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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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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6
최근연재일 :
2018.05.02 05:51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81
추천수 :
525
글자수 :
182,617

작성
18.04.16 04:17
조회
992
추천
8
글자
10쪽

제18화 잔인한 여름

DUMMY

김혁이 지옥으로 돌아가자 악마는 몹시 화가 난 얼굴로 쏘아붙였다.


“속도를 내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참, 오지랖이 하늘을 찌르네 찔러.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을 않나?”


새빨간 덩어리가 더 시뻘개진 것 같았다.


“니가 사람이냐?”

김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아니 .... 그건 아니지만 암튼.”


“글구 여기랑 저기랑 시간이 다르다며? 여기가 더 빠르게 흐르는데 저기에서 하루가 여기에서 몇 분, 몇 초나 된다고 얼마나 기다렸다고 이 난리야? 겨우 하루를 갖고.”


웬일인지 오늘따라 악마는 유난히 머뭇거리는 느낌이다. 왜 저러지?


“그게 .... 아, 암튼. 너무 느려, 느리다고. 벌써 두 계절이나 지내고 있잖아. 명심해. 네가 게으름 피울수록 죽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니까. 주먹쓰기를 좋아하길래 생각 같은 건 없는 줄 알았더니 아주 철학자가 나셨어 그냥.”


주먹쓰는 사람은 머리가 없기라도 하냐? 저렇게 생각하는 인간을 만나면 더욱 주먹이 쓰고 싶어지는 김혁이다.


“내가 무슨 기곈 줄 알아? 나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었던 놈이라고. 애당초 그런 일을 인간한테 시키질 말든가. 직접 나서든가. 아, 씨.”


김혁은 허공을 향해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악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루 이틀 본다고 그 사람에 대해서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사람 저 사람 사정 다 봐주고 무슨 일이 될 것 같아? 니가 할 일은 영혼을 거두어 들이는 거지, 그들을 치유하는 게 아니야. 내가 그토록 말했지. 인간은 쉽게 변할 수 없다고.”


“진수는 방 밖으로 나왔어. 1년 동안 안 나오던 애가 말야. 그래도 안 변해?”


악마는 잠깐 말문이 막혔는지 머뭇거리다가 말하기 시작했다.


“뭐, 그야, 아직 어린애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긴 한데, 문제는 네가 인간사에 너무 개입을 많이 하는 것 같단 말이지. 그게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아? 함부로 끼어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게 아니란 말이지."


악마는 더이상 머뭇거림을 멈추기로 한 건지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였다.


"어느 한 사람에게는 살갑고 다정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사악하고 냉혹할 수도 있는 게 인간이야. 여러 얼굴을 가질수록 성공을 한다지? 그런 것에 속지 않을 자신도 없는 주제에. 참나. 그 할머니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안 궁금해?”


“.... ?”


참, 구복남 할머니. 맞다. 그렇게 선량해 보이는 할머니가 대체 무슨 죄가 있다는 거지? 김혁도 궁금했지만 살짝 삐친 마음 때문에 따로 말을 꺼내진 않았다. 악마는 종이도 나타나게 하지 않고 술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구복남, 그 노인은 원래부터 수전노였어. 뭐 본인은 전쟁을 겪고 힘들게 살아봐서 그런다고 하지만 천성이 수전노 끼가 있었지. 그 할머니가 사는 3층 건물도 할머니 거고 다른 데 월세를 거둬들이는 건물이 한 채 더 있어. 젊을 적부터 악착같기론 유명했다는데 구두쇠이기만 했으면 뭐 지옥 올 일은 없었겠지만 그것만이 아니어서 문제지."


악마는 잠시 말을 끊고 호기심에 못 이겨 다음 말을 기다리는 김혁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악마는 자신만이 아는 얘기를 들려줄 때 유난히 신나서 목소리가 커진다. 물론 김혁 앞에서야 늘 혼자 아는 얘기를 하는 거지만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같이 누군가의 죄를 읊어줄 때는 특히.


"세입자들 악랄하게 내쫒기로 유명하고 피눈물 쏙 빼놓고 길거리로 내몰고 나몰라라, 그래서 망한 사람이 여럿, 자살한 사람도 있었지. 그것만인가? 깡패들 끼고 돈놀이도 좀 했다지 아마? 자기 딸은 왜 집을 나갔게? 돈에 환장을 했는지 아직 나이 어린 딸을 어떤 돈 많은 늙은이한테 시집 보낼려고 했어. 그래서 도망친 거야.”


“그 할머니가?..... 그랬다고?”

김혁은 이 놀라운 사실에 악마에게 삐친 것도 잊고 어리둥절함을 느끼며 되물었다.


“그래 감상에 취해가지고 쩔쩔매는 꼴을 보는 것도 재밌긴 하더만.”

악마는 이제 빙글거리고 있다.


“진수는, 진수는 어떻게 된 건데?”


“아 그거? 그 딸이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됐어. 근데 그 할머니가 그 사실을 숨기려고 자기 호적에 올린 거지. 그것도 홀아비한테 딸을 팔아넘길 속셈으로 그런 거지만. 그러니 그 딸이 집을 나가서 떠돌 수밖에 없지. 아, 게다가 손주 하나를 몰래 버리기까지 했어.”


“그럼, 그 누나가 찾아다닌다는 게....”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드라마가 있는 집안이었구나. 가엾은 진수 녀석. 김혁은 비쩍 마른 진수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 진수의 생모는 중졸에 비빌 언덕도 없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고 있으니 이도 저도 쉽지 않지. 말해봐. 그 할머니가 착한 거야?”


“.....”


“넌 아직 세상을 몰라. 인간을 잘 모른다고. 그렇게 오지랖 떨고 시간 낭비하고 다닐 이유가 하등 없어.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그 리스트는 정말 최악의 최악들만 모아놓은 거라니까. 왜 그걸 못 믿고 시간 낭비를 하냐고. 불쌍하기로 치면 니가 제일 불쌍한데 말이지. 누가 누굴 동정해?”


김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따스한 손길이 그 눈물이 밥 한끼 먹이겠다고 종종거리던 모습이 다 뭐란 말인가!


곧이어 뒤에서 구복남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지옥문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아이구, 저승 양반. 여긴 어딘가 응? 나는 평생을 손주 녀석 하나 잘 되라고 살아온 죄밖에 없는디. 나한테는 그눔 뿐인디. 암것도 못하는 아를 어찌 살라고 나를 벌써 아이구 저승 양반, 날 좀 돌려보내주시오. 예? 저승양반, 제발 좀 보내주시오. 우리 진수를 진수를...”


할머니는 지옥문으로 들어가면서도 계속 진수만 찾고 있었다.


그래, 한 사람에게는 살갑고 다정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사악하고 냉혹할 수도 있다지만 세입자들이야 남이라 그토록 잔혹하게 대할 수 있다 치자. 근데 진수에게는 새 밥까지 지어 먹이려던 그런 애달픔이 어째서 딸에게는 없었을까? 왜 또 다른 손주는 버릴 수 있었을까? 같은 핏줄인데 왜 그렇게 달랐다는 걸까? 김혁으로선 그 모든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악마는 고개를 한번 가로젓고는 빙글빙글 웃고만 있다.


******


여름도 무르익어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올해 장마는 유난히 비가 많았다. 그리고 태풍급의 바람이 불고는 했다. 그 바람 속에 김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혁은 감정 따위가 생길 틈을 주지 않기로 작정한 듯 폭우 속을 날아다니며 리스트에 적힌 이름들을 찾아다녔다. 이제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 약간 겁나기도 했고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판별이 자신 없어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원장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아는 한 원장은 정말 의심하고 말 것도 없이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 일말의 변명조차 들을 필요도 없이 그냥 콱 내려치는 거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졌다. 여름내 리스트의 이름들이 빠르게 불타 사라져 갔다.


그러자 매스컴에서는 유난히 중년 남성들의 돌연사가 많은 것이 뉴스거리가 되었다. 비슷한 연배의 남성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 죽음은 원인도 알 수 없고 너무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두들 그 원인을 더욱 알고 싶어했지만 다양한 분석과 여러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이유를 알아내진 못했다.


평소에 건강했던 사람들이고 자살할 만한 이유도 없었던 소위 ‘살만한’ 사람들이었던 교사, 변호사, 정치인, 사업가 등등 중산층 이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때아닌 음모론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들이 어떤 정치적 음모에 의해 제거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증거를 찾기 위해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 그들의 삶과 주변 인물들을 파헤쳤다. 역시 별다른 게 나타나지 않자 이번엔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거 아닐까, 사인을 은폐하는 거 아닐까 하고 수사 기관을 의심해대기 시작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불안은 깊고도 음험했다.


김혁은 그런 뉴스들을 보자 재밌으면서도 또 한편 리스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사람들의 상상력이란, 그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근데 정말 이 리스트는 뭘 근거로 만들어진 거지? 그냥 무작위로 한 장을 채운 건가? 구복남 할머니나 여자들도 섞여 있는 걸로 봐서는 남자만도 아니고 성씨도 다양하고 나이들은 대부분 엇비슷하지만 동갑도 아니었다. 한 두 사람은 많이 차이가 지기도 했다. 아주 젊은 사람이 없다는 것, 여성보다는 남성에 치우쳐져 있다는 게 특색이라면 특색이랄까? 하지만 그건 너무 범위가 넓다. 전국에 흩어져 있고 다양한 직업군인 걸로 보아 어떤 특정 지역, 특정 단체랄 수도 없고 리스트를 아무리 눈여겨봐도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역시 김혁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무엇 한가지를 진득하게 파고드는 건 그의 스타일도 아닌데다 골치만 아팠다. 모든 임무를 완성하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인데 굳이 혼자 머리 아플 일이 뭐가 있을까. 더구나 지옥에 가면 친절한 악마녀석이 세세히 알려주질 않던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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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변진섭
    작성일
    22.03.24 21:23
    No. 1

    악마가 과연 진실만...
    뭐 어느 소설들에서는 진실만 말하다고 설정했지만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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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39화 출생의 비밀 +1 18.04.29 889 7 10쪽
39 제38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7)- 지옥으로 +1 18.04.28 823 9 8쪽
38 제37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6) +1 18.04.28 836 9 8쪽
37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1 18.04.27 778 7 8쪽
36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1 18.04.26 880 8 8쪽
35 제34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3) +1 18.04.25 800 8 8쪽
34 제33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2) +1 18.04.25 815 8 7쪽
33 제32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1) +1 18.04.23 850 13 8쪽
32 제 31화 인형의집(3) +1 18.04.23 840 9 10쪽
31 제 30화 인형의집(2) +1 18.04.22 863 10 8쪽
30 제 29화 인형의 집(1) +1 18.04.22 817 7 7쪽
29 제28화 너 자신을 알라 +1 18.04.21 951 10 9쪽
28 제27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9) +1 18.04.20 853 7 9쪽
27 제26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8) +1 18.04.20 835 8 10쪽
26 제25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7) +1 18.04.19 863 9 11쪽
25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1 18.04.19 1,066 9 8쪽
24 제23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5)-상철이형 +1 18.04.18 885 7 9쪽
23 제22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4) -상철이형 +1 18.04.18 905 8 9쪽
22 제21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3) +1 18.04.17 1,077 8 8쪽
21 제20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2) +1 18.04.17 940 8 8쪽
20 제19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1) +1 18.04.16 994 9 11쪽
» 제18화 잔인한 여름 +1 18.04.16 993 8 10쪽
18 제17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7) +1 18.04.15 1,194 8 11쪽
17 제16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6) +1 18.04.15 979 7 10쪽
16 제15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5) -악마와의 첫 만남 +1 18.04.14 1,060 7 9쪽
15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1 18.04.14 1,216 11 8쪽
14 제13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3) +1 18.04.13 1,086 9 8쪽
13 제12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2) +1 18.04.13 1,173 9 9쪽
12 제11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1) +1 18.04.12 1,413 13 10쪽
11 제10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3) +4 18.04.12 1,659 11 11쪽
10 제 9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2) +1 18.04.11 1,371 15 9쪽
9 제8화 바람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1) +1 18.04.11 1,407 14 10쪽
8 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1 18.04.10 1,564 19 9쪽
7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1 18.04.10 1,585 21 10쪽
6 제5화 개와 늑대의 시간(3) +1 18.04.09 1,739 22 8쪽
5 제4화 개와 늑대의 시간(2) +1 18.04.09 1,816 22 8쪽
4 제3화 개와 늑대의 시간(1) +1 18.04.09 2,027 22 8쪽
3 제2화 악마가 원하는 것, 악마의 리스트 +2 18.04.09 2,614 25 9쪽
2 제1화 지옥을 선택한 남자, 김혁 +5 18.04.09 3,689 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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