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 거 쉽게 가자 "저기 선생님!"
시안이 집에 도착했을 때,
현관에서 그를 맞은 건 이강호 실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네 안녕하세요. 혜성그룹 상황이··· 회장님 안부를 묻기가 좀 그러네요.”
그런 말을 듣고 눈을 껌벅이는 이강호 실장···
‘회장님을 그렇게 패 놓은 사람이 할 말은···’
사실 조태산 회장은 좀 다른 쪽으로 심상이 복잡한 상황이지만···
“정정하신 분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리고 말씀하신 분은 안에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들어가시죠.”
집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40대 남자가 슬며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190은 되어 보이는 신장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영진이라고 합니다.”
소파로 걸음을 옮기던 시안이 잠시 멈칫했다.
‘저 사람 상태창이 희미하게 떠올라 있는 이유가 뭘까?’
패시브스킬 ‘안목’이 특별한 이유 없이 발동된 것도 처음이지만, 그 대상의 상태창이 희미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당황이 엿보였을 표정을 급히 감추며 인사를 받았다.
“아··· 네 반갑습니다. 조민시안이라고 합니다.”
시안이 잠시 당황했던 이유는 김영진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시립해 있는 앳된 동행인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확인할 자리가 아니었다.
‘천천히 알아보면 되니까···’
일단 흥미가 끌렸지만 잠시 접어 두었다.
서로의 인사가 오가고 이강호 실장이 서류를 꺼내 들었다.
“인사는 그쯤으로 하고··· 도련님이 대학에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다소 촉박하지만, 입시전문가이신 김영진 실장을 초빙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긍정의 말을 한 시안이 김영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그럼 간단하게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입시라는 게············”
그의 이어진 설명은 시안이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능을 시작으로 수시니 정시니 추가지원이니 평소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린 내용들···
모든 설명이 끝나고 김영진이 시안에게 물었다.
“한국대학에 뜻을 두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전공은 어떤 것으로 정하실 건지···”
전공 이야기가 나오자 시안은 막연한 답답함이 밀려왔다.
‘대학이라는 곳에 그런 게 있었지··· 전공.’
관심도 없던 대학 진학이다.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 정한 바도 없는데 막상 전공부터 정하라고 하니 살면서 한번도 절실하게 생각지 않았던 대학이라는 곳의 생소함을 다시 실감하며 더욱 멀게 느껴졌다.
“그게 문제네요 전공···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어서요.”
사실 식물과 생명 공학분야이기는 한데 물리학이 더 끌린다.
그의 대답을 듣던 김영진의 시선이 시안이 서점에서 구입해 온 서적으로 향했다.
그 책들이 수능 문제집일 걸로 생각하고 슬쩍 봐두었는데 다시 보니 의외로 과거 김영진의 아픈 손가락들이었다.
그가 청년시절의 열정을 남김없이 갈아 넣었던 내용들이 담겼을 작물과 농경에 관한 전문 서적들···
<메디컬 허브 위키>
<식물 웰빙 영양학>
<식물 바이오 공학>
<식물 자원학 개론>
<동의보감 약용 약초 식물백과>
“혹시 식물자원학과를 생각하시는 중이십니까? 저도 농대 출신이지만 입학은 쉬워도 교육과정은 고단하고 쉽지 않은 일 텐데요···”
“아··· 그건 제가 취미 삼아서··· ”
말을 멈추고 김영민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시안이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농대 출신이라고?’
시안의 말에 귀 기울이던 이강호 실장은 반사적으로 알았다.
얼핏 봐서는 하던 말을 얼버무리는 것 같지만 그의 표정이 다음 순간 밝아지는 건, 분명 어떤 구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강호 실장의 판단처럼 지금 시안의 머리가 굴러가고 있다.
물론 처음은 페어리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 생각에 시작하기는 했다.
하지만 깊이 있게 진행하다 보면 극비에 가까운 은밀한 작업이 될 수도 있는 작업,
때문에 국내 인물 중에 찾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에 합당한 인재를 파악하려고 대학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느 세월에···’
아무리 봐도 시간 낭비고 그럴 생각도 이제 사라지고 없다.
어차피 계획 속에는 대학 설립과 동시에 그 분야 전문가들을 탐색하기 위해 맛만 보려던 게 한국대학 간판이다.
97일 뒤부터 달라질지도 모를 세상에 가장 필요할 인적 자원,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실례라는 건 알지만 혹시 어느 대학 농업대를···”
“실례라니요. 저는 한국대학 농업생명과학대 출신입니다.”
“아··· 짐작대로였군요.”
“네? 그걸 짐작···”
김영진은 본말이 전도됨에 당황했다.
‘뭐지 얘?’
그런 사이 시안의 눈앞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떠 있었다.
이름 : 김영진
나이 : 41세
가호 : (비각성)
특성 : 농업의 달인(개화 정체)/ 굴하지 않는 탐구자
생명 : 1.0
지력 : 15.6
체력 : 2.1
근력 : 2.3
민첩 : 3.1
마력 : 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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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보상 포인트 : 00▼
*각성을 충족하면 신성의 가호를 받아 능력치가 급상승합니다.
지력이 15.6 이면 아이큐 156이 뛰어난 두뇌다.
신체 조건도 좋았지만 머리마저 남달랐다.
지금 시안이 그리는 그림에 그가 오버랩되고 있다.
“제가 궁금해서 그런데··· 어떻게 입시 전문가를 시작하시게 된 건지 알고 싶습니다. 농업전문성에 대단한 능력이 있으신 분인 것 같은데요.”
김영민은 다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물음인데도 미소를 잃지 않은 표정을 유지한 채 낮게 말했다.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구상하는 일에 조언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초면에 무례를 저질렀네요.”
정중한 사과를 들은 김영진이 별다른 표정 없이 한 탬포 늦추고 가만히 시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한국대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에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바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돈벌이를 해야 할 일이 생겨서 10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렀던 것뿐입니다. 대학시절 학비와 유학비 마련을 위해 학원 강사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이러니까 대학 다 소용없다는 얘기···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 전공은 학벌 빼고는 2차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답변 감사합니다.”
이것도 기연이다.
클베로 게임을 클리어 한 그 시간 이후로 이어지는 믿기 힘든 기연들의 연속···
바사의 빙의가 첫 번째였고, 자신의 능력 변화와 세계수 요정 페어리들의 방문까지 거침없이 이어지는 빠른 전개가 마치 계획된 시나리오의 연출처럼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억지스럽다.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판의 꼭두각시가 된 기분마저 들 정도다.
정말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를 기운에 이끌려가고 있는 것이라면,
그 정체가 궁금했다.
“저기 이실장님.”
당혹감 어린 시선으로 시안을 바라보는 이강호 실장,
“네 도련님.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대학 설립과 비닐하우스 얘기는 이미 정비서에게 들었던 터다.
이강호 실장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된 상태였다.
이번에는 정말 농장이라도 차리려는 건지 싶었다.
“제가 전공을 고민하다가 하게 된 생각인데요. 혜성의 교욱재단과 성현학교법인 말입니다.”
“············”
“그게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 경기도에 매물로 나온 대학이나 연수원 없을까요? 숲을 끼고 한 5만평정도면 적당하겠는데···”
갑작스럽게 연수원 매물을?
“흠··· 알아는 보겠지만, 그걸 찾는 이유라도 말씀해 주시면···”
“대학 가려고요. 제가 직접 설립한 대학에 시험 보고 정식으로 입학하겠습니다.”
“···············”
시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이 일시에 굳었다.
도련님 대학 가는 컨설팅 자리가 아니라 대학을 설립하겠다는 선언의 자리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어차피 생명공학 연구시설설립은 시안이 긴 시간을 미적거리며 고민만 했던 부모님들의 숙원 사업이기는 했다.
그동안 부모님이 이룩한 JM재단 이름을 내세워 그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알베로였다.
때문에 시안이 성년이 된 날로부터 귀찮을 정도로 동의를 구하던 그가 들었으면 엄청 좋아할 일이다.
아닌가? 혼자 선수 쳤다고 한소리 들을 일일지도···
세상에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피했던 시안의 입장 때문에 지금까지 미적거리던 일이기도 했다.
“왜요? 곤란한 점이라도··· 혜성이 어럽다면 저는 미국의 학교법인을 활용해도 됩니다”
고작 100일도 안 남은 이 시점에 고민 따위는 필요 없다.
“아니 그건 아닙니다. 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이건 아무래도 회장님께 보고를···”
“회장님께 보고라면 밤 늦기 전에 지금 하세요. 화장님만 좋다면 저는 혜성 산하 비영리 교육법인에 사업추진 자금을 기부형태로 송금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커업··· 지금 시간이···”
“지금 뉴욕 시간은 새벽 4시입니다. 시간은 충분하지만 제가 바라는 결정은 오늘을 넘기기 싫군요.”
결국 난감해하던 이강호 실장이 통화를 위해 자리를 잠깐 비웠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회장님께서 도련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협조를 아끼지 말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상황이 급반전 되자.
김영진이 슬며시 자세를 바꾸고 입을 열었다.
“이실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은 제가 할 것이 이제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다.”
이강호 실장도 당황스러운 경황에 마주 자세를 바꾸며
“그···”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하려는 이강호 실장을 멈추게 한 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시안이었다.
“저기 선생님,”
그가 시안을 돌아봤다.
“지금 6시입니다. 저녁시간도 적당한데 제가 식사를 대접해드리고 싶은데요. 먼 걸음 해주신 보답입니다. 부디 거절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왜일까?
눈앞에 서 있는 이 천둥벌거숭이 아이가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는 이유가···
난감한 김영진이 이강호 실장을 본다.
“그렇게 하시지요. 어차피 식사 대접은 예정된 일입니다. 물론 예약도 제가 이미 해 놓았으니 스케줄 대로 함께 하시지요.”
없던 예약이 만들어졌다.
이쯤 되면 빼기도 그렇다.
상대는 그냥 그런 고객이 아니라 혜성그룹의 라인들이었으니까.
“네··· 그러시다면 감사히 따르겠습니다.”
그 확답을 듣고 시안이 아까부터 김영민 뒤에 서 있던 앳된 여자를 향해 물었다.
“뭐 좋아하세요? 한식? 양식? 아니면 중식?”
“네···?”
갑자기 훅 치고 들어가니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머리 위로 내내 흐리고 희미하던 안목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이름 : 성지연
나이 : 19세
가호 : (비각성)
특성 : 원예의 달인(개화 중)/ 탐구자
생명 : 1.0
지력 : 17.8
체력 : 1.3
근력 : 1.3
민첩 : 2.5
마력 : 0.0001
▽
클리어 보상 포인트 : 00▼
*각성을 충족하면 프레이의 가호를 받아 능력치가 급상승합니다.
세상에 IQ가 무려 180에 육박···
식생의 천재가 시안의 집 거실에 무려 둘이다.
‘우연 두 개가 겹치면 필연이라잖아.’
[“미친놈···”]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찾아주신 독자님들의 선작과 추천 응원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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