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8,218
추천수 :
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5.12.12 19:37
조회
873
추천
20
글자
16쪽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9)

DUMMY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고하는 부관의 표정만큼이나 보고를 받는 벤의 얼굴 위에도 당혹감이 짙게 번져나간다. 혹시나 적의 책략일까 싶어 2중, 3중으로 척후를 돌려봤지만 돌아오는 보고는 전부 동일했다.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만 같은 역겨운 냄새와, 곳곳에 남아있는 처절한 학살과 폭격의 흔적. 그리고-


그 어떠한 생명체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도시.


“하하하, 이거 재밌네.”

복잡한 표정으로 무너진 화단에 앉아있는 벤의 뒤로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진짜로 아무것도 없잖아? 다들 그새 도망간 건가?”


한번 깊게 한숨을 내쉬고, 벤은 자신과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는 브린타이나의 기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무리 군사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수만 명의 시민들도 거주 중인 성이었어. 그 어떤 보고나 징후도 없이, 그 모든 병사와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게 말이 되는 것 같냐?”


“그럼 죄다 뒤져버렸나 보지 뭐. 도시 전체에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만.”


“.......”


자국의 병사와 시민들이 학살을 당했다는 게 렌에게는 이리도 즐거운 일일까. 벤은 짜증이 섞인 한마디를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아아, 김샜네. 나름 재밌어지나 싶었는데 이렇게 끝이라니.”


“.......끝?”


“끝이지. 애초에 여길 수복하라는 게 명령이었고. 훌륭하게 그 임무를 완수했잖아? 이런 오지엔 볼일 끝났다 이거야.”


진지함이라고는 묻어나오지 않는 렌의 대답.

그러나 벤은 그 순간 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본래 브린타이나의 지원군과 함께 오스타이나를 수복하고, 그대로 국경을 넘어 브린타이나 중앙군과 제국 3군단이 맞붙은 동부지역으로 침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거대한 변수 두 가지가 벤의 앞으로 다가왔으니-,

정규군이라고 볼 수 없는, 과거 북브린타이나군의 패잔병들이 지원군으로 나타났다는 사실과,

렌이라는 존재가 그들의 지휘관이라는 사실.


자신이 이끌고 온 카나반통합군만으로는 3군단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있다. 따라서 브린타이나의 전력을 계산에 두었었는데, 하필 그들이 이 모양이라니. 벤으로서는 이들을 원정에 제외하기도, 포함시키기도 애매해져 버린 것이다.


“왜? 우리가 끝까지 따라가 주길 바라냐?”


그리고 렌은 그런 벤의 혼란을 놓치지 않는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벤은 짜증을 입술과 함께 씹는다.


“그거야 지휘관인 네 선택이지.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나는 상관없어.”


“헤, 제국3군단의 옆구리를 찌르는 중요한 작전에 동맹국의 지원 따위는 필요없다-. 이게 카나반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보면 되는 거지?”


“맘대로.”


대화를 끝내고 싶은 의지가 가득한 벤의 목소리였지만, 렌은 키득키득 비웃으며 벤의 옆에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에이, 당연히 농담이지. 네가 필요하면 당연히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

간신히 그의 팔이 감겨오는 것은 뿌리칠 수 있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벤의 얼굴엔 불쾌함이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형제’라는 단어를 머금는 렌의 주둥아릴 날려버리고 한바탕 욕을 날려주고 싶었으니까.

“주변 계곡과 산속을 수색한다. 오늘 밤까지도 아무런 징후가 없으면 네 형님에게 보고해. 그와 의견을 조율해서 이대로 국경을 넘을지 기다릴지 정할 거야.”


“하하, 그러셔.”


단창을 크게 한번 휘두르며 자리에서 튀어 오르는 렌. 깐죽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벤은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깃든 한숨을 크게 내리깔았다.

렌의 입가에 걸쳐져 있던,

뒤틀린 미소는 눈치채지 못한 채.








“그래서 결국 최고지휘관이 수색임무까지 따라오신 건가요?”


짙은 나뭇잎들의 그림자로 뒤덮인 숲의 밤. 달빛을 반사하는 눈동자를 대신하여 자리잡고 있는 것은 푸른 마력의 잔재였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었던 살점과 가죽의 흔적마저 사라진 망자의 얼굴은 그야말로 백골 그 자체. 하지만 한때 가장 위대한 마법사 중의 하나였던 그의 위엄은 신비로운 목소리를 따라 턱뼈 사이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새끼랑 조금이라도 더 같은 공간에 있으면 미쳐버릴 거 같아서요.”


벤은 그런 오캄푸스의 인자한 미소(처럼 보이는 뼈의 움직임)에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하지만 망자는 위로 대신 더욱 벌어지는 턱뼈로 웃음을 내뱉었다.


“그거 신기하네요!”


“.......신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벙찐 얼굴로 오캄푸스를 돌아보는 벤.


“네, 신기합니다. 제가 봐왔던 ‘변수의 검성’이라는 인간은 자신이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선 차가울 정도로 무관심했거든요. 당신이 그 귀찮은 자리를 떠안고 있는 것도, 오직 오랜 시간을 보낸 폐하와 고도라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잖아요? 그런 당신이 별로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 정도의 관심과 집착을 보이다니, 신기하잖습니까?”


“집착이라뇨, 단어선택이 좀 이상하시네. 그리고 마스터도 어느 날 갑자기 자기랑 똑같은 얼굴의 적이 나타났다고 생각해봐요.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요?”


순간,

걸음을 멈춰 세우는 오캄푸스.



“검성. 당신은 정말로 그가 단순히 자신과 생김새가 똑같다는 이유만으로 거북한 건가요?”


“.......”


만약 같은 질문을 고도, 로빈이 했다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벤은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달빛을 등지고 있는 이 망자가, 자기 자신이 납득하지 못한 것조차 꿰뚫을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김새는 물론 목소리까지 똑같다-. 검성께서도 출생이 명확하지 않고, 렌이라는 그 사람도 출생이 애매하죠. 갓난아기 시절 생이별하게 된 쌍둥이. 뭐 그런 투박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말이죠, 참으로 묘한 우연이 아닙니까?

한 명은 ‘우연히’ 숨겨진 왕자와 친분을 쌓고, 그의 즉위를 도운 대가로 검성이라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우연히’ 왕국 최고기사의 눈에 띄어 양자로서 검성의 선택을 받았죠.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쌍둥이가, 각자 다른 나라에서 각자 다른 이들과의 인연으로 비슷한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정말이지 기막힌 우연입니다. 그렇죠?”


“.......”

가장 치명적인 궤적으로 벤의 불편함을 관통하는 오캄푸스의 미소.

벤은 거친 산길로 인해 차오르던 숨을 정돈하고, 가만히 푸른 안광을 응시한다.

“같은 얼굴이니 목소리니, 그런 건 상관없어요. 그놈은 저를 죽이려고 했고, 저는 그에 대응했을 뿐입니다. 당연히 좋은 감정일 수가 없죠.”


“뭐어, 정말로 그것뿐이라면 ‘다행’입니다만.”


망자는 이어질 듯한 목소리를 흘리며 결국 가벼운 걸음으로 말을 대신한다. 하지만 그의 몸은 몇 걸음 가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선다.


“왜 그러세요?”


“아, 수색지점을 초과한 것 같아서요. 슬슬 돌아가죠.”


오캄푸스의 말대로 그들은 이미 산중턱을 넘어 능선으로 접어드는 중이었다. 그 어둠을 너머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겹겹이 이어진 산맥과 그 산맥들이 삼키고 있는 그림자들뿐, 필요하거나 얻을 수 있는 정보 따윈 존재하지 않으니 탐색할 필요도 없다.

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선다. 짧은 도피의 끝이 저 먼 곳 아래에서 불빛을 내뿜고 있는 중이었다.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보다, 그 녀석과 다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무겁게 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마스터?”

몇 걸음 먼저 내려서던 벤이 망자를 불러보지만, 어떠한 대답도, 어떠한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순간 벤은 손끝으로 마력을 집중시키며 감각을 끌어올린다. 망자의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긴장감이 그의 피부 속으로 함께 스며든 탓이었다.

“우리는 카나반군이다. 셋을 셀 동안 정체를 밝히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하나.”


흙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하는 나무의 줄기. 숲의 생명을 끌어들여 하나의 ‘독’으로서 재연성된 마력의 응집체는 벤이 ‘둘’이라고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이미 뛰쳐나올 준비를 마친다.


“.......익숙한 목소리인데.”


팽팽해지는 긴장감을 무너트리며 들려오는 목소리. 흔들리는 벤의 손끝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로쿠베 경?”


바로 푸르스름한 머리를 늘어트린 오스타이나의 영주, 할라시드 로쿠베였다.


그러나 벤은 곧바로 그를 향해 다가설 수가 없었다.

짙은 눈썹과 굵은 콧날이 감싸고 있는 눈동자는 벤의 존재를 확인했음에도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평소 말끔하게 넘겼던 머리카락은 피가 엉겨 붙어 지저분하게 그의 이마를 가린 채였고, 흰색 정복 또한 곳곳이 찢겨나가거나 붉게 물든 상태였다.


“로쿠베, 무사하셨나요? 병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또 오스타이나의 주민들은요?”


벤은 침착하게 그를 향해 한걸음 다가선다. 그러나 말라붙은 로쿠베의 입술은 대답이 아닌, 질문으로서 벤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만다.


“그것들은....... 그것들은 모두 죽였나? 도시는 어떻게 됐지?”


“그것들? 그것들이 뭡니까? 도시는 비어있었습니다.”


“.......비어있었다고?”


흔들림이 더해져가는 로쿠베의 눈동자.


“예. 완전히 비어있었습니다. 지금 카나반군과 브린타이나군이 동시에 주둔 중이고요.”


“주둔 중이라니?! 도시 안에 있다는 말인가?!”


로쿠베가 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다가오며 침을 튀긴다. 그의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예. 수색 중인 병력을 제외하고 전원 성내에서 대기 중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그리고 벤은 로쿠베의 뒤로 나타난 수많은 그림자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영주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혼이 빠져나간 표정에, 자신과 자신의 것이 아닌 피로 범벅이 된 하얀 제복.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힘이 보이지 않는 손가락들.


“.......전원 퇴각시켜.”


그러나 로쿠베가 다시금 영주이자 지휘관의 얼굴로 되돌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


“모든 병사를 도시에서 내보내라고! 통신병은 없냐?! 빨리 따라와!”


다급한 도약과 함께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는 로쿠베를 따라 어둠 속에 숨어있던 병사와 기사들도 용기를 얻는다.


“왜 그러시는데요?! 성내는 물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영주의 뒤통수를 향해 벤이 소리를 질러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멈추지 않고 멀어지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고!!”





========





“들어와요.”


갑작스럽게 울리는 노크소리에 고도가 처음 떠올린 건 귀찮음이었다.

전투마법사로서의 복무는 그녀에겐 좀처럼 적응할 수 없는 제약의 연속이었다. 그 수많은 제약들 속에서 그나마 그녀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개인연구’의 시간이었는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연구를 방해받는 걸 병적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데, 눈치 없이 방문을 여는 저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무심한 먹색 눈동자. 푸석하고 너저분한 먹색 머리카락. 얇은 선만큼이나 흐린 인상 아래로 마법사로브가 휘날리고 있다. 분명, 자신의 시간을 거리낌 없이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그러나 고도는 곧바로 다가서는 그 눈빛을 향해 적의를 내세울 수 있었다.


“변장이라니, 고약한 취미네. 그 로브는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


“허, 들켰나? 어떻게 알았어?”


히죽 웃으며 로브를 벗어던지는 남자. 그 미소는, 역시나 고도가 생각하는 그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추악함이었다.


“너야말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렌이 다가설수록 고도의 마력도 점점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성에서 벗어난 순수한 적의였다.


“이 모습으로 물어보니까 친절하게 알려주던데? 그나저나 용케 이런 깨끗한 여관을 찾으셨네. 그 녀석과 한판 뜨려고?”


“.......”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매정하게 고개를 돌려 논문이 가득한 책상으로 시선을 가져가는 고도. 하지만 뒷목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오는 렌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 무시하기야? 내가 정곡을 찔렀나? 아니면 그 반대인가? 뭐어, 그 녀석이 먼저 달려들 성격은 아닌 것 같긴 해.”

뒤틀린 미소와 웃음에도 ㅇ전히 반응하지 않는 고도. 그녀는 불청객을 무시하고 모든 집중력을 자신이 내려다보는 글자로 쏟아붓기 위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때문에,

자신의 어깨에서 가슴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그의 손길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너, 욕구불만이지?”

내성에 여과될 틈도 없이 뜨거운 마력이 고도의 손끝을 따라 불꽃으로 형상화된다. 그 날카로움엔 분명한 살의가 깃들어 있었지만, 불꽃은 남자의 머리카락조차 그을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공중으로 흩뿌려지고 만다.

고도의 입가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붙잡힌 손목을 조이는 고통보다도, 눈동자 바로 앞으로 다가온 남자의 표정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으니까.

“뭐 어때? 너네 어차피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얼굴도 똑같은데, 그냥 날 그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질척한 탐욕으로 물든 먹색 눈동자. 그 무한한 어둠 속으로 비치는 자신의 바닷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도는 마른 침을 뱉는다.


“미안하지만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통쾌한 반격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 고도는 전신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입가에 묻은 자신의 침을, 렌이 사랑스럽게 핥아먹은 것이다.


“그럼 나야 더 좋지.”

책상 옆 침대 위로 거칠게 고도를 내동댕이치는 렌. 고도는 붙잡혔던 손목과 벽에 부딪힌 등의 통증은 잊은 채 빠르게 로브를 끌어내려 자신의 드러났던 맨다리를 가린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은 오히려 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극제가 되었을 터.

그러나 그는 미소만을 띄운 채 고도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어느새 푸르게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뒤덮여있었기 때문이다.

“어휴, 이거 진심이신가 본데?”


“한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여보시지. 그럼 진짜 진심을 보여줄게.”


고도의 손끝으로 모이고 있는 마력은 분명 방금 전에 무위로 돌아간 불꽃 따위와는 본질 자체가 다르다. 가장 맛있는 먹잇감을 앞에 두고도 다가설 수 없음이 분한지, 렌은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등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로브 아래 감춰져 있던 은빛 단창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그럼 나도 진심으로 가지 뭐.”


렌의 미소와 동시에 고도의 손끝에서 수많은 붉은 물줄기가 튀어나와 침대 위를 뒤덮기 시작한다. 액체라고 하기엔 단단했고, 고체라고 하기엔 부드러운 그 ‘붉은 마력’은 렌의 움직임과 동시에 그를 향해 악의를 내뿜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앞으로 펼쳐질 광경이 너무도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지저분한 미소로 뒤틀리는 렌의 입가. 그에 비해 굳은 표정의 고도는 손끝이 떨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둘의 대치에 끝을 가져온 것은,

렌의 걸음도,

고도의 시전도 아니었다.



“?!”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건물 전체, 아니, 도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앉아있던 고도는 괜찮았지만, 렌은 그 충격으로 인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씨발?”


렌의 욕지거리 위로 당혹감이 피어오른다. 그 표정을 보고나서야 고도는 밖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간신히 중심을 잡아 침대 위로 일어선다. 밖을 확인하기 위해선 이미 충격으로 인해 뒤틀린 창문을 그녀의 마력으로 부숴버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게.......”




창문 밖에 펼쳐진 오스타이나 성의 정경.

굉음과 진동의 정체를 바라본 고도는,

마력을 유지하는 것조차 잊은 채 경악을 입에 물어야 했다.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변수의 굴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3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0) +4 15.12.17 923 16 22쪽
»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9) +4 15.12.12 874 20 16쪽
191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8) +6 15.12.07 884 24 17쪽
190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7) +4 15.12.02 868 24 18쪽
189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6) +6 15.11.26 992 20 16쪽
188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5) +6 15.11.21 866 23 18쪽
187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4) +10 15.11.16 914 25 17쪽
186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3) +10 15.11.11 856 22 20쪽
18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2) +6 15.11.07 867 20 19쪽
18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 +8 15.11.01 1,081 27 18쪽
183 (막간) 나의 태양에게 +8 15.10.27 886 29 11쪽
182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8) +12 15.10.22 923 28 23쪽
181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7) +8 15.10.17 1,044 27 19쪽
180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6) +8 15.10.12 951 28 22쪽
179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5) +12 15.10.07 857 25 21쪽
178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4) +6 15.10.02 923 27 24쪽
177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3) +8 15.09.27 854 23 21쪽
176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2) +6 15.09.22 842 23 20쪽
175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1) +4 15.09.17 999 25 20쪽
174 (막간) 결국 안식 따윈 허락되지 않았다 +8 15.09.12 919 26 21쪽
173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10) +6 15.09.07 816 24 24쪽
172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9) +6 15.09.02 918 24 19쪽
171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8) +8 15.08.28 1,003 24 17쪽
170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7) +8 15.08.24 1,148 27 22쪽
169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6) +16 15.08.18 1,022 33 20쪽
168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5) +8 15.08.13 876 24 21쪽
167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4) +10 15.08.07 991 27 26쪽
166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3) +6 15.08.02 984 23 17쪽
165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2) +6 15.07.28 966 30 28쪽
164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1) +12 15.07.23 937 26 16쪽
163 (막간) 겨울에게 작별하는 방법 +10 15.07.17 1,155 28 19쪽
16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1) +4 15.07.12 1,068 27 18쪽
161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0) +10 15.07.07 1,018 26 22쪽
160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9) +7 15.07.02 997 22 20쪽
159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8) +8 15.06.27 982 30 21쪽
158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7) +10 15.06.22 832 28 24쪽
157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6) +8 15.06.17 1,055 28 20쪽
156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5) +10 15.06.12 1,216 27 16쪽
155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4) +6 15.06.07 873 35 24쪽
154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3) +6 15.06.01 922 35 20쪽
153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2) +8 15.05.27 906 35 23쪽
15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 +8 15.05.22 832 31 20쪽
151 (막간) 와인보다 진한 것 +8 15.05.17 1,106 31 13쪽
15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1) +6 15.05.11 994 34 19쪽
149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0) +8 15.05.06 793 34 21쪽
148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9) +11 15.05.01 1,004 33 17쪽
147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8) +15 15.04.26 1,148 28 21쪽
146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7) +12 15.04.21 980 33 21쪽
145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6) +8 15.04.16 1,060 31 17쪽
144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5) +8 15.04.11 1,131 34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