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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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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6
최근연재일 :
2018.05.02 05:51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02
추천수 :
525
글자수 :
182,617

작성
18.04.19 04:16
조회
1,064
추천
9
글자
8쪽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DUMMY

꽃등심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상철은 소주를 한잔 걸치고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는다. 주로 고아원에서 보냈던 어린 날들에 대해서 추억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고향이라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뿍 어려 있다.


어디서 그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김혁은 간간이 장단 맞춰주며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상철은 추억 속으로 갑작스럽게 떨어져서 신이 난 듯 보였다. 개울물에서 고기 잡았던 것, 수영하던 것, 과일서리 해먹다 들켰던 것, 나무에서 떨어져서 팔을 다친 어린애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던 일 등 마치 다시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들떠서 떠들어댔다.


상철은 우걱우걱 부지런히 먹으랴 또 끊임없이 이런 저런 어린 시절 추억담을 꺼내놓으랴 거의 혼자 바빴다.


상철이 고기를 추가로 시키자 식당 주인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그나마 김혁이 거의 입에 대지 않아 식당 주인에겐 다행일지도 몰랐다.


김혁은 저승사자가 되고부터 배고픔이 사라졌고 그러니 식욕이 전혀 일지 않았다. 소년 때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고기였건만 이제는 먹으라고 내놓아도 먹을 수 없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상철이 먹으라고 먹으라고 권하다 못해 어울리지도 않게 익은 고기점도 접시에 놓아주고 했지만 김혁은 먹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호기심에 한점 씹어보았으나 흙맛일 뿐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을 앞에 두고 식사를 길게 끌기가 뭣했는지 상철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김혁을 먼저 내보냈다.


밖에서 보니 식당 안에서 상철과 주인의 대화가 조금 이어졌는데 주인의 얼굴이 더 굳어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외상으로 긋고 있거나 뭔가 사채에서 탕감하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혁은 상철을 더 가난하게 만든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둘은 모래사장에 밤바다를 보고 나란히 앉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흘려보내듯이 상철은 그곳에서야 식당에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가출한 이후의 힘겨운 날들에 대한 회환이 깊은 듯 했다. 중학교도 졸업 못한 고아를 어디선들 반겨줄 데가 있었을까.


길거리, 주유소를 전전하며 지냈던 소년 시절과 어쩌다 작은 조직에 들었다가 온갖 심부름, 그야말로 ‘따까리 짓’들을 한 끝에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소년원 갔던 일 등을 털어놓았다. 한때 조직 생활이 멋져 보여 동경했었노라는 말도 꺼냈다.


“근데 그게 정말 아니더란 말이지. 처음에야 좋지. 든든한 빽 생긴 것 같고 위해주는 사람들 많고 다 내편이다 싶고 대우받는 것 같고. 사람들도 함부로 못하지. 좋은 신발에 양복 맞춰줘 뽀다구 나고 좋은 데 데려가 주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구. 근데 딱 그때뿐이야. 그 다음은 뭐 만년 따까리지. 하라는 거 다 하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되고 근데 이상하게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하기 싫은 일들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별도 몇 개씩 늘고 결국 요 모양 요 꼴. 넌 정말 이런 곳에 발들이지 마라. 혁아.”


“....”

상철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언제 칼 쑤시고 들어 올지 몰라서 흘끗거리고 다닌 지가 얼만데 오늘은 내가 너무 방심했어. 거기까지 따라 오다니. 너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진짜.”


“떠날 수 없는 거야?”


“어디로? 내가 가봐야 어디 가서 뭘 하며 살겠냐?”


“그래도 그렇게 계속 어떻게 살려고. 앞으로 결혼도 해야 될 거고.”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할란다”


“아직 젊으니까 하는 말이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손을 씻어야...”


“손 씻기가 쉽냐?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냐 얌마. 말은 참 쉽게들 하지. 그렇게 쉬우면 왜 못 하겠냐? 그러니까 너나 딴 생각 말고 고등학교 졸업장 따고 응? 좀 정상적인 데 들어가서 돈 벌어. 너도 보아하니 주먹 좀 쓰게 생겼는데 뭐 학교에서 사고치고 나온 건 아니지?”


상철은 정말 걱정스러운지 자꾸만 묻는다.


“아직은.”


“그래 학교라도 졸업해야, 대학은 못 가더라도 중학교도 못 나온 것보단 사는 게 낫겠지.”


“ ...”


둘 다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상철이 생각난듯이 얼굴에 미소까지 띄운 채 말을 꺼냇다.


“ 근데 너 아직도 서정 좋아하냐?”


어? 이 형이 어떻게 알았지? 초등학생 때 내가 어땠지? 상철이형도 알 정도로 유별나게 군 것 같지는 않은데 ...


“어? 뭐, 내가 언제 좋아했어? 걔를?”


“웃긴 놈, 세상이 다 아는 걸 뭘 모른척 하긴. 부끄럽냐? 자식.”


상철은 빙글 빙글 웃고 있다.


“진짜 아닌데.”


“에에~ 아니랜다. 정이가 예뻤지. 얌전하고.”


상철도 서정을 떠올려 보고 있는 얼굴이다.


맞다. 정이는 예뻤다. 꼬마 때부터 늘. 고아원 아이들이 장난감도 없이 가난한 소꿉놀이를 할 때도 늘 정이는 주인공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그랬다. 책 읽고 있는 모습도 예쁘고 설거지 하는 것도 빨래 걷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다 예뻤다. 자신에게 주먹질 하고 공부 못한다고 면박줄 때만 빼고.


“꼬마 녀석들도 많이 컸겠네. 난 다 땅꼬마들만 상상했는데 널 보니까 이젠 다 몰라보겠지?”


“응, 다들 많이 컸지. 다 중학생 고등학생이고 막내만 초등학교 다니지.”


“그렇겠네...세월 빨라.”


상철이형의 옆모습은 퍽 쓸쓸해 보인다.


“애들도 형 보고 싶어해. 연락도 안 한다고 섭섭해 하고.”


“그래? 언제 한번 가야지.”


반가움이 묻어나는 말투지만 언제 가게 될지 자신은 없는 듯하다.


‘상철이형도 선물보따리를 잔뜩 싸들고 고아원을 방문하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을 지도 모른다. 내가 원양어선을 타는 꿈을 꾸었듯이.’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또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욕설부터 내뱉는다.


“ 씨X, 사장새끼가 오늘따라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네. ....네 형님.. 네.... ”


통화를 끝내더니 상철은 몸을 일으킨다.


“미안하다. 혁아. 지금 가봐야 해서 연락처 주면 내가 또 연락할게 다시 돌아갈 거지?”


“네 가야죠.”

“연락처.”

"지금은 전화가 없어서 따로 연락처가 없어요 형."

"그래? 그럼."


상철은 주머니를 뒤져 꼬깃꼬깃해진 만원짜리 한 장을 내민다


"내가 지금 찾아놓은 돈이 없어서 이거라도."

"아니 형. 나 돈 있어요. 걱정 말아요."

"받아 임마. 그래야 내 맘이 편하지."


꼬깃한 만원짜리를 들고 있는 상철이형의 커다란 주먹이 안쓰럽다. 저것이 마지막 돈일 텐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아, 자식이 왜 이렇게 고집이 늘었지?"


상철은 김혁의 손에 만원짜리를 어거지로 쥐어준다.


"간다. 그럼 꼭 돌아가. 내가 나중에 고아원에 전화해 볼 거야?"


"알았어. 형! 이거 고마워.“


“자식아, 넌 내 영원한 생명의 은인이다, 오늘만 아니었어도 더 줄 텐데 상황이 그렇네 참. 암튼 잘 돌아가고 나 먼저 갈게.“


“네 형. 건강해요.”

“어이.”


상철은 한 팔을 들어 보이고 서둘러 모래사장을 벗어난다. 그가 쥐어주고 간 만원짜리 한 장을 보고 있자니 왜 그렇게 눈물겨운지. 불쌍한 상철이형.


김혁에게는 필요 없는 돈이었다. 상철이형을 추억하기 위해서 간직할까 했지만 그보단 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김혁은 몸을 숨기고 먼저 상철의 자동차로 날아가 의자 밑에 만원 짜리를 던져 놓았다.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흘러내린 것처럼 보이겠지? 확인 차 의자에도 한번 앉아 보기도 했다.


차로 돌아온 상철은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김혁은 차가 멀어질 때까지 서 있었다.


잘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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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39화 출생의 비밀 +1 18.04.29 887 7 10쪽
39 제38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7)- 지옥으로 +1 18.04.28 820 9 8쪽
38 제37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6) +1 18.04.28 835 9 8쪽
37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1 18.04.27 777 7 8쪽
36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1 18.04.26 878 8 8쪽
35 제34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3) +1 18.04.25 798 8 8쪽
34 제33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2) +1 18.04.25 813 8 7쪽
33 제32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1) +1 18.04.23 848 13 8쪽
32 제 31화 인형의집(3) +1 18.04.23 838 9 10쪽
31 제 30화 인형의집(2) +1 18.04.22 861 10 8쪽
30 제 29화 인형의 집(1) +1 18.04.22 816 7 7쪽
29 제28화 너 자신을 알라 +1 18.04.21 950 10 9쪽
28 제27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9) +1 18.04.20 852 7 9쪽
27 제26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8) +1 18.04.20 833 8 10쪽
26 제25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7) +1 18.04.19 862 9 11쪽
»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1 18.04.19 1,065 9 8쪽
24 제23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5)-상철이형 +1 18.04.18 883 7 9쪽
23 제22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4) -상철이형 +1 18.04.18 904 8 9쪽
22 제21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3) +1 18.04.17 1,076 8 8쪽
21 제20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2) +1 18.04.17 939 8 8쪽
20 제19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1) +1 18.04.16 992 9 11쪽
19 제18화 잔인한 여름 +1 18.04.16 991 8 10쪽
18 제17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7) +1 18.04.15 1,192 8 11쪽
17 제16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6) +1 18.04.15 978 7 10쪽
16 제15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5) -악마와의 첫 만남 +1 18.04.14 1,059 7 9쪽
15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1 18.04.14 1,215 11 8쪽
14 제13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3) +1 18.04.13 1,084 9 8쪽
13 제12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2) +1 18.04.13 1,171 9 9쪽
12 제11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1) +1 18.04.12 1,411 13 10쪽
11 제10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3) +4 18.04.12 1,658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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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8화 바람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1) +1 18.04.11 1,405 14 10쪽
8 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1 18.04.10 1,563 19 9쪽
7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1 18.04.10 1,582 21 10쪽
6 제5화 개와 늑대의 시간(3) +1 18.04.09 1,737 22 8쪽
5 제4화 개와 늑대의 시간(2) +1 18.04.09 1,814 22 8쪽
4 제3화 개와 늑대의 시간(1) +1 18.04.09 2,026 22 8쪽
3 제2화 악마가 원하는 것, 악마의 리스트 +2 18.04.09 2,612 25 9쪽
2 제1화 지옥을 선택한 남자, 김혁 +5 18.04.09 3,685 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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