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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재 님의 서재입니다.

유랑기사와 움직이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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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구소재
작품등록일 :
2024.05.22 12:30
최근연재일 :
2024.06.27 21: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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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810
추천수 :
17,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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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854

작성
24.05.2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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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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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글자
16쪽

3가지 세상을 이해하는 자 (2)

DUMMY

상당한 거리를 달려왔음에도 호미의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꾸벅.


고프리와 유진에게 공손히 배꼽 인사를 한다.


“마을을 위협하는 멧돼지를 잡으러 왔단다.”


끄덕.


고프리의 말에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반응했다.


숲 초입의 오두막에서 생활하는 만큼 위험한 짐승이 등장하면 그녀가 먼저 알아차린다.


“뭔가 단서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알려주겠어?”


호미가 맡겨달라고 가슴을 탕탕 친다.


그녀는 인간의 언어를 하지 못한다. 벙어리인 것은 아니고 종족적 태생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호미의 바지에서 두툼하고 긴 흰색 꼬리가 나와 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어떤 동물의 꼬리와 비교해도 유난히 인상적인 것은 눈표범 수인족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절반의 피다.


그런데도 짐승의 피가 워낙 진하여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입에서 나오는 건 사람의 말이 아닌 짐승의 울림이었다.


1년에 몇 번 핏속의 야성이 옅어지는 날에만 말을 할 수 있다.


“핏줄의 기원이 궁금하구나. 수인족은 수없이 봐왔지만 저 아이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


신께선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주는 법.


짙은 야성의 피는 호미에게서 언어를 빼앗았으나 그에 상응하는 완력을 부여했다. 유진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당찬 아이긴 해도 홀로 지내면 외롭지 않겠느냐?”

“다른 마을이면 몰라도 여기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유진이 슬쩍 수도원 쪽을 바라봤다.


“하긴.”

“게다가 호미는 혼잡한 마을보다 이곳 생활이 더 맞을 겁니다. 발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타입이니까요.”


유진이 수도원 생활에 적응할 무렵 마을에 새로운 고아가 나타났다.


말을 하지 못하며 수인족 특성이 대놓고 드러나는 외모.


뒷골목에 주저앉아 배고픔과 추위에 떨던 소녀에게 손을 내민 건 유진이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던 그의 따뜻한 미소와 손길. 호미는 그 첫 만남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오두막이 등장했다.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던 추억의 장소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주인을 맞는다.


척!


호미가 허리를 굽히고 팔을 뻗었다.


‘어서 오세요! 늘 환영합니다!’


대화 없이도 그녀의 마음씨가 느껴진다.


“항상 고마워. 아주 잘 관리해줬어.”


유진이 호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호미를 여기에 살게 하겠다고 했을 땐 걱정이 앞섰다만, 오히려 수도원 생활보다 안락하겠군.”


고프리가 감탄한 기색으로 말했다.


내부는 깔끔하게 청소되었고 곳곳에 말린 약초와 과일, 육포가 매달려 있다.


마녀였던 어머니가 유진에게 가르치고, 유진이 호미에게 전해준 지식이다.


침대에는 유진이 손수 만들어 선물한 봉제 인형이 놓여 있다. 테디베어를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완성하고 보니 버그베어가 되었다.


청결하게 세탁함에도 호미의 체취가 가득 배어 있는 건 그녀가 늘 껴안고 자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한 건지 찻주전자가 끓고 있다. 호미는 야생에서 캔 찻잎을 우려내 두 손님에게 대접했다.


“고맙다.”

“잘 마실게.”


방긋.


“이건 언제 먹어도 감탄이 나오는구나.”


고프리는 호미가 내온 곶감을 입에 넣었다. 근엄한 스승이지만 달짝지근하면서도 쫀득한 이 식감에는 저항하지 못한다.


“제 고향의 음식입니다.”

“넌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았느냐?”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있습니다.”


둘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 호미는 종자의 종자답게 사냥 준비로 분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식한 무기로군.”


유진 옆에 놓인 커다란 몽둥이의 기척에 고프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건 야만족이나 쓸 법한 무기지 기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은 무기는 하나같이 비싼걸요. 쉽게 망가지기도 하고.”


이 시대에서 제대로 된 날붙이는 비싸다. 고프리도 은퇴하여 검소하게 사는 터라 자신의 개인 장비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수도원 소속의 무구가 있긴 한데 그건 유진이 손댈 수 없었다.


“이것도 쓸만합니다.”


참나무 몽둥이에 마녀 비전의 수액 혼합물을 발라 건조하기를 반복. 그렇게 완성한 묵빛 몽둥이는 엄청나게 단단하다.


한 번은 쥐가 파먹으려다 이빨이 부러지는 걸 본 적도 있다.


“볼 때마다 네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구나.”


큰 걸 넘어 우람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몽둥이. 그걸 한 손으로 가볍게 드는 제자의 힘에 고프리가 질려 했다.


차를 다 마신 후 3명으로 늘어난 일행이 출발했다.


오두막을 둘러싼 울타리에는 독특한 향을 풍기는 진액이 발려 있다.


산짐승과 벌레들이 몹시 싫어하는 것으로 초입이라곤 하나 산에서 생활해도 안전한 이유다.


평소 안 다니는 길로 가다 보니 길을 방해하는 쓰러진 나무가 나타났다.


쿵!


그걸 가뿐히 치우는 호미의 기척에 고프리가 웃었다.


“끼리끼리 참 잘 어울린다.”

“칭찬 감사합니다.”


여자 홀로 마을 밖 오두막에 살아도 문제가 없는 이유였다.


못된 마음으로 침입한 남정네는 그녀의 주먹 한 방에 혼백이 달아날 것이다. 부서진 이빨과 코뼈는 덤이고.


호미는 일행을 산속 텃밭으로 안내했다. 마을의 약초꾼이 몰래 만든 장소인데 값비싼 상품 작물을 심었다고 한다.


산짐승이 파먹지 못하도록 쳐둔 울타리는 덤불로 숨겼으나 호미의 코는 못 속였다. 그런데 울타리가 박살이 나 있다.


“놈의 흔적이군요. 약초꾼 영감이 보면 곡소리 내겠습니다.”


무자비하게 파먹힌 작물들을 보니 마을에서 인사하던 노인의 얼굴을 떠오른다.


순간 고프리의 귀가 쫑긋하더니 풀숲 사이 쓰러져 있는 토끼로 얼굴을 돌렸다.


“이 거리까지 왔는데 태연하게 자고 있다고?”


호미가 호다닥 달려가 토끼의 뒷다리를 묶어서 배낭에 매달았다.


“짐승을 유혹하는 수액과 경계심을 흐리는 약초, 거기에 깊은 잠에 빠트리는 버섯 분말을 섞은 함정입니다. 토끼가 특히 잘 걸리더라고요.”


오두막에 육포가 많았던 이유다.


“사냥꾼들이 무척이나 탐내는 기술이겠구나.”

“어머니께서 남긴 저희 가문의 비법입니다. 절대 안 가르쳐주죠. 그치?”


끄덕끄덕.


호미가 열심히 동의했다.


“사냥꾼들이 알려달라고 귀찮게 굴지는 않느냐?”


끄덕끄덕.


이번엔 얼굴을 찌푸리며 동의한다.


호미는 반수인 특유의 예민한 후각, 긴 산속 생활에서 체득한 산지기로서의 경험이 있다.


“호미가 멧돼지를 유인할 함정을 여기저기 쳐놨다고 합니다.”


사냥꾼으로서나 척후병으로서나 유능했다.


“눈치 빠른 것까지 너랑 판박이로군. 앞으로의 여정에서 널 훌륭히 수행할 거다.”


고프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기사에게 충심을 다해 보좌할 종자는 보물 같은 존재다. 호미는 고프리가 봐온 어떤 종자보다도 헌신적이고 유능했다.


“딱히 마을을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오두막에서 산 파먹고 사는 것도 좋지요.”

“이런 시골에서 썩기엔 네 재능이 아깝다.”

“뭐, 천천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호미가 뿌려둔 먹이 함정들을 점검하며 나아가길 한참.


“잡았군.”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고프리였다.


쫑긋.


그다음이 호미.


꾸륵!


유진은 멧돼지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야 위치를 파악했다. 산 구석에 놓인 절벽 비슷한 곳이다.


라이온킹에서 원숭이 장로가 심바를 들고 ‘왕이 나셨도다!’ 선포하던 바위를 닮은 장소다.


아래로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이 있고, 그 너머에는 광대한 숲이 펼쳐져 있다.


꾸르륵-!


절벽 위 잡초가 무성한 곳에 헤롱거리는 멧돼지 한 마리가 육중한 몸을 기우뚱거렸다.


“저리 크니 약이 제대로 안 들은 건가? 괜찮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유진은 면목 없다는 듯 숙인 호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나설 차례다.”

“암요.”


유진이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고프리와 호미는 얌전히 기다렸다. 큰 덩치의 멧돼지여도 유진의 상대가 아님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약에 취한 상태면 말할 필요도 없다.


꾸에엑-!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멧돼지가 유진에게 돌아섰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뜨려 애쓰고 힘이 풀려 꺾이는 무릎을 필사적으로 일으킨다.


“...!”

“왜 그러느냐?”


멧돼지 앞에서 굳은 제자의 기척에 고프리가 의아해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유진은 마을에서 키우는 돼지를 여럿 본 적 있다.


모든 가축이 그러하듯 수퇘지는 어릴 때 거세한다. 그러지 않으면 고기가 질겨지고 노린내가 배기 때문이다.


씨내리를 위해 남겨둔 수퇘지는 웅장한 고환을 자랑했다.


축구공까지는 아니어도 배구공쯤 될 법한 주머니 2개를 위풍당당 흔들며 다니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


그런데 눈앞의 커다란 멧돼지는 고환이 작았다. 마치 성장이 덜된 새끼 돼지처럼.


게다가 등골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싸한 이 느낌! 유진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이놈, 성체가 아닙니다!”

“진담으로 하는 말이냐? 저런 크기의 새끼 돼지가 세상에 어딨...”


순간 고프리가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유진은 ‘왜 그러십니까?’ 같은 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분명 그의 감각에 뭔가가 잡힌 것이리라.


멀리 떨어진 나무들이 들썩거리기며 산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파도치듯 나무들의 흔들림이 이쪽을 향해 밀려온다. 뭔가 거대한 존재가 돌진해오는 것처럼.


도망치긴 쉽지 않아 보였다. 이곳은 길게 돌출된 지형이었기에 유일한 탈출로를 막힌 셈이었으니.


“사냥감을 가두기에 좋은 곳인데 반대로 우리가 갇힌 셈이군.”


고프리가 칼을 뽑아 들었다. 호미 또한 어깨에 멘 대형 쇠뇌를 꺼냈다.


잠시 후 황소의 2배쯤 될 법한 초대형 멧돼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맙소사.”


고프리가 신음했다.


이미 멧돼지를 넘어 몬스터라고 부르는 게 맞을 크기다. 다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아 어미였다.


고프리와 호미가 즉각 양옆으로 갈라졌고 그사이 괴물 멧돼지가 통과한다.


스팟!


고프리의 검격이 발목을 노렸으나 워낙 가죽이 두꺼워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풀 플레이트를 입고 거들먹거리던 기사의 팔다리를 꺾어놓거나, 노련한 용병단도 힘들어하는 몬스터를 여럿 잡은 고프리다.


그러나 이번 사냥감은 너무 규격 외였다. 이런 걸 잡으려면 뛰어난 검술 따위가 아니라 공성 병기가 있어야 한다.


쿵! 쿵! 쿵!


흉폭한 야수의 눈은 새끼를 위협하는 유진에 고정되어 있다. 자신의 뒷다리에 흠집 낸 노기사에겐 관심도 안 줬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약에 취해 휘청거리던 새끼가 어미의 돌진이 만든 진동에 균형을 잃고 절벽으로 추락한 것이다.


크워어어엉-!


눈앞에서 자식을 잃은 어미가 분노로 포효했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 네가 죽인 셈이라고!”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으냐? 어서 피해라! 아무리 너라도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고프리가 외쳤다.


그 자신도 이 정도의 괴물을 달랑 셋이서 상대해본 적은 없었다.


핑!


그때 호미의 쇠뇌가 볼트를 발사했다.


눈을 노렸는데 간발의 차이로 근처에 맞아 찰과상만 입혔다. 예상대로 엄청난 방어력이다.


웬 날파리가 왱왱대냐는 듯 무시하고 달려가는 어미 멧돼지.


키릭.


호미는 개의치 않고 달리며 재차 장전했다. 공성전에 쓸 법한 커다란 쇠뇌를 말이다.


장정들도 쇠뇌 머리를 밟고 양손으로 당겨야 가능한 작업인데 그걸 이동 중 하다니 실로 무식한 힘이다.


유진 역시 왼쪽으로 이동하여 호미가 맞추기 쉬운 발사각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발사.


푹!


이번엔 명중했다.


쿠엑-!


분노에 미쳐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던 어미 멧돼지의 왼쪽 눈에 볼트가 파고들었다.


시력의 절반이 사라지며 생전 겪어 본 적 없는 엄청난 고통에 모성애와 복수심마저 지워졌다.


어미 멧돼지는 3번째 장전에 돌입한 호미에게 돌아서서 증오에 찬 외눈을 부릅떴다.


“어딜 한눈파는 거냐?”


그때 자신의 엉덩이와 등을 밟고 날 듯이 달려온 유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꿰에-.


꽝!!!


채 울부짖음이 끝나기도 전에 우람한 몽둥이가 정수리를 강타했다.


굉음과 함께 머리가 땅에 처박히며 그 반동으로 장정 몸통만 한 뒷다리가 솟구쳤다.


사람 머리도 쑥 들어갈 콧구멍에서 코피가 콸콸 흘러나온다.


그러나 아직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던 놈의 관자놀이에 재차 풀스윙.


빠아악!!!


이번엔 비명도 못 질렀다.


거체가 기우뚱거리더니 자식의 뒤를 따라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바위들에 부딪히며 이리저리 한참을 튕기다 어두운 숲 앞에서 멈추었다.


“오, 신이시여.”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고프리는 할 말을 잃었다. 제자의 신력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세상은 넓고 감춰진 신비함은 깊이에 한계가 없구나. 나도 오만했군.’


산골 마을이라 진정한 강적을 만날 기회가 없어 자신도 제자의 한계를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다.


고프리는 성호를 그었다.


“호랑이 새낀 줄 알고 발톱을 갈아주며 키웠더니 오우거 새끼였다니.”


호미는 수건을 꺼내 들고 유진에게 달려갔다.


‘이게 되네?’


유진은 유진대로 꽉 붙든 몽둥이를 내려다봤다.


생전 처음 보는 괴물 앞에서 어찌나 긴장했는지 승리한 지금도 손이 안 펴진다.


하지만 마주쳤을 때 어째선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사냥감이다.’

‘잡아먹어라.’


어딘가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때마침 호미의 볼트가 놈을 애꾸로 만들며 주의를 반대로 돌렸다.


그것이 유진 안에 남은 마지막 망설임을 떨쳐주어 돌진할 수 있었다.


한 걸음씩 전진할 때마다 지금껏 써본 적 없는 거대한 힘이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


목숨의 위기에 잠들어있던 진정한 힘이 깨어난 것이다.


그 결과물은 저 아래 처박혀 요란한 먼지를 일으키는 멧돼지 사체.


“괜찮아. 다친 곳 없고 땀도 안 났어.”


정성스레 이마를 닦아준 호미가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유진은 그걸 받아 마시는 대신 손에 뿌렸다.


퉁!


시원한 물이 스며들자 그제야 긴장으로 굳은 손가락이 풀리며 무기가 떨어졌다.


어찌나 세게 쥐고 휘둘렀는지 손잡이는 부스러졌고 몸체도 다수 균열이 가 있다.


“더는 못 쓰겠군.”


아쉬워하며 물을 마시던 유진이 아! 하고 신음을 흘렸다.


“왜 그러느냐?”

“이러면 임무를 완수했다는 증거가 없는데요. 수도원에 뭐라고 증명하죠?”


당초에 노렸던 것보다 훨씬 위대한 과업을 세웠으나 증거는 절벽 아래 떨어져 있다.


벌써 피 냄새에 이끌렸는지 커다란 늑대들이 튀어나와 새끼 멧돼지를 뜯어먹고 있었다.


거대한 어미 쪽은 겁이 나는지 아직 접근을 안 했다.


톡톡.


호미가 유진의 어깨를 두드린다.


불쑥.


언제 주워왔는지 어미 멧돼지의 엄니 하나가 들려 있다. 아까 골통을 부술 때 떨어져 나온 모양이다.


“이거면 충분하겠구나.”


그걸 받아든 고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암컷이라 체급 대비 작긴 해도 평범한 수컷 멧돼지의 엄니보다 크다.


요령 좋은 호미는 이빨에 묻은 피와 타액도 깨끗이 닦아낸 상태.


“너한테는 과분한 종자다. 이 무식한 몽둥이쟁이야.”

“외람되지만 스승님의 칼로 쑤셔본들 놈의 화만 돋웠을 겁니다.”

“말이나 못 하면.”


고프리가 유진에게 엄니를 던져줬다.


“저런 괴물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요?”

‘저도 처음 봤어요.’


호미가 수화로 말했다.


“나도 모르겠구나. 이런 촌구석에 나타날 만한 놈이 아닌데.”


일행은 끝이 보이지 않는 서쪽 숲을 바라봤다. 저 광대한 미지의 영역에서는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산에 오르는 주민들에게 경고해둬야겠습니다. 새끼만 몇 마리 더 있어도 위험할 테니.”

“새끼가 더 있진 않을 거다. 평범한 짐승은 다산해도 몬스터에 가까운 놈들은 적게 낳거든. 하나가 보통이고 둘이면 드문 경우지.”


슬슬 어미 쪽으로 접근하는 커다란 늑대 무리를 보며 일행은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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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줄서기 (2) +26 24.06.26 5,277 266 14쪽
42 줄서기 (1) +28 24.06.25 6,083 322 13쪽
41 지휘관이 된다는 것 (4) +25 24.06.24 6,408 334 13쪽
40 지휘관이 된다는것 (3) +37 24.06.23 6,741 347 13쪽
39 지휘관이 된다는 것 (2) +19 24.06.22 7,053 383 14쪽
38 지휘관이 된다는 것 (1) +21 24.06.21 7,323 373 14쪽
37 첫 토벌전 (8) +22 24.06.20 7,497 376 14쪽
36 첫 토벌전 (7) +26 24.06.19 7,643 381 13쪽
35 첫 토벌전 (6) +16 24.06.18 7,802 349 13쪽
34 첫 토벌전 (5) +22 24.06.17 7,921 361 14쪽
33 첫 토벌전 (4) +15 24.06.16 8,171 344 15쪽
32 첫 토벌전 (3) +22 24.06.15 8,548 373 14쪽
31 첫 토벌전 (2) +35 24.06.14 8,912 366 13쪽
30 첫 토벌전 (1) +20 24.06.13 9,276 368 14쪽
29 바르다 (5) +43 24.06.12 9,488 488 13쪽
28 바르다 (4) +23 24.06.11 9,641 419 13쪽
27 바르다 (3) +11 24.06.10 9,630 397 14쪽
26 바르다 (2) +18 24.06.09 9,889 387 14쪽
25 바르다 (1) +14 24.06.08 10,335 424 14쪽
24 마법사의 초대 +13 24.06.07 10,294 421 13쪽
23 승전 연회 +16 24.06.06 10,460 423 13쪽
22 대전사 (5) +16 24.06.05 10,546 417 16쪽
21 대전사 (4) +12 24.06.04 10,382 387 14쪽
20 대전사 (3) +10 24.06.03 10,632 381 14쪽
19 대전사 (2) +11 24.06.02 10,886 394 15쪽
18 대전사 (1) +17 24.06.01 10,978 382 14쪽
17 본야드 (4) +17 24.05.31 11,008 413 13쪽
16 본야드 (3) +15 24.05.30 10,989 390 13쪽
15 본야드 (2) +15 24.05.29 11,268 422 14쪽
14 본야드 (1) +8 24.05.28 11,620 415 15쪽
13 세상 밖으로 (3) +11 24.05.28 11,509 439 14쪽
12 세상 밖으로 (2) +10 24.05.27 11,741 415 14쪽
11 세상 밖으로 (1) +16 24.05.27 12,091 454 15쪽
10 3가지 세상을 이해하는 자 (10) +12 24.05.26 12,257 407 14쪽
9 3가지 세상을 이해하는 자 (9) +15 24.05.26 11,928 421 13쪽
8 3가지 세상을 이해하는 자 (8) +7 24.05.25 12,180 377 12쪽
7 3가지 세상을 이해하는 자 (7) +13 24.05.25 12,318 37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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