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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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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6
최근연재일 :
2018.05.02 05:51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297
추천수 :
525
글자수 :
182,617

작성
18.04.27 09:56
조회
776
추천
7
글자
8쪽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DUMMY

아이의 머리와 어깨 위에 눈이 쌓여 마당에 서 있는 눈사람처럼 보인다.


그제야 아이는 결심한 듯 집안으로 걸음을 떼었다. 쌓였던 눈들이 후두둑 흘러 떨어져내렸다.


유리문을 열면 안쪽으로 마루가 있고 더 들어가야 방이 있는 구조의 구식 가옥이었다. 유리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를 듣고 안쪽에서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주니? 아빠는, 아빠 봤어?”


아이는 짧게 대꾸했다.


“아니, 아무 데도 없어.”


김혁은 아이의 거짓말에 깜짝 놀랐다. 저 아이는 왜....! 왜 아버지를 보았으면서 안 보았다고 말 할까? 지금 상태로 그대로 두면 남자는 곧 얼어 죽고 말 것이다. 외진 길인데다 이미 쌓이기 시작한 눈에 파묻혀 버려서 발견 될 가능성도 더욱 적어진다. 아이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아이가 방에 들어가자 방에서 혼잣말처럼 걱정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 와? 큰일이네. 오늘따라, 어디를 갔대니 늬 아빠는...”


김혁은 마당에 우뚝 서서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토록 어린 아이가 ...!


검은 빛으로 물들던 오라는 죽음이 임박하거나 영혼이 썩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된다고 했었다. 설마 벌써 영혼이 썩기 시작했다는 건가? 믿기지 않는다. 아버지가 죽기를 바랄 만큼 그토록 싫은 것일까? 그냥 그렇게 사라져버렸으면 좋을 만큼?


김혁은 재빨리 날아 웅크린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어느새 남자의 몸 위로 눈이 솜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조금 지나서 보았다면 아무리 눈 밝은 김혁이라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는 그냥 눈에 덮인 한개 큰 바위처럼 보였다.


김혁은 잠시 눈송이들이 지워버린 남자를 내려다 보다가 남자를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남자의 집으로 가는 길은 조금 느릿느릿 걸었다.


남자의 무게는 김혁에겐 검불처럼 가벼웠지만 마음이 천근만근 묵지근했다.


아이는 아마도 한순간 마음을 잘못 먹은 것일 거다. 식구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아니 어쩌면 아버지를 깨우기가 너무 겁나서 그냥 돌아가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만약 이런 외진 길에 고아원 원장이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면 자신도 그런 갈등을 했을지도 몰랐다.


아이의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슬퍼졌다. 조그만 어린아이의 영혼마저 좀먹어버린 가난과 불행을 원망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결국 그것은 어른들의 죄, 몸도 못가눌 만큼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이 남자의 죄,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드는 위험한 태평함이 불러일으킨 잘못이다. 그 대가로 목숨을 빼앗긴다고 해도 이 남자는 할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는 어쩌면 평생 이 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아버지가 눈 속에서 얼어 죽었든 살아 돌아와 있든 상관없는 죄책감. 이미 아이 마음 속에 각인 돼 버린 그것. 아이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고개를 못 들지도 모른다. 가엾은 것. 제발 꿈이었다고 생각하기를!


김혁은 이 일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기를 바랐다. 원장을 짊어지고 산속 오솔길을 걸어가던 그때처럼. 뒤에 남겨 두고 온 서정을 위한 마음과 똑같이 오늘밤은 앞으로 어른으로 성장할 그 아이를 위한 마음으로 그 죄책감마저 제가 대신 짊어지고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술꾼을 짊어지고 가는 김혁의 뒷모습은 눈발과 어둠으로 인해 곧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내리는 눈이 김혁의 발자국마저 지워버렸다.


김혁이 술꾼을 유리문 안쪽에다 '쿵'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돌아왔을 때는 고아원의 불도 다 꺼진 상태였다.


김혁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서정의 얼굴도 오래 바라보았다.


서정의 잠든 얼굴은 처음 본다. 예쁘다. 얼굴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었다가 그만두었다. 잘 산다고 했다. 천재급의 아이도 낳고.... 그러면 된 거다. 그러면.... 만지면 깨우고 싶을 것이다. 아니 손을 대고 나면 입을 맞추고 싶은 마음을 참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김혁은 갑작스런 충동에 서둘러 방을 나왔다. 어쩌면 이것은 악마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리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것. 리스트가 거의 다 끝나가는 이때 이렇게 고향에 돌아오게 된 것이 정말 우연일까?


아니다. 선물이 아니고 놀림일지도 모른다. 병주고 약주고 병주고 약주고... 천국 갈 놈 꼬셔다가 복수하랬다가 지옥불에 보낼까 말까 보낼까 말까 저울질하면서 놀려먹고 서정을 만나면 안돼? 간절할 땐 안 된다 그래 놓고 다 포기하고 있으니 만나게 해주는 고약한 심술.


어떻게 하나 보자 그런 심산인가? 카사노바가 지옥불에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 막상 반 벌거벗은 영화배우를 등장시켜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구경이나 해볼까 했다던 악마 녀석이니 그럴만하지 않은가! 선물이라기보단 악마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달리 악마겠어? 새삼 악마에게 치미는 뾰족한 마음.


김혁은 악마의 리스트를 들여다보았다. 이건 애초부터 이런 각본에 따라 배치된 리스트였던가?


그때 갑자기 맨 마지막에 있던 이름이 저절로 불타 사라져버렸다.


어 뭐지? 이건? 여자였는데 인적사항 전부가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히 거기 여자 이름이 있었는데 사라져버린 것이다. 찾아가기도 전에 죽어버린 건가? 그렇다면...


이제 하얀 리스트에는 덜렁 장규석의 인적사항 한줄만 남아 있었다.


정말 장규석을 데리고 가면 이제 지옥불이구나!


김혁은 눈보라치는 바깥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밤이라고 생각하니 더 애틋해 보였다.


저 눈바람에 휩쓸려 구천을 떠도는 바람이나 될까? 세상 구경이나 실컫 하고 언젠가 소멸되든가 말든가 ... 근데 왜 악마는 내가 스스로 돌아오게 될 거라고 확신했었지? 모를 일이다. 아, 부모님에 대한 비밀이 아직 남았지. 하지만 뭐 그거야 모르고도 여태껏 잘 살아왔는데 까짓 거 모르면 어때, 또 뭐가 있지?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마지막 밤이라면 서정을 깨워 이야기라도 나누고 갈까?


김혁이 이래저래 마음을 못 잡고 서성거리고 있는데 원장방의 문이 살며시 열렸다. 장규석이 축늘어진 여자를 들쳐 업고 나온다.


이 밤중에 뭐하는 거야? 저 인간은 또.


뭘 하려나 보니 장규석은 조용히 고아원을 빠져나가려는 듯 보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자동차로 간다. 그리고는 여자를 뒷좌석에 되는대로 눕혀놓고 차를 출발시켰다.


업혀 있을 때는 확실치 않았는데 여자의 몸에서 오라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뭐지? 오라가 없을 수도 있는 건가? 응? 죽.은. 건가? 갑자기 멀쩡하던 여자가 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장규석을 따라갔다. 장규석은 차를 한참 몰아가다가 급하게 굽이치는 산중턱의 도로가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여자를 바닥에 쿵 내려 놓고 질질 끌다시피 끄는 것을 보니 비탈 아래 골짜기로 던져 버리려는 모양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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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45화 슬픈 진실 +1 18.05.02 870 8 9쪽
45 제44화 슈퍼맨의 마음2 +1 18.05.01 910 7 9쪽
44 제43화 슈퍼맨의 마음1 +1 18.05.01 866 9 11쪽
43 제42화 그건 꿈이었을까? +1 18.04.30 836 7 10쪽
42 제41화 새로운 가족 +1 18.04.30 827 8 8쪽
41 제40화 천사를 만나다 +1 18.04.29 823 6 7쪽
40 제39화 출생의 비밀 +1 18.04.29 887 7 10쪽
39 제38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7)- 지옥으로 +1 18.04.28 820 9 8쪽
38 제37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6) +1 18.04.28 835 9 8쪽
»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1 18.04.27 777 7 8쪽
36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1 18.04.26 878 8 8쪽
35 제34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3) +1 18.04.25 798 8 8쪽
34 제33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2) +1 18.04.25 813 8 7쪽
33 제32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1) +1 18.04.23 847 13 8쪽
32 제 31화 인형의집(3) +1 18.04.23 838 9 10쪽
31 제 30화 인형의집(2) +1 18.04.22 861 10 8쪽
30 제 29화 인형의 집(1) +1 18.04.22 816 7 7쪽
29 제28화 너 자신을 알라 +1 18.04.21 950 10 9쪽
28 제27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9) +1 18.04.20 852 7 9쪽
27 제26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8) +1 18.04.20 833 8 10쪽
26 제25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7) +1 18.04.19 862 9 11쪽
25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1 18.04.19 1,064 9 8쪽
24 제23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5)-상철이형 +1 18.04.18 883 7 9쪽
23 제22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4) -상철이형 +1 18.04.18 904 8 9쪽
22 제21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3) +1 18.04.17 1,076 8 8쪽
21 제20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2) +1 18.04.17 939 8 8쪽
20 제19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1) +1 18.04.16 992 9 11쪽
19 제18화 잔인한 여름 +1 18.04.16 991 8 10쪽
18 제17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7) +1 18.04.15 1,192 8 11쪽
17 제16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6) +1 18.04.15 978 7 10쪽
16 제15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5) -악마와의 첫 만남 +1 18.04.14 1,059 7 9쪽
15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1 18.04.14 1,214 11 8쪽
14 제13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3) +1 18.04.13 1,084 9 8쪽
13 제12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2) +1 18.04.13 1,171 9 9쪽
12 제11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1) +1 18.04.12 1,411 13 10쪽
11 제10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3) +4 18.04.12 1,658 11 11쪽
10 제 9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2) +1 18.04.11 1,369 15 9쪽
9 제8화 바람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1) +1 18.04.11 1,405 14 10쪽
8 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1 18.04.10 1,563 19 9쪽
7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1 18.04.10 1,582 21 10쪽
6 제5화 개와 늑대의 시간(3) +1 18.04.09 1,737 22 8쪽
5 제4화 개와 늑대의 시간(2) +1 18.04.09 1,814 22 8쪽
4 제3화 개와 늑대의 시간(1) +1 18.04.09 2,026 22 8쪽
3 제2화 악마가 원하는 것, 악마의 리스트 +2 18.04.09 2,612 25 9쪽
2 제1화 지옥을 선택한 남자, 김혁 +5 18.04.09 3,685 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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