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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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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6
최근연재일 :
2018.05.02 05:51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74
추천수 :
525
글자수 :
182,617

작성
18.04.26 01:30
조회
879
추천
8
글자
8쪽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DUMMY

“거기 여자애, 너 잠깐 들어와 볼래?”

장규석이 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제일 큰 애가 김혁이라고 돼 있는데 그 앤 아직 학교에서 안 왔나?”


“그 오빠는 .... 가출했는데요.”


“뭐? 가출? 하, 참 고아원 하난 잘 운영하고 계셨구만. 이 인간이 대체 뭔 짓거리를 해놓고 도망친 거야 고아원은 이 꼴로 놔두고. 뭐 빚쟁이가 찾아오거나 그런 전화 걸려온 건 없었나?”


“네, 없었어요.”


“너 혼자 계속 이 애들을 보살피고 있었던 거니?”

여자가 서정에게 물었다.


“네.”

“몇 살?”

“열일곱이요. 곧 열여덟이 돼요.”


서정은 자신이 충분히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듯 했다. 여자는 서정을 한번 훑어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누구 하나를 내려 보내야 될 것 같지? 누가 좋을까, 시골에 와서 살만한 사람으로 장부장이 빨리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서정과 아이들의 기대와 평화는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근데 가만, 이쯤 되면 원장의 실종신고를 해야 한다거나 뭐 그런 걸 해야 하지 않나? 김혁은 잠시 의아해졌다.


주변에서 누군가 사라졌다, 그러면 보통 신고를 하고 찾아다니고 그래야 하는 건데 이 사람들은 그냥 빚져서 도망쳤다고 믿어버리고 끝? 이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데 .... 저들은 원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단지 이 고아원이 관리할 어른 하나 없이 비어 있는 것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저들은 대체 누구지? 고아원과 무슨 관계일까. 정부 관리들 같지는 않고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원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원장이 나가서 볼일을 보고 오는 편이었지 고아원에 누가 찾아오고 하지는 않았었다. 고아원이 원래 정부의 복지 관리를 받는 시설이 아니었던 건가 하는 의문도 새로이 들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김혁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어쨌든 경찰을 부르지 않는 것은 서정에겐 다행스러운 일이긴 했다. 경찰들 앞에서 서정이 얼마나 거짓말을 능숙하게 해낼지 걱정스럽기 때문이었다. 서정은 고지식한 편이라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들키지 않을 정도로 잘 얼버무린 것 같지만 김혁이 보기엔 많이 어색해 보였다. 누군가 의문을 품고 집요하게 캐고 든다면 결국 들키고 말리라.


조금 어두워졌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겨울해가 좀 더 빨리 졌다. 창밖으로 눈발이 하나 둘 흩날리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장규석도 눈이 오는 걸 발견하고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눈이 오는데요? 지금 출발하셔야겠습니다. 좀 더 지체하다간 어두운데 길도 얼고 위험해서.”


“뭐 급한 일도 없는데 오늘은 여기서 머물지 뭐.”


여자는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장규석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별 말이 없었다. 저 여자가 무슨 회장이라도 되나? 저 남자는 왜 저렇게 찍소리를 못 하지?


서정은 부랴부랴 쌀을 더 씻고 음식을 더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큰 아이들은 원장 방을 치우고 쓸고 닦았다.


어찌저찌 밥상이 차려지고 김혁은 아이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예전과 그다지 많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밥상이지만 그래도 굶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와 남자는 그런 빈약한 식사가 조금 못마땅한 듯 보였지만 허기가 졌는지 뜨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그릇을 다 비웠다.


설거지를 하는 서정을 본다. 그토록 보고 싶던 ‘나쁜 기집애’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아는 척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서정 앞에 나타나서 말을 걸면 뭐라고 할까? 깊은 밤에 나타나서 이건 꿈이야, 하면서 속이면 믿어줄까? 널 만나러 오는 걸로 하고 천국에서 하룻밤 허락을 받았어라고 거짓말을 할까? 사실은 난 말야, 천국으로 가게 됐어라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면 서정이 조금 안심을 하지 않을까?


그냥 서정과 나란히 앉아서 도란도란 지나온 얘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볼 수 없을 때는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보고 있으니 이제 말을 걸고 싶어졌다. 이것저것 묻고 싶어졌다. 그게 뭐든 그냥 아무 말이라도 서정이 자신을 보면서 얘기하는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장규석은 눈이 내리는데도 굳이 바깥에 나가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집에다 오늘 밤 돌아가지 못하는 사정을 얘기하고 있었다. 통화가 꽤 길어지고 있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푸지게 내리고 있었다. 땅바닥에 금새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통화를 끝낸 장규석이 어깨며 머리칼에 눈을 털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와 장규석은 원장방에 함께 들었다.


김혁은 저들의 관계가 대체 뭔지 헷갈리기만 했다. 내내 딱딱한 상하관계로 보이더니 밤이 되자 요상하게도 자연스런 연인 관계처럼 행동하는 모양새라...


통화 내용을 듣자하니 아내도 있는 남자인데 애인이라기엔 여자가 너무 늙기도 했고 차에서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절대 남녀 관계만이라고 생각하기는 미심쩍고... 김혁은 잠시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그들이 무슨 관계든 말든 자신은 오늘밤 장규석을 데리고 가면 그만인 것이다. 아니, 고아원을 떠난 다음에 데려가는 게 나을까? 고아원 아이들에게 못 볼 꼴을 보이지 않으려면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김혁은 잠시 눈이 내리는 밤하늘을 날았다. 저승사자가 되고 나서 처음 맞아보는 눈이었다. 그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발자국을 찍으며 하염없이 시골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보았다. 어두운 길 한 구석에 웅크려 잠든 사내와 그 사내를 말끄러미 보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김혁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마을 끝 집에 사는 아이였다. 아이의 손에 든 후레쉬가 비추고 있는 웅크린 사내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길바닥에서 잠든 사내는 마을에서 혀를 내두르는 술주정뱅이였다. 온 마을이 떠나가라 소리지르며 주정하고 아무데나 쓰러져 잠들기로 유명했다. 아마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찾으러 나온 모양이었다. 그애 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늘 몸져눕기 일쑤였으니 이렇게 눈 오는 밤에 저런 조그만 아이가 아버지를 찾으러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런데 아이는 아버지를 깨우려는 시도도 않고 그냥 발길을 돌려 돌아간다. 응? 마음 한구석에 생겨나는 의문을 누르며 아이가 누굴 불러 오려고 그러나 싶어 몸을 숨긴 채 아이를 따라갔다.


아이의 연두색 오라에 검은 빛이 섞여 있었다. 아직 어린애인데 검은 오라가?


아이는 집 앞에 선 채로 들어가지 않고 한참을 서서 멍하니 불켜진 채 고요한 집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이의 어깨와 머리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이 마치 꽤 지쳐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노인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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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45화 슬픈 진실 +1 18.05.02 871 8 9쪽
45 제44화 슈퍼맨의 마음2 +1 18.05.01 913 7 9쪽
44 제43화 슈퍼맨의 마음1 +1 18.05.01 869 9 11쪽
43 제42화 그건 꿈이었을까? +1 18.04.30 838 7 10쪽
42 제41화 새로운 가족 +1 18.04.30 828 8 8쪽
41 제40화 천사를 만나다 +1 18.04.29 824 6 7쪽
40 제39화 출생의 비밀 +1 18.04.29 889 7 10쪽
39 제38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7)- 지옥으로 +1 18.04.28 823 9 8쪽
38 제37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6) +1 18.04.28 836 9 8쪽
37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1 18.04.27 778 7 8쪽
»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1 18.04.26 880 8 8쪽
35 제34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3) +1 18.04.25 800 8 8쪽
34 제33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2) +1 18.04.25 814 8 7쪽
33 제32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1) +1 18.04.23 850 13 8쪽
32 제 31화 인형의집(3) +1 18.04.23 840 9 10쪽
31 제 30화 인형의집(2) +1 18.04.22 863 10 8쪽
30 제 29화 인형의 집(1) +1 18.04.22 817 7 7쪽
29 제28화 너 자신을 알라 +1 18.04.21 951 10 9쪽
28 제27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9) +1 18.04.20 853 7 9쪽
27 제26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8) +1 18.04.20 834 8 10쪽
26 제25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7) +1 18.04.19 863 9 11쪽
25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1 18.04.19 1,066 9 8쪽
24 제23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5)-상철이형 +1 18.04.18 884 7 9쪽
23 제22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4) -상철이형 +1 18.04.18 905 8 9쪽
22 제21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3) +1 18.04.17 1,077 8 8쪽
21 제20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2) +1 18.04.17 940 8 8쪽
20 제19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1) +1 18.04.16 994 9 11쪽
19 제18화 잔인한 여름 +1 18.04.16 992 8 10쪽
18 제17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7) +1 18.04.15 1,194 8 11쪽
17 제16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6) +1 18.04.15 979 7 10쪽
16 제15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5) -악마와의 첫 만남 +1 18.04.14 1,060 7 9쪽
15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1 18.04.14 1,216 11 8쪽
14 제13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3) +1 18.04.13 1,086 9 8쪽
13 제12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2) +1 18.04.13 1,173 9 9쪽
12 제11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1) +1 18.04.12 1,413 13 10쪽
11 제10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3) +4 18.04.12 1,659 11 11쪽
10 제 9화 바람처럼 날아 벌초럼 쏜다(2) +1 18.04.11 1,371 15 9쪽
9 제8화 바람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1) +1 18.04.11 1,407 14 10쪽
8 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1 18.04.10 1,564 19 9쪽
7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1 18.04.10 1,584 21 10쪽
6 제5화 개와 늑대의 시간(3) +1 18.04.09 1,739 22 8쪽
5 제4화 개와 늑대의 시간(2) +1 18.04.09 1,816 22 8쪽
4 제3화 개와 늑대의 시간(1) +1 18.04.09 2,027 22 8쪽
3 제2화 악마가 원하는 것, 악마의 리스트 +2 18.04.09 2,613 25 9쪽
2 제1화 지옥을 선택한 남자, 김혁 +5 18.04.09 3,689 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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