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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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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6
최근연재일 :
2018.05.02 05:51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00
추천수 :
525
글자수 :
182,617

작성
18.04.14 02:11
조회
1,214
추천
11
글자
8쪽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DUMMY

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분주히 주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하더니 얼마 안가 정성껏 식탁도 차려놓았다.


김혁은 그 훈김이 피어오르는 식탁에 함께 앉고픈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살면서 저런 정성스런 밥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허기지고 모자랐던 고아원의 빈약한 밥상이 떠올랐다. 식욕은 왜 그렇게 왕성하던지 늘 배가 고팠다.


고아원 원장은 혼자만 좋은 반찬을 놓고 따로 식사를 했다. 아이들에겐 김치와 된장국, 때로 나물 종류의 한 두가지 반찬이 추가되곤 했지만 양도 적은데다 그마저도 없을 때도 있었다. 고기반찬 냄새는 맡을 수 있었지만 먹을 수는 없었다. 고기반찬은 무조건 원장만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돼지 같은 놈.


고아원 원장이 쩝쩝대며 식사하는 모습이 떠올라 김혁은 저도 모르게 그런 속엣말을 되뇌었다.


원장의 음식 시중을 드느라 맘편히 밥도 못 먹던 서정. 고아원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던 여자아이는 서정이라 거의 혼자서 대부분 집안일을 해나가는 편이었다. 어릴 때는 원장 부인이 대체적으로 고아원 살림을 도맡아 꾸려가서 잡일만 거들면 됐지만 서정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원장 부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때부터 서정은 그야말로 식모나 다름없이 온갖 집안일을 떠맡아야만 했다.


그렇게 온갖 일을 다 하면서도 언제 공부하고 언제 책을 읽었는지 그런데도 성적이 좋은 서정이 늘 대단했었다. 가엾은 서정. 불쌍한 아이들. 지금은 부디 배를 곯지 말아야 할 텐데.


할머니는 진수 방문 앞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진수야 진수야 밥먹자.”

“..... ”


키보드 소리만 계속 울리고 있다.


“진수야?”


할머니가 문손잡이를 돌리자 퍽, 뭔가 가볍지만 둔탁한 것이 방문에 날아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


할머니는 문 열기를 포기하고 다시 애원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밥 먹자. 내가 너 좋아하는 반찬 많이 했는디. 너 밥 먹은 지가 언제냐. 오늘만 애미랑 같이 밥 좀 먹자꾸나. 한번만, 진수야, 응?”


김혁은 그런 광경을 보자 당장이라도 가서 진수의 멱살이라도 잡고 끌고 나오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지만 해가 뜬 상황이라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식사인데 바보 같은 놈.


“애미가 다 미안하다. 다. 그러니 오늘만 응? 진수야 얼굴 좀 보자 제발!”


“아 시끄러, 시끄럽다고!!”


또 다시 둔탁한 뭔가가 방문을 가격하고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식탁으로 돌아가 앉아 있기만 했다. 뜨거웠던 밥과 국은 이제 더 이상 훈김을 내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냥 식어갔을 뿐이다.


아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다. 오늘이 네 할머니와 너의 마지막 날인 것을!


어제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하나? 아니지. 어차피 저승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하고 갔으면 시간이 없는 줄 뻔히 알 텐데, 그 얼마 안 남은 소중한 시간동안 뭘 해야 하는지 저렇게 분간이 안 되나? 엄마보다도 소설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아니면 죽는 순간까지도 보고 싶지 않을 만큼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대단해서인가 김혁은 궁금할 뿐이었다. 가족이란 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또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식탁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식사도 하지 않고 밥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반찬들을 도로 다 냉장고에 넣고 밥은 밥통에 국은 냄비에 그대로 다 부어버렸다. 조용히 설거지를 마치고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김혁은 진수의 방으로 들어가보았다. 진수는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키보드를 치다가를 반복했다. 진수는 여태껏 내내 정말 먹을 것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그냥 모니터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키보드만 줄창 두들기고 있는 중이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그러고 있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하품을 하고 힐끗 창쪽을 내다본다. 그제서야 해가 높이 솟아올라 날이 완전히 밝았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컴퓨터를 끄길래 이제 일어나서 뭔가 다른 것을 하려나 생각했는데 곧바로 침대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깨어 있을 때는 진수가 잠들고 할머니가 잠들면 진수가 일어난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면서 만나지 않는다. 그런 채로 지난 1년을 살아왔나보다, 저들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가족이 연출하는 기괴한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배는 정말 안 고픈 걸까? 어제 본 이후로 뭔가 먹는 걸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참는 거지? 김혁에겐 그것도 이상할 뿐이었다.


김혁이 저승사자가 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배고픔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소년이었을 때 시도 때도 없이 고프던 배, 먹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그 고통을 더는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배고플 때 먹을 수 있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김혁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수가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다 그 고통을 어떻게 참는 것인지도 의아하기만 했다.


할머니는 오전 내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대고 있었다. 월세가 어떻고 저떻고 또 어떤 통화에서는 어떤 이름을 대며 찾았는가 물으며 한참 통화를 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진수의 방문을 연 채로 우두커니 서서 들여다보기도 했다. 진수가 잠들어 있는데도 방에 들어갈 엄두도 못내는 모양으로 엉거주춤 서 있다가 도로 방문을 닫아버리고 돌아서는 할머니의 모습이 측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식이라면 그들은 마지막 대화도 못할 것만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김혁은 한참 생각했다. 그런 입장에 서본 적이 없으니 아이디어가 잘 떠오를 리 없었다. 자신 역시 사람간의 일에는 서툴기만 했었던 고등학생이었으니 그런 일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사실 주제넘은 짓처럼 생각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마지막은 제대로 마무리를 져야 저 아이한테도 후회가 덜 남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진수에게 오늘 밤 할머니를 모셔갈 거라고 말을 해야 하나 어쩌나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아니면 그냥 멱살을 잡고 끌고 나와서 거실 소파에 내동댕이쳐 놓을까? 대화를 하라고 으르렁거리면서 둘을 억지로 대화하게 만들어야 하나? 그런 대화가 대화인가? 뭔가 자연스럽게, 좀 자연스럽게는 안 될까?


김혁만 괜히 혼자 골치가 아파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러다 머리도 식힐 겸 잠시 집을 벗어나 낮의 하늘을 날았다.


세상은 가지각색으로 저마다 각자의 불행을 살고 있구나 후아~, 사람들은 많고 많은데 사연도 가지각색. 이런 식이라면 이 리스트를 끝내는데 10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관찰 같은 건 애초부터 하지 말걸 그랬다. 그냥 들어서자마자 바로 처리하고 저승으로 가는 건데 늘 이놈의 호기심이 문제다. 악마에게 물어보면 간단한 것을.


김혁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정도로 높은 곳을 꽤 오랫동안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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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46화 악마는 악마다(완) +11 18.05.02 1,282 12 13쪽
46 제45화 슬픈 진실 +1 18.05.02 870 8 9쪽
45 제44화 슈퍼맨의 마음2 +1 18.05.01 910 7 9쪽
44 제43화 슈퍼맨의 마음1 +1 18.05.01 866 9 11쪽
43 제42화 그건 꿈이었을까? +1 18.04.30 836 7 10쪽
42 제41화 새로운 가족 +1 18.04.30 827 8 8쪽
41 제40화 천사를 만나다 +1 18.04.29 823 6 7쪽
40 제39화 출생의 비밀 +1 18.04.29 887 7 10쪽
39 제38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7)- 지옥으로 +1 18.04.28 820 9 8쪽
38 제37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6) +1 18.04.28 835 9 8쪽
37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1 18.04.27 777 7 8쪽
36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1 18.04.26 878 8 8쪽
35 제34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3) +1 18.04.25 798 8 8쪽
34 제33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2) +1 18.04.25 813 8 7쪽
33 제32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1) +1 18.04.23 848 13 8쪽
32 제 31화 인형의집(3) +1 18.04.23 838 9 10쪽
31 제 30화 인형의집(2) +1 18.04.22 861 10 8쪽
30 제 29화 인형의 집(1) +1 18.04.22 816 7 7쪽
29 제28화 너 자신을 알라 +1 18.04.21 950 10 9쪽
28 제27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9) +1 18.04.20 852 7 9쪽
27 제26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8) +1 18.04.20 833 8 10쪽
26 제25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7) +1 18.04.19 862 9 11쪽
25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1 18.04.19 1,064 9 8쪽
24 제23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5)-상철이형 +1 18.04.18 883 7 9쪽
23 제22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4) -상철이형 +1 18.04.18 904 8 9쪽
22 제21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3) +1 18.04.17 1,076 8 8쪽
21 제20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2) +1 18.04.17 939 8 8쪽
20 제19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1) +1 18.04.16 992 9 11쪽
19 제18화 잔인한 여름 +1 18.04.16 991 8 10쪽
18 제17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7) +1 18.04.15 1,192 8 11쪽
17 제16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6) +1 18.04.15 978 7 10쪽
16 제15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5) -악마와의 첫 만남 +1 18.04.14 1,059 7 9쪽
»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1 18.04.14 1,215 11 8쪽
14 제13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3) +1 18.04.13 1,084 9 8쪽
13 제12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2) +1 18.04.13 1,171 9 9쪽
12 제11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1) +1 18.04.12 1,411 13 10쪽
11 제10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3) +4 18.04.12 1,658 11 11쪽
10 제 9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2) +1 18.04.11 1,369 15 9쪽
9 제8화 바람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1) +1 18.04.11 1,405 14 10쪽
8 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1 18.04.10 1,563 19 9쪽
7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1 18.04.10 1,582 21 10쪽
6 제5화 개와 늑대의 시간(3) +1 18.04.09 1,737 22 8쪽
5 제4화 개와 늑대의 시간(2) +1 18.04.09 1,814 22 8쪽
4 제3화 개와 늑대의 시간(1) +1 18.04.09 2,026 22 8쪽
3 제2화 악마가 원하는 것, 악마의 리스트 +2 18.04.09 2,612 25 9쪽
2 제1화 지옥을 선택한 남자, 김혁 +5 18.04.09 3,685 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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