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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조회수 :
44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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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5.11.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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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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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7쪽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4)

DUMMY

“아빠아!”


밤의 흐릿함마저도 고개를 돌릴 깊은 새벽이었지만, 침실로 들어서는 크라트를 가장 먼저 반겨준 목소리는 로즈의 해맑은 웃음이었다. 어느덧 어미와 비슷한 농도로 붉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아장아장 매달리는 귀여움의 악마 앞에서는 차갑기로 드높은 크라트의 입가마저도 봄을 맞은 대지처럼 사르르 녹아내릴 수밖에.


“지금까지 안자고 뭐하고 있었니?”


까칠까칠한 ‘늑대’의 수염이 기분 좋은지, 크라트가 자신을 안아 올리자마자 로즈는 아빠의 턱과 뺨에 마구 얼굴을 부벼댄다.


“엄마랑 놀았어!”


“.......아아, 그래.”


로즈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며, 크라트는 그제야 침실에서 벌어진 참상을 둘러볼 수 있었다.

박살 난 채 나뒹구는 침대의 머리장식. 반으로 쪼개진 탁자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의자. 바닥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의문의 파편들은 분명 올리가 자신의 의수를 대신하여 로즈를 위해 만들어준 특수합금장난감들일 것이다.

그리고 밤 내내 필사적으로 딸의 모든 것을 받아준 엄마는 반쯤 녹초가 되어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크라트가 다가서자, 엘라는 간신히 시선만을 들어 남편의 얼굴을 바라본다.


“.......왔어? 늦었네. 근데 차마 피곤하지? 라고는 못 묻겠어.”

크라트는 피식 웃으며 침대에 앉아 엘라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준다. 그게 재밌어 보였는지, 그의 팔에 안겨있던 로즈도 꼬물꼬물한 손으로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엘라는 고양이와도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그 부드러운 따스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아, 나도 어렸을 때 이랬을까? 도대체 날 어떻게 감당했지?”


꺄륵 웃으며 엄마의 손가락을 붙잡는 로즈. 더없이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저 손가락의 주인이 엘라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뼈가 부러져버렸을 터.


“이제 와서 당신 어머니에게 존경심이 드나?”


“헤엥? 아니, 그 여자는 육아엔 별 신경도 안 썼어. 모든 건 고딘의 몫이었지.”



순간 엘라의 눈동자가 멈춘다.

무심코, 아무 거리낌도 없이 내뱉은 이름.

잊고 싶었던 이름,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이름.

딸의 미소 속에서 평생을 따라다닐 그 이름을 품은 것에 엘라는 어째선지 죄책감이 들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베개 속에 얼굴을 반쯤 파묻었지만, 늑대의 손길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크라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엘라는 커다랗게 눈을 뜨며 그의 미소를 올려다본다.

“그는 평생에 걸쳐 너를 보살피고 지켜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너를 지켜냈지. 그래서 네가 지금 내 손길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수군거려도 상관없어. 아니, 처음엔 실제로 그랬으니까.”

크라트의 손이 엘라의 머리를 떠나 얇은 목으로, 하얗게 드러난 등으로 흘러내린다.

“나의 피가 섞여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나이에 나를 ‘아버지’가 아닌 ‘아빠’라고 불러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축복이지. 비록 나만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를 ‘남편’이라 불러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또한,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어두운 숲하늘이 전부였던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빛이다.”


“아냐!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는 엘라의 움직임은,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은 늑대의 숨결에 그대로 정지한다. 로즈는 그런 부모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꺄륵 웃으며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달콤한 입맞춤의 안타까운 끝에서, 크라트는 촉촉해지는 엘라의 눈가를 거친 손으로 보듬어준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를 향했던 네 마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어. 나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리고-”

흔들리는 엘라의 눈동자를 향해, 다시 한 번 깊게 파고드는 크라트의 푸른 시선.

“그와 맺었던 결실을, 지금의 나와 함께 다시 맺기 위해 조급해할 필요도 없어.”


“.......”


이 남자는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먼저 생각해주고 있다.

결국 엘라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어미의 눈물에 놀란 로즈가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그 ‘결실’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엘라는 떨리는 입술을 움직인다.


“.......미안해.”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잖나. 나는 그 마음과, 로즈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내 기사로서의 피가 충분히 진하지 못했을 뿐.”


지우고 싶었던 이름. 하지만 그 ‘드리브달’이라는 피의 이름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의 속에서 함께 흐를 것이다. 좀처럼 생명을 품지 않으려는 그 짙은 피를, 엘라는 제국에 있을 당시 어머니를 향한 반항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온기가 결여된 방탕함의 잔재들로 드리브달이라는 이름을 더럽혔고, 어머니의 이름을 더럽히려 했다. 하지만 그 끝에서, 결국 그녀는 평생을 곁에 두고도 느낄 수 없었던 ‘사랑’에게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이 남자는, 그런 자신과, 그리고 자신이 품을 수 있었던 최초이자 최후의 결실을 지켜주겠다 맹세했다. 그의 말대로 시작은 정치적인 목적에서였지만, 그를 향한 고마움은 비극으로 얼어붙었던 그녀의 마음을 점차 따스하게 적셔갔다.


때문에 엘라는 조급했다.


그녀의 첫사랑은 하나의 결실만을 남긴 채 증발하고 말았다. 그 결실만이 그와 그녀를 이어주는 유일한 증거이자 연결점이 되었다. 엘라는 힘겹게 다가온 두 번째 온기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원할 때마다 곁에 있어 주었으며 상처를 보듬어주었지만, ‘첫 번째’의 기억이 언제나 불안의 뱀이 되어 그녀의 머리와 가슴 속에 똬리를 튼 채 눈을 빛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엘라는 새로운 결실을 원했다. 이 남자와의,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온기의 증거로써.


“.......미안해.......”


그러나 원망스럽게도, ‘드리브달’이라는 피는 이 남자와의 결실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토록 자신의 피를 저주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향한 분노를 깨달았을 때도 지금처럼 ‘드리브달’을 후회하진 않았다. 자신이 저주스러웠고, 자신의 피가 저주스러웠고, 끝내 버리지 못한 자신의 이름이 저주스러웠다.


“.......괜찮아.”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런 후회조차도 품어주겠다고 한다. 이럴 자격이 있을까-하는 자신의 의심마저도 품어주겠다고 한다. 그의 것이 아닌 결실조차 자신의 것 이상으로 소중하게 품어주겠다고 한다.

이 남자는

너무도 과한 축복이다.


딸과 함께 크라트의 가슴에 안긴 엘라는 마침내 촉촉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크라트 니바르토.”

속삭이듯 자신의 이름을 머금은 엘라를, 크라트는 다소 놀란 눈으로 내려다본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부른 적은 없었으니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줘.”


“.......엘라론 드리브달.”


“아니야.”


“.......엘라?”


“아니야.”


싱긋 웃어 보이는 엘라.

꽃잎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붉은 미소.

그 새빨간 입술을 향해, 크라트는 깊은 숨결을 담는다.


“.......엘라론 니바르토.”


“정답.”


미소가 겹친다. 이번에는 로즈의 꺄륵하는 웃음조차도 둘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마른 눈물을 대신하여 환희의 숨소리가 그 자리를 채워주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시선이 로즈의 얼굴 위를 가로지른다.


“.......”


긴 입맞춤이 끝나고, 엘라는 황급하게 고개를 숙인다. 로즈를 사이에 두고 두 손을 꼭 맞잡은 상태였지만, 크라트는 그녀를 재촉할 생각이 없었다.


“엄마.......?”


“.......”


“엄마 얼굴 새빨개.”


“뭣-!”


로즈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황급히 고개를 들지만, 엘라는 차마 늑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수줍음’이라는 어색한 감정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신선했는지, 크라트는 얇게 웃더니 침대 반대편으로 넘어가 겉옷을 벗기 시작한다.


“피곤하군. 먼저 자도 될까?”


“아, 아! 물론이지! 로즈! 아빠 주무시게 엄마랑 가자?”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일어나려는 엘라의 손목을 붙드는 크라트의 굳센 손.

“오랜만에 셋이서 같이 자도록 하지.”


“엥? 하지만-”


당혹스러워하는 엘라였지만, 이미 로즈는 이불 속 아빠의 품에 파고든 뒤였다. 기대로 가득한 딸의 눈동자를 보고, 결국 엘라는 전등의 불을 내리고 침대 위에 몸을 내려놓는다.


마주치는 시선.


늑대는 얇게 웃으며 딸의 이마에, 그리고 엘라의 이마에 번갈아 입을 맞춘다. 신기하게도, 그가 나타나기 전 온갖 횡포를 부리던 로즈는 너무도 평화로운 숨소리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왕이 갑자기 찾아온 이유를 모르겠군.”


“자기 부인 얼굴 보러오는 데 이유가 필요해?”


“.......정말로 그것뿐이라면 상관없지만. 당신, 혹시 알고 있는 거 없나?”


엘라는 입을 다문다.

자신의 뺨을 간질이는 남편의 손길 때문이 아니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역시 이 남자의 감은 터무니없이 날카로운 걸지도 모른다.

하필 이 순간에 ‘그 일’을 꺼내야 할까?

아니,

어쩌면 그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지금이야말로 그 일을 꺼내야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크라트.”


“음?”


차가우면서도 그 무엇보다 따스한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엘라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왕비에 대해 할 말이 있어.”








“.......뭐야, 저 인간은?”


“아, 대장!”


하루의 마지막 일과로 본궁 내를 순찰하던 올리의 걸음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본궁 외곽에 위치한 감옥이었다. 오늘 새롭게 생포한 제국군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감옥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감옥으로 들어선 그녀를 반긴 건 외곽 순찰을 담당하고 있는 두 명의 베르달 기사.

그리고

감옥 안에 널브러져 있는 거구의 사내.


“순찰 중에 발견했습니다. 인근 주민인 거 같은데, 술냄새가 지독하던데요.”


“제국군일 가능성은?”


날카로운 올리의 시선이었지만, 큰 소리로 코를 고는 취객에게선 그 어떠한 영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사도 아닌 제국군이 여기까지 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저 살집 좀 봐요. 군인은커녕 고깃집 주인도 저거보다는 낫겠네.”


“........”

부하의 말처럼, 옅은 그림자 밑에서도 그 체격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남자의 몸집은 비대했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지방덩어리와도 같은 그 체격 속에서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올리는 잠시 철창으로 다가서보았지만, 이내 코를 찌르는 술냄새에 미간을 구기며 허리를 펴야 했다.

“아침 되면 술 깨워서 내보내.”


“넵.”


“아, 너네 아직 야식 못 받았지? 본궁 식당에서 나눠주니까 같이 가자.”


“아, 정말요? 배고팠는데 잘됐네.”


해맑게 웃으며 올리의 뒤를 따라나서는 두 기사. 곧 감옥은 은은한 불빛만이 가득한 침묵으로 가득 찬다.


“.......으으음.......”

그리고 그 속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남자. 머리를 파고드는 숙취에 그는 거친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감싸 쥐어야 했다. 역한 취기를 애써 짓누르며,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흐린 시야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곳이 자신의 마지막 기억 속의 장소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 뿐이었다.

“.......씨벌, 뭐야 여긴.......?”


축축한 공기.

흐린 불빛.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철창.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도 이 상황으로 인해 분노할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아아, 쓰벌....... 댄이랑 쥬넨 새끼가 또 개지랄하겠구만.”





===================




차량으로는 진입하기 힘든 구불구불한 산길. 이 어지러운 진입로야말로 오스타이나가 본국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때문에 지속적인 보급보다는 분기별로 한꺼번에 이뤄지는 대량 보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브린타이나 내전 당시 북군의 기습 한방에 보급체계가 무너져 내린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야, 꼭 이렇게 직접 산을 올라야 해?”


거친 협곡, 그중에서도 진입로가 아닌 직접 산을 오르고 있었기에 고도의 숨소리는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짜증은 한 남성의 등을 향해 있었는데, 돌아보는 남자의 표정은 너무도 무심하고 평온했다.


“응, 직접 봐야 하니까.”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한 벤의 표정에 고도는 결국 이성을 놓고 만다.


“그럼, 썅 너 혼자 쳐보러 오던가! 왜 우리까지 데리고 오는 건데?!”


“선임전투마법사로서 지휘관을 보좌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 아닌가?”


비꼼이 가득한 대답은 벤이 아닌, 고도의 후방에서 들려온다. 고도와는 달리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니아 시즈키치. 남편인 토우칸과 함께 통합군지휘관의 한 명으로서 팔루뎀에 배속된 그녀였다.


“본인이 직접 척후를 해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검성을 보좌할 이유는 없거든요!”


“그래야 적성이 풀리는 걸 어떡해.”

태연한 벤의 대답이었다. 고도는 만약 그가 자신의 바로 앞에 있었다면 머리를 쥐어뜯었겠지만, 마력수련으로는 보강할 수 없었던 그녀의 체력은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것만 허락했을 뿐이었다.

“카니아 경, 브린타이나 지원군이 접선을 요청한 지점이 어디쯤이었죠?”


“저 봉우리만 넘으면 될 거야.”


물론, 이 산길이 단순한 척후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스타이나가 함락당하자마자 브린타이나 또한 수복을 위한 지원군을 파견했고, 그들과 협력해줄 것을 벤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산세가 워낙 험한 데다가 무선통신을 위한 중계소도 모조리 파괴당하거나 점령당한 터라, 결국 오스타이나 지역을 염탐할 수 있으면서도 직접 만나 지휘관끼리 협의할 수 있는 중간지점을 정해야 했다.


“그나저나, 브린타이나에선 누굴 보냈을까? 3군단 때문에 주력은 묶여있을 텐데.”


“보나 마나 어중이떠중이들 모아서 보내놨겠지. 어차피 언젠가 여기 전체가 우리 책임이 될 텐데, 걔네 입장에선 딱히 필사적으로 수복할 이윤 없을 거 아냐.”


다소 가시가 돋친 고도의 말이었지만 벤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팔루뎀 양도와 관련하여 오스타이나 또한 언젠가는 카나반이 국방을 전담해야 할 지역으로 논의가 되었다. 비록 영주인 할라시드 로쿠베의 강경한 태도로 진척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마침 이렇게 제국에게 함락을 당해버렸으니 브린타이나 입장에선 관리하기 까다로운 곳을 떠넘길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자국의 영토가 침범당했으니, 표면적이더라도 브린타이나 또한 반격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동부전선 전체가 제국 3군단의 공격으로 인해 급박해진 가운데, 이런 ‘애매한’ 장소로 주력을 보낼 이유는 없었다. 말이 ‘협의’지, 결국엔 9할 이상의 책임을 벤의 통합군에게 맡겨버린 셈. 고도가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아.”


아찔한 경사의 바위를 넘어서자, 마침내 일행의 시야가 탁 트인다. 오스타이나로 이어지는 계곡과 성, 그리고 그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의 중턱에 이른 것이다.


“브린타이나 쪽은 아직 안 왔나?”


혼잣말에 가까운 벤의 질문에, 그의 곁으로 다가선 카니아가 대신 답을 내어놓는다.


“저쪽에서 오네.”


과연 날카로운 기사의 감각. 카니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측의 수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런 곳에 제국군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고도는 자신도 모르게 손끝에 마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째선지 익숙한,

동시에 불길한 감각이 수풀 속에서 느껴진 탓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벤도 마찬가지였다.

급속도로 땀이 식어버리고, 모든 솜털들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왜냐면,

마지막으로 이 감각을 느꼈을 때 그의 앞에 있었던 것은-





“이야, 오랜만이네?”





익숙한 목소리.


그 익숙함에,


벤과 고도는 숨을 삼킨다.





“잘 지내셨나, 형제?”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러나 벤은 그 얼굴을 향해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금 자신이 웃어버리면,


마치 거울을 보는 기분이 들어버릴 테니까.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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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6) +8 15.10.12 951 28 22쪽
179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5) +12 15.10.07 857 25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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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3) +8 15.09.27 853 23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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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1) +4 15.09.17 999 25 20쪽
174 (막간) 결국 안식 따윈 허락되지 않았다 +8 15.09.12 919 2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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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9) +6 15.09.02 918 24 19쪽
171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8) +8 15.08.28 1,003 2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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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2) +8 15.05.27 906 35 23쪽
15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 +8 15.05.22 832 31 20쪽
151 (막간) 와인보다 진한 것 +8 15.05.17 1,106 31 13쪽
15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1) +6 15.05.11 993 34 19쪽
149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0) +8 15.05.06 792 34 21쪽
148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9) +11 15.05.01 1,004 33 17쪽
147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8) +15 15.04.26 1,148 28 21쪽
146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7) +12 15.04.21 980 33 21쪽
145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6) +8 15.04.16 1,060 31 17쪽
144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5) +8 15.04.11 1,131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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