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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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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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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9
글자수 :
3,143,319

작성
15.08.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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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7쪽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8)

DUMMY

겨울의 끝자락.

슬슬 물러가야하는 바람이건만 무엇에 그리도 미련이 남았는지 여전히 병사들의 옆구리를 거세게 파고들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끈질긴 추위에 대한 불평의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표정도, 한숨도 없었다.

남브린타이나 통합군 1진, 5만정예병 중에서도 가장 경험이 많고 용맹한 자들로만 구성된 3천8백의 선봉대. 편제를 깨고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 구성된 자들이었기에 저마다 다른 제식과 규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 위로 펄럭이고 있는 깃발들만큼은 통일된 문양과 색으로 펄럭인다.


“예상 밖인데.”


그리고 그 깃발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차가운 불꽃의 여왕’ 론크리스 프리징플레임 7세.

그녀는 어느덧 목덜미까지 내려온 얇고 새카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안경너머로 푸르스름한 눈동자를 빛낸다. 다른 지휘관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야전에서 지내왔기에 후줄근한 제복은 어쩔 수 없었지만, 특유의 고상한 분위기만큼은 여전히 날카롭게 유지중인 그녀였다.

그녀의 예상 밖이다- 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남브린타이나군이 옥스토브라카 계곡을 넘어 북으로 올라오는 데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북군을 이끄는 오열의 검성이 단순히 퇴각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매복과 저지물을 설치했을 거란 예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곡을 넘어 북부에 위치한 평야로 진군할 때까지 그녀는 북군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진격속도를 늦추기 위한 야습도, 보급로를 향한 공작도 없었다. 그 어떤 환영의 인사가 없다는 게 어색할 정도로 남군은 너무도 평화롭게 북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녀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오게 만든 요소는 따로 있었다.


축축한 평야 반대편을 가득 뒤덮고 있는 북군의 물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오열’이 어째서 유리했던 전화를 뒤집고 북으로 후퇴한 것인지 그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크리스는 그의 행동으로부터 그 어떤 전략적 의도를 찾아낼 수 없었기에 대담한 북진을 감행했고, 계곡을 통과하면서 매복이나 기습이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오열이 수세에 몰렸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었다.

하지만 계곡을 빠져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를 맞이하고 있는 북군의 포진에 크리스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블라르가 수세에 몰린 것이었다면 그는 요격이 아니라 수성을 택했을 터이다. 그러나 저렇게 대담하게 요격을 나왔다는 건 전투의지가 분명하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전략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매복이나 보급로공격을 시도하지 않은 것인가.


“정보에 따르면 병력을 나눴다고 하네.”


마찬가지로 크리스의 곁에서 평야를 둘러보던 디미르의 말이었다.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머리를 묶어 넘긴 그의 풍채에선 평소보다도 더욱 진한 자신감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병력을?”


“응. 아직 활개치고 있는 서부의 용병을 정리하고 동부의 불안정한 국경을 보강한다는 명목이라고는 하는데, 글쎄에......”


“그럼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놈들은 남부로 쳐들어왔던 거에 비해 어느 정도 규모지?”


“절반.”


“절반.......?”


크리스의 얼굴에서 더욱 의문이 깊어져간다.

남군이 옥스토브라카를 점령한 북군을 곧바로 몰아내지 못한 것은, 검성 블라르의 존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남군의 규모를 압도하는 북군의 전력 때문이었다. 만약 욘에서 제공한 용병이 서쪽경로를, 그리고 카나반의 원정군이 동쪽경로를 차단하지 않았다면 남브린타이나군은 대대적인 북군의 남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력에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런 병력운용이라니, 거듭 납득할 수가 없는 크리스였다.


“.......이건 마치-”


“판을 벌여준 거 같지.”


자신의 말을 대신 맺어준 디미르를 향해 크리스는 불편한 시선을 돌린다.


“.......너 그를 만나고 온 뒤로 뭔가 알고 있는 분위기인데, 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거라도 있어?”


“그럴 리가♥”


상큼한 디미르의 미소였지만 크리스의 주름은 깊어져만 간다. 결국 그녀는 길게 디미르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평야너머로 다시 눈동자를 흘려야했다.


“저기에 그가 있을까?”


“응.”


“.......되게 확신하는데.”


“있을 거야. 아니 있을 수밖에 없지.”


디미르는 말을 재촉하여 평야를 향해 그림자를 들여놓는다. 밤새 얼어붙었던 땅이 높게 솟아오른 태양의 열기를 품고 질척질척 그의 말발굽을 맞이했지만, 화사한 빛을 품고 있는 그의 미소 앞에선 더러운 진창도 ‘왕의 길’ 그 자체였다.


그런 햇빛을 받아 디미르의 눈동자와 함께 반짝이고 있는 것은

회색빛의 에페검이 아니었다.

보잘 것 없는 직선,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있는

남루한 창.


“내가 여기 있으니까.”

무엇에 근거한 자신감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미소는 전염되어 크리스의 입가로 피어나고 있었다.

“자, 사령관. 명령을-.”


뒤돌아보지 않아도 크리스는 그 순간 모든 병사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주위로 모여든 지휘관들과 전령들 또한 자신의 입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의문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

평야를 휘두르고 있는 바람도, 날씨도, 그리고 상황도, 모든 것이 밝게 빛나고 있다.



“디미르를 선봉으로 돌격대가 중앙을 돌파한다. 부관은 반즈 스트라토스가 맡는다. 재규 경,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그대도 지금만큼은 브린타이나의 기사로서 디미르를 보좌해주길 바란다.”


“그러죠.”


두꺼운 도복을 펄럭이며 재규가 앞으로 나선다. 곧바로 옥스토브라카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눈동자를 불태우고 있는 반즈가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태까지 수없이 계획해온 전면전이다. 작계에 변경은 없다. 팔랑케 장군, 그대가 좌익의 보병사단을 이끈다. 우익은 각 지휘관이 유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중앙의 선봉대이다. 양익은 중앙의 돌파에 맞춰 전선을 유지하는데 주력하라. 이번 전투에 예비대는 두지 않을 것이다. 전력으로 맞선다. 마법사들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마력을 쥐어짜내. 전투가 끝나고도 멀쩡히 서있는 자들은 내가 직접 처벌할 거라 일러라. 기병대는 디미르가 중앙에서 교전을 시작하자마자 우회하여 적군의 시선을 흩트려놓는다. 제르노 대령, 땅이 물렁해서 기동력을 살리지 못했다는 변명은 듣지 않을 것이다. 알겠나? 이상, 질문?”


“없습니다!”


마치 이등병처럼 굳센 목소리를 내는 지휘관들.

그 패기에 크리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매끄럽게 흘러나온 한마디가

2차전의 서막을 터트린다.




“전진.”








두 무리의 하얀 파도가 맞부딪친 곳은 평원의 한가운데.

별다른 계책도, 외부요인도 없이 순수한 힘으로 정면충돌하는 군세. 덕분에 그 치열함은 시작부터 거세게 겨울하늘을 몰아치기 시작한다. 함성소리가 끼어들 틈도 없었다.

칼에 베이고 창에 꿰뚫려 비명을 내지르는 병사들, 보호막을 뚫고 날아든 공격마법에 찢겨져나간 사지를 붙들고 신음하는 병사들. 하지만 그런 그들보다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진창 위로 쓰러지는 병사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빠르게 병사들의 목소리가 소모되었으나 양익의 전선은 고착되는 중이었다. 덕분에 병사들은 아군과 적군의 시체가 뒤섞인 바닥 위에서 전투에 임해야 했지만, 교대할 예비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들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전선의 깊이에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


북군의 여기사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본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오른팔이 ‘있었던’ 허공을 바라본다. 이미 그녀의 팔은 검을 손에 쥔 채로 하늘로 솟구치는 중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전선을 수습하기 위해 달려온 모든 기사와 병사들은 저마다 하나씩 잘려나간 그들의 신체를 허망하게 바라만 봐야했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은 그 의문의 중심에,


디미르가 있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대로 적진으로 파고들었다. 북군의 기사들은 그런 무모함을 비웃으며 그를 포위하려했지만 디미르는 개의치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손에는 평소의 에페검이 아닌, 창이 들려있었기에.


그는 돌풍과도 같이 북군의 병사와 기사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사방으로 몰아치는 그의 창을 이상하게 누구도 막아내질 못하고 있었다. 창이란 본래 찌르기 위한 무기일터. 그것을 마치 도끼처럼 휘두르고 있었기에 그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북군의 기사들이 무기를 들이밀어보지만, 멈춘 것은 디미르의 창이 아니라 그들의 호흡이었다.

북군의 기사들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디미르가 휘두르는 창은 빠르긴 하나 그 궤도를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범위’ 밖에서 견제를 하려는 생각이었는데, 그의 창에 자신의 무기가 닿기도 전에 먼저 이쪽의 팔이 잘려나간다.

그들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한 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이 떠올린 감각은 오직 하나였다.


이것은 ‘오열’의 창이다.



“음?”


수십의 병사와 기사들을 허공에 흩뿌리고 나서, 디미르의 창은 결국 그의 영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버린다. 그러나 적진의 한복판에서 비무장이 되어버린 그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북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존재가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낸 셈이었다.


“디미르님!”


거친 목소리와 함께 창 하나가 디미르를 향해 날아든다. 부관으로서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반즈였다.


“아, 고마워. 역시 이스누시아 연철이 아니라 오래 버틸 수가 없네. 오랜만이라 힘조절도 안 되고 말이야.”


그의 장난스러운 미소는 오히려 반즈를 당혹하게 만들 정도로 편안하고 느슨했다. 적진의 한복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여유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지금 이 전장에서 그 어떠한 것보다도 거대한 영향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양익이 고착된 상태에서 중앙만 치고 들어 가봤자 결국엔 포위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미르를 필두로 하는 남군의 중앙은 오히려 ‘돌파’라는 충실한 역할을 통해 전선을 유린하는 중이었다. 감싸고는 있으나 ‘포위했다’라고는 절대로 표현할 수가 없는 상태. 그를 상대하는 북군지휘관들의 공통적인 판단이었다.


단순히 홀로 앞서서 무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다. 디미르는 적절한 속도로, 자신이 이끄는 군에 가장 위협이 될 만한 틈을 직접 파괴시키며 길을 터주고 있었다.

‘기사로서’가 아닌, ‘지휘관으로서’ 가장 치명적인 존재.

이것은 마치,


‘오열의 검성과도 같지 않은가!’


반즈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확신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새로운 시대의 탄생’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대로 적을 갈라놓는다. 잘 따라와!”


그가 항상 유지했던 깔끔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난폭하게, 그러면서도 무자비하게 적군의 피를 뒤집어쓰는 디미르와 그의 군마.

그의 창이 반원을 그릴 때마다 하늘 높이 붉은 안개가 튀어 오르며 ‘공간’이 만들어진다. 붉게 더럽혀진 그의 미소는 북군에게 있어 그야말로 악몽이 되어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 붉은 농도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지치기는커녕 광기처럼 빛났기에, 디미르의 뒤를 따르는 남군의 선봉대는 사기를 드높이며 전장을 물들이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창이 살육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날 때마다 반즈는 시체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창을 주워 그에게 건넨다. 얼마나 질 좋은 철로 만들어진 것인지,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직 디미르의 미소를 유지시켜주는 것, 그뿐이었다.







“검성님!”


“음.”


북군의 중앙은 후방에 있는 지휘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하게 무너지는 중이었다. 그에 지휘관들은 다급한 얼굴로 블라르를 바라보았지만, 검성의 답을 듣기도 전에 통신병의 외침이 먼저 지휘소에 울려 퍼진다.


“적의 기병대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목표는....... 아군의 우익입니다!”


“저지할 병력은?! 아군의 기병대는 어디에 있나?!”


“가용합니다만, 중앙의 에들턴 장군에게서 투입요청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중앙이 버틸 수가 없나.......! 지금 중앙에 기병대를 투입시키면 적이 자유롭게 우리 우익을 유린할 터....... 검성님, 어쩌시겠습니까?”


질문을 받았으나 블라르는 잠시 침묵한다. 그의 시선은 탁자 위에 펼쳐진 전술지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차마 그를 재촉할 수가 없어 지휘관들은 간신히 말을 삼키며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지휘소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는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음은 물론이다.



“.......기병대는 우익을 보호한다.”


“그렇다면 중앙은.......?”


천천히 고개를 드는 블라르.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맑은 햇빛이 통과하는 전장의 한가운데로 향해 있었다.




“내가 막겠소.”






========================





“대군, 적습입니다.”

카논이 침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말했다. 새벽의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예상대로 토우칸은 침대가 아닌 책상 위에 육중한 몸을 올려놓고 있었다.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벼..병사들이 모,모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어,어떻게 저만 펴,편히 잘 수 있..겠어요.”

여전히 인자한 미소였으나, 그 눈가나 입가의 피곤은 이미 그 색이 짙어져있었다.

“뒤...뒷산의 척후병들에게 보,보고가 들어왔..나요?”


“예, 적의 침투를 확인했습니다. 병력을 나눠 배치시키긴 했습니다만....... 오래 버틸 순 없을 겁니다.”


“......하, 핫. 그럼 여,여기까지인가 보네요.”


그는 기사도 아니거니와, 군을 다뤄본 경험도 길지 않다.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을 앞에 두고서 어떻게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인지, 카논은 의아하면서도 자신의 결심을 되뇌고 있었다.


“.......부관으로서,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저희만 도망치는 거 마,말씀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토우칸은 손을 들어 카논의 말을 막아선다. 그녀는 난전을 벌어진 틈을 타서 역으로 산을 통해 벗어나자고 계속해서 토우칸을 설득해왔던 것이다. 그때마다 토우칸은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들어 거절했지만, 카논은 그런 그의 태도가 답답할 따름이었다.

“병사들도, 지휘관들도 모두 동의했습니다! 대군을 이런 곳에서 적에게 포로로 넘겨줄 바엔 모두가 목숨을 바쳐서 막아서겠다고요! 대군께서 포로가 되시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실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카논의 다급한 목소리에, 토우칸은 결국 미소를 거두고 얼굴을 굳힌다.


“저는 로빈의 형이기 전에 일군의 지휘관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도 바로 그 지휘관으로서의 명령을 받들었기 때문이고요. 그 책임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보단 이곳에서 지휘관으로 죽거나 잡히는 게 낫습니다.”


“.......그놈의 고집은-”


한발 다가서려던 카논은 걸음을 멈춘다. 어느새 토우칸의 손에서 날카로운 단검이 빛을 발하고 있던 것이다.


“혹시라도.... 저, 저를 억...지로 끌고가실 새,생각은 하지 마...세요.”


“.......”

그의 말대로, 카논은 토우칸이 끝까지 저항할 경우 그를 기절시켜서라도 억지로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이 뚱뚱한 대군은 그런 그녀의 생각까지 미리 읽었던 것이다.

밖으론 전장의 함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던 카논은,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공화국의 기사들을 대신하여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체념을 읽어냈기에, 토우칸은 점잖게 단검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뭐....뭔가요?”








“항복?”


“예.”


빈스의 보고를 들은 벨레이의 표정이 급격하게 구겨진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쪽을 괴롭히던 놈들이 숨통이 끊기기 직전에야 항복이라니, 여간 괘씸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무시해라. 코르드 조약이고 뭐고 이쪽은 포로들까지 챙겨줄 여유가 없으니까. 한시바삐 성을 정리하고 중앙으로 합류해야한다.”


“저기.......”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나아가려던 벨레이를 붙드는 빈스의 목소리. 그 심상찮은 무게를 느낀 벨레이가 다시 시선을 그에게 돌린다.


“뭔가?”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빈스가 내민 것은 한 장의 전문이었다. 벨레이는 힐끗 빈스와 종이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결국 그것을 받아들어 읽기 시작한다.

무심하던 그의 표정은 전문의 내용을 읽어내려 갈수록 점차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내용을 읽고 떠오른 그의 얼굴엔,

형용하기 힘든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





“카나반 왕의 형제?”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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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9) +6 15.09.02 917 24 19쪽
»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8) +8 15.08.28 1,003 2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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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1) +4 15.07.12 1,067 2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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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6) +8 15.06.17 1,054 28 20쪽
156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5) +10 15.06.12 1,216 27 16쪽
155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4) +6 15.06.07 872 35 24쪽
154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3) +6 15.06.01 921 35 20쪽
153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2) +8 15.05.27 905 35 23쪽
15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 +8 15.05.22 832 31 20쪽
151 (막간) 와인보다 진한 것 +8 15.05.17 1,106 31 13쪽
15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1) +6 15.05.11 993 34 19쪽
149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0) +8 15.05.06 792 34 21쪽
148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9) +11 15.05.01 1,004 33 17쪽
147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8) +15 15.04.26 1,148 28 21쪽
146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7) +12 15.04.21 979 33 21쪽
145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6) +8 15.04.16 1,059 31 17쪽
144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5) +8 15.04.11 1,131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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