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김혁이 지옥에 돌아오니 악마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맞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는 걸? 처음치고는 잘 했어.”
“저놈의 정확한 죄목이 뭐야?”
악마가 손가락을 튕기자 손에 종이 하나가 나타났다.
“조순철, 상습 성추행 및 성폭행 자살 방조죄? 에 보자, 지금까지 교사 생활 20년 동안 만진 애가 12명에, 2명은 임신, 그 중에 한명은 자살했고 한명은 애를 낳아서 버렸네. 이야, 이거 이거 제대로 악질이구만."
악마는 잠시 들고 있는 종이를 바라보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고 눈을 치뜨고 하면서 혼자 이해중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중엔 이후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자들도 있지만 뭐 거의 정상적인 삶을 살긴 하는데 두명이 제일 안 됐지. 한명은 학교를 그만두고 곧바로 자살했고 한명은 학교를 중퇴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삶을 못 사네.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걸. 그 버려진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니가 안 구했으면 자살한 애가 2명이 되는 거였어.”
헉, 그 정도로 심각했단 말인가?
“어때, 이제 좀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데 일조한다는 게 뭔지 이해가 되나?”
악마는 보던 종이를 사라지게 만들고 팔짱을 끼고는 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리스트는 믿을만한 거야? 다 그런 인간들인 거야?”
김혁은 원장보다 더 한 인간들이 있다는 걸 믿지 못하겠어서 되물었다.
“죄야 다양하지. 뭘 의심하고 말고 해. 지옥에 올만하니까 리스트에 올라가는 거야. 아무나 데려 오진 않아. 지옥이 그렇게 허술한 데가 아니라고."
악마는 팔짱을 풀고 좀 방정맞은 모양으로 박수를 쳐댄다.
"자자, 이제 속도를 좀 내줬으면 좋겠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안 죽어도 좋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너도 봤잖아. 그 여자애. 가만 놔두면 그렇게 엉뚱한 애들만 죽고 결국 그런 애들만 지옥에 오게 돼. 내가 왜 천국에 갈 뻔한 인간을 좋아하는지 좀 감이 올 것 같은데?”
“누가 누군지 찾는데 시간이 걸려. 한눈에 알아볼 능력을 주던가.”
김혁의 목소리에는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악마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스트의 이름에 손을 갖다 대면 바로 그 사람이 있는 장소로 이동이 돼.”
“뭐야? 진작 알려줬으면 좋았잖아.”
김혁은 다시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소리쳤다.
“히힛, 재밌잖아. 그렇게 해매는 시간에 배울 것도 좀 있고.”
사람이었으면 벌써 주먹 한 대 날아갔다. 김혁은 악마를 노려보며 애먼 주먹만 꽉 쥐었다. 얄미운 악마에게 괜히 시비를 한번 걸어보고 싶어졌다.
“엉뚱한 사람을 잡아오거나 할 수도 있잖아!!”
“검은 오라는 아무한테나 생기는 건 줄 아나? 죽음에 가까워지거나 영혼이 썩은 사람한테서나 발견되는 거야. 그런 게 있는 사람을 실수로 데려 온다고 뭐라 할 순 없지. 니가 갖고 있는 리스트에 없다 뿐이지, 다른 데 이미 올라 있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으, 저 자식이 말문이 막히는 꼴을 보고 싶었는데... 악마는 빙그레 미소를 띄우고 말을 이어갔다.
“아 참참, 이곳에서의 시간과 인간들 세상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건 참고적으로 알아둬. 니가 여기 와 있는 동안이 몇 달이 될 수도 있고 몇 년이 될 수도 있다고. 하긴 뭐 너한테 시간 따위가 무슨 상관이겠어. 그냥 알고 있으라고. 자자, 분발하자고 데려올 사람이 너무도 많아.”
혼자 분주한 척 하는 악마와 여전히 심각한 김혁.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건 어렵나? 다른 방법으로.”
김혁은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빌던 조순철과 사진 속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승사자를 한번 만났으니 정신 차리고 개과천선할 수도 있잖아."
악마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가로로 흔들어댔다.
“역시 아직 어리구만. 그런 인간들이 쉽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나? 여지껏 기회가 없었을 것 같아? 기회를 줘도 반복되니까 우리가 존재하는 거라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이지. 너는 어땠어. 변하기 쉽든? 원장은 어떻고. 넌 그럼 왜 지옥을 택하면서까지 돌아간 건데? 원장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 .....”
저승사자를 안 하겠다고 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건지 악마는 조금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듯이 말했다.
“지옥 불에서 지은 죄를 다 태우고 나면 다시 환생을 할 수도 있으니까 기회가 아주 없는 건 아니야. 너무 마음 쓸건 없어. 보기보단 생각을 많이 하는군. 단순무식한 주먹쟁이인 줄만 알았는데.”
“뭐라고?”
김혁은 저도 모르게 팔이 올라갈 뻔 했다.
“히힛, 니가 그렇게 보이는 줄은 몰랐나보지? 인간들은 그렇다니까.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른다니까.”
새빨간 덩어리가 즐거운 듯이 혼자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지옥이 달리 지옥이 아니구나. 주먹이 있으나 주먹을 쓸 수 없고 화가 치미나 화를 풀 수가 없다니. 그때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조순철이 악마에게 끌려가고 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세상을 100년은 더 발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밤잠도 안 자고 발명에만 매달리고 여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일만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진짜 이 한 몸 바칠 테니 제발 기회를 한번만 더 주세요. 전 정말 중요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진짜에요. .... 아, 안돼, 싫어 ... 아윽.”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애원하며 악마에게 질질 끌려가던 조순철은 지옥문으로 사라졌다.
손에 든 리스트의 빼곡한 이름들을 바라보는 김혁은 말이 없다.
*********
초여름의 늦은 오후, 비가 내리고 있다. 김혁은 투명한 몸으로 빗속을 날았다. 오래 오래 날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지나치는 자리마다 빗줄기가 헝크러졌다.
사람들은 날씨가 사납다고 투덜거린다. 어떤 이의 낡은 우산은 우산살이 거꾸로 확 뒤집어지기도 했다. 어마, 무슨 일이래. 뒤집어진 우산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던 젊은 여자는 갑자기 뚝 멈춘 바람이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빗속에 쓰러져 있던 소녀는 그대로 죽어야 했나? 창턱에 서 있던 소녀는 그냥 떨어졌어야 했나? 그냥 내버려두고 그냥 지나쳐 갔어야 했나? 지옥에 살든 말든 지옥불에 떨어지든 말든 그래야 했나?
서정과 오수연이 무슨 죄가 있지? 그애들은 죽어도 괜찮은가? 그런 애들을 살리기 위해서 누군가 죽어야만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다시 어느 한쪽만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서정이나 오수연을 택할 것이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면 ....
어설픈 감상 따위라니, 나, 김혁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지옥에서 온 주제에 무슨..... 원장 같은 놈은, 조순철 같은 인간들은 죽어 마땅하다.
“죽어 마땅하다! 죽어 마땅하다! 죽어 마땅하다고!!”
허공에서 떠도는 김혁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로 들렸다.
******
밤거리. 어느새 여름으로 변한 세상을 보며 잠깐 놀랐던 김혁은 지옥의 시간과 이곳의 시간이 다르다던 악마의 말을 떠올렸다. 이런 식이라면 리스트 한 장을 다 끝맺고 나면 몇 년은 훌쩍 흘러가버릴 것 같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가볍게 밤거리를 걷고 싶었다. 살아 있을 때 와보지 못한 도시였다. 좀 더 구경도 할 겸 밤산책을 즐기려는 심산에서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각자 퇴근길을 서두르거나 친구들끼리 짝지어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들고 조잘거리며 지나쳐 가곤 했다. 천역색 오라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정이랑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있을 때도 그렇게 많은 오후가 있었건만 논두렁이건 밭두렁이건 오솔길조차도 함께 걸어본 적도 없었다.
공부밖에 모르던 아이, 한 집에 사는 걸 모두가 다 아는데도 둘이 함께 있는 걸 다른 사람이 보게 되는 걸 극도로 꺼리던 아이. 서정, 나쁜 기집애.
새삼스레 서정에 대한 원망감이 들었다. 서정만 생각하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립다가 밉다가 무슨 마음인지 모를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쁜 기집애다, 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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