꼭 마스터라고 한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주종관계처럼 각인 된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다.
“마리아, 김일환 대표님께 말해 놓았으니까 서울 강남에 투자사 임시 개설 준비해.”
“네 마스터. 구인은 어떻게 할까요?”
사람은 혜성의 도움을 받으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걸리는 게 있다면, 할아버지 조태산 회장의 생각이었다.
행여나 경영권 상속에 자신을 껴 넣는 것은 피하고 싶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일에 휘말리는 건 지금 시점에 사절하고 싶다.
혜성에서 추천 인력을 지원받고 마리아가 관리하면서 옥석도 가리면 손쉬울 문제였다.
어려서부터 뒷골목 시궁창에서 굴러 본 그녀는 사람 가리는 게 본능적으로 발달 된 사람이었다.
쓸 사람 쓰고 뺄 사람은 빼는 것으로 말이다.
시안은 한국에 대해 깊숙이 알고 있지는 못했다.
껄끄러워도 그런 부분은 혜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맞다.
이제 땅을 사야 하나?
연기 나지 않게 조용히 돈을 태워야 한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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