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나 성격은 좋네?
‘생각대로 저놈은 위험한 놈이다.’
무대 위를 바라보던 스쿨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조지 알넥이라는 이름으로 무대 위에 올라 있는 저 존재가 아무리 오딘의 분신이라지만, 그 위엄 앞에 한낱 인간이 버티고 서있었다.
이건 아무리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위력에 의한 점지라도 도를 넘는 특혜였다.
세계수의 의지가 단순한 노여움이 아닌 진심임을 확신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얼마 후 하늘이 열리면 미드가르드의 신성착상이 진행된다.
그러나 저 모습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균형을 잃었음을 의미했다.
‘오딘도 어디선가 저 모습을 지켜봤겠지···’
하긴 분신을 보내고서 안 본다는 것도 이상할 일이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오딘의 스스로 하늘이 열리는 날을 알린 것과도 같았다.
‘오딘 네놈이 세계수에게 맞서듯 광대놀음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커져만 가는 의문은 그녀의 상념을 잡아끌고 풀리지 않는 뒤끝을 쉼 없이 남기고 있다.
저 불길한 인간 아이를 향한 오딘의 호기심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녀석은 세계수의 선택이었으니까 말이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은밀히 위그드라실의 뒤를 쫓았었다.
그런 그녀를 오딘이 막아섰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무엇보다도 가혹할 만한 형벌을 내렸다.
[예지력 봉인]
과거의 회상이 거기에 이르자,
스쿨드의 시선은 다시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한 인간 여자에게로 향했다.
주현아였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스쿨드가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 냈다.
지금은 하찮은··· 아니 불길한 것에게 다가설 때다.
뜨개실을 풀어내며 놈에게로 향했다.
“스···스쿨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불경한 놈···
‘죽일까?’
***
알베로 아저씨는 오늘 떠난다고 한다.
동남아 싱가포르에도 그의 딸이 살고 있다.
사실 알베로는 사생활이 복잡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았다.
시안을 만나기 위해 나선 길이지만, 한곳에 오래 머물 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시안은 주현아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본상 시상을 한 5인 인터뷰로 일정은 모두 끝이 났어요.”
“그거 아쉽네요. 한국에 더 머무르실 건가요?”
주현아의 집은 제주에 있었지만, 미국 유학을 간 이후로 쭉 펜실베니아아와 뉴욕을 오가며 지내 왔다고 했다.
“아니요. 집에서 일주일 잘 지냈으니까 본사에서 일정 잡는 대로 이제 돌아가야죠. 내년 학비 마련하려면요.”
“아, 복학 준비하시는 군요.”
“네 이번에는 졸업해야 하니까요.”
“호오··· 4년을 2년으로 끝내실 건가 봐요?”
주현아가 말없이 웃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도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그득 쌓여 있다.
미국은 현재 매우 위험한 상태였으니까.
“혼자서 해보겠다고 아르바이트로만 1년을 까먹었으니까요.”
“그래요. 꼭 잘되기를 바랄게요. 그리고···”
그녀가 뒤로 말을 흘리는 시안을 바라봤다.
“네, 어려워 말고 말씀하세요.”
“마침 내일이 주말인데, 기자님을 저의 집 저녁 식사에 초대를 하고 싶어서요.”
“어머! 진짜요?”
주현아가 놀라 반색을 하던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저 보기보다 입맛이 대단히 까다로운데···”
그 말에 시안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까다로운 걸 해결하는 게 제 전문인 거 잘 알잖아요? 걱정 안 해요. 그럼 내일 문자로 주소와 시간을 알려드릴게요.”
그녀가 단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리아 스펜서가 다가왔다.
“마스터, 준비되었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와 동승하실 건지 물으십니다.”
마리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시안은 주현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네 얼마나 대단한 저녁인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총총총 스탭들이 있는 장소로 걸음을 옮기는 주현아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리아에게 물었다.
“요안나가 타면 나는 따로 타도 되잖아?”
잔소리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아가씨는 학교로 돌아가셨습니다.”
뜻밖의 소리지만 뭐 수능시험도 가까이 왔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그럼 나라도 동승을 해드려야지. 마리아도 나랑 같이 타.”
호텔 앞에 정차된 대형버스 3대를 향해 100명이 넘는 수행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이다.
“네, 마스터.”
마리아가 늘어선 리무진 쪽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 모습을 보던 시안이 시선을 옮겨 자신의 바로 뒤쪽을 올려다봤다.
조금 멀찍이 떨어진 텅빈 허공이지만 그건 일반인들의 눈일 때 얘기다.
그곳에는 말 위에 앉아 뜨개실을 풀고 있는 스쿨드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따라다니시나 저분은···’
[“네놈 주변에는 왜 이렇게 미친 것들이 많이 꼬이는 거 같냐?”]
‘그러게나 말이다.’
바사 너도 포함해서···
***
코엑스를 빠져나온 차량 행렬이 공항을 향해 도로를 달리는 중이다.
CEO가 새로운 게임출시를 알리며 마무리된 행사였다.
물론 게임출시는 당연히 없겠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떠들고 가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굉장히 미친놈이네···’
[“너희는 그걸 사이코패스 관종이라고 하던데 맞지? 그놈이 그거인 거”]
바사는 아직도 이 세계에 동기화 되고 있는 중이었다.
때문인지 요즘 유행하는 신생어들도 자주 사용했다.
‘그래, 신화의 기록으로만 봐도 그 영감은 사이코패스야. 근데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미친놈인거 같아서 놀랐을 뿐인데··· 그런 식이면 관종이 맞긴 해.’
시안은 관심도 없던 행사장 팬시상품들을 일정량 종류별로 구매하라는 지시까지 했다.
자신이 오딘을 너무 순진한 시각으로만 고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미친놈이 팬시 상품들에 무슨 짓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5일 동안은 행사장에 전시된 여러 가지 팬시상품들이 진열되며 판매가 이루어지겠지만,
그건 주최 측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만일 팬시상품들에 장난질을 쳐 놓았다면 그 물건의 구매자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 될지도 모른다.
세상 뒤집어지자 마자 아티팩트부터 보유한 꼴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장의 문제는···
행사를 마친 이후부터 그를 계속 따라붙은 바로 저 여자였다.
‘스쿨드 당신, 나를 화신이라도 삼을 셈이야? 왜 따라다니지?’
[············]
역시 대답이 없다.
노른종족, 아니 등급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을 대표하는 스쿨드가 제 발로 그를 찾아왔다.
‘아니 뭐가 아쉬워서?’
란드그리즈나 게이렐로도 버거운데, 신성등급 고위 발키리가 자신을 직접 찾아왔을까···
게다가 오딘으로 예상되는 괴이한 사이코패스까지,
신계라고 하는 아스가르드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차원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말이다.
공항으로 달리는 차량 뒤에 따라붙은 스쿨드를 확인하면서 시안은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지금 사람들 눈에는 그의 차량 뒤로 이어진 분광 현상만 보일 테지만, 언론에 어그로만큼은 제대로 끌리고 있는 중이다.
그 현상이 실시간 계속 뉴스로 회자 되는 가운데,
알베로 아저씨를 공항까지 배웅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 주신 것 감사드려요.”
“너와 나 사이에 그건 인사가 아니라 욕이다. 하하”
“아니 어제 오셨는데 오늘 저녁에 가신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거구요.”
알베로는 바로 홍콩을 먼저 들려야 할 일 때문에 서두른다고 했다.
“그나저나 너 정말 괜찮은 거냐?”
지금까지 알베로 아저씨와는 공식석상에 같이 서지 않았었다.
국가 기관들에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시안을 걱정하는 말이다.
공개적으로 그를 마중 나온 것도, 지금처럼 배웅하는 것도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드러낼 필요가 있어서다.
이제 성년이 된 조민시안이 음지에만 머물 수는 없는 거였다.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랄게요.”
“허기는 네 녀석을 걱정하는 게 괜한 걱정이기는 하지.”
“아시겠지만 저 입시 때문에 당분간 아저씨 못 만나요. 아시죠?”
입시는 밑밥이고 지금 준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래, 그때까지 좋은 소식 기다리마.”
“그리고 어제 말했던 것처럼 센프란시스코와 북쪽 인근 샌타로자의 실내 경기장과 말목장 매물 나온 것 있으면 모두 사두세요. 저도 50% 부담할게요.”
“흠··· 그게···”
뭐라 말을 하려던 알베로의 시선이 시안 뒤편의 광원으로 옮겨졌다.
시안이 했던 말대로 저런 이상 현상이 세계를 위기로 몰고 있다는 단정을 정말 믿어야 할지 지금도 고민 중인 듯 보인다.
“그리고 이번 알렉 코퍼 클베로 팬시 상품 챙겨 드린 거 잘 챙겨 두세요.”
“하아···”
알베로는 이 엉뚱한 제안에도 묻고 싶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진지한 시안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뭐 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래 알았다. 그게 왜 필요한지는 네 말대로 묻진 않겠어. 그리고 네가 준 것 꼭 목욕은 하고 보도록 하지 하하하하하···”
“······”
알베로는 그렇게 출국장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비서가 그에게 다가왔다.
“도련님, 요즘 이슈로 등장한 분광 빛무리가 주변에··· 그리고 저기 저 사람들은···”
정비서가 눈짓으로 가리키는 무리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지고 있었다.
스쿨드가 분출하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투과 반사광이다.
비록 신성들의 본신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지만 마나로 코딩된 그들의 아티팩트는 가시광선을 프리즘처럼 분광 시켰다.
지금 스쿨드가 걸친 화려한 사슬 갑옷과 방패 그리고 마갑이 모두 창세기 등급 아티팩트였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쉽게 말해 지금 시안은 걸어 다니는 프리즘스펙트럼이 된 셈이었다.
“어질어질 하네요.”
시안의 주위로 넘실거리는 광전현상
카메라를 돌리며 다가오는 무리에서 곤란한 질문이 쏟아지기 전에 자리부터 떠나야 했다.
“아무래도 빠르게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 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대기하는 차량으로 뛰다시피 걸어가며 곁눈질로 스쿨드를 봤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굳은 표정으로 시안의 뒤를 따르고 있다.
‘미치겠네··· 이봐 당신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곤란한 줄 알아요? 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이쪽 세상에선 이런 걸 민폐라고 한다고 민폐.’
[“얼씨구, 벌레놈 신성에게 말하는 싸가지 좀 보소? 요즘 네놈 주변이 아주 반짝반짝하니까 좋지? 차라리 그냥 죽여달라고 해라.”]
바사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놈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위그드라실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된 란드그리즈와 게이렐 그리고 스쿨드의 등장,
신성들이 차원의 문이 열리기 전부터 시안을 주목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래도 자신의 주위로 펼쳐진 오로라는 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린 가운데, 그가 자신의 차량 앞에 섰다.
-덜컥!
경호담당이 차 문을 열었다.
시안이 마리아를 보며 말했다.
“마리아, 지금은 내가 생각할 것이 많아서 그러니까. 뒤차로 왔으면 해.”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스터.”
그녀가 뒤차로 향한 뒤,
열린 문에서 옆으로 비켜선 시안이 스쿨드를 바라봤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 스펙트럼 투과광이었겠지만···
‘저기 스쿨드 누나 그···이제 그만 이 차를 타면 안 될까? 어차피 나랑 목적지가 같은 것 같은데···’
누나라고 대우를 해주면 말을 좀 들어 처먹으려나 싶었다.
입을 굳게 다문 그녀가 뜨개질을 멈추고 말에서 내렸다.
-스스스···
말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치켜 뜬 시선으로 그를 훑더니, 차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쉰 시안은 그녀를 따라 차량에 탑승하며 생각했다.
이 누나 성격은 좋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찾아주신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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