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8,475
추천수 :
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5.07.28 22:57
조회
966
추천
30
글자
28쪽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2)

DUMMY

“교회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예상했던 답변이지만, 로빈은 새하얀 로브를 두른 대사제의 앞에서 좀처럼 표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던 옥스토브라카 전투보고서를 내려놓고, 최대한 얼굴에서 피곤함을 거둔 뒤에 노인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한다.


“단순히 아이를 낳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신 겁니까?”


“ ‘단순히’가 아닙니다, 폐하. 후계문제는 폐하께 있어 대외정책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입니다. 내실을 먼저 다지지 않고 어찌 국정을 논한단 말씀이십니까. 다른 누구보다도 폐하께서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계실 테지요.”


역시 이렇게 나오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노인의 말이 어디를, 그리고 누구를 뜻하고 있는 것인지는 굳이 되물어보지 않아도 눈에 밟히고 있었다.

후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결국엔 모든 비극의 빌미를 제공한 로빈의 아버지. 이 노인은 지금 그에게 그가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려 한다며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로빈은 이런 대사제의 태도에 다소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럴 때는 되게 원칙적으로 나오시네요. 정작 윌리안 가슈펠라르나 야노르 시즈키치가 내전과 모략으로 왕실을 헤집어 놓을 때는 잠자코 계시더니.”


“교회는 어디까지나 정치와는 분리된 입장을 고수해야 합니다. 다만 전통이나 율법, 특히 왕실 내부의 정통성 문제에 관해서는 예로부터 그래왔듯 교회의 도움과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왕좌를 두고 다투는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지만, 그 왕좌의 주인이 정해진 이상 자신들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한다-. 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대사제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빈은 그런 노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마누앙 니바르토가 섭정을 맡아온 이래로 교회의 권위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터무니없이 축소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왕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세력인 교회가 ‘왕이 없는 시대’에 걸쳐 존재감이 약화되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마누앙이 교회를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했다는 사실이 컸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교회의 주도로 이루어지던 모든 국가적 행사와 학술회를 예산을 이유로 폐지시켜버렸고, 교회의 후원을 받던 모든 교육기관을 공립학교로 전환시켰다. 교회라는 단체 자체가 본래 폐쇄성이 짙은 집단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껍데기만 남기는 데에는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즉, 먼저 국민들의 머리에서 교회의 흔적을 지워버린 것이다.

그랬던 교회가 다시금 미트라블루스의 핏줄이 본궁으로 이어지자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첫 희생양이 바로 로빈이었다. 로빈의 입장에선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교회를 마냥 내팽개칠 수도 없었다. 귀족파가 정치적으로 로빈이 이겨내고 협상해야 할 ‘적’이라면, 교회는 그가 ‘눈치를 봐야 하는 동행자’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자기가 아쉬울 땐 소란스럽게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간섭만 하다가, 정작 그들이 참살당하고 유린당할 때는 숨죽이고 지켜만 보고 있었던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그런 교회를, 드렌턴이 좋게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괜한 트집이나 잡아서 종교재판이나 일삼고, 세뮈엘님의 뜻을 받든다는 명목으로 왕실에 간섭이나 하는 게 너희가 하는 일이냐? 니들이 파문하라며 거품을 물던 여자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화국을 위해 전쟁터에서 피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는 니들은 공화국을 위해 대체 무엇을-”


“아저씨, 그만해.”


로빈의 직접적인 제지를 받고서도 드렌턴은 화를 죽일 수가 없었는지 삐죽한 수염을 곤두세우고 씩씩 숨을 내뱉는다. 만약 그가 자신의 대검을 치켜들고 있었고, 장소가 로빈의 집무실이 아닌 전장이었다면 드렌턴의 모습은 그 누구나 위축될 수밖에 없는 위압감이 풍겼을 테지만, 대사제는 근위대장의 위협만으로 자세를 숙일 만큼 소심한 상대가 아니었다.


“근위대장, 당신의 분노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왕이라는 자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지요. 단순히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독재자가 아닌, 조율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찌 조율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존경이야말로 의원들과 국민의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저희는 그런 폐하의 존경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흥, 말은 잘하는군.”


노골적으로 불만을 뱉으며 드렌턴은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 외면을 신호로 노인의 시선은 다시금 왕에게 집중될 수 있었다.


“개인의 감정만으로는 많은 것을 이룰 수 없는 자리가 바로 그곳입니다, 폐하. 아니 오히려, 사적인 감정을 죽여야만 하는 자리이지요. 왕과 왕비라는 존재를 단순히 부부라는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아니 됩니다.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합의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바로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공화국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사제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거대한 미래’에, 지나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4대 가문의 위세만큼은 아니지만, 아뮤르 가문은 분명 검성을 배출한 명문이고 그녀의 업적 또한 근위대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 ‘기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지, ‘왕비로서’는 아니지요. 본인에게 기사로서의 의무를 포기하려는 의지도 없거니와, 제일 중요한 후세를 만들 수가 없지 않습니까.”


“만들다니. 마치 왕비가 후세를 위한 공장이라도 되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대사제와 날카롭게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로빈은 언젠가는 이 대화를 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고집불통의 노인이 가져올 두 가지 문제가 무엇일지도.


“즉, 근위대로 계속 복무하겠다는 지나의 의지와, 아이를 갖지 못하는 그녀의 몸. 이 두 가지가 문제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럼 그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면, 교회도 납득한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예?”


노인의 깊은 주름이 당혹으로 메워지기 시작한다. 기사로서 계속 복무하고 싶어하는 지나의 의지를 꺾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주치의로부터도 ‘힘들다’는 판정을 받은 그녀의 몸을, 왕이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로빈은 자세한 설명 대신, 비죽 웃으며 사제의 얼굴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걱정 마시죠. 조만간 다시 기일~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겁니다.”


왕의 미소와, 그 미소에서 흘러나온 말의 내용. 노인은 좀처럼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것이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면, 교회는 필사적으로 폐하께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하죠.”

로빈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방치해두었던 보고서를 다시 집어 들었고, 드렌턴은 집무실의 문을 열어준다. 그 태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지만, 노인의 걸음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예에, 그것이.......”


슬쩍 고개를 돌려 드렌턴과 훤히 입을 벌리고 있는 문을 바라보는 노인. 결국 로빈이 드렌턴을 향해 고갯짓을 했고,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는다.


“말씀하세요.”


“.......아시다시피, 저와 사제들은 주기적으로 세뮈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대가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근 몇 개월 동안 그녀는 저희의 기도에 답을 들려주시지 않았습니다. 숲의 침묵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진 않고 있었지요. 그러다 어제 마침내 세뮈엘님이 기도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난여름, 폐하와 베르달의 숲속에서 하셨다는 계약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아아, 그거 말인가요. 서면상으론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게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는 것은 저도 잘-”


“아뇨,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그 문제가 아닙니다. 비록 드루이드들을 통해, 그것도 악마들이나 즐겨하는 ‘계약’이라는 형태이긴 합니다만, 저희로선 폐하께서 그분의 은총을 받으셨다는 데에 불만을 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층 더 진중하게 내리깔리는 노인의 목소리. 로빈은 그 눈빛에 담겨있는 무게를 읽어내고서 천천히 보고서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되돌아온 그의 집중이 만족스럽다는 듯, 노인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간다.

“세뮈엘님께서, 폐하가 처음에 계약해 달라 요청하신 분은 폐하 본인이 아니었다고 하시더군요.”


“아, 예. 전 마법사도 아니었고....... 그녀가 원하는 ‘숲의 수호’를 행하지도 않았었으니까요. 그래서 벤... 아니 검성을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의 계약을 거부하였지요. 그 이유를 들으셨습니까?”


“네, 그게........ ‘그런 놈과는 계약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죠. 하지만 벤이 마땅한 자격을 갖춘 것은 사실이니, 대신 나와 계약하고 그 첫 대가로 우리 군 전체에 숲의 축복을 내려주셨어요.”


‘리벨리움의 바다’에서의 대화는, 아직도 어제의 일처럼 명확하게 로빈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실체가 없는 의식의 공간에서 ‘표정’이란 개념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분명 로빈이 벤의 이름을 꺼냈을 때 세뮈엘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왜 계약하고 싶지 않은지는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네. 근데 갑자기 왜 그러시죠? 무슨 문제라도.......”


노인은 흐려지는 로빈의 말끝을 붙잡지 않는다. 그는 나이의 무게로 인해 다소 뒤틀려 있었던 자세를 바로잡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 왕의 검붉은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다. 그리고 직후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는, 주름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카나반 공화국의 대사제로서, 그리고 숲의 교리라는 명을 부여받은 대리인이자 목소리를 받드는 자로서, 레기라 독트리스, 그분의 계약자에게 숲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굵은 빛을 발하는 노인의 눈동자.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위압감.

그리고 주름진 입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말이,

로빈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붉은 나무여, 그를 조심하라.]





===================





약속의 달은 굵은 구름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덕분에 겨울의 계곡은 그 짙은 능선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림자들로만 밤을 이루어야 했고, 마법사들의 발광마법도 없이 그런 계곡을 따라 행군한다는 것은 야전 경험이 풍부한 병사와 지휘관들에게도 꽤나 고역이었다.

물론, 단 하나의 얼굴을 제외하고.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렌을 향한 벨레이의 어투에 가시가 돋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아무런 전술회의나 설명도 없이, 하루 만에 갑작스러운 전군 출격이라니. 심지어 어디를 점령하는 것인지, 또는 누구와 싸우러 가는 것인지, 병사들은커녕 지휘관들조차도 제대로 된 전달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모든 것은, 렌의 얇은 미소에서 비롯된 일이었으니까.


“좋지. 좋을 수밖에 없지. 생각해봐, 평생을 널 괴롭히던 악몽이 끝난다면 어떤 기분이겠어?”


“.......악몽?”


무엇이 그리도 기다리기 어려웠는지, 행렬의 선두에서 힘찬 발걸음을 이어가던 렌이 너저분하게 기른 먹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벨레이의 목소리를 쫓아 뒤돌아선다.


“그래. 좆같은 악몽. 덕분에 참기 힘들 정도로 짜증이 나서, 누군가를 죽여 놓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운, 그런 악몽 말이야.”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벨레이로서는 렌의 행동 자체가 악몽이었다.

이 주변에 대한 정찰은 그가 렌으로부터 근신에 처해졌던 그 척후가 마지막이었다.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야밤에 이런 계곡으로 군을 움직이는 것은, 제아무리 풋내기 장교라도 알 수 있는 기피사항이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바람만큼이나 어두운 병사들의 표정이 그를 입증하고 있었다.


물론 시도는 있었다.

렌이 직접적으로 목적을 밝히진 않았지만, 이 행군이 산속에 숨어있는 카나반 패잔병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이미 뒤집기 힘든 전력 차이긴 하나 단순한 소탕과 섬멸전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때문에 벨레이는 적어도 주변 방위군에게 먼저 협조를 구하라고 렌에게 요청했지만, 그는 보란 듯이 독자적으로 군을 움직여버린 것이다.

이것이 승리에 대한 확신이라는 지휘관의 판단인지, 아니면 렌이라는 남자가 가진 걷잡을 수 없는 변덕의 일환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벨레이가 꿋꿋하게 렌의 뒤를 따르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검성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니들은 여기서 기다려.”


거친 계곡길을 빠져나와 작은 언덕을 앞에 둔 숲에 이르자 렌이 벨레이와 빈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벨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유에 대해 물으려 한걸음 앞으로 나섰지만, 빈스의 대답이 그보다 빨랐다.


“알겠습니다.”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렌과 그의 창. 벨레이는 빈스가 전령들을 향해 대기명령을 하달하는 것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저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 검성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인가?”


그에게 있어 빈스의 존재는 렌만큼이나 비정상적이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빈스가 렌을 ‘모셔’온 시간이 꽤나 길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자신은 벌써부터 질리기 시작한 그의 기질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오랜 기간 그를 받들고 있을 수 있는 건지, 군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빈스에게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글쎄요, ‘잘 부탁한다’도 명령의 범주에 들 수 있다면, 명령이라고 받아들여야겠지요.”


“부탁.......? 검성님께서 말이오?”


일개 부관에게 검성이 직접 부탁을 한다?

벨레이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었다. 하지만 뒤이은 빈스의 말은, 벨레이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이었다.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을 모시고 있는 민간인일 뿐이지요.”


“........뭣? 그게 무슨.......”


장교가, 군인이 아닌 자가 전투에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지휘관을 모신다니, 벨레이의 상식으론 받아들이기 힘든 그의 태도와 위치.


“저는 벨레이 경의 생각보다 오랫동안 그를 모셔왔습니다. 아니, 모셨다기보다는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겠군요. 저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의 대용품이었을 뿐이니까.”


“대용품이라 하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거대한 진실이 고개를 드는 것을 벨레이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향한 마지막 일격을, 빈스는 너무도 가볍고 무심한 어투로 내뱉는다.




“예. 어렸을 땐, 저도 디미르 경을 대체할 후보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곳이 어제와 다른 점이라곤 달빛의 농도가 미세해졌다는 것밖엔 없었지만, 렌의 표정은 마지막으로 이곳을 떠났을 때와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제와는 달리,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살아있는 눈동자’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눈동자들을 대신하여 어둠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불결하고 공허한 죽은 자들의 푸른 시선들.


“.......”


그러나 렌은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다.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푸른 눈동자들이 그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곧바로 망자 특유의 날카로운 괴성이 계곡을 뒤흔들었음에도, 그 소리에 놀란 빈스와 벨레이가 군을 이끌고 달려와도,

그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다.


“저건....... 망자.......? 망자가 아닙니까?! 어떻게 카나반군이 망자를-”


“연대장님, 우측의 산에서도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쇼!”


슬금슬금 모습을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망자의 군대를 알아챈 벨레이와 빈스가 차례로 렌의 곁에 다가선다.


상황은 명백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카나반 군이 전의 전투에서 쓰러졌던 병사들을 망자로서 일으켰고, 어둠을 틈타 그들을 미끼로 계곡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닥친 급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전황을 파악한 것은 벨레이의 눈이었다.


“망자라고 해봤자 동원할 수 있는 시체의 수 자체가 적었을 겁니다. 주력을 산으로 돌리시지요. 놈들은 망자로 시간을 벌어 빠져나가려는 속셈입니다. 지금이라도 방위군에게 전문을 보내십쇼.”


“.......”


계속 침묵하는 렌의 입술.

그제야 벨레이와 빈스는 렌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곳엔,

벨레이는 물론이고,

빈스조차도 본적이 없는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어째서지?”

작게 읊으며, 숲을 향해 떨리는 발걸음을 내딛는 렌.

“그럴 리가 없는데....... 너는....... 너는 ‘나’일 텐데.......”


그리고 렌은, 빈스의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어둠의 품으로 도약하고 만다.


“연대장님!”


“빈스 경!”

빈스는 망자의 무리를 향해 뛰쳐나간 렌을 뒤따라가려 하지만, 벨레이의 거친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는다.

“가게 두시오! 망자들 따위에게 어찌 될 사람은 아니잖소! 우리라도 빨리 군을 움직여서 놈들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 하지만-”


“저 사람 하나 때문에 수천의 적군이 빠져나가게 둘 순 없잖소!”


“.......”

빈스는 마지막으로 렌의 흔적을 쫓아 미련의 시선을 돌린다. 이미 그의 그림자는 망자 서너 명을 뿌리치고 숲속으로 스며든 뒤였다.

“.......알겠습니다.”


“지휘관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산을 포위한다! 1대대는 적의 뒤를 쫓고, 2대대와 3대대는 적의 경로를 차단하며 포위망을 구축한다! 예비대는 이곳에서 망자들을 저지하라! 통신장교는 어디 있나? 지역방위군에게 원군을 요청해라!”


잠자코 있던 왕국군이 빠르게 갈라져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법사들이 마침내 발광 마법을 흩뿌리기 시작한 덕분에 능선을 따라 일렁이던 그림자들의 정체가 카나반군이 맞았음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망자들의 흐느낌을 뒤덮는 병사들의 함성이 계곡 사이를 메아리치기 시작한다. 모든 잎사귀가 말라버린 산맥은 도망치는 패잔병들을 가려주지 못하고 있었고, 그대로 노출된 전력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기에 브린타이나의 병사들은 지금부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사냥’ 그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평화로운 동부국경에서 지내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끌려나와 고생하던 자신들의 처지도, 저들로 인해 일단락될 수 있다는 사실에 병사들의 표정과 걸음은 연이은 전투에도 불구하고 가볍기 그지없었다.




벨레이의 재빠른 결단으로 인해 산을 오르기 시작한 왕국군. 미리 척후를 통해 주변 지형을 꿰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렵지 않게 군을 움직일 수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제대로 된 보급도, 치료할 시간도 없이 도주하는 패잔병들이다. 어둠과 망자라는 변수를 이용한 것까지는 나쁘지 않은 시도라 할 수 있겠으나,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시기.’


카나반군의 후미에 바싹 붙어 산을 오리던 벨레이는 문득 떠오른 하나의 의문을 가지고 빈스를 되돌아본다.


“헌데, 렌 경은 어떻게 놈들이 움직일지 알고 야밤에 군을 이끌고 나온 것이오?”


“.......아마도 붙잡았던 포로와 일종의 거래를 하신 모양입니다.”


“포로라면, 어제 그가 멋대로 풀어준 그 포로 말인가? 자기가 살자고 부하들을 내팽개치다니, 터무니없는 지휘관이로군. 왜 렌 경은 그런 말을 하지도 않고.......”


말을 내뱉으면서도 벨레이는 스스로 답을 낼 수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렌’이니까.



“적입니다.”


빈스의 말대로,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에 수많은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하늘 높이 떠오른 발광마법 덕분에 벨레이는 그 특유의 남색군복을 볼 수 있었다.


“한 시간도 벗어나질 못하는가........ 너무 느리군. 부상자까지 동반하고 있는 모양이오. 우리로선 고마울 따름이지. 잘하면 포위하기도 전에 끝내버릴 수 있겠소.”


검을 뽑아 쥐고서 빠르게 경사를 오르는 벨레이. 날렵한 기사의 발이 그를 카나반군의 후미로 인도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산을 오르는 병사가 기척도 없이 나타난 기사의 일격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했기에, 벨레이의 검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남색군복을 찢고 파고들 수 있었다.


“.......음?”

하지만 그 직후, 벨레이의 표정이 구겨진다. 그가 기대했던 것은 날카로운 병사의 비명소리와 허둥지둥하는 적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검의 감촉이 남긴 것은 너무도 불쾌한 침묵뿐이었다.

벨레이에 의해 등을 꿰뚫린 병사가 천천히 그를 돌아보자, 불쾌함의 근원이 깊은 심연, 바로 그곳에 있었다.

“.......?! 망자?”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만큼은 살아있는 인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표정은 그가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유산이었을 뿐, 영력과 함께 몸으로 파고든 차가운 금속은 그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분노로 가득한 눈동자 대신에, 시퍼렇게 빛나는 죽음의 증거만이 벨레이의 시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째서 여기에도 망자가?!”


자신에게 손을 뻗으려는 망자의 목을 베어내며 벨레이는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그가 카나반군의 후미라고 생각했던 무리는 모두가 똑같이 푸른 안광을 뿜어대고 있는, 생이 없는 자들의 행렬이었다. 그리고 그 후미를 시작으로 능선에 걸쳐 꿈틀대고 있는 모두가 같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벨레이 경! 어떻게 된 겁니까, 망자라뇨?!”


멍하니 있던 벨레이를 끌어당기며 빈스가 묻는다. 이미 주변은 망자와 추격대 간의 전투로 얼룩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도, 숲에 있던 놈들도 모두가 망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 전투에서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온 것도 아닌데.......”


그러나 감상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후퇴하는 모양새였던 망자의 군대가 마치 벨레이의 등장이 신호였던 것처럼 공세로 돌아서고 있었다. 느릿느릿했던 움직임은 온데간데없이 그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재빠른 위협.


“2대대장에게 전문을 보내라! 산의 포위는 철회하겠다! 병사들을 풀어서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라고 전해! 3대대는 예정대로 빠르게 잔당을 소탕한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망자를 모두 베어낸 벨레이가 전령을 향해 외쳤다. 망자라고는 해도 겨우 수백 명의 군세일 뿐이다. 2개 대대면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란 그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도대체 놈들은 어디에 있는 거냐.......!”




=====================




“어때?”


“슬슬 한계야. 좀 있으면 전방에 깔아둔 망자들이 전부 소진될 거라고. 산속으로 보낸 애들도 뒤를 잡힌 거 같아.”


왕국군과 망자들의 교전으로 인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숲의 가장자리.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체들 사이에서 어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일단 뭣보다도 냄새 때문에 못 버티겠네.”


그리고 그중의 하나가 피로 범벅이 된 투구와 갑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드러난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망자 특유의 푸른 심연의 빛이 아닌, 달빛을 끌어당기고 있는 먹색 눈동자였다. 그리고 뒤이어 끈적한 로브를 벗어던진 얼굴도, 명백하게 살아있는 소녀의 눈동자였다. 비록 남아있는 모든 혈마력을 동원하여 죽은 자들의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탓에, 본연의 바닷빛을 잃은 심해의 눈동자였지만.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자들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를 연기하다니, 끔찍한 일이구만.”


새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장 먼저 위장을 벗어던진 벤과 고도를 향해 푸념을 늘어놓는 셰르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군복을 죽어있는 자에게 양보한 탓에 어울리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어느 죽은 왕국군의 강화복으로 전투복을 대신하는 중이었다. 그 또한 타인의 피와 냄새로 찌들어있음은 물론이었다.


“어쨌든 잘 속아 넘어갔잖아. 근데 너 움직여도 돼? 괜찮아?”


“아, 괜찮다니까.”


셰르는 작전이 시작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같은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유진에게 짜증을 부리지만, 그녀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멈출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자, 움직이죠. 셰르와 유진은 좌측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적의 허리를 끊어줘요. 고도, 마스터에게 전투마법사들의 지휘를 맡겨줘. 너 그 이상 무리하다가는 코피 터질 거 같으니까 전투는 좀 쉬고. 리즈, 너는 이대로 중앙으로 나아가. 그리고 엘라 경.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해도 말 안 들으실 거죠?”


“당연.”


“그럼 알아서 날뛰어 주세요. 자, 시작!”


“ ‘자, 시작’이 뭐야. 지휘관이면 좀 더 폼나게 ‘전투개시!’ 라던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넌 망자들 제어에나 신경 쓰시고.”


시체들의 옷으로 위장하고 있던 카나반 군이 서서히 세 방향으로 갈라져서 숲의 끝자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진짜 망자’들을 숲의 전방에 배치시켜 1차적으로 적들의 눈을 속이고, 나머지 모든 망자들을 일부러 노출되게끔 산으로 움직여 시선을 끈 뒤에 정작 본대는 망자로 위장하여 후방에 대기한다-.

벤의 (더럽고 냄새나는) 계획은 적중하여 상대해야 할 적의 숫자를 1개 연대에서 예비대 하나로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더럽다며 시체의 옷으로 갈아입기를 끝까지 거부한 엘라를 제외하고는 카나반군 전원이 시체의 복장으로, 동시에 부동자세로 나무 사이에 서있었기에 가능한 기만책이었다. 거기에 ‘의심받을 만한 숫자’로 보이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기병대를 포함한 일부 군을 최후방으로 돌려놓았으니, 제아무리 발광마법으로 주변을 밝혔다 한들 산속을 돌파하는 망자의 군대와 숲속에 남아있는 군대의 실체를 간파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병대의 돌파가 신호입니다. 적을 전멸시킬 필요는 없어요. 어디까지나 돌파가 목적입니다. 고도, 조금만 더 집중해줘.”


“알고 있으니까 말 좀 걸지 마.”


전장이 흘러가고 있는 방향은 완벽했다. 이대로라면 적이 재배치를 하기도 전에 계곡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벤의 생각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만약 주변이 이미 방위군과 지방군에 의해 포위가 되어있었다면, 그들은 돌파의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포위가 되어 전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벤은 어째선지 지휘관들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내비쳤다. 그 확신의 기저는 참으로 간단했다.


‘그 녀석이라면 그랬을 테니까.’



“.......벤.”



하지만,


고도의 낮은 목소리가 흐르고, 그녀의 불안정한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향해 벤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유일하고, 가장 거대한 변수가 기다란 죽음을 꼬나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



벤은 당황하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은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 녀석이라면 그랬을 테니까.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변수의 굴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3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0) +4 15.12.17 924 16 22쪽
192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9) +4 15.12.12 875 20 16쪽
191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8) +6 15.12.07 884 24 17쪽
190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7) +4 15.12.02 868 24 18쪽
189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6) +6 15.11.26 992 20 16쪽
188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5) +6 15.11.21 867 23 18쪽
187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4) +10 15.11.16 914 25 17쪽
186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3) +10 15.11.11 857 22 20쪽
18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2) +6 15.11.07 867 20 19쪽
18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 +8 15.11.01 1,081 27 18쪽
183 (막간) 나의 태양에게 +8 15.10.27 886 29 11쪽
182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8) +12 15.10.22 924 28 23쪽
181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7) +8 15.10.17 1,044 27 19쪽
180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6) +8 15.10.12 951 28 22쪽
179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5) +12 15.10.07 857 25 21쪽
178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4) +6 15.10.02 923 27 24쪽
177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3) +8 15.09.27 855 23 21쪽
176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2) +6 15.09.22 843 23 20쪽
175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1) +4 15.09.17 1,000 25 20쪽
174 (막간) 결국 안식 따윈 허락되지 않았다 +8 15.09.12 919 26 21쪽
173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10) +6 15.09.07 818 24 24쪽
172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9) +6 15.09.02 918 24 19쪽
171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8) +8 15.08.28 1,004 24 17쪽
170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7) +8 15.08.24 1,149 27 22쪽
169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6) +16 15.08.18 1,024 33 20쪽
168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5) +8 15.08.13 878 24 21쪽
167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4) +10 15.08.07 991 27 26쪽
166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3) +6 15.08.02 984 23 17쪽
»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2) +6 15.07.28 967 30 28쪽
164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1) +12 15.07.23 938 26 16쪽
163 (막간) 겨울에게 작별하는 방법 +10 15.07.17 1,155 28 19쪽
16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1) +4 15.07.12 1,069 27 18쪽
161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0) +10 15.07.07 1,018 26 22쪽
160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9) +7 15.07.02 998 22 20쪽
159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8) +8 15.06.27 982 30 21쪽
158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7) +10 15.06.22 832 28 24쪽
157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6) +8 15.06.17 1,055 28 20쪽
156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5) +10 15.06.12 1,216 27 16쪽
155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4) +6 15.06.07 874 35 24쪽
154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3) +6 15.06.01 922 35 20쪽
153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2) +8 15.05.27 906 35 23쪽
15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 +8 15.05.22 832 31 20쪽
151 (막간) 와인보다 진한 것 +8 15.05.17 1,106 31 13쪽
15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1) +6 15.05.11 995 34 19쪽
149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0) +8 15.05.06 793 34 21쪽
148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9) +11 15.05.01 1,004 33 17쪽
147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8) +15 15.04.26 1,148 28 21쪽
146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7) +12 15.04.21 980 33 21쪽
145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6) +8 15.04.16 1,061 31 17쪽
144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5) +8 15.04.11 1,132 34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